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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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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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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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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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31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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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DUMMY

<21화>



루멘이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은 칼리고 말고도 한 명 더 있다.

회귀 전, 마왕을 토벌하고 돌아온 루멘을 가차 없이 버린 제국의 젊은 황제.

지금은 황자인 레이몬드 아슬란.

칼리고와는 달리 세상에 필요한 인간이 아니니 기회가 오면 망설임 없이 죽여버리리라.

루멘은 매일 같이 다짐했다.


“루드윅이라는 사람을 찾아달라고?”


처음으로 주인을 모시게 된 제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희대의 살인마이자 암살자 집단 ‘스캐빈저’의 수장, 외팔이 숀이 물었다.


“성이 없는 걸 보면 평민인 모양이네. 특징은?”

“밀항해 들어온 아스캄 사람이야.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아스캄이면 언제나 눈이 내리는 추운 나라니까 피부가 하얀 편일 거고. 겨울에도 비교적 얇은 옷을 입겠네. 다른 외모적인 특징은 없어?”

“머리는 까맣고 눈이 파란데다가 왼쪽 어깨에 ‘네 잎 클로버를 문 벌새’ 문신이 있어.”

“자기 나라의 국기를 몸에 그렸으나 몰래 제국으로 건너왔다. 첩자거나 특수한 부대에서 탈영한 거겠네.”

“찾을 수 있겠어?”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무조건 찾아야지. 그나저나 펜던트 하나에 2천7백 골드나 써버렸는데, 아깝지 않아?”

“근사한 만남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고, 물건에 담긴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루멘이 고요하면서도 작게 웃었다.


“둘도 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해.”


아픈 곳을 보듬어주는 듯한 말.

신비한 기분이 사로잡힌 외팔의 숀의 입가에 어쩔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


“여러모로 신기한 꼬마네. 어쨌든 우리의 주인이 되었으니 알려주는 건데, 도련님과 함께 다니는 마법사 말이야······.”

“쉿.”


검지를 세운 루멘이 입술에 가져다 댔다.

안 그래도 미소 짓던 외팔이 숀의 입매가 더욱 유쾌하게 휘었다.


“역시나 과감하네. 때가 되면 까마귀를 한 마리 보낼 거야. 연락은 까마귀를 통해 주고받자고.”


그 말을 끝으로 외팔이 숀이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골목에 홀로 남은 루멘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테르니아의 창백한 달은 빨간 지붕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마왕성(魔王星)이라고도 불리는 붉은 달만이 별의 중심에서 빛날 뿐이었다.


**


나갈 때는 하나였던 마차가 들어올 때는 둘이 돼서 돌아왔다.

짐마차 가득 실린 배추와 향신료를 보며 헤드라의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마을 광장에 다 같이 모여 김치를 담갔다.

김치는 겨울에 담그는 게 제맛이라며 칼리고가 툴툴거렸다.


“하벤에게 맞는 나무 팔을 만들어달라고?”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하벤의 왼쪽 어깨를 유심히 관찰하며 제페토가 침음했다.


“어깨만 달린 수준이지만 절단면이 깔끔하고 곪지도 않았으니 의수를 만드는 거야 크게 어렵지는 않겠구나. 의족과는 달리 빈자리를 채우는 용도일 뿐이겠지만 없는 것보다야 나으니.”


제페토는 헤드라에 유일한 목각 장인이다.

검었던 머리가 허옇게 세도록 골방에 틀어박혀 나무 인형이나 만드는 제페토를 두고 괴짜 영감이라 부르는 마을 사람도 있었다.


“재료는 가진 걸로 어떻게든 될 것 같구나.”

“그래도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오냐. 필요하거든 너희 집 기둥이라도 뽑아오라 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상의 한 마디 없었어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하벤이 끼어들었다.


“저······ 괜찮습니다. 의수 같은 거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루멘 너도 괜히 돈 쓸 필요 없어.”

“돈 같은 소리 하네.”


마른 주먹을 말아쥔 제페토가 하벤의 정수리에 꿀밤을 먹였다.


“받을 사람이 따로 있지! 마을 사람한테 돈을 받겠냐?”

“마을······ 사람이요?”


정수리를 문지르며 아픈 시늉을 하던 하벤이 당황해 물었다.


“그래, 마을 사람! 노란 뺀질이, 까만 까칠이, 다 큰 멍텅구리. 너희 셋 말이다.”


살아온 삶이 나무껍질처럼 주름진 손가락이 루멘, 칼리고, 하벤을 차례대로 가리켰다.

하벤의 눈동자에 흔들리는 가운데 칼리고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 누구더러 까만 까칠이래?”

“누구긴 누구겠냐? 고슴도치마냥 허구한 날 가시나 세워대는 못난 네놈이지.”

“만들어진 주제에 얻다 대고 망언이야?”

“너도 너희 엄마 뱃속에서 만들어졌으니 지금 여기서 큰소리 꽥꽥 지르고 있는 거 아니냐?”

