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23화.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제목에 (스압)이라는 표시를 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고작 7명밖에 되지 않는 소수정예 길드에 무슨 설명이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다.
“으음.”
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하나, 하나 읽어나갔다.
“······죄다 쓸모없는 얘기뿐이네.”
닉값이라고 해야 할까?
게시글의 80%가 해윤슬에 대한 찬양이다.
그것도 대부분 외모 관련이고.
“이런 걸 보려는 게 아닌데.”
손가락을 놀려 대충 넘기다 보니, 그나마 쓸만한 게 나오기 시작했다.
“해윤슬. 추정레벨은 『13』이고, 주무기는 검. 강력한 스킬 한 방 보다는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검으로 몬스터를 난도질시키는 걸 선호······.”
뭔가 좀 무서운 느낌이 든다.
사진 상으로는 단아하고, 고아한 분위기의 미인인 것 같은데.
‘전투 스타일은 미친년이 따로 없네.’
게시글에 따르면 거의 산채로 회를 뜨는 수준이라는 것 같다.
그녀의 레벨을 생각해보면 정말 무시무시하단 말 밖에는 떠오르질 않았다.
“좋아하는 건 딸기. 아니, 이런 건 됐고.”
불의를 보면 절대 그냥 참지 못하고, 정의감 때문인지 던전을 공략하는 것에 진심인 성격인 것 같았다.
“다른 길드원은······.”
스크롤을 내리던 태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해윤슬에 비교하자면 거의 3줄 요약 수준의 정보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대충 알겠네.”
창천은 기본적으로 선한 길드다.
길드장인 해윤슬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일까?
소속 길드원들 역시 하나같이 강강약약의 표본인 것 같았다.
보통의 길드라면 이 험난한 헌터 세계에서 버텨내지 못하고 고사(枯死)하겠지만······.
‘창천을 달라.’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힘이 평균을 아득히 넘어섰기 때문이다.
추정레벨이 『13』에 달하는 해윤슬은 둘째 치고, 길드원들 중 가장 약하다는 오현우조차 『9』레벨이었다.
그야말로 소수정예라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이들이다.
“팬들이 많을 만하네.”
태현도 왠지 창천을 향한 호감이 생길 정도다.
어쩌면 마켓에서 나쁘지 않은 경험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뭐, 진짜인지는 직접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창천의 모든 것]이라는 게시글은, 해윤슬의 덕후 한 명이 쓴 주장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접근을 한다?”
『성배』.
자신의 생명력을 늘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템.
그걸 얻기 위한 첫 번째 걸음은 창천과 접촉을 하는 것이었다.
“그냥 찾아가서 얼굴 한 번 보자고 할 수도 없고.”
잡상인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다.
창천과 연관이 되어 있는 이들을 통해 소개를 받는 게 가장 자연스러울 텐데.
“딱히 그런 사람들을 모르······?”
태현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러고 보니 한 명이 있지 않나?
“마켓.”
그곳의 매니저가 창천 길드 소속의 헌터는 아니다.
하지만 연관이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닐 것이다.
한 마켓의 책임자인 매니저라면, 어떤 식으로든 창천과 줄이 닿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걸 한 번 이용해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매니저를 통한다면 그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을 듯했다.
방법이야······.
“많지.”
태현이 미소 지으며 얼굴을 덮고 있는 가면을 쓰다듬었다.
* * *
서울을 포함한 근교에는 꽤 많은 필드가 존재했다.
그 중에는 도봉산 필드처럼 헌터라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오직 『6』레벨 이상의 헌터들만 입장이 가능한 곳도 있었다.
태현이 지금 향하고 있는 미사리 필드는, 명백히 후자였다.
“그런데 이 시간에 사냥을 가시네요?”
밤길을 달리던 택시기사가 문득 물어온다.
“아, 네.”
“미사리로 가시는 걸 보니까 한가락 하시나 보네.”
필드에 잘 아는 걸 보니, 이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저도 이쪽은 처음입니다.”
“거기 꽤 위험하다던데. 이 시간에 가도 괜찮아요?”
몬스터가 시간에 따라 강해지고 약해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야의 확보라는 면에서는 밤이 더 위험하긴 했다.
“돈이 좀 필요해서요. 집에서 노느니 가서 사냥이나 하는 게 낫죠.”
“하기사 젊을 때 바짝 벌어놓는 게 좋긴 하지. 나중에 다 늙어서 고생 안 하려면.”
꽤 말이 많은 양반이었다.
“어디 제가 쓰려고 하는 거겠습니까? 딸아이 좋은 거 먹이고, 좋은 거 입히려고 하는 거지.”
“어? 딸이 있어요?”
기사의 눈이 반짝인다.
왠지 그에게서도 딸바보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야, 나도 딸만 셋인데.”
“그래요?”
딸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행복한데, 셋이라니!
“행복······.”
“아주 그놈들 때문에 머리가 다 빠지겠다니까?”
“······머리?”
행복하시겠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그냥 평범하게 살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하필 세 놈 다 각성을 해버렸지 뭡니까?”
자매가 모두 각성을 하다니.
좀처럼 많이 없는 드문 일이다.
“재능이라도 별로면 헌터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고 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아주 내가 난감해 죽겠어요.”
말을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는 걸 보니, 자식자랑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피식.
그 마음이 이해가 갔기에, 태현은 도착할 때까지 맞장구를 쳐주기로 했다.
