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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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최근연재일 :
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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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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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2화>


20년 전으로 돌아왔다.

루멘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세계의 시곗바늘이 뒷걸음질 치며 생긴 천문학적인 변화들은, 천지창조의 신화에 비견되는 기적이니까.

매 순간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하지만 아침마다 산들바람이 실어 오는 들판의 싱그러운 풀내음도.

정오의 태양이 잘게 부서져 반짝이는 시냇물도.

쏟아질 듯 빼곡한 밤하늘의 별들도 꿈결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다.

날을 거듭할수록 깨어나는 감각은 결코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현실이었고, 현실을 살아가기에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깨달음과 동시에 루멘은 엎드려 오열했다.


밥을 먹거나 무언가를 들 때 양손을 온전히 쓸 수 있어서.

균형 잡힌 튼튼한 두 다리로 땅을 디디고 설 수 있어서.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이 온전하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멀쩡한 사지와 가족, 돌아올 장소는 당연하면서도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큰 축복이었다.


“닥치고 자세 잡아.”


오후 중에 하루분의 체력 단련을 마친 루멘은 어김없이 칼리고에게 시비를 걸었다.

굳이 찾아와 어깨를 부딪쳐놓고는 되레 역정을 내며 폭력을 행사했다.


“네가 와서 부딪혀놓고 왜 나한테 난리야?”


물론 칼리고라고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루멘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낯선 것과는 별개로 똑같이 폭력으로 응수했다.

어느 날은 식칼까지 들고 와서는 사이코적인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어린애.

무엇을 들고 발광하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눈에는 장난감을 휘적거리는 애송이에 불과했으니까.

어려진 몸에도 적응했겠다, 실컷 얻어터져 나자빠지는 건 언제나 칼리고였다.


“시발······ 개시발······!”


배를 부여잡고서 엎드린 칼리고의 입에서 찐득한 침이 흘러내렸다.

피가 살짝 섞어 붉은 것이 흙바닥 위에 고였다.

여덟 살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가 복부를 얻어맞아 피를 흘린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딱하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루멘에게는 살인 충동을 억누르는 인고의 시간일 뿐이었다.


‘참자, 참자, 참아야 한다······.’


하루에도 수백 번을 죽일까 고민한다.

이성을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풀어두면 당장에 달려들어 칼리고의 목을 비틀어버리겠지.

그런데도 꾸역꾸역 참는 이유는 이런 놈이라도 세상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칼리고는 마왕을 쓰러트렸고, 이번에도 쓰러트릴 용사니까.

알맹이가 어떻든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구하고 영원한 전쟁을 끝낼 영웅이니까.

칼리고를 죽임으로써 발생할 세상의 멸망을 루멘은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칼리고를 철저히 이용하기로.


회귀 전의 지식을 이용해 좋은 아이템과 기연, 공적마저도 전부 독차지하겠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혈을 쪽 빨아 먹은 뒤에는 지옥에다가 묫자리를 깔아주리라.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걸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꾸준히 길들일 필요가 있다.

쥐잡듯 두들겨 패 상하관계를 확고히 해둬야 한다.

지금이야 루멘이 아득히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재능이란 벽에 부딪혀 뒤집히는 건 시간 문제니까.

그날이 오더라도 칼리고가 감히 거역할 생각조차 못하게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

그것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칼리고의 머리를 자근자근 밟으며 루멘이 말했다.


“잘 들어. 네가 뭐든, 앞으로 뭐가 되든, 얼마나 강해지든 나보다 약한 너는 서포터야. 절대로 토 달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서포터.”

“좆······ 까······! 만들어진 등장인물 주제에 나한테 명령하지 마!”


땅에 입을 맞추고서 마른 흙을 퍼먹을지언정 칼리고는 굴하지 않았다.

눈을 치뜨고서 분노를 표출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칼리고는 입버릇처럼 저런 것들을 말하곤 했다.

등장인물이라든지, 만들어졌다느니.


회귀 전에도 셀 수 없이 들었지만 루멘을 비롯한 그 누구도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을 읽던 다른 세계의 주민이 용사로 선택되어 차원을 넘어오리란 발상을 어느 누가 하겠는가?

미쳐서는 망언을 지껄인다며 혀를 찰 뿐이다.

루멘이 시니컬하게 웃었다.


“더 맞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줄게.”


칼리고를 일으켜 세우고서 복부를 사정없이 때렸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지만 이러한 행동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이 시절에는 루멘의 아버지와 칼리고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니까.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던 정겨운 시골 마을도 건재하니까.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루멘은 오늘처럼 어른의 그림자가 보이는가 싶으면 자기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그 뒤에는 쪼르르 달려가 어른의 다리를 붙잡고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칼리고는 아무 잘못 없어요. 전부 제가 나쁜 거예요.”


폭력을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들이받은 어린양처럼 몸을 떨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어른들은 루멘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칼리고의 어머니마저도 사춘기가 일찍 온 듯한 칼리고보다는 루멘을 신뢰했다.


“얘가 또! 루멘이 먼저 사과해줬으니 너도 어서 사과하렴, 칼리고. 루멘 같은 친구가 어디 있다고 자꾸 괴롭히는지 원.”


루멘은 이와 같은 행위를 칼리고식 표현을 빌려 ‘선즙필승’이라 불렀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칼리고의 입장에서는 억울해 죽을 지경이겠지만 어쩌겠나?

이것 또한 인생인 것을.


“오늘도 맛있는 저녁 감사합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의 저녁 식사를 마치면 루멘의 마지막 일과가 시작된다.

