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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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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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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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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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9화>



빨간 가을을 지나, 하얀 겨울을 넘어, 노란 봄이 찾아왔다.

능선 사이로 따스한 태양이 떠오르며, 들판에도 싱그러운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은 막 피기 시작한 꽃내음을 싣고서 미성숙한 나뭇잎을 흔들었다.


“흐아아아아앗!”


칼리고가 밤비에 젖었다가 햇볕에 마르면서 갈라진 흙바닥 위를 내달렸다.

한 살 더 먹어서 자란 양손으로 목검을 쥐고서 연신 휘둘렀다.


“팔만 휘적거려서 될 거였으면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도 기사 됐겠다.”


검술이라 불리기에는 어림도 없는 휘적임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며 루멘이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공기가 터지듯 묵직한 소리와 함께 복부를 얻어맞은 칼리고의 몸이 살짝 떴다.

내장이 뒤집히는 듯했으나 이 악물고 견딘 칼리고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시끄러워!”


뒤로 도약하며 높이 치켜든 목검을 힘껏 내리쳤다.

뭉뚝하게 닳은 목검의 끝이 허공을 가르며 나름 날카로운 궤적을 새겼다.


‘역시 용사는 용사라는 건가.’


성장 속도로 미루어보아 늦어도 올해 안에는 무언가를 깨우치리라.

놀랍다 못해 가증스러운 재능이지만.


“스스로를 너무 맹신하는 거 아니냐?”


목검이 닿지 않도록 칼리고에게 밀착한 루멘의 주먹이 다시금 작렬했다.

맞은 부위는 복부인데 척추가 꺾이는 듯한 충격.

다리가 풀린 칼리고의 몸이 붕 떴다가 사정없이 땅을 굴렀다.


“상대에게 거리를 빼앗겼으면 완전히 되찾을 때까지 방어적으로 나왔어야지.”


아니면 전세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필살기를 꺼내든가.

목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겨우 일어선 칼리고가 이빨 사이로 피를 쏟았다.


“만들어진 주제에 훈수하지 마!”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지만 싸울 의지만큼은 더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루멘의 입가에 미소가 구겨졌다.

온갖 패악질을 일삼다 못해 결국엔 동료들까지 죽인 열등감이니까.

온몸에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는 걸 이성으로 억누르느라 경직된 것이었다.

필요한 일이라고는 하나 천하에 둘도 없는 미친놈을 가르치는 것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루멘이 중지를 까딱거렸다.


“들어와. 특별히 다리는 안 써줄 테니까.”


칼리고가 눈살을 확 찌푸렸다.


“지금 나 놀리냐? 개같은 짓거리는 집어치우고 똑바로 해.”

“지금 제대로 하면 너를 때려죽일지도 모르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거든. 너 같은 쓰레기도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똑바로 살아.”


마왕을 쓰러트렸던 용사든, 천하에 둘도 없는 미친놈이든.

지금은 아홉 살 먹은 꼬맹이일 뿐.


“만들어진 새끼 주제에 염병하네!”


금세 평정심을 잃고 달려들어서는 목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침착하지 않기에 흔들렸으며, 불안정하기에 날카롭지 않은 궤적이 허공을 휘저었다.

보다 못한 루멘이 한숨을 내쉬었다.

옆구리를 향해 쇄도해오는 목검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아채며 말했다.


“그렇게나 말해줬는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네. 재능이 없기로서니 머리까지 멍청해서 서포터로도 못 써먹겠네.”

“입 닥치라고!”


열이 머리끝까지 뻗친 칼리고가 시뻘게진 얼굴로 온몸, 특히 팔에 힘을 실었다.

루멘을 힘으로 밀어낼 심산이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지루한 듯 하품까지 하는 루멘을 보며 목검을 놓은 칼리고가 제자리서 반 바퀴 돌았다.

뒤꿈치가 기울어진 몸을 따라 머리 높이까지 올라왔다가 루멘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카롭게 휘었다.

장난감에 눈이 멀어 등록한 태권도장에서 검빨간띠까지 땄었던 전생의 저력이 담긴 뒤돌려차기였다.

목검을 쥔 채로 오른손을 움직여 막은 루멘이 휘파람을 불었다.


