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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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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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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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6화>



“우웨에에에엑!”


칼리고가 호숫물을 토해냈다.

물이 얕게 고인 바닥을 짚고서 자기 것이 아닌 걸 뿜었다.

흠뻑 젖은 상의의 밑단을 비틀어 짜내며 루멘이 혀를 찼다.


“평소에 체력 훈련 좀 하라니까.”

“······.”


평소처럼 영문 모를 초현실적인 욕지거리를 퍼부으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칼리고는 입도 뻥긋 않았다.

그새 파래진 입술을 파르르 떨었고 눈은 그보다 더 흔들리고 있었다.


호수에 빠졌더니 거대한 물고기에게 잡아먹혔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흐르고 흐른 끝에 웬 고대 유적 같은 곳에 도달했으니 놀랄 만하다고 루멘은 생각했다.


“이런 곳에 계속 있기도 뭐하니까 일단 가자.”


정면의 통로를 제외한 다른 면은 전부 막혀있어 오로지 앞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달빛 한점 스미지 않는 폐쇄적인 공간이지만 시야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천장을 뒤덮은 이끼가 뿌려대는 포자가 스스로 빛을 내며 길을 비춰주었기에.

매끄러운 자갈로 포장된 바닥 위를 걸으며 루멘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은 양옆으로 늘어섰으나 벽화는 오로지 왼쪽 벽에만 그려져 있었다.


‘회귀 전에 왔을 때랑 똑같네.’


벽화의 처음은 금속 갑옷을 입고서 황량한 벌판 위를 달리는 병사들이었다.

성인 셋을 세로로 세운 것만큼이나 높은 벽을 가득 채운 병사들의 사이를 작은 요정들이 날고 있었다.

다섯 뼘 정도 걷자 이번에는 자기보다 큰 양날 도끼를 든 난쟁이, 드워프 전사들이 용맹을 뽐냈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키가 크고 귀가 뾰족한 엘프들이 활을 메겼고, 그 위로는 드래곤이나 그리핀 같은 신수들이 날고 있었다.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한 모두의 앞을 한 남자가 달리고 있었다.

머리에 기다란 뿔이 달린 창백한 말에 탄 남자는 노랗게 빛나는 머리 위에 왕관을 쓰고 있었다.

‘창백한 달 안에 네 개의 별이 갇힌 문양’이 새겨진 붉은 망토가 휘날렸고, 기다란 검으로는 정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정면에서 마주 달려오는 악마들을.


“너, 루멘 맞아?”


이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리인가 싶은 루멘이 뒤를 돌아보았다.

가을 들녘처럼 노란 두 눈썹사이를 좁히고서 칼리고를 마주했다.


“호숫물을 그렇게 마시고도 잠이 덜 깼냐?”

“다 알고 있으니까 시치미 떼지 마.”

“네 눈에는 내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나 보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스테······ 전투 능력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상승했으니까. 도적들이 마을로 쳐들어올 거라는 걸 미리 알고 대비한 것처럼 말이야.”


혹시 칼리고도 기적의 수혜자인 건가?

의문을 가진 루멘의 눈매가 불현듯 가늘어졌다.


생각해보면 회귀 전의 칼리고는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는 했다.

몇백 년 동안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고, 단서라고는 ‘네 개의 동화’뿐인 용사의 성물들을 ‘우연히’ 찾아냈었다.

나이아스 호수야 호수의 밑바닥에 잠든 신수가 용사 일행만 삼키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다른 곳은 과연.

루멘이 잠깐 사이를 두어 대답했다.


“말했잖아. 꿈속 스승님께서 언질을 주셨다니까?”

“꿈속 스승님은 개뿔. 시답잖은 변명으로 어물쩍 넘어갈 생각하지 마!”


방금 문답으로 루멘은 반쯤 확신했다.

칼리고가 기적의 혜택을 받았대도 시간을 거스른 것은 결코 아니며, 루멘이 회귀했다는 사실 또한 눈치채지 못했음을.

그렇지 않으면 루멘에게 본인이 맞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꿈속 스승님의 존재를 저렇게 부정하는 것도 말이 안 되니까.


‘칼리고가 연기를 하는 걸지도 모르고, 내가 잘못 짚었을 확률도 있으니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켜보기로 루멘은 마음먹었다.

한번 죽었던 자신이 20년 전으로 되돌아왔듯이, 칼리고라고 터무니없는 기적을 누리지 못하리라는 보장은 없잖은가.

