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딘 (1) 리버스 펜타그램(reverse pentagram)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불기둥으로 뛰어든 셰퍼드가 검을 찔러 넣었다.
순도 높은 은으로 만들어진 셰퍼드의 검에 불빛이 비추어져 붉게 물들었다.
[ 끼 에--엑-- ]
[ 끼 에-에-에-엑-- ]
귀곡성 같은 비명이 들판에 퍼져나갔다.
셰퍼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것도 잠시...
[ 크크크크크큭 ]
비명을 질러대던 악마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 살짝 설렜나? 자이언트 ]
악마의 가슴에 박혀있으리라 기대했던 은으로 만들어진 셰퍼드의 검이 어느새 녹아내리고 있었다.
***
악마 학살자 '데몬 베인'
베인들의 고향 베인하임을 대표하는 가문 중의 하나로 악마의 척결만이 그들의 신념이다.
데몬베인 가문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의 베인들보다 체구가 작다는 것이다.
베인의 남자들이 대부분 2미터20센티~30센티에 달하는 거인이지만 데몬베인 가문의 남자들은 2미터가 갓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이라면 이것도 어마어마한 거구이겠지만 베인의 남자 중에는 데몬베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작은 체격의 베인은 없다.
세대를 거쳐 오면서 데몬베인의 비기를 익히기에 적합한 남자들만이 대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며 온갖 사이한 마법을 구사하는 마족에게 다가가기 위해 데몬베인 가문 사람들이 대대로 연구하고 발달시킨 분야가 바로 ‘은신’이다.
데몬베인 가문의 비기 ‘베니쉬’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은신술이다.
셰퍼드는 이 데몬베인 가문의 후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중단전을 개방한 스틸조차 기척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 ‘베니쉬’ 때문이다.
하지만 셰퍼드는 데몬 베인의 칭호를 받지 못했다.
붉은 대산의 대마경 ‘판데모니움’
데몬베인의 일족은 이 판데모니움에 잠입해 악마를 암살하고 돌아와야 비로소 데몬 베인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지금의 셰퍼드는 미들랜드에서 데몬 헌터라 불리며 하급 마족들에게는 재앙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판데모니움에서의 임무만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
‘마기!’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마기였다.
그리고 너무나 사이한 마기였다.
생전에 느껴 보았던 그 어떠한 기세보다도 사이했다.
기본적으로 마기 또한 선기나 도기 그리고 사기처럼 기세의 일종일 뿐이다.
순수한 마기는 마치 불자의 그것처럼 정순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마기는 다르다.
사이함과 악의가 가득하다.
‘살의’
그렇다. 이 마기는 살심 그 자체였다.
마기가 느껴지기가 무섭게 행렬의 중심에서 불기둥이 치솟더니 이내 토벌대 주변으로 다섯 개의 돌기둥이 솟아올랐다.
‘...진법..?’
이 땅의 진법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분명한 진법이다.
저곳에는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살심에 파묻히고 있는 것이다.
“같!! 같이 가 스틸!!”
나는 아비가일의 외침을 뒤로하고 경공을 펼쳐 토벌대를 향했다.
하지만 채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돌기둥을 둘레로 감싸는 거대한 장막이 솟구쳐 올라 순식간에 토벌대를 외부와 차단했다.
‘진법이 확실하다...’
“리버스펜타그램(역오망성)이다!!”
정찰조로 나와 있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소리쳤다.
공교롭게도 해가 져 이제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이 시간, 이 장소에 유인된 것이 확실하다.’
진법이 완성되자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사-사-사-삭-’
북쪽 멀리에서부터 옥수수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온다.
남은 고트 무리들이 밀고 내려오는 것이다.
‘아비가일!!’
뒤돌아보니 다행히 아비가일이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소리친 방향을 돌아보니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누군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옥수수밭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화염술사 이안 파르코’
정찰을 나온 동안 아비가일과 잡담을 하다 듣게 된 이름이다.
실력도 평판도 꽤나 높은 불속성에 특화된 소서러 라고 한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나에게 다가온 아비가일의 옆구리를 잡아 안고 경공을 펼쳤다.
평소 같으면 너스레를 떨 법도 한 아비가일 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법’을 바라볼 뿐이었다.
‘마틴이 많이 걱정스러울 테지...’
달려온 장소에는 역시나 이안 파르코가 옥수수밭에 불을 지르며 밀어내고 있었다.
「 아이스볼트 」
나 또한 아이스볼트를 쏟아내어 옥수수나무들을 베어냈다.
이번에는 최대한 공기 중의 수분을 모아 진짜 ‘아이스볼트’를 만들어 날렸다.
처음의 전투 때처럼 불에 붙은 고트 무리들이 쏟아져 나오면 더 위험할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얼음 칼날을 만들어 탄기로 날리니 기파를 얼려 날릴 때보다 연사 속도는 현저히 줄었지만 그 위력은 몇 배가 되었다.
‘빙공의 예리함에 얼음의 중량이 더해지니 위력이 증가하는 걸까..?’
화염의 열기와 나의 아이스볼트가 만나 대량의 수증기가 쏟아져 나왔다.
화염과 연기...안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준비해라 전방을 주시해.”
이안 파르코가 낮게 말했다.
수십의 기척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무언가 다른 것들이 섞여있다.
아직 정찰조로 나와 있던 사람들이 다 모이지 못했다.
