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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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최근연재일 :
2024.11.05 02:2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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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수 :
111,510

작성
24.10.0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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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화

DUMMY

<3화>





“오늘도 안 오네······ 무슨 일 있나?”


루멘과 만나지 못한 것도 오늘로 사흘째.

날마다 찾아와 달걀을 빼먹던 녀석이 코빼기도 비추지 않자 헤나는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산길을 내려오다 다친 건 아닐지.

나무꾼인 아버지의 일손을 거들다 몸살이 난 건 아닐지.


소침해진 헤나의 시선이 이름 없는 산으로 향했다.

작지만 거친 손에는 따끈따끈한 달걀이 들려있었다.


“흐음······ 루멘 녀석, 오늘도 안 보이네.”


웃자란 잡초가 생기를 잃고서 황갈색으로 말라가는 들판.

늙은 개와 함께 양을 몰던 양치기 청년이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날이 저물도록 왕복 질주하던 녀석이 해가 중천인데도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쓸쓸해진 양치기 청년이 입맛을 다셨다.


“아무쪼록 건강만 하면 좋겠네.”


오늘에야말로 기필코 루멘을 참교육하리라 다짐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친 칼리고는 해 질 녘까지 기다리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길 사흘간 반복했다.

루멘은 장작 또한 패지 않았다.

아주 잠깐 허공에 도끼를 휘두를 때 빼고는 사흘간 집에 틀어박혀 명상만 했다.

가부좌를 튼 작지만 튼튼한 무릎 위에는 잔흠집이 별자리처럼 이어졌지만 날만큼은 예리한 도끼가 반듯하게 놓여있었다

아버지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루멘? 너 정말 괜찮은 거니?”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아들이 걱정되어서였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댔다.

행동으로 증명하고자 마음먹은 루멘이 도끼를 들고서 향한 곳은 300년 묵은 참나무 앞이었다.


“아니, 루멘! 너 설마 이 나무를 베겠다는 거니?”


하늘을 향해 줄기를 세차게 뻗은 녀석은 마을의 상징이나 수호신 같은 게 아니었다.

단순히 가장 오래됐기에 가장 큰 나무일 뿐.

아버지가 놀란 이유 또한 단순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이 처음 벨 나무로 가장 어려운 녀석을 골랐기 때문이다.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나 나무꾼으로 한평생을 살아왔고, 아들 또한 나무꾼으로 키우고픈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어렸을 땐 전혀 몰랐는데.’


시곗바늘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온 지금이라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지 못해 줄 수 있는 거라도 최대한 물려주고픈 가난한 사랑을.

확실하게 스며들어왔기에 제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다리 사이 간격을 벌린 루멘이 도끼를 휘둘렀다.


퍽!


첫 번째 도끼질에 세월이 깊게 주름진 표피가 갈라졌다.

네 번째 도끼질엔 표피가 떨어져 나갔고.

일곱 번째까지 이르자 웬만한 성인 남자 일곱 명분의 허리둘레만큼 두꺼운 몸통에 도끼날이 박혔다.


도끼질은 계속됐고, 뒤에서 지켜보는 아버지의 입은 단정치 못하게 벌어졌다.

저 어린 것이 자기 몸만 한 도끼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은 가히 놀라웠다.

예상을 아득히 웃도는 진행 속도 또한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탄스러운 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곳을 계속해서 타격하는 정확도였다.


‘그러고 보니 자세도.’


꿈속의 스승을 들먹이며 밤마다 홀로 도끼를 휘두를 때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무꾼으로서 한평생을 작은 시골 마을에 갇혀 살아온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도끼를 휘두르는 루멘의 자세는 나무꾼보다는 전사 내지는 기사에 가까웠으며, 나무보다 더 크고 단단하고 강한 것을 베기 위한 것임을.

오래지 않아 마을에서 가장 큰 나무가 넘어갔다.

발밑이 떨릴 정도의 굉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비산했다.


“아버지.”


300년 묵은 참나무에 휩쓸려 다른 나무들까지 박살나는 와중에, 루멘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뚜렷했다.

가장 강한 존재감을 발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나무꾼인 아버지가, 가정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매일 같이 힘내주시는 아버지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검술이나 기사네 하는 건 가지고 태어난 자들만의 전유물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꾼의 아들이래서 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만 너무나 멀고도 험한 길이다.


“하지만 저는 나무꾼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나무꾼은 앞을 향해 달려가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검 한 자루 사줄 형편조차 안 된다.

다 알면서도 말릴 수 없었기에 아버지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기사가 되고 싶은 거니?”


루멘이 고개를 저었다.


“용사 등쳐먹으면서 개꿀빠는 영웅이요.”


오늘 밤은 그걸 위한 첫걸음이 되리라.


**


루멘 일가의 터전이 되어준 이름 없는 산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산다.

나무의 수는 그보다 조금 더 많으며, 제대로 내지 않아 험한 산길이 길게도 이어져 있다.

발을 헛디뎠다간 죽도록 구르기 좋기에 산길은 평소 루멘이나 그의 아버지, 심마니 정도가 다닌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다른 것들이 흘러들어오기도 한다.

이름 없는 산의 그늘은 터전을 잃은 나무꾼이 오두막을 지어 살기 좋고, 오두막 앞에 갓난아기를 몰래 두고 가기에도 적당하니까.

무엇보다 이름을 댈 수 없는 것들이 숨어들기에도 제격이지 않은가.


