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최근연재일 :
2024.11.05 02:2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971
추천수 :
11
글자수 :
111,510

작성
24.10.12 12:14
조회
44
추천
0
글자
11쪽

8화

DUMMY

<8화>



회귀 전, 수호검 이지스는 전혀 다른 인물의 손에 넘어가 용사 파티에게 겨눠졌던 적이 있다.


천년 넘게 이어진 제국의 시대.

역사상 아홉 번째 소드마스터.

요정 여왕 엘레오노르.


하늘을 날아다니며 검기를 흩뿌리는 엘레오노르와 따로 움직이며 온갖 마법을 쏘아대던 이지스 모습은 루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용사의 성물인데 용사가 아니어도 사용할 수 있다니.

이지스가 자기 의지로 움직이며 카르마를 내뿜을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기에 루멘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엘레오노르를 쓰러트리자마자 이지스를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칼리고의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부러진 거라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러고는 또 다른 용사의 성물인 ‘개벽검 브레이커’의 오의를 발휘해 이지스를 두 동강 내버렸다.

당시에는 왜 그런 아까운 짓을 하는지 루멘은 의문을 가졌었으나 지금은 열등감 때문이라는 걸 안다.

엘레오노르가 자기보다 이지스를 능숙히 다뤘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거지.


비록 부러져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루멘은 포기하지 않았다.

연구를 거듭했고 이지스의 구조가 ‘요정의 눈물’과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요정의 눈물은 선천적으로 카르마가 미약하지만 마법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아티팩트.

회귀 전에 애용했던 만큼 이지스 또한 잘 다룰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는데······.


“······어?”


마법이 발동되지 않았다.

강렬한 불길이 괴물을 집어삼키는 상상은 머릿속에만 머물렀고 이지스 또한 무반응이었다.

마법이 날아오는 줄 알고 주춤거렸던 괴물 나무가 씩 웃었다.


“뭐가 잘 안되나 봐아아~? 한심하네에~~?”


잠시간 동안 호되게 당해놓고선 루멘을 비웃었다.

식물조차도 가진 카르마가 없다며 무시당하다가 결국엔 서포터가 된 루멘이다.

도발 따윈 한 귀로 흘리며 괴물 나무의 뒤에서 난도질 중인 칼리고에게 외쳤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힘이 남아돌면 쓸데없는 짓 말고 일행이나 좀 챙겨!”


백번 맞는 말이라 칼리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루멘의 지시를 따랐다.

맛있고 만만한 사냥감이 다른 사냥감을 부축하는데도 괴물 나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눈을 뗀 순간 루멘의 검이 날아올 것이란 걸 직감했기에.

루멘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루멘이 움직였다.


“어딜 쥐새끼같이이이이!”


괴물 나무가 몸통을 지탱하는 네 개의 굵은 뿌리 중 하나로 땅을 세차게 디뎠다.

붉은 천이 묶인 유독 짧은 한 가닥을 제외한 모든 나뭇가지를 사용했다.

베인 나뭇가지는 회복되는 대로 다시 뻗어가며 공세를 이어갔으나 루멘에게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다.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쥐새끼 같은 게 뭔지 똑똑히 보여줄게.”


모두 뿌리치고 바짝 접근한 루멘이 괴물 나무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몸통을 베기 시작했다.

나뭇가지가 아닌 몸 자체를 움직이는 건 둔해서 루멘을 떨쳐낼 수 없다.

덜 회복된 나뭇가지라도 급한 대로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괴물 나무의 전력은 카르마가 없는 소년의 발끝에조차 미치지 못했다.


“그만! 그만!!”


고통에 몸부림쳐도 루멘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몸통의 균열은 점점 더 깊고 넓어졌고, 이윽고 다른 방향의 균열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돌며 모든 방향에 같은 높이의 상처를, 심지어는 각 방향에 낸 상처를 몇 번이고 정확히 벤 결과였다.


재능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권능에 가까운 거리 감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


뒤늦게 루멘의 의도를 깨달은 괴물 나무가 붉은 천이 묶인 유독 짧은 한 가닥을 파르르 떨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그 나뭇가지만은 결코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너는 그만하랄 때 그만했냐? 닥치고 넘어가!”


