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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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최근연재일 :
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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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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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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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DUMMY

<18화>


지하 경매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은 다양하나 루멘 일행에게는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지하 투기장.

지하 투기장의 챔피언이 되면 특별 자격으로 일행과 함께 지하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단다.

그래서 루멘은 지하 수로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투기장을 찾았고 참가자 명단에 칼리고를 넣었다.

하벤이 반발했다.


“너 제정신이야? 왜 애를 사지로 몰아!”


그리고 칼리고는 ‘시발’로 시작해서 ‘개새끼야’로 끝나는 폭언을 장장 5분에 걸쳐 쏟아냈다.

경이롭다 못해 혀가 구정물로 이루어진 건가 싶었지만 루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회귀 전에는 더한 폭언도 많이 들었으니까.


“예쁜 자식은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에게는 치즈 한 조각 더 준다는 말도 있잖아.”

“내가 예쁜 자식이다 뭐 그런 거냐?”

“아니. 너는 좆같은 자식이야. 뒤지기 싫으면 시키는 대로 해.”


지하 투기장의 방식은 최종 승자를 가리기 위해 승자끼리만 1대1로 계속해서 맞붙는 승자전이었다.

참가자가 많아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해선 여덟 번의 승리를 쟁취해야만 했다.

지하 투기장답게 매 경기 승자를 예측해 돈을 걸 수도 있었다.


대망의 세 번째 경기.

루멘은 가져온 돈 전부를 칼리고에게 걸었다.

로마드에서 용병과 병사들에게 받아내고, 로스우드 가문에서 지급해준 포상금의 일부였다.


“이어지는 세 번째 경기! 참여 경험 다수, 결승 무대까지 밟아본 검증된 강자! 강철 주먹 라곤!”


다수의 환호를 받으며 건장한 중년인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이에 맞서는 선수는 무려! 역대 참가자 중 최연소!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무려 흑곰 용병단의 추천서를 받은 몸이니! 검은 머리 칼리고!”


이어서 라곤과는 다른 출입구로 입장한 칼리고에게는 야유가 쏟아졌다.

목숨을 건 대결이 우습냐며 진지하게 화를 내는 부류도.

배당이 망했다며 한탄하는 부류도.

공짜로 돈 벌게 해줘서 고맙다며 조롱하는 부류도 전부 나이와 몸집만 보고 칼리고를 무시했다.

상대 선수도 다르지 않았다.


“어미가 빚 때문에 팔려나가기라도 한 것이냐? 이유야 어쨌든 어리다고 봐줄 생각은 없으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지하 투기장은 2층 구조였고, 경기장은 관객석인 2층의 아래 1층이었다.

면적은 나이 사십 먹은 격투가에게 꽤 넓었고, 아홉 살 꼬마에게는 훨씬 넓었다.

아이가 더 넓게 쓸 수 있음에도 다들 경기장 안은 중년인의 영역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벤조차도 칼리고가 이길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루멘만이 유일하게 칼리고의 승리를 장담했다.

칼리고의 능력을, 폭력이란 강압적인 수단으로 빚어낸 그의 재능을 믿었다.

눈을 계속 칼리고에게 둔 채 루멘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자는 하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걱정하지 말고 지켜 봐. 겨우 이런 곳에서 잘못될 녀석이 아니니까.”


그리고 신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루멘에게서 빌린 문장이 새겨진 폼멜을 검은 천으로 감싼 로스우드의 검을 모로 잡은 칼리고가 눈을 굴렸다.

시야의 왼쪽 모퉁이에 빛으로 이루어진 작은 단어들이 아른거렸다.


침묵의 봉인 사슬(발동 중)

사자의 심장

운명의 찬탈자

흉내쟁이의 가면


칼리고만 볼 수 있는 그것들은 스킬이라 불리는 권능의 일종이었다.

다른 세계의 주민인 칼리고가 조금이라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칼리고만을 위해 설계된 힘이었다.