근접 딜러의 포지션은 아비가일뿐이라 아비가일이 홀로 앞으로 나가 검을 세워 들었다.
... 근접딜러? 포지션?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 되어서 그런가?
이 몸의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온다!!’
내가 먼저 아비가일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옥수수밭을 헤치며 고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 사자후 」
나의 부름에 사자후의 구결이 피어올라 운기법을 따라 내 혈맥을 내달렸다.
「 하!!!!! 」
나는 남아 있던 내공을 한껏 끌어올려 기파를 날렸다.
옥수수밭을 걷어낸 범위는 북쪽으로 10장(약30미터) 정도
쏟아져 나오던 고트무리 수십 마리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효과는 더없이 좋았지만 이 전투에서 사자후는 다시 펼치지 못할 것 같다.
내공 소모가 심하다...
전투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이대로면 호신냉기조차 더 이상 유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옥수수밭에서 나오고 있는 고트들이 더 이상 달려들지는 않고 있다.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가 낑낑 대듯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뿐이다.
‘드래곤피어? 저 젊은이가 어찌하여 드래곤의 권능을.....?’
이안 파르코는 흥미가 동했다.
‘화염술사’라는 이명으로 서머랜드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안 파르코의 본연의 모습은 마탑의 메이지였다.
그는 여느 마탑의 메이지들이 그러하듯 본인이 마탑의 메이지라는 것을 굳이 밝히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마탑은 드래곤을 섬긴다.
그리고 드래곤은 악마와는 대척점에 있는 존재들이다.
드래곤을 섬기는 마탑의 메이지로서 눈앞에서 본 드래곤의 권능.
이안 파르코는 스틸에게 의구심을 품기보다는 흥미와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안 파르코는 지금 당장 스틸에게 다가가 이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우물쭈물하고 있던 사이 고트 무리 사이로 다섯 마리의 ‘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판’중의 한 마리가 뭉뚝한 검으로 고트의 목을 쳐내며 말했다.
「 인간들을 죽여라. 이 염소쌔끼들아 」
‘판’
양의 머리와 하반신을 가진 반인반수의 하급악마이다.
‘고트와 판.. 그리고 리버스펜타그램을 사용한 결계’
이안 파르코는 이 사태의 원흉을 찾아낸 듯했다.
‘바포메트...’
“스틸!! 뒤로 물러나 저건 ‘판’이야.”
판...? 고트들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두 배는 더 크고...강해 보인다.
‘8척(약2미터40센티)은 되어 보이네...’
“조심해!! 10등급짜리 고트랑은 달라 판은 5등급짜리 마족이야!!”
등급... 그런 걸 수치로 다 나눠 놓았다고?
‘경지...같은 건가?’
“아비가일 혹시 오크도 등급이 있나?”
“오크? 걔들은 종류가 많아서... 보통 5등급? 6등급?
이때 우물쭈물하던 고트 무리가 다시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쪽도 정찰 나와 있던 인원들은 거의 다 모였다.
‘현자’라고 하던 윌리엄이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꽤나 강해 보였던 이안 파르코도 있고 고트들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오크가 5~6등급...판이 5등급... 고만고만 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저 ‘판’이라는 것들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향해 몸을 쏘았다.
「 장저포추! 」
내달리던 힘이 그대로 실린 장저포추에 맞은 ‘판’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스틸 베인의 몸으로 돌아갔을 때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압박체축술의 발열도 어느 정도 잡아 몸 상태는 나쁘지 않다.
쇄약 해진 상태에서도 철갑을 뭉갤 만큼의 위력이었으니 멀쩡할 리 없다.
“스틸!! 판은 마족이라고 했잖아!! 기본적으로 신성력이 있는 무기가 아니면 딜판정이 적어!!”
고트들을 막아서고 있던 아비가일이 소리쳤다.
‘신성력...’
몸통이 터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판’이 눈을 떴다.
타격이 없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비가일의 말대로 대부분의 피해를 흘리거나 흡수한 듯하다.
잠시 이쪽을 주시하는가 싶던 나머지 ‘판’들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달려갔다.
나는 별게 아니라고 여기는 듯싶다.
‘내가 교만했구나.’
판은 빨랐다.
마치 말의 뒷다리처럼 생긴 저 튼튼한 다리를 몇 번 구르자 순식간에 사람들과 거리를 좁혀 칼질을 해댔다.
정찰대로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마법사들이다.
저렇게 강력하게 거리를 좁혀 달려들자 안 그래도 고트무리를 상대로 정신이 없던 몇몇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난 분명히 아비가일로부터 판이 ‘마족’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나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불가’의 무공이다.
내 머릿속에는 ‘파마(破’魔)’를 목적으로 한 초식의 구결들이 수없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나의 교만이 저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땅에 처박혀있던 판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 항마연환선퇴(降魔連環旋腿) 」
악귀를 제압하는 소림의 각법이다.
강력한 위력의 수많은 각법이 있지만 그중의 백미는 역시 ‘발구름'이다.
이곳의 표현으로는 ‘스톰핑’
파마의 구결이 피어올라 내 혈맥을 내달렸고 내 발 끝에 기운이 집중되는 순간... 나는 내 앞에 누워 있던 판을 짓밟았다.
‘ 파---------아-------’
파마의 기운이 터져 나오며 판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