11화.
11화.
윤희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물론 그래봐야 앉은키와 별로 차이가 나진 않았지만.
‘설마 여기서 볼 줄이야.’
이렇게 되면 아까 피한 의미가 없었다.
태현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자신과 윤희주를 번갈아 보고 있는 한태령의 표정을 살폈다.
‘그냥 우연인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좀 곤란해진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왜 왔냐니까? 대답 안 해?”
성격이 여전하다.
저 외모로 괄괄한 성격이라니.
태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재등록을 하러 왔더니, 이곳으로 가라더군요.”
“뭐? 재등록? 그거 헌터 재등록 말하는 거야?”
윤희주의 눈이 커진다.
놀람 속에 기쁨이 깃들어 있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홱!]
그녀가 날 듯이 뛰어 태현의 앞에 섰다.
가슴께에 오는 머리를 보자 옛날 생각이 났다.
‘1센치도 안 컸네.’
뭐, 키가 자랄 나이가 아니긴 하지.
“어떻게 된 건데? 응? 완전히 나은 거야? 정말로 마력을 사용할 수 있어?”
무슨 고양이가 계속 보채는 듯한 모습이다.
“둘이 본래 아는 사이였나보군.”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한태령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반가운 건 알겠는데, 회포는 나중에 푸는 게 어떻겠나?”
느긋한 음성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만큼은 묵직했다.
『5』레벨인 윤희주가 움찔하며 얼굴을 굳힐 정도로.
“······죄송합니다아.”
한태령의 직급은 부장.
일개 던전공략팀의 팀장에 불과한 그녀가 거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일단 자네도 앉지.”
태현은 한태령의 말에 윤희주와 소파로 가서 앉았다.
“이름이 지태현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기록상엔 마력회로가 완전히 찢어져, 더 이상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던데.”
옆에 앉아 있는 윤희주가 살짝 몸이 떠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헌데 재등록이라. 정말로 마력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눈빛이 뜨겁다.
왠지 맞다고 대답을 하면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태현에게 당한 협회 직원의 보고도 들어갔을 테고, 애초에 재등록을 하러 왔다는 사실 자체가 사실이란 증거였으니까.
“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번쩍!]
윤희주가 엄청난 속도를 돌리며 태현을 바라봤다.
아주 신난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태현은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는 한태령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그걸 왜 물으시는 겁니까? 제 상태는 던전분석연구부에서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닌 듯한데.”
차라리 각성자관리부라면 이해가 되었을 텐데, 뜬금없이 던전분석연구부?
그것도 부장이 나타나니,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뭐, 어쩌다 보니 자네에 대한 보고를 내가 가장 먼저 받았거든.”
“아.”
그날 당한 헌터가 이쪽 소속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른 걸세. 내가 직접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까?”
태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한태령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등록 테스트는 내가 맡도록 하겠네.”
‘쯧.’
웬만하면 몰래 재등록을 한 뒤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른 것 같네.’
언젠간 마주할 일이었다.
마력을 잃은 각성자가 다시 헌터로 재등록하는 건, 단 한 번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바로 오늘이 될 줄이야.
“준비는 내가 미리 해두었으니, 함께 가지.”
시간 끌 것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크다.’
앉아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나니 마치 산을 보는 듯했다.
풍기는 마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엄청나게 단련되어 있는 육체였다.
태현이 그를 따라 일어나자, 윤희주가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저도 갈게요!”
그녀는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옛 팀원이 궁금했나보군. 그럼 그렇게 하세나.”
한태령은 재미있다는 듯 윤희주를 바라보고는, 먼저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헌터 재등록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
“일단 마력측정에서 적합 판정이 나온다면, 『F급』이상의 던전을 클리어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네.”
한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방식을 취하는지도 알 테고.”
물론이다.
보통 헌터 재등록을 하는 이들은, 헌터 활동을 하지 않은 각성자였으니까.
병, 부상, 혹은 두려움 등등.
이유야 많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동안 단 한 번의 던전 입장 기록도 없는 이들은, 곧장 자격이 정지된다.
문제는 헌터가 제법 혜택이 많다는 것.
덕분에 자격을 잃은 각성자들은 대부분 재등록을 한다.
그 과정에 던전 클리어라는 걸 넣은 이유는, 헌터로써의 능력을 시험함과 동시에 실적을 쌓으려는 것이었고.
“지금까지 자네와 같은 이유로 재등록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가며 말한다.
“그렇군요.”
태현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이어질 말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언노운급』던전.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던전에 입장하는 것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음성이 들리더니, 마력이 회복되고 『즉살』이란 스킬을 얻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그저 갑자기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걸 이용해 몬스터를 잡은 게 전부입니다.”
“그런가?”
태현의 말에 한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믿는 눈치는 전혀 아니었지만.
“조사 결과 던전의 등급은 『B급』이상일 것이라고 하던데.”
‘『B급』?’
태현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던전의 등급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쪽이 알아서 멍석을 깔아줬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전에 경험했던 『B급』던전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말을 받았다.
“흠, 다행히 조사 결과가 틀리진 않았군. 그런데······.”
한태령의 눈길이 묘하게 바뀌었다.
“자네가 홀로 『B급』던전을 클리어 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던가?”
