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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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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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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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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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12화>



청소하던 아낙네가 빗자루로 두들겨 잡았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임프라는 녀석들은 악마 중에서도 취급이 좋지 않다.

다섯 살배기도 잡겠다며 설칠 정도.

하지만 전장에서 마주친 임프는 세간의 인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무 사이를 드나들며 화염구를 날려대는 녀석들은 끔찍하게도 성가셨다.

단거리 순간이동을 하는 녀석들을 잡으려면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하거늘, 저지대 숲의 지형적 특성은 말이 마음껏 달리게 두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궁병에게 자연스레 의존하게 됐다.


“궁병 앞으로! 보병들은 궁병들을 보조해라!”


그러나 카르마가 실리지 않은 화살은 임프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제아무리 제대로 조준하고 시위를 힘껏 당겨도 번번이 요격됐다.

임프의 화염구는 사람은커녕 나무 방패조차도 태우기 힘들 정도로 미력하지만 숲에서는 작은 불씨도 큰 화재로 번지기 마련.

불은 인간 진영에 보다 위협적이기에 병사 중 일부가 소화 작업에 동원됐다.

불씨를 밟아 꺼트리거나, 검 대신 허리춤에 찬 물주머니를 풀어헤쳤다.

그러고도 부족하면 물이 가득 담긴 오크통을 짊어진 세 명의 병사에게로 향했다.


“키륵키륵!”

“큭큭!”


저들만의 언어로 의사를 주고받은 임프가 오크통을 가리켰다.

임프 세 마리가 손을 모으는가 싶더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기둥을 쏘아냈다.

혜성처럼 긴 꼬리를 허공에 남기며 포물선을 그린 불기둥이 오크통을 덮쳤다.

오크통이 터지며 물이 땅에 쏟아졌다.

병사들에게 짓밟히며 구겨진 풀에 한순간 생기가 돌았다.


“후방에 화재 발생! 후방에 화재 발생!”

“불을 끄는데 쓸 물이 더는 없습니다!”


진지에 숨은 학센을 대신해 지휘권을 넘겨받은 기사가 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화재가 더 커지기 전에 피해를 감수하고 퇴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진격해 흉물스러운 악마들을 몰아내야 하는가?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부우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을 쫓아냈다.

본래는 하나였으나 둘로 나뉜 무리의 발소리가 숲을 전율시켰다.

그들이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낼 적에 한 병사가 겁에 질려 외쳤다.


“오, 오크다!!!”


죄를 지은 인간이 오크로 환생한다는 미신이 있다.

신빙성을 더해주듯 두 다리로 달리는 그들은 양손에 무기를 쥐고 있었다.

몸에 음영이 질 정도로 엄청난 근육질임과 동시에 그들의 녹색 피부는 숲의 녹음에 녹아있었다.

사냥감에게 달려드는 맹수처럼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병사들의 몸뚱이를 쥐어뜯었다.

야만 전사처럼 도끼를 휘두르며, 아랫송곳니가 인중까지 돋아난 턱을 벌리고서 용맹하게 포효했다.


“우측에 급습! 지원, 지원!”

“지원은 무슨 지원! 좌측에도 오크가 밀고 들어오고 있다고!”


오크의 가세로 인간 측의 진형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흩어져 협동이라는 가장 큰 무기를 봉쇄당한 인간 병사들은 악마들에게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다.

토끼보다도 손쉬운 사냥감.

곳곳에서 울리는 병사와 용병들의 비명을 들으며 기사가 이를 악물었다.


‘후방의 불길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고, 양 측면에서는 오크들이, 그렇다고 전방으로 나가자니 임프가 걱정이야.’


학센은 물러서지 말라 명했지만 기사는 자의적 판단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퇴각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울렸고, 다들 불길을 향해 달렸다.

적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그리고 사냥꾼의 진가는 등을 돌린 사냥감을 추격할 때 가장 드러난다.


“인간들을 몰아라!”


오크들의 포위망의 양옆에서 빠르게 좁혀왔다.

인간들은 맞서길 포기한 만큼 쉽게 휘둘렸고, 또 허무하게 쓰러졌다.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임프들까지 대놓고 달려들 정도였다.

이대로는 전멸을 면치 못한다.

지휘권을 넘겨받은 기사가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추격해오는 오크들을 향해 돌진하며 외쳤다.


