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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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최근연재일 :
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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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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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1화>




거리마다 흩뿌려진 화려한 불빛들이 새까만 하늘을 도화지 삼아 다채로운 색을 그려내는 밤.

축제가 한창인 도시는 별빛에 물든 듯 반짝였다.

거리에는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이부자리에 누운 아이의 이마에 입 맞추는 어머니도, 밤길은 위험하다며 외출을 통제하는 아버지도 없었다.

뒷골목의 그림자를 쫓던 자들도 밝은 거리로 뛰쳐나와 술잔을 맞대고 어깨를 나란히 했다.


평민을 오만하게 굽어보던 귀족들도 오늘만큼은 달랐다.

국경보다 넘기 힘든 신분의 벽을 허물고서 평소 섞지 않던 손을 맞잡았다.

광장의 한가운데에서 타오르는 큰 모닥불의 주위를 돌며 춤을 췄고, 음유시인의 노래는 그들이 밟을 리듬이 되어주었다.


모두가 행복해 마지않았다.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으윽······ 하아······.”


달빛이 희미하게 흘러들어오는 지하 고문실.

팔다리가 기둥에 묶인 남자의 숨결이 짙게 번졌다.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꼴로 신음하는 그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영웅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축제의 주역이었으며,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마왕을 토벌하고 귀환한 용사 파티의 서포터이기도 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루멘.”


이름을 부르는 거만한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거뭇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훤칠한 사내의 모습이 비쳤다.

머리카락에 짙은 푸른빛이 감도는 그의 이름은 칼리고.

용사 파티의 파티장이자 몇백 년 만에 태어난 용사였다.

칼리고가 입꼬리를 쭉 찢으며 짙게 웃었다.


“어렸을 적부터 줄곧 네가 거슬렸어. 너희의 역할은 나를 돋보이게 만드는 건데, 나보다 뛰어난 게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모두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용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웃음이었다.

루멘은 고개를 돌려 새까만 벽에 걸린 파티원들을 보았다.

화염 폭풍을 일으켜 악마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던 엘프 대마법사도.

용맹한 도끼질로 드래곤의 목을 떨어트리던 드워프 전사도 이제는 없다.

썩은내로 파리를 꼬드기는 시체만이 있을 뿐이었다.

루멘이 실소했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불쾌한 듯 눈썹 사이를 좁힌 칼리고를 보며 루멘이 씩 웃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부러진 치아가 드러났다.


“꼴을 좀 봐라. 용사란 새끼가 열등감에 찌들어서는 파티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데 안 웃기게 생겼냐?”

“그건 너희가 먼저 잘못한 거잖아? 등장인물 주제에 선택받은 나랑 맞먹으려고 드니까 그런 거잖아!”

“지랄하고 자빠졌네 병신 색······ 우웁!”


말하다 말고 루멘의 입술이 오므라들었다.

칼리고의 주먹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배가 부풀며 토혈이 왈칵 쏟아졌다.


“병신은 너지 병신 새끼야! 왼팔은 저주받아서 못 쓰고 왼발은 잘려서 의족이나 끌고 다니는 병신! 병신처럼 만들어져서 서포터나 하는 병신!”


악에 받쳐서는 연신 뻗어대는 주먹질에 망가진 루멘의 몸이 경련했다.

피딱지가 뜯어지며 진물이 흘렀고, 벌어진 상처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아주 조금은 편할 것을.

정신은 되레 뚜렷해서 모든 고통을 생생하게 느꼈다.

칼리고가 말했다.


“너희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방패가 되라면 방패가 되고! 군말 말고 돈이고 뭐고 다 내놓아야 한다고! 그게 너희가 존재하는 이유니까! 왜 그걸 몰라 왜!”


루멘의 머리끄덩이를 잡고서 겁에 질린 아이처럼 비명을 토했다.

눈은 부어서 제대로 떠지지도 않고, 기둥에 묶인 것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주저앉았을 루멘이지만 마음만은 꺾이지 않았음을.

꺾을 수도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입 안에 고인 것을 칼리고의 얼굴에 뱉었다.


“좆까.”


피인지 침인지 모를 붉은 것이 오랜 친구이자 변절한 용사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을 것이다.

주먹을 부르르 떨던 칼리고가 급기야 검을 빼들었다.


“그래. 그렇게나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줄게. 아주 고통스럽게. 처절하게 몸부림치도록 끔찍하게!”


용사의 상징으로서 수많은 악마를 베어왔던 은백색 검신이 이제는 동료였던 루멘의 피를 탐하려 들었다.

검날이 정수리로 떨어지기 직전.

찰나이자 영원히 남을 시간 속에 루멘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너도 꼭 버림받아라.”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후,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내다 죽겠지만.

그런 건 제쳐두고서 저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빛을 의식으로 쫓았다.

눈꺼풀의 안쪽에서 새하얀 빛이 물감처럼 번지며 기억 너머의 장면이 펼쳐졌다.


**


태양의 이름을 따 흐르는 세월을 헤아리기 시작한 제국의 시대 이전부터 하늘에는 정오에도 저물지 않는 붉은 달이 떠 있었다.

붉은 달의 불온한 고동에 이끌려 지옥에서 건너온 흉물스러운 악마들은 저주를 흩뿌리며 세상 만물을 탐했다.

그렇게 십 년, 백 년, 천 년.

그 뒤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악마들과의 ‘영원한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다름 아닌 용사 칼리고가 이끄는 용사 파티였다.


마왕을 토벌한 뒤 지옥을 빠져나온 루멘은 붉은 달이 사라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벅차오름을 느꼈다.