밑동만 남은 나무로 둘러싸인 뒤뜰로 나와 나무꾼인 아버지를 도와 장작을 팼다.

팰 장작이 부족하거나 없는 날에는 도끼를 양손으로 잡고서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다리 사이의 간격이나 팔꿈치의 각도, 몸의 높낮이를 바꿔가며 가장 익숙한 검술을 펼쳤다.

아버지는 언제나 몰래 지켜보다가 아주 가끔 다가와 여러 가지를 묻곤 했다.


“그건 어디에서 배운 거니?”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나무꾼으로 살아온 중년인일지라도 보이는 게 있으니까.

자기 아들이 펼치는 비범한 행위에 대해 덮어둘 수만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지시라도 받은 것처럼 꿈 이야기를 했다.


“매일 밤 꿈에 나오는 스승님께 배웠어요.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 훈련해두라고요.”

“아, 그, 그러니? 으음······ 그래도 그렇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러면 힘들지 않아?”


물론 잘 먹고 잘 쉬는 것까지 훈련이다.

누구보다 잘 아는 루멘이지만 이렇게까지 서두르는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5개월 후.’


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은 아닌 밤중에 도적의 습격을 받아 폐허가 된다.

루멘과 칼리고를 제외한 전원이 몰살당하며, 후에 두 아이가 몰락 귀족에게 거두어지는 계기가 된다.

고아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부리는 정신 나간 몰락 귀족.

루멘의 기구한 인생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의 어른들에게 말하거나 다른 곳으로 가 도움을 요청해도 증거가 없으니 믿어주지 않을 게 분명해. 무엇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


그걸 위해서라도 길게 싸울 체력과 도끼를 자유자재로 다룰 근력.

최소한 도끼의 무게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삐끗하면 다 죽는다는 마음가짐을 숨긴 채 루멘이 미소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타고난 신체 능력, 특히 회복력이 초인으로 분류될 정도로 좋다는 사실이다.


“무리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밤늦게까지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루멘은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왕과 함께 드리웠대서 마왕성(魔王星)이라고도 불리는 붉은 달과 창백한 달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달이 창백한 달보다 강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밤하늘에는 희미한 붉은빛이 은하수처럼 감돌았다.


‘어떻게 20년 전 과거로 돌아왔는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무조건, 반드시 해내야 해.’


이룬 적 있는 과거이자, 이제는 미래가 되어버린 일을 사명처럼 새기며 집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붉은 달이 심장처럼 뛰며 불온한 고동을 발산해대는 탓에 악몽을 꾸는 날이 잦았다.

그래도 언제나 새벽닭이 울기 전에는 일어나 도끼를 챙겨 산길을 내려갔다.

지옥의 새빨간 암벽도 등반해본 그였기에 조금 험한 산길 정도는 꼬마의 몸으로도 평지처럼 누볐다.


새벽닭이 울쯤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닭을 기르는 유피 아주머니의 닭장에 들어가 달걀을 꺼내 들판으로 향했다.

몸은 손상과 재생을 통해 성장하며 양질의 영양분은 성장을 촉진한다는 원리를 일찍이 이해한 루멘이니까.

초인적인 회복력을 앞세워 자기 파괴적인 훈련을 하기에 앞서 영양 상태를 고르기 위한 요기를 마쳤다.


“차, 찾았다······. 이 달걀 도둑······!”


들판을 한 바퀴 돌고 온 루멘의 앞을 또래 소녀가 가로막았다.

또 너냐고 말하듯 입매를 일그러트린 루멘이 목덜미를 매만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하네, 헤나. 숨을 헐떡일 정도로 뛰어다니고.”


양갈래로 묶은 붉은 머리에 두건을 두른 헤나는 빼빼 마른 주근깨만큼이나 수수한 시골 소녀였다.

평소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나서부터 일손을 거들곤 했지만, 최근에는 부모님보다 빨리 일어나게 됐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우리 집 달걀을 훔쳐먹으니까!”

“훔쳐먹다니 말이 좀 심하네. 나눠 쓰는 거야, 나눠 쓰는 거. 너희 집도 우리 집 장작 받아다 잘만 쓰잖아?”


때마침 지평선 너머로 양떼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양치기 청년이 사이좋게 지내라며 빵조각을 건넸다.

보리를 쪄서 만든 검은빵은 퍽퍽했지만 인심은 포근했다.


“그거랑 말도 없이 가져가는 거랑 같니?”


따박따박 쏘아붙이고는 있지만 유피 아주머니도, 딸인 헤나도 달걀이 도둑맞는다곤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는 마을에서 소유권은 형식적인 구분일 뿐이니까.


헤나가 굳이 따라온 이유도 책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한 루멘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물론 너한테 주는 게 아깝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야. 그냥 온 김에 인사 좀 하고, 아침도 같이 먹고 하면 좋잖아.”


이슬에 젖은 산하엽의 꽃잎처럼 투명한 소녀의 마음을 루멘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좋을 대로 이용만 당하다 죽은 전생과 명백히 비교되는 따스함.

루멘의 입가에 어쩔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몇 배로 갚을 테니까 당분간만 더 봐줘. 그러면 나중에 보자!”


그렇게 말하고는 루멘은 훈련을 재개했다.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루멘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한 헤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게 어딜 봐서 루멘이야.”


이렇듯 평범한 듯 필사적인 삶 속에서 5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산등성이 사이로 고개를 내민 태양이 결전의 날이라는 걸 알려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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