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약한 압축근육 (1) 압박체축술(壓迫體縮術)

병약한 압축근육 (1) 압박체축술(壓迫體縮術)
쩔그렁-
“지독한 놈들... 이 강맹한 몸으로도 꼼짝을 할 수가 없네.”
오크들은 나를 뇌옥으로 옮겨 두꺼운 쇠사슬로 겹겹이 감아 묶어 놨다.
게다가 정신을 잃은 동안 몰매라도 맞은 것인지 온몸이 쑤신다.
‘그나마 극독이 아니라 다행인가?’
정황으로 봐서는 오크들은 당장 이 몸을 죽일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의 여유가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 상황의 해법은 압박체축술(壓迫體縮術)이다.
당장은 이 겹겹이 묶인 쇠사슬도 몸을 줄이면 해결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봐도 압박체축술이 필요하다.
‘이 몸의 주인은 살해당했다.’
아니, 애초에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흡이 끊겼거나 몸이 부패한 흔적은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은 더욱 끔찍하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부상을 입은 채 생매장을 당했다는 말이 아닌가?
‘얼마나 큰 원한을 샀기에...’
이 몸의 주인을 살해하려 했던 무리는 내가 달아났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이다.
이 커다란 몸은 너무나 눈에 띈다.
어찌 보면 압박체축술을 펼칠 수 있는 내가 이 몸으로 눈을 뜬 건 기연이다.
문제는 압박체축술을 펼치는 동안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는 것이다.
압박체축술은 대법이다.
술식을 펼칠 시간이 필요하다.
대법을 중간에 멈춘다면 사지근맥이 찢어질 것이다.
“우선 축기를 하고 몸을 회복하자.”
후-우-우-웅
중원에서 느끼던 자연지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굳이 나누자면 음기에 가까운 느낌이긴 한데 뭔가 좀 더 찐득한 느낌이랄까.
‘청량한데 찐득한... 마나?’
마나?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몸의 기억이겠군...’
마나 자체를 내공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마나를 내공으로 치환해 단전에 쌓았다.
진한 음기의 느낌이라 구음심법을 통해 내공으로 치환할 수는 있었다.
후 우 우 웅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축기의 효율이 떨어진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구음심법은 애초에 음기와 내공의 치환이니 딱 들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모든 무학이 그러하지 않은가?
꾸준히 하다 보면 경지가 오르지 않겠는가?
시간을 다른 곳에서 벌 수 있었다.
이 몸은 회복이 너무나도 빠르다.
운기조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회복이 빠르다고 느껴졌었지만 운기조식을 시작하니 힐 받은 것만큼이나 빠르게 회복되었다.
‘힐...?’
그래, 그런 게 있었다.
상처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게 ‘힐’ 이라는 거였다.
무서운 생각이 든다.
기억이 다 돌아온다면 나는 과연 ‘화양연우’인가? ‘스틸 베인’인가?
우선은 고향에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자.
아니, 일단은 살아남는 것부터 생각하자.
간략하게 목표를 정해봤다.
첫 번째, 압박체축술을 펼친다.
두 번째, 이 세상에 대해 알아본다.
세 번째, 이 몸의 주인 스틸 베인에 대해 알아본다.
이 세상에 대해 알아보려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야 한다.
스틸 베인을 공격했던 색목인도 그렇고 오크들 조차도 베인을 하나의 집단이나 종족처럼 말했다.
오크들의 반응만 봐도 이 정도의 덩치는 이곳에서도 흔한 덩치는 아닐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덩치로 돌아다닌다면 ‘베인’이라는 정체를 쉽게 들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압박체축술을 가장 우선순위에 둔 이유이다.
‘이제 압박체축술의 대법을 시작한다.’
나는 필요한 혈자리에 혈도를 따라 내공을 흘려보냈다.
순서대로 스무 군대의 혈자리에 내공을 일백팔 번씩 흘려 보내고 구결을 불러내면 대법이 끝난다.
‘절맥이 없으니 한식경 이내에 끝낼 수 있을 것 같군.’
..... 생각해 보니 이 넓은 혈도를 통해서 많은 양의 내공이나 밀도 높은 마나를 보낸다면 순식간에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 상념을 버리자
익숙한 방법으로 안전하게 해야 한다.
자칫 순서나 혈자리를 착각하면 끝장이다.
.......
이제 네 군대의 혈자리가 남았다.
저벅..저벅..저벅..
뇌옥의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저벅..저벅..저벅..
‘서두르자. 세 군데... 세 군데의 혈자리에만 내공을 보내면 된다.’
