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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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최근연재일 :
2024.11.05 02:2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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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10

작성
24.10.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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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DUMMY

<4화>



도구, 짐꾼, 지갑, 애완동물.

서포터로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듣게 되는 멸칭이며 그중 으뜸은 단언컨대 기생충이리라.

특출난 점이 없어서, 혹은 결함이 있는 인간이라 파티에 기생한다는 의미.

루멘은 후자에 속했다.

초인에 가까운 신체 능력과 훌륭한 검술을 구사할 수 있음에도 전례조차 없는 치명적인 결함 하나 때문에 서포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루멘을 존중하지 않았다.


혁혁한 공적을 세우거든 파티원을 잘 만났을 뿐이라며 폄훼당하기 일쑤였다.

당연히 약할 거라며 무작정 시비부터 걸고 보는 머저리들도 꽤 있었다.

그때마다 루멘은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했다.


“뭐 이딴 괴물 새끼가 다 있어?”

“아이템만 없으면 별것 아니라며!”

“서포터잖아! 서포터면 약한 게 정상 아니냐고!”


저따위 말을 하며 도망치는 건 양반이고, 대부분은 팔다리 하나쯤은 부러진 채로 나뒹굴었다.

며칠을 앓아눕는 경우도 심심찮았으며, 선을 심하게 넘은 일부는 반강제로 은퇴도 시켜줬었다.

파티를 넘어 길드 단위로 덤비거든 친히 해산시켜주기도 했다.

이렇듯 루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로 돌아와 몸이 작아졌다 한들 말이다.


“이 개새끼야!”


동료들을 베며 다가오는 루멘을 떨쳐내고자 도적 중 하나가 하나뿐인 램프를 던졌다.

풀에 옮겨붙기라도 하는 날에는 산불로 번지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번의 도끼질로 램프와 불을 피워올리는 심지를 양단한 루멘이 흙바닥을 박찼다.


“으아아아악!”

“사, 살려줘! 제발······!”


처절한 비명이 어두운 산길에서 메아리쳤다.

누군가의 피와 눈물을 마시며 살아온 악당들의 눈물이자 피가 쏟아졌다.


“이, 이! 미친 새끼가!”


성큼 다가온 도적이 도끼를 힘껏 내려찍었다.

덩치에 맞게 공격 범위가 길었지만 작은 몸을 이용해 기민하게 파고든 루멘이 도끼를 휘둘렀다.

도적의 양쪽 손목이 도끼를 쥔 채로 떨어져 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다리가 풀린 도적의 어깨를 밟고 도약한 루멘이 다른 도적의 목을 도끼로 쳤다.

겁에 질린 채로 굳은 머리가 떨어지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괴, 괴물이야······. 저건 악마라고!”


약한 이들에게서 빼앗은 걸로 연명해온 도적들의 눈에 서슬퍼렇게 번뜩이는 어린 루멘의 도끼는 맹수의 발톱이자 송곳니였다.

눈 깜짝할 새에 달려들어 몸을 찢고 목숨을 물어뜯는.

포식자가 되려고 숨어들어서는 진정한 포식자를 만나 두려움에 떨었다.


“바보같이 당해주지 말고 다 같이 덤벼! 괴물이든 뭐든 머릿수에는 장사 없어! 덩치도 작잖아! 찍어누르면 된다고!”

“시발, 시발, 시발! 안 당해봤다고 말 존나 쉽게 하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너나 해! 나는 못 하니까!”


도저히 범접할 수 없다.

해서도 안 된다.


극에 달한 두려움은 투지라는 불씨를 꺼트렸고, 앞을 향하던 시선을 뒤로 돌렸다.

도망치는 것만이 살길이라며 다리를 움직이는 양손이 없는 남자의 허리를 검은 그림자가 덮쳤다.

그것은 도적 두목의 대검이 그려내는 베는 것보다 치는 것에 가까운 투박한 궤적이었다.

도적 두목이 일갈했다.


“멍청한 놈들!”


깔끔히 양단되지 못한 남자의 시체가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고, 그걸 본 다른 도적들이 얼어붙었다.


“너희 눈에는 저게 악마로 보이냐? 인간이잖아, 인간! 아직 솜털도 안 난 애송이라고! 다 큰 새끼들이 애 하나 두고 뭐 하는 짓들이냐!”


가슴을 불태우는 연설도, 힘이 되는 격려도 아니었다.

감정을 배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적들의 시선이 예외 없이 루멘을 향했다.


“모양 빠지게 굴지 말고 다 같이 밀어붙여! 도망치는 새끼는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잠시간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이윽고 한 명이 고함을 지르며 내달렸다.

나머지도 줄줄이 뒤를 따르며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두목을 제외한 살아남은 도적 모두가 루멘을 향해 돌격했다.


“한심한 새끼들.”


실소한 루멘이 쇄도해오는 병장기 사이를 사뿐하게 거닐며 바짝 당겨 잡은 도끼를 가볍게 움직였다.

루멘을 꿰뚫을 기세로 뻗은 도적의 창이 넓적한 도끼 위를 미끄러져 동료의 옆구리를 찔렀다.

검은 동료의 팔을 벴고, 도끼는 발등을 찍었다.

모든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흘려내며 서로 죽이도록 유도했다.

몇 번의 쇳소리와 그보다 적은 비명이 울린 끝에 오직 루멘만이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었다.

도적 두목을 쳐다보며 루멘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너는 리드하는 쪽이냐? 당하는 쪽이냐?”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도발에 응한 도적 두목이 성난 황소처럼 돌진해왔다.