루멘이 휘두른 검이 괴물 나무의 몸통을 베었다.

지금까지 울렸던 것보다 타격음이 훨씬 경쾌했고, 바르게 양단된 괴물 나무의 반신이 땅 위로 쓰러졌다.

묵직한 진동에 발밑이 울렸지만 굉음 대신 괴성이 메아리쳤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속에 든 것을 모두 게워낼 듯한 비명이었다.

괴물 나무의 몸통을 짓밟으며 루멘이 말했다.


“역시 본체는 이건가 보네.”


붉은 천이 묶인 유독 짧은 가지를 검으로 툭툭 쳤다.

소스라치게 놀란 괴물 나무가 몸 대신 목소리를 떨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고?”


루멘이 씩 웃었다.


“뭐가 문제였는지 죽어서 열심히 고민해봐.”


창백한 달빛을 얇은 막처럼 두른 수호검 이지스가 흘렀다.

아름답도록 깔끔한 직선이 괴물 나무의 본체를 베고 지나갔다.

한 가닥은 두 가닥이 되었고, 검고 더러운 핏줄기가 솟구쳤다.

몸통이 반토막 나서도 나불거리던 괴물 나무가 이윽고 마지막 숨결을 신음했다.

더 이상 불온한 고동을 발산하지 않았으며 끝도 없이 재생하던 나뭇가지들이 죽은 뱀처럼 축 처졌다.


의심할 여지 따윈 없다.

정말로 죽은 것이다.


다리처럼 활용하던 네 개의 굵은 뿌리가 달린 괴물 나무의 밑동을 걷어차며 루멘이 말했다.


“다들 저한테 목숨 빚진 거예요.”


**


루멘은 이지스만 찾으면 헤드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조사대가 파견되는 바람에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흐음······.”


루멘과 서로 면식이 있는 조사관이 침음했다.

다른 조사관들처럼 바깥은 청색이고 안은 흰색인 복장을 차려입은 남자의 검은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나이는 회귀 전의 루멘보다 살짝 어려 보였다.


“열여덟의 도적을 참한 것이 불과 3주 전이거늘, 이번에는 나이아스 호수의 유령으로 추정되는 악마를 퇴치했다라······.”

“이번에도 포상금 있나요?”

“그건 차차 이야기하고. 사용한 무기는 이게 맞나?”


새하얀 장갑을 낀 조사관의 손에는 마모가 심한 검이 들려있었다.

루멘이 가지고 온 도적에게서 빼앗은 검이자, 칼리고가 괴물 나무를 상대로 잠깐 휘둘렀던 무기다.

그걸 들고서 괴물 나무의 시체를 난도질하였던 지난밤을 떠올리며 루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가 자세히 조사한대도 정말로 베었기에 다른 무기를 썼다는 의심을 받지는 않을 거다.


“네가 등에 메고 있는 검은 뭐지?”

“부러질까봐 한 자루 더 가져왔을 뿐이에요. 지난 사건이 끝난 뒤 도적에게서 빼앗은 무기는 헤드라에서 보관하고 있으니까요.”


침음하는 조사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보인대서 수백 년간 신수의 뱃속 유적에 있었던 이지스를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이 몇이나 되겠냐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루멘은 도적의 검집에 이지스를 집어넣은 뒤 천막으로 썼던 검은 천을 잘라 가드와 자루를 둘둘 감았다.

검집이 검신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컸기에 검이 빠지지 않게 고정되는 효과도 있었다.


“잠깐 봐도 되겠······.”

“아~ 조사관님, 그만하면 됐잖아요? 우리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얼마나 더 여기 묶여 조사받아야 하는 겁니까?”


월터의 항의에 머쓱해진 조사관이 괜히 헛기침하였다.

수프 한 그릇의 온정은 계속되었다.


“그냥 이쯤에서 끝내죠? 다들 생계가 있는데 이렇게 기약 없이 잡아두는 건 경우가 아니잖아요. 아니면 조사관님이 책임지고 보상해주실 겁니까?”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도 평소의 조사관이었다면 이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의문이란 의문은 전부 털어봤을 것이다.

월터의 뒷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혀를 찬 조사관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그 ‘꿈속 스승님’이란 존재가 네게 위험을 귀띔해준 것이냐? 그래서 먼 걸음을 한 것이고?”


