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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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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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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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8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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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20화>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이 악마에게 있는 마법과는 달리, 연금술은 마법을 참고해 인간이 개발해낸 기술이다.

물체를 합성하고 성질을 변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신과의 합일을 통해 창조의 영역까지 넘보는.

지금은 대부분의 기록이 소실되어 재현이 불가한 연금술이 존재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저 이니시에르다.


“2만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니시에르의 형태는 일반적인 깃펜과 동일하나 구성이 전혀 달랐다.

창백한 펜대와 촉은 물론이요, 끄트머리에 새의 날개처럼 붙은 연보랏빛 보석은 지옥에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연금술로 합성한 보석이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했다.


“21번 4만 골드!”

“34번 5만 골드!”

“50번은 6만 골드요!”


경매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수집욕에 눈이 멀어 충동적으로 내놓는 거금이 아니었다.

이니시에르로 새긴 인챈트는 효과가 반영구적으로 지속되니까.

자기가 생각하는 적당한 가격을 부르는 거였다.


‘저 중에서 인챈트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지하 투기장에서 하벤이 넌지시 말했듯, 인챈트는 보조 마법 중에서도 고급 기술에 속하니까.

서포터에 큰 뜻을 둔 게 아니라면 굳이 익히지는 않는다.

마법은 지식과 상상력을 깨달음으로 빚어 구현시키는 것이니까.

한계가 있는 머리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픈 게 당연한 마음이다.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서는 100명의 아군을 치유하고 돕는 것보다 적장 하나의 목을 따오는 걸 훨씬 높이 쳐주니까.


“3번! 10만 골드! 전부 백금화로 내겠소!”

“10만 골드 나왔습니다! 10만 골드! 입찰하실 분 안 계십니까? 아, 11만 골드 나왔습니다! 11만 골드! 더 없으십니까?”

“5번! 12만 골드!”

“12만 골드 나왔습니다. 12만 골드! 아, 말씀드리는 순간 13만 골드 나왔습니다! 13만 골드!”


그 뒤로도 입찰 경쟁은 식을 줄 몰랐고, 급기야 20만 골드까지 다다르고야 말았다.


“20만 골드 나왔습니다! 20만 골드! 더 입찰하실 분 안 계십니까?”


옛 왕국의 신비에 어찌 값어치를 매길 수 있겠냐만, 아이템 하나에 내놓기엔 터무니없는 거금.

열띤 목소리 대신 침음이 흐른 그때였다.


“21만 골드 나왔습니다! 21만 골드!”


루멘이 패들을 들었다.

높낮이가 모두 다른 웅성거림이 경매장을 가득 메웠다.


“더 입찰하실 분 안 계십니까? 21만 골드! 21만 골드! 21만 골드! 낙찰되었습니다!”


이로써 경매가 종료되었다.

가진 돈 대부분을 대금으로 지불한 루멘은 낙찰품들을 챙겨 호텔로 돌아갔다.

따뜻한 색감의 바닥에 늘어놓은 아이템들을 보며 하벤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것들을 사는데 평생 놀고먹어도 될 거금을 썼단 말이지. 뭐, 그래······ 네가 사치에 눈이 멀어 돈을 낭비할 성격은 아니니 가치에 걸맞은 쓰임이 있겠지.”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루멘은 아이템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불리고 불려 조용하고 풍족한 삶을 누렸으리라.

하지만 마왕의 침공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삐끗하면 세상째로 망하는데 돈을 아낄 이유 따윈 없다.


‘대가는 나중에 몇 배로 뜯어내고야 만다.’


루멘이 오른손에는 이니시에르를, 왼손에는 하벤의 요정의 눈물을 잡았다.

로스우드의 검을 바닥에 눕힌 다음 검신 위에 글귀를 새겨갔다.


날카로움 3단계.

견고함 3단계.


뾰족한 끝에서 날밑까지 이니시에르의 창백한 펜촉이 미끄러지며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완성된 글귀는 은은한 빛을 뿜으며 검속으로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

부러지거나 특별한 저주에 당하지 않은 이상 검에 부여된 인챈트의 효과는 문신처럼 남으리라.