채앵!


어른의 대검과 아이의 도끼가 맞부딪혔다.

루멘은 결코 도적 두목보다 약하지 않지만 다리가 조금 뒤로 움직였다.


“예전에 용병일을 하며 너 같은 녀석들을 많이 봤다.”


도적 두목이 대검을 연신 휘둘렀다.


“어디서 조금 배웠다고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는 애송이들!”


유효한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루멘이 뒷걸음질을 쳤기에 방어하는데 급급한 거라 여겼다.


“그런 놈들 내가 전부 대갈통을 부숴줬어! 부하들에게는 네 장난질이 통했을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아니다!”


자신이 밀어붙이고 있음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루멘이 한 발짝 성큼 내디뎠다.


“용병이었다는 놈이 검도 제대로 못 휘두르니까.”


거리가 보폭만큼 가까워졌고,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내리꽂히던 대검이 도끼 위를 미끄러졌다.


“지 같은 놈들이랑 쓰레기 짓이나 하고 있지.”


찌르기를 빗겨낸 커다란 도끼가 아이의 작은 손에 의해 기이한 궤적을 그렸다.

넓적한 날붙이도, 기다란 자루도 어디 하나 유연한 부분은 없다.

꺾이기 전에 부러질 정도로 딱딱하다.

분명 그러한데 도적 두목이 본 루멘의 도끼는 무척 유연했다.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구부러지며 마치 뱀처럼 팔에 휘감겨왔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양팔이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고통은 그보다 한발 늦게 찾아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악! 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

온몸에 구더기가 들끓어서 신경을 갉아 먹는 것만 같았다.

뇌까지 저릿할 정도라 다리가 풀렸고, 기왕 자빠진 김에 몸에 들끓는 구더기를 터트려 죽이고자 미친 듯이 땅을 굴렀다.

이성을 잃고서 구르고 구르다 루멘의 발치에 닿았다.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낀 도적 두목이 피가 마르는 듯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아······.”


붉고 창백한 두 개의 달을 등진 루멘의 그림자가 길어지며 한순간 거인처럼 보였다.

부러지도록 고개를 꺾어도 감히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초월자.

그제야 왜 루멘을 두고 부하들이 악마라고 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은 도적 두목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 악마다······!”

“악마라니.”


루멘이 머리 위로 도끼를 치켜들었다.


“마왕의 목도 딴 영웅한테.”


그러고는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그때, 도끼가 그리는 깔끔한 일직선은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지는 길 같았다.

골통을 깨부수는 소리와 함께 도적 두목의 머리를 반으로 가른 도끼가 흙바닥에 박혔다.


“하아, 어떻게든 잘 끝냈네.”


회귀 후에 처음으로 겪는 살육전이고, 마을의 존망과 자신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까.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몸이 생각보다 더 잘 움직여줬기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꾸준히 행한 신체 단련과 도끼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칼리고를 패는 시간마저도 도움이 됐다.


‘이제 여기서 아침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내일부터 훈련 강도를 높이고, 칼리고도 더 열심히 패겠다.

다짐을 굳힌 루멘이 품에서 낡은 헝겊을 꺼냈다.

얼굴과 몸에 묻은 피를 대강 닦아낸 뒤, 괜찮은 나무를 골라 등을 기댔다.

그대로 쭉 미끄러져 땅에 궁둥이를 붙인 채 눈을 감았다.

긴장도 풀렸고, 무엇보다 전투의 피로가 쌓였기에 곤히 곯아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루멘! 루멘!!”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뜬 루멘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너머에서 후광처럼 아른거리는 빛은 새벽을 밀어낸 아침의 찬란함이었다.


“정신이 드니?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루멘은 대답하기에 앞서 아버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일어나자마자 머리맡에 놓인 아들의 쪽지를 보고는 놀라서 동분서주한 몸은 땅으로 흥건했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잔가지에 쓸린 상처들이 조금 누런 옷 위로 붉게 얼룩져있었다.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조금 지쳐서 자고 있었을 뿐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일어나려는 루멘의 어깨를 누르며 아버지가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쉬고 있으렴. 곧 마을 사람들도 올 테니까.”


마음 같아선 당장에 달려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들이 나쁜 것들에게 사로잡혀있을지도 모르니까.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앞서 마을을 향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고, 자기 몸조차 돌보지 않고서 헐레벌떡 뛰어왔기에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방금은 상황을 이해했다면 지금은 마음을 헤아린 루멘이 고개를 숙였다.

앞머리를 따라 드리운 그늘 아래로 번지는 희미한 웃음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괜찮다. 다 괜찮아. 너만 무사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긴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게 아버지니까.

마을 사람들이 도착하는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래?”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시체 썩은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학살의 현장을 둘러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참하게 널브러진 저 시체들이 자신들을 죽였었고, 이번에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아들이 위험하니까 도와달라는 아비의 호소에 너도나도 뛰쳐나온 마을 사람들의 손에는 무언가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괭이, 갈퀴, 식칼, 밀대, 등등.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들이었다.


‘하여간 못 말리는 사람들이라니까.’


원래라면 이곳에 없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미소한 루멘이 일어났다.

자신이 운명을 바꿔 구해낸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가 마을을 구했으니까 다들 제 사소한 부탁 좀 들어주세요.”


모든 건, 용사 등쳐먹으면서 개꿀빠는 영웅이 되기 위해.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하루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즐겁게 보내시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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