하물며 칼리고는 선택받은 용사니까.


“믿든 말든 너 알아서 해.”


칼리고에게서 등 돌린 루멘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왼쪽 벽을 따라 쭉 이어진 벽화에는 낯익은 악마도, 실제로는 본 적 없는 악마도 꽤 있었다.

벽화는 최초의 용사 아슬란이 마신을 봉인하고 제국을 세우기 이전, ‘옛 왕국’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태양의 이름을 따 흐르는 세월을 헤아리는 제국과 반대로, 창백한 달 아래에서 번영한 옛 왕국.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저지른 탓에 이름마저 읽고서 옛 왕국으로 불리지만, 무수한 마법과 고도로 발달한 기술들을 남겨 지금도 세상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지옥과 대척하는 만물의 터전, 에테르니아의 모든 종족이 하나의 국가 안에서 공생했다는 기록도 있단다.


‘꿈만 같은 이야기네.’


벽을 따라 걸은 끝에 문이 한쪽만 달린 아치형 출입구를 통과하자 너른 홀이 앞에 펼쳐졌다.

바닥과 벽, 천장이 방금 지나온 통로의 벽과 같은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새하얀 벽돌 사이의 균열로 길게 자란 이끼가 빛을 발했고, 움푹하게 솟은 원형 천장에는 특이한 구멍이 나있었다.


‘창백한 달 안에 네 개의 별이 갇힌 문양.’


옛 왕국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틈새로 보이는 어둠 속에는 창백한 달도, 은은하게 빛나는 별도 없었지만.

홀의 중앙에는 큰 바위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검이 한 자루 꽂혀있었다.

절반보다 조금 적게 드러난 검신부터 검자루까지 은백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용사의 성물인 ‘수호검 이지스’였다.


“저, 저기, 검이 있어!”


이지스를 가리키는 칼리고를 보며 루멘이 한쪽 눈썹을 들었다.

희극 배우라도 된 듯 과장된 행동이 미심쩍었다.

하지만 별말 않고 바위에 새겨진 글귀를 음독했다.


“언젠가 이곳에 당도할 나의 후계자여, 내가 너에게 남긴 네 개의 성물을 모아 세상의 끝으로 와라. 기다리고 있겠다.”


마지막 문단에는 ‘아슬란이 수호검 이지스를’이라고 적혀있었다.

수호검 이지스는 최초의 용사이자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슬란이 후계자에게 남기는 안배라 말하듯.

너무도 당연하게 바위 위에 오른 칼리고가 검에 손을 뻗었다.

작고 여리나 초월자의 축복이 깃든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고서 힘껏 뽑았다.


스릉.


검집에서 나오듯 저항 없이 뽑힌 은백색 검신이 가늘게 떨렸다.

선대 용사가 남긴 검이 후대 용사의 손에 쥐어졌지만 최종적으로는 루멘의 손에 넘어갔다.

칼리고에게서 이지스를 빼앗은 루멘이 양손으로 받쳐 들고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틀림없어. 아슬란이 남긴 용사의 성물인 수호검 이지스야. 회귀 전에 봤던 것과 똑같아.’


별을 가루로 만들어 뿌려놓은 듯한 광채가 은은히 감도는 은백색 검신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매끄러웠다.

양손으로 잡고서 휘두르도록 설계되어 길지만 폭은 그리 넓지 않은 전형적인 장검.

검날은 강철 방패와 갑옷도 쉬이 찢어버릴 정도로 예리했으나, 이지스의 진가는 보다 마법적인 곳에 있다.


검에 깃든 요정의 영혼이 사용자의 힘을 증폭하고 해로운 효과로부터 보호한다.

또한 검 스스로의 의지로 카르마의 불꽃을 피워낸다.

말인즉, 카르마가 없는 루멘도 검의 힘을 빌리면 검기를 쏘거나 마법을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지스만 능숙히 다룰 수 있게 되면······.’


죽기 직전 보았던 칼리고의 검을 떠올리며 루멘이 이지스의 자루를 그러쥐었다.

반드시 회귀 전보다 강해지리라.

다른 용사의 성물도 모두 독차지하고, 모든 일을 해결한 뒤에는 칼리고를 죽여 지옥에 묻어버리리라 다짐했다.

칼리고가 이지스의 검자루를 맞잡았다.


