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24화.
홍나린은 긴장한 얼굴로 심호흡을 했다.
‘대체 왜 여기에 언데드가?’
잘린 머리를 손에 들고, 커다란 검을 휘두르는 중갑의 기사.
듀라한이 눈앞에 서있었다.
“언니. 원래 미사리에 언데드 몬스터도 출현했었나?”
“보고된 바는 없어. 그런데 예전부터 그런 소문이 돌긴 했지.”
홍나린의 두 동생, 홍나예와 홍나은이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집중해. 꽤 강한 녀석 같으니까.”
보통 언데드 몬스터는 동레벨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급소가 존재하지 않고, 웬만한 부상으론 죽지도 않았으니까.
놈들을 사냥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머리를 부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듀라한의 머리는 단단하기 그지없지.’
오죽하면 방패 대신 자기 대가리를 사용할까?
[흐으으으으.]
지옥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곡성에, 세 자매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앞에 설게. 나예는 버프 걸고, 나은이가 얼려.”
“알았어.”
홍나린이 듀라한을 향해 창을 겨누자, 홍나예가 스킬을 발동했다.
“『성화C』!”
[화르르르르륵!]
창날에 성스러운 불꽃이 맺힌다.
언데드와는 상극인 버프로, 놈들을 상대할 땐 공격력이 최대 3배까지 상승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좋아.’
듀라한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성화B』의 버프가 걸린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진 못할 것이다.
홍나린은 그렇게 확신했다.
“나은아!”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소리치자, 기다렸다는 듯 막내의 스킬도 터져 나왔다.
“『빙결B』!”
[쩌저저저저적!]
서늘한 기운과 함께 듀라한의 하체가 얼음으로 뒤덮였다.
“하아아압!”
홍나린은 망설이지 않고, 창을 찔러 넣었다.
『울부짖는 가시B』.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
불타오르는 창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귀를 찢는 듯한 울음과 함께 듀라한을 향해 쇄도했다.
뒤늦게 놈이 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창을 막기 위함이겠지만, 아쉽게도 너무 느렸다.
“흥!”
코웃음과 함께, 창끝이 놈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앙!]
“됐다!”
홍나린이 쾌재를 불렀다.
놈의 육체가 단단하기는 하나, 이 정도로 공격이 정통으로 들어간다면 분명······.
“언니, 피해!”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
뒤에서 동생들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후와아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듀라한의 검이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장면이 사진처럼 각막에 새겨진다.
‘이게 무슨?’
무려 『울부짖는 가시B』와 『성화C』의 조합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던전의 언데드 보스라도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데 놈은 아무런 충격조차 받지 않은 기색이었다.
사람이 모기에 물려도 저것보단 더 크게 반응할 텐데!
홍나린은 뒤늦게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며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가호E』!”
워낙 시간이 부족했기에, 『E급』스킬을 쓸 수밖에 없었다.
[콰지지직!]
듀라한의 검이 마치 유리창을 깨트리듯, 방어스킬을 파괴했다.
“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의 시간.
몸을 피할 수 있는 1초만을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홍나린은 절망이 서린 눈동자로 정수리로 다가오는 놈의 검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언니이이!”
“안 돼애!”
동생들이 절규한다.
녀석들이 보기에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라는 것이겠지.
‘조금만 더 신중할걸.’
오랜만에 나오는 필드사냥이라 너무 들뜬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실력을 과신한 게 문제였을까?
이유야 어찌 됐든, 확실한 건 자신은 지금 죽는단 것이었다.
‘아빠.’
그렇게 지금 당장 가장 보고 싶은 이의 얼굴을 떠올릴 때였다.
“『월영참B』.”
낯선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황홀한 달빛이 내리비추기 시작했다.
[파사사삭!]
듀라한의 검이 가루가 되어 무너진다.
아니, 무너지는 건 검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정지 버튼을 누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듀라한이 서서히 분쇄되기 시작했다.
팔, 다리, 몸통.
그리고 결국엔 소중하게 들고 있던 머리까지.
세상에 그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허억!”
그제야 홍나린이 멈추었던 숨을 터트렸다.
“언니, 괜찮아?”
“어, 어디 안 다쳤어?”
동생들이 달려오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나는 괜찮아.”
요단강에 반쯤 발을 담갔다 빼긴 했지만, 그 어떤 부상도 입지 않았다.
홍나린은 눈물까지 글썽이는 녀석들을 애써 진정시킨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체 누가 저 듀라한을 단번에 가루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을 구해주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
언제 나타난 것일까?
방금 전까지는 아무도 없었던 눈앞에, 한 남자가 등을 돌린 채 서있었다.
“가, 감사해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분명했다.
홍나린은 최대한 정중하고 공손한게, 그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저, 정말 감사드려요.”
“언니를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홍나예와 홍나은 역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스윽.
남자가 고개를 돌려 자신들을 바라봤다.
‘가면?’
검은색과 황금색 치장이 어우러진 고급스러운 가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
“어? 무명!”
막내의 외침에 생각이 끊어졌다.
‘그래, 무명.’
바로 얼마 전에 헌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름이다.
