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14화.
‘뭐? 처분을 해?’
황당함을 넘어선 분노가 끓어오른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일을 덮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소한 제대로 된 조사를 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들은 아예 태현을 놓아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 뿐.
끊어진 수갑을 마저 뜯어냈다.
마력제어장치고 나발이고.
『극무지체』.
그 희소한 재능은 태현이 굳이 마력을 쓰지 않아도, 이딴 금속 따위는 쉽게 박살낼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주었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속박에서 벗어난 마력이 기다렸다는 듯 미쳐 날뛰었다.
“협회장 데려오라니까?”
으르렁거리며 내뱉는 말에, 집법부장이라는 양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를 악다물 뿐이었다.
태현은 그런 유진성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싫으면 내가 직접 찾아가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유진성이 얼굴을 굳히며 마력을 끌어올린다.
[화아아아아아악!]
무겁고 진중한 기운이 태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 『7』레벨 쯤 되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힘의 크기로 봐선 대충 그쯤 되는 듯했다.
이전의 태현이었다면 마주 보는 것만으로 무릎을 꿇을 정도의 고레벨 헌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록 레벨은 태현이 조금 낮긴 했지만, 실질적인 힘은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시고.”
들고 있던 손을 휘저었다.
특별히 스킬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그저 마력을 밀어냈을 뿐.
유진성을 제압하는 건 그 정도면 충분했다.
“으윽!”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그는 결국 감금실 밖으로 밀려나가 버렸다.
“머, 멈추어라. 거길 벗어난다면 도주죄가 추가 될 수 있······.”
“도주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어차피 협회랑 한바탕 해볼 생각인데, 그딴 게 대수일까?
태현은 유진성의 말을 무시하며 『천리안A』을 발동했다.
‘대상은 인간. 등급은 『10』레벨 이상. 범위는 이 건물 전체.’
[파아아아아아아아앗!]
의식의 영역이 협회 본부를 모조리 뒤덮었다.
“······응?”
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없어.’
『천리안A』이 그 어떤 목표물도 포착하지 못했다.
‘왜 없지?’
본래 협회 본부는 용담호혈이라 불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강자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각 주요부서의 부장들만 해도 『10』레벨 정도는 되었으니까.
그들 중 일부만 출근을 했다 해도, 최소한 두세 명은 감지가 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한 명도 없지?”
건물 전체가 텅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태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범위를 더 넓혀보았다.
반경 10킬로미터.
그러자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 한 명 시선에 들어왔다.
나이는 대충 50대.
깔끔하게 모두 뒤로 넘긴 머리카락과 체형에 딱 맞는 네이비 솔리드 정장.
그리고 한 손에 짚고 있는 고풍스런 지팡이까지.
거리에 나가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볼 법한 중년이었다.
‘찾았다.’
아쉽게도 협회장은 아니다.
하지만 태현의 기억에 있는 사람이었다.
‘던전공략부장 윤지호.’
협회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방패이며, 한태령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닌 권력자.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를 모르는 헌터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는 지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협회로 돌아오고 있었다.
‘뭐, 찾던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윤지호 정도면 담판을 짓기에 충분했다.
태현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유진성의 뒷목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올 때 보니까 보안을 통과해야 되더라고. 당신이 아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문이야 다 때려 부순다 쳐도,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으면 귀찮아질 게 뻔했다.
태현은 유진성을 이용해 길을 가로막고 있던 보안장치들을 해제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그제야 이쪽의 상황을 파악한 것일까?
시끄러운 사이렌이 복도를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누군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많이도 몰려오네.”
한 서른 명 쯤?
아마 지하 3층을 지키고 있는 이들일 것이다.
태현은 피식 웃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좋은 말로 해선 길을 안 열어 주겠지?”
* * *
“내 권한이 아니다.”
윤지호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성만큼은 단호했다.
“그러니까 그걸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잖아요.”
“한태령 부장이 죽었다. 그것도 협회 본부 내에서. 그런 큰 사건을 조용히 묻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이 일이 밖에 알릴 수밖에 없어요.”
윤지호는 걸음을 멈춰서며 자신의 딸, 윤희주를 바라보았다.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도 없이, 협회 마음대로 사람을 처벌한다고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러자 윤희주가 눈을 치켜뜨며, 숨 쉬듯 자연스럽게 협박했다.
“어떻게 되긴. 아무 일도 없겠지. 네 말을 듣고 기사 한 줄 내보내는 언론사가 있을 듯 싶으냐.”
있을 리가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협회의 눈치를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단 눈치만 줘도, 그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철없는 녀석을 어찌할까.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이건 한태령의 죽음 따위보다, 지태현이라는 존재 자체가 문제였으니까.
아마 협회에서는 어떤 핑계를 대서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 아빠는 진짜 이 옳지 않은 일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거란 얘기죠?”
“허허.”
윤지호는 속이 뜨끔했다.