“이 미친 영감탱이가 진짜! 노인공경 차원에서 봐주려고 했더니 명을 재촉하네.”

“공경은 개뿔. 네가 하는 건 공경이 아니라 공격이라고 하는 거다. 노인공격! 이 경악스러운 쌍놈아.”

“죄송해요, 제페토 영감님. 이 새······ 친구는 제가 잘 타일러놓을게요.”


칼리고의 입을 틀어막고서 끌고 나가려는 루멘에게 제페토가 말했다.


“아주 혼꾸멍을 내놔라! 그리고 김치인가 뭔가 그 뻘건 것 좀 가져와다오. 요즘은 그게 없으면 밥이 넘어가질 않아.”

“넉넉하게 챙겨 올 테니까 모쪼록 잘 부탁드릴게요.”


아이들이 떠나고 어른 둘만 남은 인형 공방은 물 빠진 바다처럼 허전했다.

제페토는 하벤의 왼쪽 어깨나 오른팔에 붕대를 감아보거나, 오른팔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얻은 정보를 양피지에 그림과 글로 기록했다.

깃펜의 촉이 표백한 양의 가죽을 긁는 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제페토가 말했다.


“셋뿐인 아이들도 언젠가는 마을을 떠나는 날이 오겠지. 어떤 녀석은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또 어떤 녀석은 마을이 새장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져서, 큰일을 하기 위해 떠나는 녀석도 분명히 있겠지.”


누구를 두고 말하는 건지 훤히 보여서 하벤이 슬그머니 웃었다.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길에 오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헤드라는 언제까지고 아이들을 기다릴 거야. 살아가는 것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렇죠······.”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을 떠올리는 하벤의 눈매가 내려앉았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도 문득 생각나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안심하고 누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힘이 되거든. 하벤, 너도 마찬가지다.”

“······네?”


예상치도 못한 발언에 하벤이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기록 중인 제페토의 모습을 눈에 넣었다.


“네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헤드라로 온 건지는 모른다. 어느 날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헤드라는 언제나 너에게 열려있다.”

“······제가 나쁜 인간이면 어쩌시려고요? 모두의 호의를 이용하는 거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정말로 나쁜 인간이라면······.”


조금 긴 간격을 두어 제페토가 대답했다.


“정말로 나쁜 인간이라면 너처럼 말하지 않았겠지.”

“······진짜 환장하겠네. 얼마나 지냈다고 외지인인 저를 철석같이 믿으시는 거예요?”

“함께 지낸 세월도 굉장히 중요하지. 하지만 네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가족이라는 사실만큼은 아니야.”


가슴으로부터 울컥 치솟은 감정이 하벤의 눈동자에 넘칠 듯이 고였다.

찡한 코끝의 붉어짐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열리지 않도록 입술을 단단히 오므렸음에도 끅끅,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이 흘러나왔다.


“가족이라고 모두 털어놓아야 하는 건 아니니 캐묻지 않으마. 우리는 언제나 너와 함께라는 사실 하나만 기억해다오.”


창문 틈새로 흘러들어오던 새하얀 빛이 어느덧 붉어졌다.

지평선 너머로 붉게 녹아가는 태양의 따스함이었다.

제페토의 공방을 빠져나온 하벤은 언제나의 그곳으로 향했다.

조금 거칠게 칼리고를 훈련시키는 루멘이 보였다.

얻어맞은 칼리고가 나자빠진 다음에야 하벤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루멘, 칼리고! 요 말썽꾸러기 녀석들.”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루멘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나무 의수는 2주 뒤에야 완성됐다.

접합부에 달린 갈고리를 살 안으로 밀어 넣어 고정하는 방식이라 하벤이 눈물을 찔끔 흘렸다.


“벌써 이러면 어떡해? 진짜 아픈 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뭐가 또 남았어?”

“몸이 아픈 게 하나, 마음이 아픈 게 하나 남았지.”


루멘이 말한 마음의 아픔은 머리카락을 빡빡 밀리는 거였다.

하벤은 극구 거부했으나 사정 봐주는 일 따윈 없었다.


몸이 아픈 걸 시작할 적에 루멘은 왼손에 요정의 눈물을, 오른손에는 인챈트의 효과를 반영구적으로 지속시켜주는 옛 왕국의 깃펜 ‘이니시에르’를 들었다.

그러고는 상의를 탈의한 하벤의 팔과 다리를 묶어 의자에 앉힌 뒤 입에 두꺼운 천 조각을 물렸다.


“제페토 영감님과 칼리고는 하벤이 움직이지 않도록 꽉 붙잡아주세요. 절대, 조금도 흔들리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 써주세요.”


루멘은 이니시에르를 써서 의수의 엄지손톱에 해당되는 부위에 오망성을 그렸다.

작은 오망성을 이루는 선은 모두 룬어였으며, 그 뒤로도 복잡한 룬어를 하나의 선처럼 쭉 이었다.