스킬 사용을 잠깐 고민했으나 아끼기로 마음먹은 칼리고가 먼저 움직였다.

황토가 곱게 깔린 바닥 위를 박차며 검을 뻗었다.

칼리고는 이 세계 자체를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기에 상대의 목을 망설임 없이 노렸다.

그에게 살인은 살인이 아니니까.


“윽!”


어깨를 베인 라곤이 인상을 썼다.

피한다고 피했는데 칼리고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훨씬 빨라 반응이 늦었다.

그래도 못 잡을 정도는 아니라며 분주하게 손을 뻗는데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상대보다 반 박자 정도 빠르게 움직이며 거리의 간극을 메운 칼리고가 검을 짧게 끊어쳤다.

이어짐이 없는 검 위로 발광석의 불빛이 수차례 튀었다.


“으으윽······.”


하나 같이 깊지는 않았으나 일방적으로 당하는 만큼 라곤의 움직임이 크게 경직되었다.

생각한 것보다 발을 좁게 뻗은 라곤이 한순간 휘청였다.

그 틈을 노려 등 뒤로 돈 칼리고의 검이 날카롭게 떨어졌다.


“끄아아아악!”


발뒤꿈치에 붙은 힘줄을 베인 라돈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한쪽 발의 기능이 상실되었기에 승부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칼리고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한 만들어진 것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검을 높이 들어 라돈의 목을 쳤다.

죄인을 처형하듯 단칼에 잘랐다.


“어······ 어어······.”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는 라돈의 휑해진 목 위, 혹은 바닥을 구르는 머리를 보며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루멘과 다른 의미로 특이하다는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규모가 작지만 전쟁도 겪었으니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망설임이 없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승부가 났는데도 구태여 상대의 목을 치는 행위만큼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덕보다 더 큰, 원초적인 무언가가 결여된 듯한 칼리고의 모습에 하벤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을 잃은 라돈의 머리를 번쩍 들어올리며 칼리고가 외쳤다.


“그 거지 같은 눈 똑바로 뜨고 봐, 만들어진 새끼들아! 이게 너희와 나의 근본적인 차이니까!”


관중, 그리고 다음에 상대하게 될 선수들에 대한 경고였다.

심기를 거스르면 죽이겠다는 협박이기도 했다.


대결 중에 목숨을 잃는 경우 자체는 흔하니 경기는 그 뒤로도 계속됐다.

도박으로 재미를 쏠쏠하게 본 루멘의 가죽 주머니는 백금화로 두둑했다.

가치를 환산하면 10만 골드 정도는 되었다.

이번에도 전부 칼리고에게 걸며 루멘이 흡족하게 웃었다.


“배당률 미쳤네. 이번에도 따면 황도에 저택도 짓겠는데.”

“딸 수 있다면 말이지.”


대화를 나누던 루멘과 하벤의 시선이 동시에 경기장을 향했다.

곧 결승전이 시작되는 경기장 안에 홀로 서 있는 남자는 지금까지 보았던 참가자들과 조금 달랐다.

단련된 신체나 종족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카르마를 개방하고 미숙하게나마 다루면서 발산되는 초감각적인 아우라가 있었다.

루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신체 강화 조금 하는 정돈데 뭘.”

“칼리고는 그 조금조차 못하잖아.”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너는 논외지! 쟤가 너랑 같냐?”

“그러면 보험 좀 들어둘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맡긴 줄 알겠다, 이 말썽꾸러기 녀석아.”


한숨을 내쉰 하벤이 윗도리 안으로 손을 넣었다.

울금색 호박석이 달린 목걸이, ‘요정의 눈물’을 꺼내 뻔뻔하게 내민 루멘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들키지 않게 적당히······ 와우.”