“나는 로스우드 가문을 모시는 기사, 험벨튼이다!”


험벨튼은 오른손으로 잡은 검을 용맹하게 내리치며 오크의 머리통을 쪼갰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째에서는 검이 도끼와 얽혔고, 다른 오크가 몸을 던져오는 바람에 그만 낙마하고 말았다.


“크윽······ 흉물스러운 악마놈들! 내가 지키는 한 너희는 이 앞으로 갈 수 없다!”


악마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지만 험벨튼은 물러서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를 태워 내재된 힘을 끌어올렸다.

건틀릿을 낀 손이 쓱 훑자 늘씬한 검신에 희미한 빛이 맺혔다.

카르마였다.


“살려는 마음은 버렸다! 조금이라도 길게 너희의 발목을 붙잡고, 한 놈이라도 더 길동무로 삼아주마!”


미약한 수준이었지만 카르마를 두른 검은 방금과는 다른 위력을 냈다.

카르마를 개방하며 신체 능력 또한 상승했기에 오크를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1대 1이라면 말이다.

사방에서 짓쳐들어오는 도끼날에 판금 갑옷은 너덜거렸고, 벌어진 틈으로는 피와 내장이 흘러내렸다.

얼마 못 버티고 무릎을 꿇은 험벨튼의 머리를 한 오크가 거칠게 잡았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혼자는 약하다. 네가 죽는 이유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후회하나, 인간 기사?”

“후회? 당연히 되지.”


찢어진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탓에 왼쪽 눈을 감고서 험벨튼이 짙게 웃었다.


“더 열심히 훈련했다면,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엄격했다면 한 놈이라도 더 길동무로 삼을 수 있었을 텐데.”

“건방진 소리를 하는군. 후회 속에 죽어─.”

“시끄러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뭉개진 오크의 몸이 날았다.

머리가 잡혀있었던지라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험벨튼은 상황을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오크의 단말마를 들으며 땅에 처박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땅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오크의 사이를 누비는 소년을.

소년의 팔처럼 움직이며 오크들을 베는 검이 그리는 자유로운 궤적을.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소년이 쓰는 검은 결코 명검이 아니었다.

병사들이 쓰는 보급용 장검이다.

품질이 떨어지는데도 말의 목마저 단칼에 베는 도끼를 미끄러트리거나 맞받아쳤다.

오크의 두꺼운 살가죽을 찢고 근육을 끊었다.

목을 단칼에 떨어트렸다.


“저거 잡아!”

“인간 꼬마 너무 재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오크들은 물론 임프까지 전부 루멘의 꽁무니만 따라다녔다.

험벨튼에게 신경 쓰는 악마는 없었기에 이대로 도망쳐도 좋고, 루멘에게 가세해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험벨튼은 행동하지 않았다.

땅에 엎드린 채 입을 단정치 못하게 벌릴 뿐이었다.


“팔자 참 좋네. 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오크들의 어깨와 머리를 밟고서 날아온 루멘이 험벨튼을 번쩍 들어올렸다.

상식 밖의 움직임은 물론 괴력까지.

어린아이 이전에 인간은 맞나 험벨튼은 의구심이 들었다.

인간과 인외종 사이의 혼혈은 의외로 흔히 볼 수 있으니까.


“하벤!”


이제는 벽처럼 높이 치솟은 불길을 향해 달리며 루멘이 외쳤다.

건너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벤이 윗도리 안에서 동전만 한 울금색 보석이 장식된 목걸이를 꺼냈다.

울금색 보석의 이름은 ‘요정의 눈물’이었다.

루멘이 회귀 전에 애용했었던 카르마가 없는 루멘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아티팩트.

때마침 불길을 뚫고 나온 루멘의 눈동자가 커지며 요정의 눈물의 형태를 온전히 담았다.


“원은 순환. 안에 채워진 것은 세상. 영혼을 불살라 구현하려는 것은 오래된 기적.”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린 하벤이 요정의 눈물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요정의 눈물이 화답하듯 카르마를 방출했다.

샛노랗던 카르마는 하벤이 머릿속으로 그린 마법진과 같이 푸르게 변해갔으며, 원 안에 채워진 정보를 받아들여 성질을 변화시켰다.

연결된 정신으로부터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느낀 하벤이 오른손을 뻗었다.


“프리즈.”