루멘은 대답하지 않고 다만 의미심장하게 미소할 뿐이었다.

알아서 대답을 얻은 조사관이 부하들을 통솔하여 하산했다.

길고도 숨 막혔던 조사가 끝난 것이다.

지난 헤드라에서의 조사는 촌장이 얼마나 잘 대처해주었는지 새삼 깨달은 루멘이 손부채질을 하였다.

월터가 눈으로 웃었다.


“제대로 찍혔나 본데?”

“이것 또한 영웅의 숙명이죠.”


간단히 짐을 정리한 루멘 일행은 느긋하게 하산하였다.

도중에 없어진 순례자들이 걱정이지만, 조사관들까지 동원해도 찾을 수 없는 걸 더 걱정해서 뭐하겠는가.

헤나가 우연히 주운 로브를 언젠가 돌려줄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헤나를 구하기 위해 싸워준 것도 너무나 고마운데 마차까지 잡아주고······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마차에 타기 전, 유피가 월터를 보았다.

헤드라는 다 함께 나누는 마을이니까.

받기만 하는 호의가 고맙고, 미안하고, 끝내는 죄스럽게 느끼기까지 했다.


“귀한 수프 한 그릇과 더 귀한 목숨을 빚졌는데 이 정도면 싸게 먹히는 거죠. 제대로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울 정도예요.”

“월터 오빠, 나중에 꼭 헤드라에 와주세요.”

“그래, 꼭 갈 테니까 다시 만나자. 헤나야.”


월터가 구김살 없이 미소했다.

올려다보는 얼굴이 발그레한 것이 헤나는 월터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칼리고와도 간단히 인사를 나눈 월터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루멘을 향했다.


“너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모자랄 정도야. 정말 고마워.”

“마차 불러준 정도로 퉁 치기엔 너무 크긴 하죠.”


짓궂게 웃는 루멘을 바라보며 월터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너와는 언젠가 다시 만날 거 같아.”

“다 못 받은 목숨값은 그때 받을게요.”


이윽고 마차는 헤드라로 향하는 여행길을 떠났다.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월터의 표정이 돌변했다.

눈매는 날카로웠으며 입매까지 굳어지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옛 왕국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순례자들과 아슬란의 후계자일지도 모르는 꼬마라. 예언자들의 말도 가끔은 들을 만하네요.”


하루 중 가장 높은 하늘에 걸려있던 태양이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었다.

길어진 월터의 그림자 속에서 새빨간 두 눈이 떠올랐다.

마치 생명체처럼 꿀렁거리는 그림자가 쭉 찢어진 입을 움직였다.

입 안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빼곡하게 돋아있었다.


“옛 왕국의······ 유산······.”

“증오스러운 적······ 똑같은 냄새······.”

“죽여······ 죽여······ 죽여······!”

“다들 진정하세요. 기회라면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요.”


조금 더 밝은 곳으로 나온 월터가 고개를 들었다.

점점 붉어져가는 태양을 올려다보며 루멘 일행을 실은 마차와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월터 주위의 그림자에서 무수히 많은 붉은 눈이 떠올랐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22화 24.11.05 5 0 11쪽
21 21화 24.10.31 9 0 13쪽
20 20화 24.10.28 12 0 11쪽
19 19화 24.10.23 13 0 10쪽
18 18화 24.10.22 13 0 11쪽
17 17화 24.10.21 20 0 13쪽
16 16화 +1 24.10.20 25 0 13쪽
15 15화 24.10.19 25 0 10쪽
14 14화 24.10.18 28 0 11쪽
13 13화 24.10.17 29 1 13쪽
12 12화 24.10.16 188 1 12쪽
11 11화 24.10.15 34 0 11쪽
10 10화 24.10.14 37 0 11쪽
9 9화 24.10.13 40 1 11쪽
» 8화 24.10.12 45 0 11쪽
7 7화 24.10.11 45 0 11쪽
6 6화 24.10.10 46 1 12쪽
5 5화 24.10.09 50 1 11쪽
4 4화 24.10.08 54 2 11쪽
3 3화 24.10.07 68 2 10쪽
2 2화 24.10.07 80 1 11쪽
1 1화 24.10.07 106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