속이 뜨끔하다.
마력을 잃기 전 태현의 레벨은 『3』.
그 정도면 『B급』은커녕, 『C급』던전도 솔로 클리어가 버거운 경지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둔 변명거리가 있었으니까.
“『AAA급』던전에 들어가기 전, 모아두었던 모든 코인은 사용해 한 가지 아이템을 샀었습니다.”
“아이템?”
“바로 이것입니다.”
태현은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도를 뽑아 건네주었다.
“이건······.”
『삭월도』를 손에 쥔 한태령의 눈이 커졌다.
그럴 수밖에.
이만한 성능을 지닌 아이템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만약 팔 수 있다면 족히 수십억은 받을 수 있을 텐데.
“이걸 들고 갔었습니다. 『카나리아』는 워낙 위험하다 보니 혹시 몰라서요.”
“이 정도 물건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태령이 감탄한 표정으로 도를 다시 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텐데?”
그러니까 네가 그 『삭월도』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냐는 뜻이었다.
‘됐다.’
이 정도면 반쯤 넘어온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설득하는 것······.
“아, 완전 쌉가능하죠! 지태현 실력은 바로 제가 보증해요!”
대답은 태현이 아닌 윤희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으음?”
“얘가 얼마나 대단한데요. 무려 『마력친화』의 재능이 있는 놈이라고요. 그게 뭔지 아시죠?”
『마력친화』는 같은 스킬을 써도 더 강한 위력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재능이었다.
태현이 유망한 헌터라 불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마력친화』와 『전륜성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력친화』라. 그렇군.”
놀랍게도 한태령은 윤희주의 말에 납득하는 듯했다.
‘오히려 잘됐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자신이 말하는 것보단 윤희주의 발언이 훨씬 설득력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실력 좋은 던전공략팀의 팀장이었으니까.
윤희주가 눈을 반짝이며 태현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때, 나 잘했지?’ 라고 묻는 표정으로.
‘진짜 하는 짓이 고양이 같네.’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알겠네. 보고서는 자네의 말대로 작성해두도록 하지.”
일단 당장의 대화는 별 일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로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태현이 마력을 회복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그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할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납치한 다음 생체실험을 할지도 모르지.’
과장이나 엄살이 아니었다.
협회라면 정말로 그걸 시도할 만큼의 힘과 능력이 있었으니까.
작정한다면 그보다 더 심한 짓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놈들을 믿느니 몬스터를 믿지.’
놈들의 진면목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잘 알고 있는 태현으로선,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도착했군, 하하.”
한태령이 웃음과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27층의 가장 안쪽.
다른 곳들과 달리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문이 달린 곳이었다.
“여긴 협회의 간부급 헌터들이 사용하는 측정실이라네.”
“간부 말입니까?”
태현이 살짝 놀랐다.
협회 간부라면 최소한 『7』레벨부터 『10』레벨까지의 무지막지한 강자들이었으니까.
당연히 3층보다 측정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가 높았다.
“괜히 귀찮게 여기까지 부른 보답일세. 이곳에서 편히 테스트를 받게나.”
“감사합니다.”
태현은 찝찝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
내부는 꽤나 넓었다.
3층과는 달리 깨끗하고 고급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데서 테스트를 한다고?’
확실히 고위급들은 사는 세상이 조금 다른 듯했다.
“지태현 씨?”
감탄과 불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며 이름을 불렀다.
새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이 무슨 연구원이나 의사 같았다.
“네, 맞습니다.”
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서 서보시겠어요?”
사람 한 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의 유리관이 수직으로 서있었다.
처음 보는 장치에 눈을 깜빡거리고 있자, 뒤에서 윤희주가 속삭였다.
“마력측정장치야. 우리가 예전에 쓰던 것보다 훨씬 미세하고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더라고.”
마력측정장치라니.
그런 건 원래 금속구에 손을 올려서 측정하는 게 국룰 아니던가?
‘나 때는 그랬는데.’
몇 년 사이 세상이 많이 바뀐 모양이었다.
윤희주를 향해 눈으로 고맙단 인사를 한 뒤, 유리관을 향해 걸어갔다.
“무기는 풀어서 옆에 놓으신 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푸쉬이익!]
손을 가져다대자 공기압이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세상 많이 좋아졌네.’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시키는 대로 그 안에 들어갔다.
그러자 서서히 문이 닫혔다.
“그럼 이제 마력을 방출해 주세요.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최대치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다른 각성자라면 조금이라도 더 강력한 힘을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눈도장도 찍고,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협회든 길드든 말이다.
하지만 태현은 그저 재등록만 하면 족하다.
괜히 이전보다 더 강했다는 사실을 밝힐 이유가 없었다.
그래봐야 협회만 더욱 집요하게 만들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태현이 마력을 서서히 방출했다.
‘딱 『3』레벨 수준 정도로만 보이게.’
[우우우우우우우웅!]
전력의 30%도 되지 않는 기운.
딱 그 정도만 끌어올렸을 때였다.
[삐익! 삐익! 삐익! 삐익!]
“어, 어? 이거······!”
갑작스런 경고음과 함께, 밖에서 당황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쩌저저적, 쩌저저저저적!]
유리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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