‘흑금의 가면을 쓰고, 위기에 빠진 헌터 커플을 구해준 사람.’
자신을 무명이라 소개했다던가?
설마 그런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이야.
무명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들을 바라보다, 갑자기 허리를 숙인다.
그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인사는 자신이 해야 할 판인데 왜 그가 허리를 숙인단 말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세 자매가 태현보다 더 깊숙이 몸을 접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무명 님.”
마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 세 명이 똑같이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무명의 허리가 펴진다.
그는 자신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럼 이만.”
[휘이이이익!]
그리곤 순식간에 사라졌다.
셋 중 가장 레벨이 높은 홍나린조차, 그가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와······. 헌터 커뮤니티에 왜 그런 글이 올라왔는지 알겠네.”
“진짜 멋있다.”
두 동생은 몽롱한 눈빛으로 방금 전까지 무명이 서있던 곳을 바라봤다.
“그치, 언니?”
“진짜 대단하지?”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는 녀석들의 물음에, 홍나린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정말 그러네.”
누구일까?
무슨 사정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거지?
대체 얼마나 강하면, 듀라한조차 일격에 먼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걸까?
무명에 대한 궁금증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우리도 글 올리자.”
“이런 분은 더 유명해져야 돼.”
“맞지맞지.”
그렇게 헌터 커뮤니티엔, 다시 한 번 무명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 * *
“휴우.”
듀라한을 박살낸 태현은,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또 빼앗길 뻔 했네.”
정말 십년감수했다.
듀라한은 『천리안A』으로 포착한, 미사리 필드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런 대박몹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뻔했다.
“안 늦어서 천만다행이네.”
씨익.
태현이 손에 든 것을 확인했다.
세 명의 헌터들이 당황해하고 있을 때 몰래 허리를 굽히고 챙긴 아이템.
“이야, 이거 랜덤『B급』스킬석이잖아.”
사용하면 『B급』스킬 중 무작위로 한 가지를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아카식 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는 스킬들이 몇 코인지 생각해보면, 이건 진짜 대박 중의 대박이었다.
심지어 던전과 달리 필드에서 떨어지는 아이템들은 귀속템도 아니지 않은가?
그 말은 곧, 현금을 받고 팔수도 있다는 뜻이다!
“가격만 잘 받으면, 억 단위도 가능하지 않을까?”
스킬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가치가 있었다.
“거기에 굳이 내가 직접 쓸 필요도 없고.”
예전이었다면 판매를 하기보단, 스스로의 스펙을 올리기 위해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태현이 『아카식 스토어』에서 구매해 익히고 있는 스킬들을 생각해보면, 『B급』은 사실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무조건 파는 게 훨씬 이득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러려고 여기에 온 거니까.’
태현은 밤새 사냥을 하며 얻은 것들을 생각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굳이 이 밤중에 급히 미사리 필드까지 온 건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이 정도 수확이면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제발 잘 돼야 할 텐데.”
태현은 손에 쥐고 있던 랜덤『B급』스킬석을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평범한 마석이나 낮은 등급의 아이템들이라면 별 다른 반응이 없겠지만, 아마 이건 효과가 좋을 것이다.
스킬석은 워낙 희귀한데다 등급도 높았으니, 그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태현은 『아공간S』을 열어 스킬석을 조심스럽게 집어넣고는, 팔을 들어 크게 기지개를 켰다.
“잘 되겠지. 아니, 잘 돼야 돼. 안 돼도 되게 해야 돼.”
이 실장이 말한 『성배』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태현은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그나저나.”
방금 전에 만났던 이들을 떠올렸다.
“자매였지?”
얼굴만 봐도 그 세 여자가 한 핏줄을 타고 난 게 확실했다.
“흐음, 세 자매라.”
왠지 자신을 여기까지 태워다 줬던 택시기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딸들도 셋 모두 헌터라고 했었는데 말이지.
『발리사르도』에 베여 죽기 직전, 그녀들과 싸우고 있던 듀라한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 하체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상체엔 불꽃이 일렁이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얼음(Ice)과 불꽃(Flame).
이프 길드의 입단 조건에 딱 들어맞는 스킬들이 아닌가?
“설마 정말로 그 아저씨 딸들인가?”
머리가 반쯤 벗겨진 배불뚝이 아저씨와 웬만한 걸그룹으로 데뷔해도 될 것 같은 외모의 아가씨들이라니.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른데.
조금 의문이 들긴 했지만, 외모를 제외한다면 모든 부분이 들어맞는다.
“이런 우연도 있네.”
의도한 것도 아닌데, 반나절도 안 돼서 부녀 모두를 만나다니.
태현이 피식 웃었다.
왠지 그녀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예감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지금 중요한 건 택시기사의 재능 넘치는 딸들이 아니다.
“사냥은 대충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야지.”
점차 땅에 내려앉았던 어둠이 가시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잡을 만 한 몬스터도 없었으니, 돌아가서 한 번 찔러볼 때가 됐다.
『은둔자』를 해제한 태현이 천천히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머리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아침이 온 것이다.
“택시가 잡히려나 모르겠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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