정신적 피로를 느낀 루멘이 옛 왕국의 신비가 담긴 깃펜을 쥔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인챈트가 장비 내구도 문제 때문에 실패 확률이 높은 걸로 아는데 용케 안 부러트리고 잘했네.”


인챈트의 고질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하벤이 짧게 감탄했다.

또 다른 문제는 효과를 부여해줄 뿐이라는 거다.

예를 들어 ‘날카로움 3단계’는 날카로움이 1단계인 검을 3단계로 만들어주는 거지, 3단계를 더해 4단계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후자였다면 서포터의 취급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겠지.

루멘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좀 유능하지.”

“서포터들이나 쓰는 인챈트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말이야.”


서포터가 뭐 어때서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은 무시를 당하며 살아간다.

남들 싸울 때 뒤에서 보조 마법이나 깔짝거린다느니, 하자가 있으니 서포터를 하는 거라느니.

편의로 그어놓은 구분은 세월과 함께 더욱 깊어져 차별과 혐오로 이어졌다.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내 물건 잘 지키면서 놀고 있어.”


등에 수호검 이지스와 로스우드의 검을 메고서 외팔이 숀의 펜던트를 챙긴 루멘이 향한 곳은 으슥한 골목이었다.

평소라면 술에 절어 얼굴이 벌건 사람들의 고성이나 토사물로 가득했을 터인데 너무나 고요했다.

태풍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기묘한 위화감이 습기처럼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골목은 길을 좁혀왔다.

더욱이 뚜렷해진 위화감은 위험하다는 자각으로 이어졌으나 루멘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중간쯤에 다다르자 목적은 분명하나 목적지가 없는 루멘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루멘이 피식 웃었다.


“또 뵙네요, 부인. 아니면 외팔이 숀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역시 눈치채고 있었나?”

“아이템도 아니고 귀한 보석이 상감된 것도 아닌 펜던트에 2천 골드 넘게 쓰는 사람은 흔하지 않잖아요. 저처럼 이용하려거나, 본인인 내지는 부하가 물건을 찾으러 왔겠거니 싶었어요.”


루멘의 시선이 살짝 밑을 향했다.

검은 모자와 베일로 머리와 얼굴을 감추고, 귀부인들이 선호하는 펑퍼짐한 디자인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사람의 거뭇한 왼손을 보았다.


“마침 오른팔도 없으시고, 독을 다루느라 검게 변색된 왼손이 보여서 본인이라 판단했을 뿐이고요.”

“그러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또한 잘 알겠구나.”

“경고하는데 괜한 짓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제가 인내심이 좋은 편이긴 한데 목숨을 노리는 놈들까지 봐줄 정도로 호구는 아니거든요.”


카르마가 개방되지 않은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위압감.

암기를 뽑으려는 외팔이 숀의 왼쪽 소매가 짧게 흔들렸다.


“너에 대한 조사는 마쳤다, 헤드라의 루멘. 행보가 과감하더구나.”

“저도 당신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스캐빈저’라는 이름을 내걸고 단체로 활동하는 것도, 외팔이 숀의 정체가 에벨리 크리스틴이라는 몰락 직전의 귀족 가문의 삼녀라는 것도요.”

“너도 알겠지만 외팔이 숀은 대외적으로 사망한 걸로 되어있어.”

“끝까지 추격해온 탐정과 실랑이를 벌이다 계곡 밑으로 떨어졌죠. 점점 좁혀오는 제국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한 조작이지만요. 참고로 그 탐정도 당신 부하라는 걸 알아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걸 알고 있구나. 가장 중요한 건 모르는 것 같지만.”

“많은 걸 알고서 입을 가볍게 놀리면 목이 노려지기 딱 좋다는 거요?”


씩 웃은 루멘이 어깨 너머로 손을 옮겼다.

등에 멘 이지스의 검자루를 쥐고서 외팔이 숀을 노려보았다.


