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13화.
태현은 굳이 윤희주의 손에 체포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에게 괜한 혐의가 씌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희주는 망설였지만, 결국엔 태현의 말대로 제압하는 시늉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신이 체포를 한다면, 조사가 진행될 때도 어떻게든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덕분에 태현은 아무런 잡음 없이 순순히 사로잡혀 협회 지하에 있는 감금시설에 처박혔다.
‘저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
양손에 마력을 억제하는 구속구를 채운 채,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생각해 보았다.
‘가볍게 넘어가진 않겠지.’
세상은 몇 명이 죽었는지 보다, 누가 죽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냉정한 말이었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평범한 헌터 100명과 던전분석연구부의 부장 1명.
협회에서는 후자의 죽음을 더 큰 위협으로 받아들일 게 뻔했다.
‘일단 재판 따위는 하지 않을 테고.’
저들의 힘은 사법부를 가볍게 능가한다.
심지어 협회 본부 안에서 벌어진 일인지라, 굳이 바깥으로 상황을 알리지 않고도 스스로 처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태현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로 인체실험을 당할 수도 있겠는데?’
온몸을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마력회로가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실험할 확률이 높았다.
“뭐,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있을 생각도 없긴 하지만.”
하지만 태현은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이 협회에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일이 좀 꼬이며 이런 상황에 처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바뀌는 건 없었다.
태현은 고민을 멈추고 그냥 그 자리에서 드러누워 버렸다.
“시간 되면 깨우러 오겠지.”
그때까진 좀 쉴 생각이었다.
* * *
협회장 직속 독립 기관, 집행부.
그곳은 기관의 내외부를 막론하고, 협회가 정한 규칙을 어기는 이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부서였다.
당연히 헌터들은 그들의 힘을 두려워하며, 경원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한태령 부장이 먼저 공격을 했단 말인가?”
그런 부서의 장을 맡고 있는 유진성이 서늘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다고 몇 번을 대답해요?”
윤희주가 인상을 구기며 뾰족하게 대답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고요. 갑자기 발광하면서 덤벼들었다니까. 지태현은 그냥 그걸 막느라 어쩔 수 없이, 어? 막 그러다 죽은 거라니까?”
흥분한 음성으로 소리치는 윤희주의 모습에도, 유진성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다른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서로 간의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 같던데.”
“정확히는 의견충돌이 아니라 협박을 한 거죠. 막말로 붙잡아 놓고 네 비밀 좀 캐보자 하는데, 그걸 좋아할 헌터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냐고요.”
“흐음.”
그 말엔 유진성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한태령이라는 것이었다.
협회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인데다, 중요한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자다.
그런 사람이 자기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살해를 당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는 차치하고, 협회 입장에선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
유진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
마음 같아선 공정하게 처리를 하고 싶었지만, 사안의 중대함은 그의 손으로 덮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목격진술은 여기까지 듣겠다. 나가보도록.”
눈을 치켜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윤희주에게 나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서늘한 마력을 풍겼다.
“혹시 이번 일로 처벌할 생각인가요?”
“그건 윤 팀장이 신경 쓸 일이 아닐 텐데.”
“지태현은 내 팀원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아니요. 난 한 번도 그놈을 내 팀원이 아니라 여긴 적이 없어요. 이제 마력까지 되찾았으니, 더욱 그렇죠.”
좋게 타일러 내보내려 했는데, 윤희주는 말을 들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듯했다.
“네가 지태현 씨를 얼마만큼 아끼는 진 알겠다. 하지만 협회에는 협회만의 규칙이 있어. 그리고 그는 명백히 선을 넘었지. 내가 처벌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없다.
설령 있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윗선에선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부당한 결과가 내려진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유진성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삼켰다.
“본인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
윤희주는 일개 던전공략팀의 팀장.
그녀와 같은 이는 협회에 널리고 널려 있었다.
위에선 윤희주를 언제든 쓰다 버려도 되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존재가 발악을 해봐야,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과연 그럴까요?”
‘뭐지?’
윤희주의 태도가 이상하다.
분명 그녀는 아무 힘도, 권력도 없는 장기말에 불과할 텐데.
‘마치 믿는 바가 있는 것 같군.’
유진성은 속내를 읽어내기 위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타오르는 듯한 분노만 가득할 뿐, 그 외의 다른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후회할 거예요.”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결과를 바꾸지 않으면, 당신은 반드시 후회할 테니까.”
“······나가보도록.”
협박이라도 하는 것일까?