그녀에게 언제나 옳고 바른 일을 하라 가르친 건 자신이었으니까.
만약 모른 척을 한다면······.
‘실망을 하겠지.’
사실 윤지호 역시 이번 일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저 지태현에게 협조를 구하고 함께 연구를 해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협회는 약점을 잡고 그것을 이용하려 했다.
조금 더 편하고, 확실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당사자인 지태현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윤지호가 나서지 않은 것은, 그가 협회를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축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반대만 늘어놓는다면, 이 거대한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었다.
하여 웬만한 불의는 보지 못한 척, 듣지 못한 척하며 무시를 해왔다.
“왜 대답을 못해요? 그럼 나도 이제 막 산다?”
그런데 지금은 무시를 할 수가 없을 듯했다.
딸이라는 이름을 지닌, 양심의 거울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으니까.
“하나만 물으마.”
“뭔데요?”
“만약 지태현, 그 녀석의 일이 아니었다 해도 지금처럼 나섰을 것 같으냐?”
“······다, 당연하죠.”
머뭇거리는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이 분명했다.
윤지호는 딸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눈치를 챘다.
“설마 아직도 그 망할 놈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게냐.”
“아빠!”
윤희주가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놈은 결혼한 유부남이다. 그것도 딸까지 있는! 그런 놈을 아직까지 좋아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확실하다.
자신의 딸은 아직까지 지태현을 좋아하고 있었다.
“이혼했거든!”
“······뭐라고?”
윤지호가 황당하다는 듯 묻자, 윤희주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얼굴을 붉혔다.
“어, 얼마 전에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허허, 이 미련한 녀석아.”
윤지호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는 자신의 딸이 안쓰러우면서도, 왜 이렇게 나섰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만약 거부한다면, 윤희주는 자신을 평생 원망하게 될 것이란 사실도.
‘어쩔 수 없군.’
협회의 방침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행동이겠지만, 그보단 딸이 중했다.
“알았다. 내가 어떻게든 해보마.”
윤지호는 자그마한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정말이죠?”
눈이 동그래지는 게 귀엽다.
“쉽진 않은 일일 게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큰 반발이 나올 수도 있고. 하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힘을 한 번 써보마.”
윤지호의 협회 서열은 3위 이내.
사실상 협회장을 제외하면 가장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 어떤 일도 가능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단 뜻이다.
디테일한 계획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들어가서 계속 해보도록 하······.”
말을 하던 윤지호가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협회 본부.
정확히는 지하층.
거기에서 막강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는?’
깊이로 보아 지하 3층 정도.
바로 각종 범죄자들을 가두는 감금실이 있는 곳이었다.
‘꽤 강한데.’
흥미와 함께 궁금함이 들었다.
‘누구지?’
지금 감금실에 갇혀 있는 이들 중 저만한 힘을 지닌 이라면?
윤지호가 문득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인물은 단 한 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오거라. 나는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으니.”
“아빠?”
윤희주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지팡이를 들고 땅을 박찼다.
[피이잉!]
마치 축지법을 사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협회 본부와의 남은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
“경비팀 불러!”
본부 내부는 혼란스러웠다.
이런 일이 거의 일어나질 않다 보니,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윤지호는 그들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지하 3층은 계단으로 이동할 수 없었기에,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다.
‘멈췄나.’
하지만 비상상황인지라,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정지시켜둔 상태였다.
윤지호는 망설이지 않고 양손으로 문을 열었다.
“어, 어?”
“윤지호 부장님?”
사람들이 그제야 그를 발견하곤 놀란 눈을 떴다.
하지만 일일이 대꾸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보단 얼른 아래로 내려가, 저 미쳐 날뛰는 도둑놈을 말려야만 했다.
이 상황에 다시 한 번 난리를 친다면, 그땐 정말로 딸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까.
아래로 뻥 뚫린 공간을 향해 몸을 던졌다.
[후우우웅.]
지하 3층까지 떨어지는데 걸린 시간은 촌각에 불과했다.
허공을 박차고 추락하는 몸을 멈춰 세운 윤지호가, 굳게 닫혀있는 문을 붙잡고 열어 재꼈다.
[콰아아아아!]
동시에 휘파람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밀어닥쳤다.
‘저 녀석이군.’
그의 눈에 젊은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한 손에는 집법부 부장 유진성을 든 채, 달려드는 경비팀 헌터들을 두드려 패고 있었다.
‘강하군.’
『10』레벨인 한태령도 반항다운 반항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더니.
윤지호는 눈에 이채를 띠며 천천히 지하 3층에 발을 내디뎠다.
지태현의 시선이 곧장 이쪽으로 향한다.
자신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제법.’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딸에게 하도 얘기를 들어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윤지호는 똑바로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만 하게. 더 이상의 소란은 용납할 수 없으니.”
묵직한 음성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지태현이 곧장 대꾸했다.
“그쪽이 용납 안 하면 어쩌실 건데요?”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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