“소매에 숨긴 암기를 뽑아 내게 던질 때쯤이면 당신 목이 날아가 있을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너야말로 우리 모두를 감당할 수 있겠어?”

“사자는 쥐떼를 두려워하지 않거든.”


바람이 불었다.

뒤로 들어와서 앞으로 나가는 바람을 따라 바다의 비릿함이 흘렀다.


“원하는 게 뭐지?”


먼저 기세를 누그러트린 건 다름 아닌 외팔이 숀이었다.

검자루를 놓으며 루멘이 대답했다.


“너희 모두 내 밑으로 들어와.”


그러자 웃음소리가 흘렀다.

말을 대신하여 조롱과 불쾌함을 드러냈다.


“당돌하구나. 그래, 세상 물정 모르고 들이받는 무지한 패기 또한 어린 것들의 특권이지.”

“탐관오리들을 참하네, 신분으로 모든 게 나뉘는 썩어빠진 제국을 개혁하네, 민중을 위한 의적이네 뭐네 하지만 실상은 제국의 권력자들에게 원한이 서린 칼을 들이미는 것뿐이잖아?”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윗대가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누가 모르겠냐만 명분이 부족하니 떳떳하지 못하며, 떳떳하지 못한 너희의 수단은 정당하지 못해. 선동당해 너희 것이 아닌 구정물까지 죄다 뒤집어쓰기 일쑤고, 무자비한 범죄의 온상으로서 권력자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당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너희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방금과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살기가 노골적으로 흘렀다.

외팔이 숀의 얼굴을 감춘 검은 베일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그러다 보니 단원들도 나가떨어지는 거지. 복수는 이루면 목적 없는 칼날이 되고, 활동을 이어갈수록 대의는 너희들에게서 멀어져가니까. 부패한 권력자들의 목만을 노리는데도 민중에게는 무자비한 살인귀로 기억되어 외면받을 뿐이니까! 날은 점점 무뎌지고, 원동력이 되어줄 영혼의 불꽃은 사그라들 뿐이지.”


침묵이 흘렀다.

감정처럼 요동치던 검은 베일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루멘이 오른손을 뻗었다.


“내가 너희의 명분이 되어줄게. 외팔이 숀이 아닌 에벨리 크리스틴이 이끄는 스캐빈저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줄게.”


이지스의 검자루를 쥐었던 손바닥 위에는 은색 펜던트가 놓여있었다.

외팔이 숀이 슬쩍 손을 뻗었다 도로 물렀다.


“고작해야 칼 좀 쓰는 평민 꼬마인 네가 무슨 수로?”

“단순히 칼 좀 쓰는 평민 꼬마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아직 카르마를 개방하지 못했는데도 임프들의 왕을 처단한 전례 없는 천재라면 못할 것도 없지.”


루멘이 어깨와 수평을 이루던 오른손을 상당히 내렸다.


“그러니까 선택해. 제국의 시대 열 번째 소드마스터의 재목이자, 머지않아 온 세상이 칭송할 영웅의 단검이 되어 양지로 나올지. 다신 없을 기회를 걷어차고 뒷골목이나 전전할지.”


무릎을 꿇고 소중한 것을 취할 준비가 되었는지 행동으로 물었다.

외팔이 숀이 펜던트를 따라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네 검이 향하는 곳은 어디지?”

“영원한 전쟁이 종식된 세상. 쓸모를 다하면 사람이라도 냉정하게 버리는 염치없는 여우들이 이끄는 제국의 시대를 역사에 묻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될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터무니없는 소리만 늘어놓는구나.”

“대의를 위한 포부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침음하길 잠시.

모자와 베일을 벗은 외팔이 숀이 맨얼굴을 드러냈다.

짧게 자른 흑발과 창백한 얼굴색, 붉게 이글거리는 눈은 에벨리 크리스틴의 것이었다.


외팔이 숀이자 에벨리 크리스틴이 무릎을 꿇었다.

펜던트를 쥔 루멘의 오른손을 잡고서 고개를 숙였다.


“당신의 대의를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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