[베인, 정신을 차린 것을 알고 있다.]
‘두 놈이 뇌옥 안으로 들어왔다.’
[산왕의 드루이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드루이드는 베인 따위와 손을 잡지 않는다.]
‘조금만 더... 승장혈과 염천혈만 남았다.’
퍼-억-
[대사제의 물음에 답하라. 베인.]
우두머리 옆에 있던 오크가 발길질로 배를 가격했다.
머리가 아니라 다행이다.
입술아래에 있는 승장혈에 내공을 보내고 있었다.
머리를 가격해 혈자리가 어긋났더라면 당장 사지근맥이 찢어졌을 것이다.
[산왕의 드루이드를 죽이고 스킬을 훔친 것인가?]
식은땀이 흐른다.
혈자리로 내공을 보내는 것이 망설여진다.
푸-욱-
‘큭-’
허벅지에 검이 박혔다.
[그대의 검이다.]
고통에 익숙하다지만 하마터면 고개를 떨굴 뻔했다.
‘정신 차리자. 염천혈 하나 남았다.’
[이 검으로 산왕의 드루이드를 죽인 건가?]
푸-욱-
반대쪽 허벅지를 찔러왔다.
[강맹한 베인, 신음 한 번을 안내는구나]
‘안 내는 게 아니라 못 내는 거다 이 자식아...’
푸-욱-
이번에는 어깨를 찔러왔다.
[다음은 목이다. 베인]
“아...압...”
[그래, 입을 열어라 베인]
「 압,,박,,,체,,축,, 」
내 부름에 술식이 피어올라 혈맥을 타고 온몸을 감쌌다.
우드드득-
우득-
우드득-
.
.
.
쩔그렁-
몸이 쪼그라들면서 감겨있던 쇠사슬이 느슨해졌다.
「 승룡출두 」
쾅!!
‘승룡출두’ 오형권 중 용권의 권법으로 용이 승천하듯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초식이다.
압박체축술로 압축할 수 있는 한계치는 대략 전체의 2할 정도이다.
느슨해진 쇠사슬에서 위로 뛰쳐나가며 가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초식인 승룡출두를 시전 했다.
나를 찔러대던 오크가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다.
‘머리가 터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크 자체의 강맹함 때문일까?
양쪽 다리에 오른쪽 어깨까지 다친 터라 힘이 모자랐던 걸까?
‘아마도 압박체축술의 영향이 가장 클 테지.’
[그대는 무엇인가?]
... 대사제라 불리는 오크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찔러대던 검을 주워 오크 대사제와 대치했다.
[너는 이 땅의 인간이 맞는가?]
느낌이 안 좋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하앗!”
나는 힘찬 기합과 함께 검을 휘둘렀지만 오크 대사제는 가볍게 피했다.
[약해졌구나]
약해졌다라... 호전적인 무리인 만큼 무공을 보는 식견이 뛰어난 듯하다.
딱히 몸에 익힌 도법이라고는 도법이라 하기도 민망한 달마삼검 정도인 데다 그마저도 검의 무게에 뼈마디가 시려 그다지 휘둘러보지도 못했으니 내 칼질은 분명히 엉망진창이긴 할 것이다.
게다가 진짜 문제는 체온과 압박감이다.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다.
천음절맥으로 체온이 낮아져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운명을 막아준 고마운 대법이지만 정상적인 몸으로 대법을 사용하니 되레 체온이 올라간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상태와 같은 나른함과 피로감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압축으로 인한 압박감이 몸을 옥죄고 있다.
아마도 대법을 펼치기 전의 몸보다 많이 느려졌을 것이다.
단박에 ‘약해졌다’라고 표현한 저 오크의 눈썰미가 대단하다.
살아생전의 경험으로 비추어본다면 전체적인 기량은 삼 할도 안되게 줄었을 것이다.
[그대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뭐라 답할 게 없다.
“나는... 중원에서 온 사람이다.”
[... 어리석군]
오크 대사제는 작은 피리 같은 걸 꺼내 입에 물었다.
‘저걸 불게 해서는 안 된다!!’
「 전질보!! 」
팡!!
‘전질보’ 소림 심의파의 보법으로 상대방과의 거리를 단숨에 줄일 수 있다.
전질보로 거리를 좁히고 피리를 빼앗기 위해 금나수를 뻤었지만 오크 대사제는 날아가듯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삐-익---
피리소리가 울리자 마치 소 때가 달려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망했다...’
[쿠어어어!!]
횃불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니 수십의 오크가 몰려오는 듯하다.
나는 뒷걸음질 쳐서 뇌옥의 벽까지 물러났다.