엄지를 타고서 손등, 팔등, 팔꿈치, 어깨, 날갯죽지, 꼬리뼈, 허리, 목덜미, 정수리를 거쳐 왼쪽 가슴에 맺었다.


“읍······ 으읍······ 으으읍······!”


룬어를 새기는 내내 하벤은 발작하듯 몸부림쳤다.

날카로운 펜촉으로 생살을 파내다가 카르마를 흘리는 고통은 너무나 끔찍했다.

하지만 루멘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를 잇는데도 어마어마한 정신력과 시간을 소비했지만, 일련의 과정을 다른 손가락에도 반복했다.


아침에 시작된 작업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엄청난 출혈에 잠깐 지혈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실패해서 다시 새기기도 했다.

주입되는 카르마를 견디지 못한 의수에 금이 가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끝마칠 수 있었다.


각각의 손가락으로부터 시작돼 같은 곳을 향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힘줄처럼 뻗은 룬의 선은 특정 부위마다 하나로 연결됐다.

손목, 팔꿈치, 어깨, 날갯죽지, 꼬리뼈, 허리, 목덜미, 정수리, 최종적으로는 왼쪽 가슴에 절묘하게 엮여 손톱과 똑같은 오망성을 새겼다.


마지막으로 요정의 눈물을 양손으로 감싼 루멘이 기도하듯 주문을 읊었다.

이 또한 룬어라 다들 의미는커녕 발음조차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말은 곧 기적이 되어 울금색 광휘와 함께 하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적을 선사했다.

루멘이 풀썩 주저앉았다.


“끝났으니까 이제 놓아줘도 돼요. 하벤은 왼팔을 움직여봐.”


죽다 살아난 하벤이 풀린 눈을 하고서 침을 질질 흘렸다.

입 안 가득 하얬던 빨간 천을 뱉어내고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쳤다.

목과 이마에 핏대가 서도록 원망을 쏟아냈다.

위화감을 깨닫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어······?”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자연스레 움직이는 나무 의수.

왼팔을 대신한 의수를 조금 뻣뻣하게 움직여보던 하벤이 부르르 떨다가 엎드려 오열했다.

듣도 보도 못한 기술에 제페토와 칼리고가 말 못 할 감정을 드러내는 가운데 루멘만은 하벤에게 공감했다.

비록 회귀 전이지만 오랫동안 왼팔은 저주받아 못 쓰고, 오른 다리는 의족을 달아야만 했었으니까.


“다들 오늘 본건 무덤까지 가져가는 거예요.”


이 기술은 회귀 전의 루멘이 고대 유적에서 발견한 옛 왕국의 기술이다.

자신을 위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익혔으나 끝내 써먹지 못했다.

마왕 때문에 여유가 없었고, 토벌한 뒤에는 버림받아 죽었으니까.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네.’


루멘이 홀가분하게 미소했다.

무거운 짐을 덜어낸 듯.


**


별이 뜨문뜨문 보이는 흐린 밤.

수채화 같은 구름이 창백하고 붉은 두 달의 빛깔을 품고서 흘러가는 가운데, 하벤은 창가에 걸터앉아있었다.


찌르르.


새 한 마리가 붕대를 감은 하벤의 의수에 앉았다.

2주가 지난 지금은 상처도, 혈관처럼 새겨졌던 룬의 선도 스며들고 없었다.

빡빡 밀렸던 머리에도 굵은 머리카락이 수염처럼 돋아났다.

하벤은 의수를 들어 새를 눈높이까지 가져왔다.


일반적인 전서구보다 더 크고 종이 다른 새의 깃은 눈처럼 희었다.

머리에서 길게 뻗어 등을 휘감고 다리까지 뻗은 유난히 두껍고 긴 샛노란 한 가닥이 돋보였다.

마찬가지로 노란 부리보다,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보다 더.

왼발에 찬 황금 발찌에는 ‘칼날 같은 빛살을 사방으로 뻗은 태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제국 황실의 문장이었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인가.”


황금 발찌 속에서 꺼낸 둥글게 접힌 지령서를 펴 읽은 하벤이 쓰라리게 웃었다.

지령서에 싸여있었던 반지를 쥐고서 검지로는 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검지로 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새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은 그때였다.


“미안해.”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목이 옆으로 꺾인 새가 바닥에 떨어졌다.

힘없이 벌어진 부리 사이로 피거품이 피어올랐다.


이걸로 됐다.

전부 됐다.


중얼거리며 하벤이 바깥으로 나왔다.

루멘네의 나무를 써서 마을 모두가 만들어주었던 작은 오두막을 등지고서 올 때처럼 빈손으로 떠났다.

광장을 가로질러 유독 잘 따르던 칼리고네를 뒤로 하고 루멘네를 지나친 그때였다.


“······이제는 소름이 끼칠 지경이네.”


울타리에 기대고 선 루멘을 보고는 하벤이 실소했다.

루멘이 마을 바깥을 엄지로 가리켰다.


“같이 좀 걸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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