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약한 압축근육 (2) 클레이모어(claymore)

한 건물의 방으로 들어섰다.
일층은 음식을 파는 객점인 듯했고 계단을 통해 위로 이어진 두 개의 층은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객잔 같은 곳인가?’
나에게 거래를 제안했던 무리가 나를 삼 층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한 개의 침상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저 여인이 사용하던 방인 것 같다.
“옷 좀 사 와서 욕실 앞에 둘게~ 천천히 씻고 식당으로 내려와.”
“그냥 마룬이 입던 옷 주면 될 거 같은데 뭘 새로 사려고?”
“아냐~ 키는 비슷할 거 같은데 마룬처럼 뚱뚱하지가 않잖아. 하하하.”
“마룬 얘기하니까 보고 싶네. 밥은 그 뚱땡이가 해주는 밥이 최고였는데.”
“미들랜드 갈 일 있으면 마룬 집에 들러보자. 부모님이 꽤 큰 여관을 한다고 했었잖아.”
딱히 나쁜 사람들은 아닌 걸까?
저희들끼리 꽤나 화기애애해 보인다.
하지만 저렇게 웃는 얼굴로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그건 더 무서운 상황일 것이다.
“이 검은 모든 거래가 끝나면 넘기도록 하지.”
쉬는 동안에도 검은 가까이 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꼬맹이야말로 그냥 째면 누나가 가만 안 둔다~ 하하하.”
“너 임마. 어린놈의 시키가 말 계속 그 따위로 할래?”
깐깐하게 생긴 남자가 내 말투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왔다.
‘..... 내가 낼모레면 오십이다.’
“그러지 마. 고생 많이 한 아이인 거 같은데 불쌍하잖아.”
‘아이...?’
“저거 고생해서 나오는 말투가 아니야. 봐바 어린놈의 시키가 사람을 하대하고 앉았잖아.”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에야 경계하나 보다 했다만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계속 이런 태도라면 실례지.”
... 도와주는 사람?
정말로 호의로 접근한 건가?
아니다. 쉽게 판단 내리지 말자.
이미 겪어보지 않았는가?
모든 것 하나하나가 연기일 수도 있다.
“그러면 객점에서 보세.”
“... 이놈이 끝까지.”
깐깐한 남자는 바뀌지 않는 내 태도가 못마땅한 것 같지만 나로서는 만만하게 보일 이유가 없다.
“뭘 멀뚱히 서 있는가? 나는 옷을 좀 벗었으면 하는데.”
***
“생각할수록 맹랑한 놈일세.”
“하하하 아직도 그 생각하고 있어?”
“그나저나 아비가일, 뭔 옷을 그렇게 좋은 거로 샀어?”
스틸 베인에게 접근했던 세 사람이 ‘두 마리 종마’ 여관의 1층 식당에 앉아 스틸 베인을 기다리고 있다.
“애 허우대가 볼만하던데, 때가 타서 그렇지 씻겨 놓으면 꽤 미남일걸.”
“왜? 어디 귀부인한테 팔기라도 하려고?”
“하하하 먹고 튀면 잡아다 파는 것도 괜찮겠네.”
스틸 베인의 태도를 깐깐하게 지적하던 남자 ‘마틴 피셔’가 ‘아비가일 셀러’를 쳐다보며 묻는다.
“아까 그 옷 얼마나 준거야?”
“얼마 안 해. 3골드
“헉... 3골드? 제정신이야? 3골드면 우리 셋 열흘 치 밥값이다.”
“왜 이래? 꼬맹이가 메고 있던 양손검. 그거 클레이모어야. 딱 보면 몰라? 그 정도 클레이모어면 30골드는 받을 수 있어. 최소한 열배 넘는 장사라고.”
얘기를 듣고 있던 ‘아론 뮐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연이 있는 귀족의 자제인 건가...?”
“응? 뭔 소리야?”
“귀족?”
아론의 말에 아비가일과 마틴이 놀라 물었다.
“기껏해야 열아홉? 스물?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데 말투도 그렇고... 그 행색에 클레이모어를 차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하긴, 요즘 망해 나가자빠지는 귀족가문이 한둘이 아니니.”
“물어보면 되겠지. 저기 내려온다. 우와~ 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넉살이 좋은 건가?
여인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다.
다행히 씻는 동안에 습격은 없었다.
나는 여러 모로 놀랐다.
물이 나오는 방식도 놀라웠고 뜨거운 물이 그렇게나 풍부하게 나오다니...
커다란 면경의 성능도 놀라웠다.
더욱 놀라운 건 처음 보는 이 몸의 모습이었고...
오랫동안 정리를 안한듯한 수염이 보기 안 좋아 다 밀어버리니 너무나 앳된 얼굴이 드러났다.
‘약관 정도나 되려나..?’