“방금 건 꽤 괜찮았어. 마지막으로 기회 줄 테니까 목검 들고 침착하게 해봐.”


말하면서 칼리고를 밀친 루멘이 목검을 가볍게 던졌다.

헐레벌떡 뛰어가 목검을 도로 주운 칼리고가 먼발치에서 루멘을 노려보았다.

호흡을 고르며 목검을 중단세로 잡았다.


“흡!”


이윽고 땅을 박차며 거리를 좁혀온 칼리고의 목검이 허공에서 초승달처럼 구부러졌다.

움직임이 단순해서 훤히 보일 정도였지만 검격을 흉내 내는 목검은 솔직한 만큼 올곧은 궤적을 그렸다.

루멘이 어깨를 살짝 틀어 가볍게 피하자, 순간적으로 뒷발 끝으로 땅을 밀며 회전했다.

단순한 내려찍기가 방향을 틀며 휘두르기가 되었다.


‘이 자식 봐라?’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서는 피할 수 없는 각도로 좁혀오는 목검.

검신을 손등으로 슬쩍 밀어 흘려낸 루멘의 입매가 옅게 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칼리고는 기억 속 루멘의 움직임을 어설프게나마 모방하며 자신의 거리를 최대한 지켰다.

다음 수까지 고려하는 노련함은 없었지만 공격이 끊기지 않도록.

궤적이 계속 이어지도록 온몸을 비틀어가며 목검을 끊임없이 뻗기도 했다.


후웅!


그렇게 다다른 대망의 열세 번째 합.

허공을 반듯하게 가른 칼리고의 목검이 마침내 바람을 일으켰다.

나뭇잎을 떨어트리는 돌풍이나, 주변을 휩쓰는 폭풍은 아니었지만 강렬하게 확산하며 성취를 뽐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에 놀라 굳은 칼리고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눕히며 루멘이 건조하게 말했다.


“오늘치 수업료는 나중에 금화 100만 닢으로 갚아라.”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도적 사건 이후로 마을은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성인들이 세 명씩 짝을 이뤄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는 규칙이 생겼다.

밤중에도 안일하게 활짝 열어두었던 문을 닫는 습관이 생겼으며, 무기를 구비해두는 집도 심심찮게 보였다.

지금까지는 너무 늦지 않게만 돌아오라던 부모들이 외출 금지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새로운 주민이 생겼다.


“루멘, 칼리고! 요 말썽꾸러기 녀석들.”


듬성듬성한 턱수염이 굵은 심처럼 돋고, 뒷머리를 새의 꽁무니에 붙은 깃처럼 묶은 남자가 루멘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청년이라기에는 성숙하고, 중년이라기엔 앳된 남자는 스스로를 떠돌이 마법사라고 칭했다.

그리도 반가운 것인지 칼리고가 아픈 것조차 잊고서 벌떡 일어섰다.

흙 묻은 손으로 코피를 쓱쓱 닦으며 말했다.


“하벤!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마을에 닥쳐올지 모른다.

나날이 증폭된 마을 사람들의 불안은 떠돌이 마법사를 마을에 정착시켰다.

시골 마을의 변변찮은 형편에 맞춰주는 경비병이나 용병은 없으니까.

도시까지 나가서 번번이 죽 쑤던 그때 하벤이 선뜻 나서주었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살아가는데 중요한 계약 조건을 내걸고.


“루멘을 데리러 왔어. 아저씨가 저녁 식사에 초대해주셨거든.”

“아······.”


활짝 웃는 하벤과 다르게 칼리고의 표정은 그저 시무룩했다.

지금 하벤에게 그러듯 칼리고가 유독 따르던 인물들이 회귀 전에도 있었다.

‘최애’라는 특이하고 영문 모를 호칭을 써가며 극진히도 아끼고 내숭을 떨어댔다.

흥분하면 자기 엄마한테도 만들어졌다느니 되먹지 못한 소리를 지껄이는 희대의 패륜아가 말이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쭈뼛대던 칼리고가 자존심을 내려놓고 물었다.


“나, 나도 같이 가도 돼?”

“안 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서운한 칼리고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한쪽 눈만 뜨고서 반응을 슬쩍 살핀 루멘이 한숨처럼 말했다.