오십 평생에 전투의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병법서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할 시 벽을 등지라는 글은 몇 번이나 보았다.
‘어찌해야 할까...’
오크들이 우두머리 주변에 도열하거나 하는 것도 없이 대사제를 지나 내달리던 속도 그대로 나에게 달려들고 있다.
오크들이 지척에 도달했을 때 적당한 초식이 떠올랐다.
‘해보자.’
저들의 호흡에서는 분명히 마기가 느껴졌었다.
석가모니의 호통 ‘사자후’ 마기와 사기를 날려버리는 석가모니의 호통은 마치 사자의 갈기를 두른 황금빛의 용 사자룡의 그것과 같다고 했다.
「 사자후 」
나의 부름에 사자후의 구결이 피어올라 운기법을 따라 내 혈맥을 내달렸다.
「 하!!! 」
내공을 쥐어짜 낸 기파를 내질렀다.
콰-과-과-광!!!
굉음과 함께 일어난 충격파에 먼지가 안개처럼 내려앉고 있다.
‘... 장관이네.’
스물이 넘는 오크들이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고 있고 뇌옥 입구로 들어오던 오크들도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대고 있다.
오크 대사제는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있지만 지팡이를 짚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걸 봐서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여기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오크의 우두머리에게 말을 건넸다.
“아직 목숨을 잃은 이는 아무도 없다.”
[ ...어째서....... 드래곤피어를.....? ]
드래곤피어? 처음 들어본다.
오크들은 나에 대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저들이 물어오는 모든 것은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나를 이대로 보내주면 안 되겠는가?”
[..... 인간의 마을로 가는가?]
‘다행이다.’
힘없는 대답에서 이 싸움이 끝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인간의 마을로 가는 길을 아는가?”
[인간의 마을로 가는 길은 어디에나 있다.]
... 선문답을 하자는 건가?
[산을 벗어나면 모든 곳에 인간이 있다.]
... 산을 타고 내려가면 되겠군.
“고맙네, 그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대는 무엇인가?]
“말해도 그대는 믿지 않을 걸세.”
오크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뭔가 사나운 느낌이다.
[이 땅의 인간들과 동화되지 마라]
‘무슨 말이지...?’
[이 땅의 인간이 되어 다시 만난다면 그대를 죽일 수밖에 없다.]
.......
“가슴 깊이 새기겠네.”
나는 정중히 포권을 올렸다.
“내가 살던 땅의 인사일세.”
***
산을 넘어오는데 사흘이 걸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찾는 데까지 또 나흘이 더 걸렸다.
피로감이 엄청나게 몰려온다.
고열의 감기를 앓으면서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험준한 산행을 한 격이니 피로감과 행색이 지금 당장 쓰러져 죽어도 의심치 않을 것 같다.
운기조식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몸 상태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몸이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 이 세상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호법도 없이 운기조식을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산을 넘는 동안 난생처음 보는 짐승들의 공격을 몇 번이나 겪었다.
안 그래도 거지 같은 행색이었는데 지금은 백 년은 묵은 강시가 무덤에서 기어 나와 돌아다니는 모습이라 해도 믿을 지경이다.
‘하긴 무덤에서 기어 나온 게 맞기는 하구나.’
게다가 색목인들에게서 얻는 돈까지 오크들의 마을에 두고 와 빈털터리 신세이다.
‘칼 찬 거지라니...’
“소저, 실례지만...”
“꺄아아악!!”
“저... 젊은이..”
“저리 가!! 이 거지새끼야!!”
.......
‘저들도 딱히 좋은 행색은 아니면서...’
포목점을 찾을 수가 없다.
‘저 성곽 안으로 들어가야 상점들이 있는 건가?’
인간이 사는 곳을 찾기는 했다.
거대한 성벽에 둘러싸인 꽤나 큰 마을이 있는 듯했고 성벽 주변으로도 민가들이 적잖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서성이기를 한참 만에 드디어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양손 검, 그거 넘기면 우리가 도와줄게.”
“응?”
여인의 목소리였다.
먼저 건넨 낯선 이의 호의.
호의는 아닌가? 이 몸이 등에 메고 있는 검을 요구하는 것 같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지.’
건장한 사내 둘과 한 명의 젊은 여인으로 이루어진 무리
여차하면 이 몸으로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된다.
“의복과 음식 그리고 잠자리를 먼저 내어 준다면 이 검을 그대들에게 내어주도록 하겠네,”
이립(나이 삼십) 정도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이 남자가 대장인 건가?’
“거래하도록 하지.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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