“뭐 하자는 거냐?”

“내가 뽑았잖아. 그러니까 내가 가져야지!”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루멘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네 것은 내 것, 내 것도 내 것.

칼리고가 버릇처럼 말하던 것 중에 하나다.

온갖 것을 독식하다 못해 파티 분배금도 대부분 지가 처먹고, 그러고도 돈이 부족하면 민가를 터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누군가 항의하거든 세상을 구하는데 필요한 일이라며 개소리를 지껄이거나, 그래도 물러서지 않으면 힘으로 찍어 눌렀다.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서 죽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등쳐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성장시켜야겠지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다니겠지.’


그리고 이지스는 시발 용사 칼리고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리라.

애초에 줄 생각도 없었던 루멘이 칼리고의 배를 걷어찼다.

적당한 힘으로 밀었을 뿐인데 뇌까지 찌릿한 격통을 느낀 칼리고가 바위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지만 칼리고라면 괜찮다.

용사라서 특별해진 존재니까.


“다음엔 이 정도로 안 끝나니까 조심해라.”


차디찬 말로 거리를 둔 루멘이 금화 한 닢을 꺼냈다.

도적 두목의 현상금으로 받은 세 닢 중 하나를 검이 꽂혀있었던 균열이 넣었다.

그러고는 두 손을 모아 진심으로 기도했다.

화산 폭발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물의 요정 나이아스의 명복을.


‘위대한 희생에 영원한 안식을. 바라건대 나이아스의 마법이 세계를 위해 쓰이기를.’


누구의 것인지 모를 목소리와 함께 루멘의 머릿속에 하나의 마법진이 각인됐다.


“원은 순환. 푸른색은 속성. 원 안에 채워진 것은 세계.”


자신에게만 겨우 들릴 목소리로 중얼거린 루멘이 눈을 떴다.

마법사와 마법의 등급은 최소 1성부터 최대 9성까지.

그중 9성에 속하는 대마법 ‘다이달로스’를 손에 넣었다.

루멘은 카르마가 없지만 언젠가 수호검 이지스를 완벽히 다루게 된다면 마법의 파도로 작은 마을쯤은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부우우우우우우!


절묘하게 고래의 울음 같기도, 배의 경적 같기도 한 소리가 울렸다.

공간 자체가 고동하며 모든 틈새로 물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빠지는 일 없이 차오르기만 하는 물은 순식간에 바위 위까지 차올랐다.

헤엄쳐 올라온 칼리고가 악을 썼다.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알고 연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건지 루멘은 알 수 없었으나 시원하게 미소했다.


“글쎄다.”


이윽고 홀 가득 물이 찼고, 루멘의 미소가 물결에 일그러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물이 어디론가 빠르게 배출되며 루멘과 칼리고의 몸이 솟구쳤다.


**


“어, 어떡해? 진짜 어떡해!”


루멘과 칼리고가 호수에 빠지는 광경을 목격한 헤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이아스 호수의 유일한 나무 뒤에 숨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루멘이 칼리고를 구하기 위해 나섰으니 괜찮겠다 싶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임시 거처로 향했다.

호숫가를 빙 돌아 달리는 소녀의 손에는 상아색 로브가 들려있었다.

원래는 눈처럼 새하얬지만 오래되어 변색된 것이리라.

순례자 노인의 로브처럼.


“얘, 어딜 그렇게 뛰어가는 거니?”


처음 듣는 목소리가 헤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른이라 생각하여 헤나는 멈춰 섰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상이 적중했다.


“제 친구들이 호수에 빠져서요! 한 명은 구하려고 같이 들어간 거긴 한데 위험해서, 그래서 어른들께 도와달라······ 고······.”


마냥 다급했던 헤나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는데 몸은 반대로 차갑게 식어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주저앉은 채 말이 되지 못한 숨소리를 꺽꺽 토해낼 뿐이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충격을 받았을 뿐.


“왜에~? 왜 그렇게 벌벌 떨고 있어~? 내가 무섭니이~?”


방금까지만 해도 은은하게 미소하던 여자가 턱 아래까지 크게 벌린 입을 딱딱 부딪치며 목을 왼쪽으로 꺾었다.

딱딱한 연갈색 팔을 쭉 늘어트려 짐승처럼 땅을 짚고서 기이한 소리를 내며 헤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겁에 질린 소녀의 비명이 날카롭게 메아리쳤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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