이 어린아이를 산채로 매장해 버리다니...
“우와! 우와! 완전히 딴사람이 됐네. 옷으로 알아본 게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쳐가도 못 알아봤겠는데.”
‘이 여인은 넉살이 좋은 게 맞군.’
“과례가 심하십니다. 의복은 감사히 입도록 하겠습니다.”
식탁에 준비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 때문에 긴장이 풀렸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포권을 취해버렸다.
나는 급하지 않게 음식을 먹었다
병상에 오래 있었던 나는 몸이 쇄할수록 음식을 천천히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음식 때문에 벌써 한번 큰 낭패를 보지 않았던가?
당연히 음식을 제공한 이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런데 뭐지? 세 사람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뭔가 놓친 게 있는 건가?’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올 것이 왔구나...
‘스틸 베인’... 혹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몸의 원래 이름을 사용하고자 마음을 먹기는 했다만 아직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은 부딪혀보자.’
“스틸 베인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응?
세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
“와!! 하하하하하.”
“아론 말이 맞네!! 귀족이네 귀족!! 하하하”
“와 하하 귀족? 스틸 베인이면 왕족이야 왕족!!”
“아...하하..하 숨차다. 역시 애는 애네.”
“이 놈아. 그래도 스물 가까이는 돼 보이는데 스틸 베인이라니 어린애도 아니고.”
뭐지? 반응이 너무 격한데?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 건가?
“아..하아..하아.. 꼬마야. 아직 베인 공작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드래곤 슬레이어 아들을 사칭하고 다니면 맞아 죽을 수도 있어.”
“나도 순간 쥐어박을 뻔했다. 어디 드래곤 베인 아드님을...쯧!”
“그래, 뭐 다른 뜻이야 있었겠냐만은 다른 데 가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베인 하임의 장자인데 농담 삼아 입에 올릴 이름은 아니지.”
이름을 밝히기를 잘한 것 같다.
‘드래곤 베인’
이 몸의 아비 이름인 것이 확실해졌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들었던 감정이 이 때문이었구나.’
“Steel이 아니라 Steal 말하는 거지? 하하하.”
“우리 파티에 도둑 포지션 없잖아. 영입할까?”
“... 그래, 사연이 있겠지. 일단 Steal이라 부르마.”
이 몸의 주인 기억 때문일까?
저 시답잖은 농담을 알아들을 수 있어 기분이 나쁘다.
뭔가 계속 까칠하게 굴던 남자가 물어왔다.
“그 검. 어디서 훔친 건 아니지? 그러면 얘기가 달라져 꼬마야.”
... 훔친 거랑 비슷한데.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보자.
문물을 봐서는 야만적인 인간들은 아니다.
“나를 공격한 자에게서 정당하게 취한 물건이다.”
“응? 자세하게 얘기해 봐.”
여인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말한 그대로다. 이 몸을 죽이려 들기에 어쩔 수 없이 죽였다. 그리고 주인이 없어진 무기를 내가 취한 것이고.”
“몇 명이 있었는데?”
“여덟 명이었다.”
“여덟이 한 명을 죽인 거면 정당하다고 하기가 좀 그런데...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지...”
“뭐 열배 장사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잖아. 훔친 건 아니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대충 정당한 대결이라면 문제가 없다는 것 같은데.
“상대방이 여덟 명이었다.”
“하하하 그래 웃겼다 얘. 이제 힘이 좀 나나 보네 허세 부리는 거 보니.”
... 이 여인은 내 말이 다 허풍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정도 그럴듯한 클레이모어 정도 들고 다니려면 6급 이상 용병이나 모험가는 된다는 얘긴데...”
“왜? 모런은 9급 때에도 클레이모어 들고 다녔잖아.”
“모런은 힘이... 장사잖아.”
“그렇지. 모런은 집에 돈도 좀 있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어이 꼬마, 집? 너 집이 어디냐?”
집이라...?
답할 것이 없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내가 온 방향을 가리켰다.
“저 산을 넘어서 왔다.”
.......
“오크 생츄어리? 저걸 넘어왔다고?”
“난 얘랑 더는 말 못 섞겠다. 어린놈이 입만 열면 거짓부렁이야.”
“그냥 산을 돌아서 왔다는 얘기겠지. 퍼플시티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으니까.”
여인은 재미있어하는 눈치이고 깐깐한 남자는 화가 난 모습이다.
나머지 한 명은... 이런 부류가 상대하기 가장 힘들다.
‘뭘 이렇게 빤히 쳐다봐?’
“그런 식으로 사람을 쳐다보시면 실례입니다.”
읽기 힘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피곤할 텐데. 식사를 마치면 들어가서 푹 쉬게나.”
... 나는 그에게 검을 건넸다.
물론 약속한 날은 내일이다.