“네 입만 입이냐? 가서 너희 어머니 모시고 와.”

“응? 어, 어! 알았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하벤이랑 기다리고 있어!”


서쪽 지평선 너머로 녹아가는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칼리고를 눈으로 배웅하며 하벤이 흐뭇하게 웃었다.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긴 해도 역시 애는 애네. 귀여워.”


속지 마.

저 새끼는 그레이트 십새끼니까.


**


도적의 습격 이후 루멘 일가도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나무를 구하려거든 꼼짝없이 산을 오르게 되었지만 루멘의 아버지는 오히려 잘됐다며 기껍게 받아들였다.

생업 때문이라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산에 살게 하는 게 언제나 마음에 걸렸었으니까.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들어요.”


졸지에 칼리고 일가까지 함께하게 됐지만 루멘네의 식탁은 거뜬히 받아들여 주었다.

집도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고, 가구다운 가구도 들여놓았다.

빗살무늬가 새겨진 벽장은 촌장과 루멘네에서만 볼 수 있는 나름의 사치품이었다.

헤드라에서는 말이다.


루멘이 도적떼와 나이아스 호수의 유령을 처치하고 받은 포상금은 크게 보면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나무꾼의 삶을 조금이나마 윤택하게 바꾸기엔 충분한 금액이었다.


“차린 게 없다니요! 이렇게나 진수성찬인데.”


한 상 가득 차려진 따끈따끈한 음식들을 보며 하벤이 입맛을 다셨다.

칼리고와 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헤드라는 보리를 쪄서 만든 퍽퍽한 검은빵을 끓인 양젖에 적셔 먹는 게 고작이니까.

속살이 새하얀 빵과 발라먹는 치즈, 우유를 넣어 끓인 수프는 신문물이나 다름없었다.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요.”


칼리고의 어머니가 식탁 위에 움푹한 나무 그릇을 내놨다.

각종 향신료를 섞어 빨간 양념을 절인 배추에 버무려 만드는 음식이 수북하게 담겨있었다.

매콤 새콤한 맛과 아삭한 식감으로 헤드라의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 음식을 칼리고는 김치라고 불렀다.

직접 개발한 것이냐는 질문에 칼리고가 답하길.


“백의를 즐겨 입었던 동방예의지국의 얼과 역사가 담긴 레시피야.”


다른 세계에 사는 주민들에겐 어느 나라를 말하는 건가 싶지만 어쨌든.

배추도 향신료도 귀해 원 없이 만들 수 없는 게 천추의 한이다.

정작 조리법을 제공한 칼리고 본인은 불만족스러운 듯했지만.

역시나 깨작거리는 칼리고를 보며 루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앞으로 11년 후······.’


지옥의 군대를 이끌고 침공해온 마왕 팬데믹에 의해 에테르니아는 쑥대밭이 된다.

악마들의 발소리가 지진처럼 울리며 대지가 신음했다.

세상 곳곳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으며, 시뻘건 화마가 소중한 것들을 집어삼켰다.

많은 종족이 터전을 잃고서 세상을 떠돌았다.

살아남은 국가는 남녀노소는 물론 난민마저도 가리지 않고 징집했다.

5년간 자나 깨나 오로지 전쟁뿐이었던 에테르니아는 지옥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끔찍한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쪽에서 먼저 지옥을 쳐야 해.’


그걸 위해선 여러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칼리고의 역할이 중요하다.

5년의 항쟁 끝에 마왕을 세상에서 몰아낸 것도.

그 뒤로 4년간 추격한 끝에 마왕을 토벌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칼리고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으니까.


‘역시 칼리고를 회귀 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키울 필요가 있겠어.’


칼리고는 강해질수록 제어하기 힘들어질 테지만 괜찮다.

용사의 성물을 소유하게 두지 않을 거니까.

이번엔 다르다.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고서 기연도 공적도 전부 독차지해주겠어.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죽인다.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지옥의 펄펄 끓는 용암에 던져버린다.

노잣돈으로 마왕과 싸우다 전사한 용사 정도의 칭호는 내어주리라.

루멘이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편지를 꺼냈다.

모서리에는 유명한 귀족 가문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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