자신의 이름이 세상을 구한 영웅 중 한 사람으로서 후세에 전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국의 황제를 알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웅이란 이어질 역사와 함께 영원불멸한 선망으로서 상징될 존재다.”


즉위 5년 차인 황제는 삼십의 나이로 젊었다.


“마신을 봉인하고 제국을 세우신 아슬란 초대 황제처럼, 마왕을 토벌하고 영원한 전쟁을 끝낸 용사 파티의 영웅들 또한 후세의 희망이자 본보기가 되겠지.”


보여주기 위한 사치스러운 반짝임으로 가득한 알현실에서 그의 목소리는 가장 컸고, 또한 높은 것이었다.


“헌데 자네는 고작 짐꾼 주제에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것인가? 용사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마왕을 토벌하는 걸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감히 범접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던 루멘이 고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폐하, 저는 짐꾼이 아니옵니다.”


제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황제의 친위대와 제국의 검이라고 불리는 대장군.

그밖에 수많은 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소리를 내었다.


“각종 아이템과 마법, 기술을 상황에 맞게 사용하여 파티원을 보조하는 서포터입니다. 당연히 마왕 토벌에도 이바지했고요.”

“진위가 의심되지만 그것 말고도 문제가 또 있네. 자네의 외모는 세상을 구한 제국의 영웅에 걸맞지 않아. 얼굴의 절반을 뒤덮은 흉터도 그렇고 팔다리를 한 쪽씩 쓰지 못하는 게 영웅보다는 어딘가의 해적 같지 않나?”


이유랍시고 되먹지 못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으나 요지는 공적을 인정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것.

루멘이 오른손을 말아쥐었다.


“이 왼팔은 동료를 감싸다가 이그리드의 저주에 당한 것입니다. 제국의 국경을 초토화하고 수십만 명을 학살한 그 이그리드 말입니다.”


7년이다.

무려 7년을 용사 파티에서 구르며 온갖 수모를 겪었다.


“다리는 지옥의 람바스 미궁에서 탈출하면서 잃었습니다. 제국이 악마에게 빼앗긴 용사의 성물을 되찾아오던 중에 말입니다.”


서포터라는 걸 들먹이며 온갖 잡일을 떠넘겨도 그러려니 했다.

파티에 필요한 공용 아이템을 사비로 구매하면서도 이해했다.

이게 최선이라며 파티를 위한 희생말이 되었을 때도 참았다.


“그뿐만 아니라 용사 파티가 결성되기 이전부터 용사와 여러 일을 해결해왔습니다. 이토록 오랜 기간 제국을, 세상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보상받을 날만 고대하며 전부 견뎠는데 이런 취급이라고?


“그런 저를 부당하게 내치신다면 앞으로 그 누가 제국을 위해 검을 들겠습니까? 쓰임을 다하면 버림받을 걸 알고도 희생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저! 무능하게 태어나서 짐을 지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천한 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귀족들 가운데 하나가 언성을 높였다.

금과 보석을 두른 오만한 손가락질이 화살처럼 쏟아졌고, 팔을 걷어붙이는 이도 있었다.

대장군마저도 눈살을 찌푸렸지만 루멘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연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제국의 말로는 멸망뿐입니다.”


이 뒤로 노발대발한 젊은 황제에게 쫓겨났고, 억울한 마음에 주야장천 술만 퍼마시다 정신을 차려보니 칼리고의 고문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이 영문 모를 기억의 되풀이 또한 그대로 흘러가리라.

죽기 전 마지막으로 꾸는 꿈 정도로 여기며 루멘이 체념한 그때였다.


“루멘! 야, 루멘!”


원래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퍼뜩 깨어난 루멘이 반사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오랫동안 꿈을 꾼 기분이고 머리도 몽롱한데 반대로 몸은 가벼웠다.

두 눈도 빛에 이미 적응해서 조금의 번짐도 없이 일변한 광경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불온한 붉은 달을 머리 위에 두고서 백열의 태양을 등진 소년은 목소리만큼이나 앳됐다.

나이가 들어도 바래지 않을 짙은 푸른빛이 머리카락에 깃들어있었다.

아무리 웃어도 주름지지 않는 얼굴은 루멘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으나 결코 추억될 수 없는 원수의 과거.


“칼리고······?”


부름에 답하듯 소년이 손을 뻗어왔다.

구김살 없이 순수하게 웃으며 한때는 추억이었으나 지금은 가장 큰 후회로 남은 장면을 재현했다.


“너와 함께라면 나는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서포터가 되어서 언제까지나 나를 지지해줘.”


내가 아직도 꿈을 꾸는 걸까?

작지만 온전한 양손도, 의족 없이 설 수 있는 짧아진 두 다리도, 사라진 상처와 저주들도, 낮아진 눈높이도.

눈앞에 있는 어린 칼리고마저도 다만 모든 게 몽롱하여 실감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지만 적어도.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확실히 알았기에 루멘은 주먹을 힘껏 뻗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며 묵직한 소리가 났다.


퍽!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어린 칼리고가 비틀거리다 나무뿌리에 발뒤꿈치가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붓기 시작한 뺨을 양손으로 감싸고서 처량한 눈으로 루멘을 올려다보았다.

이보다 악어의 눈물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불쌍하긴커녕 마냥 역겨운 루멘이 침을 뱉듯 쏘아붙였다.


“닥쳐. 서포터는 너나 해!”


추억되지 못한 과거의 다른 이름은 후회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더 이상 후회를 남기며 살지 않으리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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