마법이란 나의 영혼을 태워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

방금까지 앞을 가로막던 불길은 온데간데없이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벽이 세워졌다.

루멘이 불길을 통과한 직후였기에 추격하던 악마들만 앞이 가로막혀선 깨지도 못할 것을 두드렸다.


“아이고 머리야······.”


옆머리를 짚은 하벤이 털썩 주저앉았다.

요정의 눈물, 정확히는 요정의 눈물 안에 잠든 요정의 카르마를 사용한 대가로 정신적 피로를 느꼈다.


“당신들은 대체······.”


보고도 믿지 못하는 험벨튼의 턱이 바르르 떨렸다.

전장 한복판에서 수많은 오크를 베고 기사를 구출한 아홉 살 소년.

그리고 요정의 눈물이라는 귀한 아티팩트를 소지한 떠돌이 마법사.

적어도 로마드에서만큼은 규격 외 전력이었다.


“궁금한 게 많겠지만 차차 이야기하자고요, 기사 양반. 저거 생각보다 오래 못 가니까.”


하벤이 힘없이 웃으며 얼음벽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험벨튼은 하벤의 부축을 받아 루멘과 함께 진지로 복귀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학센의 고함이 훅 들어왔다.


“도망치지 말라고 명했다! 끝까지 돌격하라고, 내가 분명 그렇게 지시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낯짝으로 패잔병 같은 꼴을 하고서 돌아온 것이냐! 너희 목숨보다 승리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퇴각하지 않았으면 몇 명 빼고 전멸했을 것이오. 지휘관은 진정으로 그걸 바라는 것이오?”


고개를 홱 돌린 학센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벌게져서는 콧바람을 뿜는 얼굴을 들이대며 험벨튼의 정강이를 찼다.


“내가, 내가! 내가 승리를 가져오라고 했잖아! 악마들한테 두들겨 맞고 기사 둘을 잃어서 돌아오라고 한 게 아니잖아! 제대로 지휘해줬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전에 싸웠을 때보다 오크가 더 증원돼서 어쩔 수 없었소. 이조차도 뛰어난 소수가 목숨을 걸고 활약해준 덕에 피해를 최소화한 결과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몇 개월이 지나도록 결착조차 내지 못한데다가 이제 남은 기사라고는 너와 나 둘뿐인데. 이걸 어떻게 보고하면 좋냐는 말이다!”

“보고? 사람이 전장에서 죽었는데 보고할 것을 걱정한단 말이오?”


발끈한 험벨튼이 학센의 멱살을 양손으로 틀어쥐었다.


“지금까지 참았소. 로스우드에서 정한 지휘관이니까 잘못됐다는 걸 알고도 못 본 척했소. 아이를 때렸을 때도! 내 명예를 죽이면서까지 인내했소! 하지만 더는 못 참겠소.”

“못 참으면? 못 참으면 어쩔 건데? 응? 네까짓 게 어쩔 거냐고!”


나름의 반격이랍시고 학센이 험벨튼의 얼굴을 쳤다.

기사라고는 믿기지 않는 형편없는 주먹이었다.


“당신은 사람의 목숨보다 당신의 명예가 중요하오? 보고서에 적을 몇 줄이 두려워 수십에서 수백의 사람을 희생시켜야겠소?”


험벨튼이 사자후를 질렀다.


“그쯤하고 로스우드에 지원을 요청하시오! 아니, 그냥 포기하고 귀환하는 게 낫겠소! 당신 같은 인간이 지휘관으로 있는 이상 우리는 절대로 승리하지 못할 테니!”

“이, 이······! 평기사 따위가 감히 지휘관인 나를! 명예로운 깃발을 받은 나를 가르치려는 것이냐!”


화를 주체하지 못한 학센이 기어코 검을 뽑아 들었다.


“전장에서 지휘관의 명령은 절대적! 명령을 어긴 평기사 험벨튼을 지휘관의 권한으로 즉결처분하겠다!”

“산체스로 돌아가거든 나 스스로 로스우드의 심판대에 서겠소! 그러니─.”


검을 내리치려는 학센의 팔을 붙잡은 험벨튼이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겼다.

고된 훈련으로 단련된 기사의 무릎이 학센의 복부를 강타했다.

등이 살짝 구부러지는가 싶더니 학센의 두 눈이 까뒤집혔다.


“화끈하네.”


루멘이 휘파람을 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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