끝에 창백한 빛을 매달고서 검신 위를 미끄러지는 루멘의 검지를 보며 하벤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휘어지는 듯한 움직임은 새하얀 검신 위에 룬어를 새겼고, 로스우드의 검에 ‘날카로움 3단계’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사물에 효과를 부여하는 마법.


“여기서 인챈트를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힐도 그렇고 너 무슨 서포터라도 될 생각이야?”

“서포터는 나보다 칼리고에게 어울리지.”


칼리고에게 로스우드의 검을 건네며 루멘이 말했다.


“마법으로 절삭력을 강화했어. 효과는 300초 정도 지속되니까 빨리 끝내겠다고 괜히 무리하지 말고 상대의 움직임을 잘 봐. 날만 들어가면 팔다리 정도는 순식간에 자를 수 있을 테니까.”

“강화한 이 검보다 다른 검이 훨씬 좋아보이는데.”


칼리고가 루멘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검은 천으로 감싼 이지스의 칼자루를 힐끗거렸다.


“뭐? 빌려달라고?”

“엄밀히 따지면 내 검이잖아.”

“개소리하네. 정신 교육 맛 좀 볼래?”

“······개 같은 새끼.”


이 치욕은 상대에게 풀겠다.

난간을 뛰어넘어 1층 경기장에 입장한 칼리고가 상대를 마주했다.


“대망의 결승전! 무려 6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우리의 챔피언! 말이 필요 없는 최강의 살인 전차, 라온!”


어느 때보다 큰 함성이 관객석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챔피언에게 맞서는 도전자! 어리다고 무시하는 놈들은 친히 목을 베어줬다! 검은 단두대, 칼리고!”


칼리고 또한 많은 관객에게 호응받았다.

야유나 받던 처음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린 나이에 이런 곳에서 피를 흘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나에게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제국인 꼬마.”


라온은 건틀릿에 긴 칼을 단 ‘파타’라는 무기를 사용했다.

바다 건너에 있는 바나타라는 작음 섬에 사는 소수민족의 전통 무기다.

구리빛 피부나 뒷머리만 길게 남겨 땋은 걸 보면 바나타에서 온 것이 확실했지만 조금 다른 점도 있었다.

바나타의 전사들은 파타를 양손에 착용하고서 저돌적인 쌍검술을 펼치는데, 라온은 왼손에 큰 원형 방패를 들고 있었다.


“어쩌라고 만들어진 야만인아!”


선공을 취한 것은 칼리고였다.

무작정 돌진하며 인챈트로 강화된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움 3단계’가 방패를 가를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냅다 들이받았다.

지금까지의 상대가 너무나도 약했기에.

루멘의 조언을 무시했지만 명백한 착오였다.


“오만하구나!”


성난 황소처럼 돌격해오는 라온의 방패에 부딪힌 탓에 균형을 잃은 칼리고가 비틀거렸다.

라온은 즉시 방패를 옆으로 살짝 치우며 오른손을 짧게 뻗었다.

건틀릿에 달린 긴 칼날이 칼리고의 옆구리를 찢었다.

루멘과의 정신 교육 겸 훈련이 없었더라면 방금 일격에 명치가 꿰뚫렸으리라.

간신히 반응한 칼리고가 베인 옆구리를 왼손으로 감싼 채 물러섰다.


“아직 멀었다, 제국인 꼬마!”


그리고 라온은 승기를 잡으면 몰아칠 줄 아는 전사였다.

힘이나 속도, 기술과 노련함은 루멘에 비할 수 없었지만 그게 칼리고가 깔봐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시발······.”


잠시간 동안 호되게도 당한 칼리고가 숨을 헐떡였다.

여기저기 베여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어떻게든 라온과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했다.

하벤의 걱정과 시키는 대로 좀 하라는 루멘의 일갈이 들려왔지만 칼리고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건방진 소수민족의 콧대를 납작하게 짓뭉개주고자 스킬을 발동했다.

그러자 칼리고의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가 울렸다.


[흉내쟁이의 가면을 발동합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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