그런 연유로 회귀 전, 마을을 폐허로 만든 도적들은 이름 없는 산으로 숨어들어왔고, 가장 먼저 루멘 일가의 피가 흘렀다.

도적이란 짙은 어둠 속에 숨어서 반짝임을 쫓는 것들이니까.

어두운 산골짜기에서 불빛을 뿜어내는 오두막은 잡아먹어달라고 발광하는 먹잇감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루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여기서 나와서는 안 된다. 아빠랑 약속하는 거다?”


그리 말하며 하나뿐인 아들을 마룻바닥 아래에 숨긴 아버지가 홀로 도적에게 맞섰다.

본 적 없을 정도로 사납게 포효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오로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눈물이 다 날 정도로 필사적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시간 벌이조차 안 됐다.

한평생 움직이지 않는 나무만을 베어온 나무꾼의 도끼질에 당해줄 정도로 도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아, 아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아이는 아버지가 만약을 위해 만들어둔 구덩이에 웅크린 채 숨죽였다.

마룻바닥의 틈새 사이로 끔찍하게 죽어가는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뜨겁고 아픈 눈물을 흘리며 도적들이 제발 떠나기를 빌었다.

그렇게 루멘은 유일한 가족을 잃었고, 돌아올 고향을 잃었다.


그리고 세계의 시곗바늘이 과거로 되감긴 지금,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려 하고 있었다.


“듣기론 별 볼 일 없는 시골 마을이라던데 우리가 주워 먹을 게 있기는 할까요?”


비탈진 산길을 오르며 도적 중 유일하게 램프를 든 이가 물었다.

색이 다른 두 달이 지켜보는 밤하늘 아래서 준동하는 그들은 떼 지어 몰려다니는 구더기와 같았다.


“걔들은 밥 안 먹냐? 물 안 마셔? 별 볼 일 없는 시골 마을이니까 털어먹기 더 편할 거 아니야!”


총인원 열여덟.

도적을 자처하고는 있으나 마땅한 거처가 없기에 본질은 무기를 쥐고서 몰려다니는 부랑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악행을 거듭해 수배는 되었으나 그렇대서 토벌대를 파견하기에는 애매한.

그런 무뢰배들이라도 무기가 아닌 기구만을 취급하는 헤드라에는 충분한 재앙이었다.


“먹을 것도 먹을 거지만 슬슬 아랫도리에 기름칠 좀 하고 싶은데. 흐흐흐.”

“시골에 바라는 것도 많네. 있어도 두목부터 맛봐야 하니까 괜히 눈독 들이지 마. 잘리기 싫으면.”

“아, 나는 남자도 괜찮아서.”

“이거이거 젊은 놈 아니랄까 봐 아주 발정 난 짐승 새끼가 따로 없구먼?”


수치 따윈 모르고 살아온 그들이기에 못난 입을 가졌으며, 마땅히 아름다워야 할 웃음마저도 저질스러웠다.

지긋지긋한 오르막길이 끝나고 조금은 평탄한 길에 들어서는가 싶은 그때였다.

맞은편에서 길을 막고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 도적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응?”


내리쬐는 달빛을 막을 나무가 전부 옆으로 비켜서서 불빛 없이도 훤한 길.

그 위에서 새까만 후드로 얼굴을 감춘 그는 덩치만 놓고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도적 중 아무도 그가 어린아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이렇게나 늦은 밤, 이토록 험한 산길에 어린아이 혼자, 하물며 도끼를 들고 있을 리 없으니까.


“난쟁이족인가?”


도끼들 들고서 용맹을 떨치는 난쟁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드워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주로 광산에 터전을 잡는댔다.


“난쟁이족은 수염이 덥수룩하댔어. 게다가 저건 전투용이 아니라 나무 베는데 쓰는 도끼잖아.”

“그러면 대체 뭔데? 저게 요정은 아닐 거 아니야.”

“혹시 악마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모두가 실루엣에 저마다의 무언가를 겹쳐보고 있을 때, 도적 두목만이 유일하게 작은 것의 도끼를 예의주시했다.

작은 것이 자세를 낮췄고, 달빛을 미끄러트린 도끼날에서 반사광이 튀었다.


탓!


발끝으로 흙바닥을 미는 소리와 함께 작은 것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가장 앞에 있는 도적의 무릎을 밟고 뛰어올라 수평으로 회전하며 도끼를 휘둘렀다.


서걱!


고깃덩이가 단칼에 썰리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달빛을 반사하던 도끼의 궤적이 붉어졌고, 튀어오른 도적의 머리에서 쏟아진 피가 마른 흙바닥을 적셨다.

의식을 잃은 몸통이 쓰러진 다음, 고동을 잃은 머리가 젖은 흙바닥에 떨어졌다.

죽기 직전에 지었던 표정이 얼굴에 굳은 채로 데굴데굴 굴러 작은 것의 발치에 닿았다.

도적의 머리를 밟은 작은 것이 후드를 벗었다.


색이 다른 두 개의 달이 바라보는 가운데 소년의 얼굴을 한 작은 것의 머리카락이 황홀하게 반짝였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두 눈동자로 도적들을 노려보며 가운뎃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뭘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어? 들어와, 쓰레기 새끼들아.”


검을 사려거든 말을 타고 반나절은 달려야하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영웅이 그곳으로 향하는 산골을 지키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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