유진성은 애써 그 말을 무시하며 윤희주를 내보냈다.
‘차라리 후회를 했으면 좋겠군.’
지금처럼 자괴감이 드는 것보단, 그게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나가는 그 순간까지 똑바로 노려보는 그녀의 흉포한 기세에 조금 지친 것일까?
유진성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뒤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태현이라.
그에 대한 처분은 이미 결정되었다.
‘3일간 감금 후, 강원도의 기밀시설로 이송.’
그곳에 간 사람은 다신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적어도 유진성이 보낸 이들은 그러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딱히 좋은 대우를 받진 않을 것이다.
“알려주러 가야겠군.”
유진성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지하 3층으로 가겠다.”
문 옆을 지키고 있던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 그를 안내했다.
[띠잉!]
아래로 내려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위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복도가 드러났다.
어둡고 고요하다.
감금시설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복붙하면 이렇지 않을까?
유진성은 따라오려던 부하를 손짓으로 막고는, 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3호실.’
지태현이 갇혀 있는 방에 도착한 뒤 위쪽의 CCTV를 바라봤다.
[철컹!]
그러자 모니터를 하고 있던 간수가 잠금장치를 풀었다.
[끼이이이익!]
녹슨 경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안쪽의 모습을 본 유진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협회의 간부를 살해한 자가, 천하태평한 모습으로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지금껏 수많은 죄수들을 봐왔지만,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이었다.
“으음?”
유진성의 기척을 느낀 것일까?
대자로 누워 있던 지태현의 눈이 살짝 떠진다.
“일어나라.”
딱딱하게 굳은 음성으로 명령했다.
그러자 그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누가 봐도 귀찮은 태가 역력했다.
유진성은 괜히 신경을 긁는 그의 태도에도,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밥 먹을 시간입니까?”
이어진 물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지태현.”
“분위기를 보아하니, 밥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집법부장 유진성이다.”
그 말에 태현이 그제야 반응을 했다.
“집법부?”
“그렇다. 너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었기에, 통보해 주도록 하겠다.”
“처분이라니, 그건 또 무슨 헛소리입니까?”
앉아있던 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한 그대로다.”
“······나한테는 한마디도 듣지 않고 결정이 됐다고요?”
“필요한 진술은 모두 확보했으니, 굳이 네 이야기까지 들을 필요는 없다 판단했다.”
“무슨 얘기를 들은 겁니까?”
태현이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로 물었다.
“사실관계다. 네가 한태령 부장을 공격했고, 결국엔 살해했다는 것까지.”
“뭘 얼마만큼 생략을 해야 그런 스토리가 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유진성의 대답에 태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윤희주 팀장은 뭐라고 하던가요?”
유진성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솔직하게 답변해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네 무고함을 주장하고 있다. 아쉽게도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런가요?”
태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서.”
글쎄.
유진성은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윤희주의 행동은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으니까.
차라리 모르는 척을 하고, 태현을 외면하는 게 그녀의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적어도 유진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태현이 얼굴을 구기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나를 처분하겠다? 그게 협회가 내린 결정이라는 말이군요.”
솔직히 유진성은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자신이 태현의 입장이라 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위에선 어떻게 해서든 태현의 마력회로를 들여다 볼 생각을 하며, 아주 신나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알아서 사고를 쳐준 것을 고마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태령의 목숨과 마력회복의 비밀을 맞바꾼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유진성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3일 후 이감 조치될 예정이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괜한 죄책감에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기 힘들었기에 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태현이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내가 가만히 기다리려고 했는데,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군.”
“반항은 의미가 없다. 어차피 네게는 마력제어장······.”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콰득!]
태현이 너무도 쉽게 구속 장치를 풀었다.
아니, 파괴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어, 어떻게?”
유진성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태현이 차고 있는 수갑은, 『10』레벨 각성자도 붙잡아 둘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한태령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으니, 협회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구속 장치를 사용한 것이다.
헌데 무슨 그런 걸 무슨 수수깡 꺾듯이 부숴버리다니!
유진성은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법부장이라고 했나?”
태현이 잠시 사고가 마비되어 굳어진 그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움찔! 하며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당신 말고 사장 나오라고 해.”
“······뭐라고?”
“아, 사장이 아니라 협회장이지. 아무튼 그놈 나오라고 해. 지금 당장.”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태현의 광폭하기 짝이 없는 마력이 감금실 내부에 휘몰아쳤다.
- 작가의말
해피 할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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