“따님들 재능이 그렇게 뛰어납니까?”
“아휴, 말도 마요. 협회고 길드고. 다들 모셔가려고 난리들을 피웁디다.”
아마 과장이 꽤 섞여 있을 것이다.
길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협회에서는 헌터를 스카웃하기 위해 그리 공을 들이지 않으니까.
상대가 엄청난 재능이나 극도로 희귀한 스킬을 타고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는 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였다.
“대단하네요.”
“뭐, 자기들끼리 상의하다 결국엔 다같이 길드에 들어가긴 했는데. 거기가 또 10대 길드인지 뭔지. 아무튼 대기업 같은 거더라고요.”
기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랑할 만 한 일이긴 했다.
대한민국 10대 길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창천은 말할 것도 없고, 유현석이 소속되어 있는 어비스 같은 대형 길드도 그렇다.
‘세 자매가 10대 길드에 함께 들어갔다?’
그녀들이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왠지 모를 호기심에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주었다.
“이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이프요?”
태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프는 입단하기 정말 까다로운 조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음(Ice)나 불꽃(Flame)과 관련된 재능이나 스킬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이프(I·F) 길드다.
“거기 들어가기 힘들지 않나요?”
“그러니까요. 아, 그런데도 그 들어가기 힘든 델 들어갔다니까?”
태현이 미사리 필드로 가자고 했을 때부터, 기사는 이 말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태현은 계속해서 기사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는 사이 택시가 미사리 필드에 도착했다.
“그럼 사냥 대박 나시고! 딸도 잘 키우쇼!”
기분이라며 택시비도 5천원이나 깎아준 그는, 화끈하게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차를 돌려 사라졌다.
“재밌는 분이네.”
태현도 나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프에 들어갔다는 세 자매도 조금 궁금해졌고.
“언젠가 한 번 볼 수도 있겠지.”
인연이 닿는다면 말이다.
태현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미사리 필드.
『6』레벨 이상의 헌터만 입장할 수 있는, 고레벨 전용 필드.
“확실히 도봉산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네.”
왠지 무겁고, 위압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마 벽 너머에 있는 헌터와 몬스터들의 마력이 전해져오기 때문인 듯했다.
“정지.”
태현이 입구에 다가가자, 경계하고 있던 군인들이 멈춰 세웠다.
“헌터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신원 확인하겠습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태현.”
짧게 대답하자, 군인은 휴대용 단말기에 그 이름을 입력했다.
[띠디딕.]
몇 초 후, 단말기 화면에 태현의 이름과 사진, 그리고 대략적인 신상이 표시됐다.
“확인되었습니다.”
군인은 단말기를 치우고는, 이번엔 손바닥만 한 구슬을 꺼내들었다.
“레벨측정을 하겠습니다.”
정확히 레벨이 몇인지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저 입장 가능한 최소치에 도달했는지 확인만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태현은 대충 구슬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살짝 끌어올렸다.
협회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우웅.]
구슬이 살짝 진동하더니, 이내 푸른빛을 띠었다.
“확인되었습니다.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문을 열어라!”
군인이 구슬을 회수하곤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러자 굳게 닫혀있던 두꺼운 금속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동시에 갇혀있던 마력이 뿜어지듯 밀려나왔다.
무거운 마력 속에 숨어있는 흉포한 악의(惡意)가 확연히 느껴졌다.
“수고하세요.”
하지만 태현은 군인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뒤,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쿠우웅!]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문이 닫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구 근처라 그런지, 헌터나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
지켜보는 눈이 없다는 걸 확인한 태현이 귀걸이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파바밧!]
흑금의 가면이 얼굴을 뒤덮었다.
“괜히 얼굴을 팔 필요는 없겠지.”
도봉산 필드에서처럼, 최대한 빠르게 높은 등급의 몬스터들만 골라잡을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태현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스킬과 아이템은 평범한 것과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알려지면 괜히 귀찮은 일만 벌어지지.’
『아카식 스토어』의 1층에서처럼 말이다.
『아공간S』을 열어 『발리사르도』까지 꺼낸 태현이 대충 몸을 풀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천리안A』.”
대상은 몬스터. 등급은 바실리스크 이상. 개체 수 무관.
목표를 정하고 스킬을 발동하자, 감각이 미친 듯이 확장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오.”
태현의 눈이 커졌다.
“무슨 바실리스크 급 몬스터가 백 마리 단위로 있네.”
도봉산 필드에 비하면, 이곳은 노다지나 다름없었다.
태현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목표는 동쪽으로 210미터.
태현의 움직임이라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파아앙!]
대기를 가르며 공간을 가로질렀다.
중간에 몇몇 몬스터들을 마주쳤지만, 그냥 무시했다.
저런 놈들을 사냥하기 위해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온 게 아니었으니까.
“저놈인가?”
태현의 시야에 거대한 녹색 괴물이 들어왔다.
“오우거.”
도봉산 필드에서도 본 놈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다섯 마리!”
고작 한 마리밖에 없었던 그곳과 달리, 미사리 필드에서는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것이었다.
씨익.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저게 대체 얼마냐?’
다섯 중 딱 두 놈만 『마석D』을 떨구기만 해도?
‘천만 원!’
태현의 눈이 돌아갔다.
“아이템 내놔!”
[콰과과과과과과과!]
『발리사르도』를 든 흑금 가면의 사내가, 미사리 필드를 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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