잠자리가 보장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제공한 신뢰에 대한 대답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먼저 올라가 쉬겠습니다. 귀하들께서도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짧게 인사를 마치고 방으로 향했다.
.......
스틸 베인이 계단 위로 사라지자 아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귀족이 맞는 것 같다.”
“그치? 아론도 그런 거 같지? 애 밥 먹는 게 아주 우아함의 극치던데.”
“얼씨구? 내가 보기엔 그냥 허풍선이 같은데.”
아론의 의견에 대해 아비가일과 마틴은 각기 다른 반응이었다.
여기에 아론이 질문을 던졌다.
“오크 생츄어리 너머에 뭐가 있지?”
“응? 갑자기 지리공부 하자는 거야?”
“미들랜드 아냐? 서쪽으론 오렌지카운티, 동쪽으론 법왕청 있는 그 뭐냐... 퍼플시티? 그 동네 다인슬라이프 때문에 요즘 분위기 장난 아니라던데.”
아비게일과 마틴의 대답에 아론이 말을 이어간다.
“그 다인슬라이프가 요즘 하고 다니는 짓이 뭐야?”
“뭐 하긴? 타이런트 빨아 주면서 온 동네 들쑤시고 다니고 있잖아. 그 빌어먹을 자식이 작살낸 가문이 몇 개야?”
“윈터랜드에 있는 베인 하임 블랙캐슬은 타이런트 공작이 직접 장악한 것이고. 맞지?”
“와~ 그걸 장악했다고 표현하냐? 베인하임이 뒤통수 거하게 두드려 맞았지. 아우!! 내가 표현력이 모자란 게 한이다.”
문답을 이어가던 아론이 본인이 생각한 결론을 말해 준다.
“아마도 다인슬라이프가 박살 낸 가문의 자제 중 한 명인 거 같다. 아마도 볼모로 잡혀있다 탈출한 것이겠지.”
“..... 불쌍해라.”
“아마도 스틸 베인에게 어떤 동질감? 뭐 그런 걸 느껴서 그 이름을 언급한 거일 수도 있겠지. 얼마 전에 타이런트 공작이 스틸 베인은 죽었다고 공표했으니까.”
.....
“하!! 거봐라. 내가 찝찝하다 했잖아.”
마틴이 아비가일에게 다그치듯이 말하자 아비가일이 애교를 부리며 변명한다.
“이잉~ 눈앞에 클레이모어가 왔다 갔다 하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참아~”
“내일 성문 열리면 헐값에라도 팔아버리자.”
“아니야, 블루캐슬은 신분을 기록해야 하니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럼 어쩌려고? 그냥 꼬마한테 돌려줘?”
“그건 좀 아깝지. 조금 덜 받더라도 ‘다이톤’으로 돌아가서 처분하는 것으로 하자.”
아비가일은 못내 아쉬워한다.
“힝~ 헐값에 클레이모어 하나 장만하나 했는데.”
***
아무 일 없이 밤이 지나갔다.
다행히 푹 자기는 했다.
‘운기조식을 했어도 됐을 텐데.’
이렇게 푹 잘 수 있을 줄 알았다면 운기조식을 할 걸 그랬다.
‘의심했던 것이 미안할 지경이네.’
나에게 도움을 줬던 일행은 아침 일찍 떠났다고 한다.
더군다나 내 아침식사에 대한 값까지 미리 지불을 하고 떠났다.
‘감사의 말도 전하지 못했는데.’
나는 일단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화려해 보이는 성채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응? 블루시티 말하는 겐가? 신원보증이 있어야 들어가지.’
‘돈을 벌려거든 다이톤으로 가보게나.’
늙은 점소이의 조언이었다.
북쪽으로 길을 따라 한나절 정도만 가면 ‘다이톤’이라는 번화한 마을이 있다고 했다.
나는 북쪽으로 뻗어있는 대로를 놀라운 심정으로 경공을 펼치며 나아갔다.
경공이야 진즉에 써봤으니 놀랍지는 않지만 진짜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이렇게나 잘 다듬어진 대로라니
이 땅의 문물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무거운 몸의 경공을 너무나도 잘 받아내주고 있다.
신난 마음에 경공을 펼치며 대로를 따라가고 있자니
쳉! 체엥-!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검격에 의해 생기는 파공음이다.
‘이런 대로변에서 검을 맞대고 싸우다니.’
이 놀라운 선진문물에 노상에서 싸움질이나 해대는 야만적인 인간들이라니.
가진 무기가 없는 것이 내심 불안하긴 하지만 이 몸 자체가 ‘무기’ 아닌가?
나는 경공을 풀고 대로를 걸어갔다.
‘응? 낯익은 모습인데?’
... 은인들이다.
세 명의 은인이 노상에서 열 명이 넘는 괴한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