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이 빙의자를 등쳐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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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푸
작품등록일 :
2024.10.07 20:41
최근연재일 :
20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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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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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DUMMY

<22화>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거야?”


루멘과 함께 마을 밖으로 향하며 하벤이 물었다.


“처음부터 의심은 하고 있었어. 하급 모험가도 마다하는 판국에 마법사가 이런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것부터 이상하잖아. 확신을 가진 건.”

“요정의 눈물이구나.”


바람이 불었다.

모두에게 상냥한 봄이라도 밤에 불어오는 것은 제법 차가웠다.

하벤의 한숨이 흐리게 꼈다.


“아슬란의 뒤를 이을 용사가 태어났다는 예언은 몇 년 전부터 역병처럼 떠돌았으니 알거라 믿고, 최근에는 그 예언의 용사가 네가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최근에는 임프의 왕까지 쓰러트렸으니까.”

“덕분에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어.”


하벤이 씁쓸하게 미소했다.


“용사의 탄생은 기적과도 같은 축복이지만 저 위에서 오만하게 굽어보는 권력자들, 특히 하늘에 닿을 듯 높이 뻗은 일곱 탑의 중심에 기거하는 자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거든.”

“······제국 황실.”

“너도 알다시피 황실은 정통성이 부족하잖아.”


초대 황제인 아슬란이 슬하에 자식을 두지 않았기에.


“그러다 보니 아슬란의 후계자나 다름없는 새로운 용사를 경계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 영웅의 이름은 대중의 추앙을 받을 것이고, 아슬란의 후계자라는 정통성은 귀족들의 지지를 받을 테니까.”


제국 황실이 얼마나 치졸한 인간들인지는 루멘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쓰임을 다하자 가차 없이 내치던 회귀 전의 젊은 황제, 지금은 황자인 레이몬드 아슬란에게 특히나 호되게 당했었으니까.

과거를 되짚는 루멘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했다.


“나를 죽이고 헤드라를 섬멸하라는 지령이 떨어진 거지?”

“······다 알고도 칼 한 자루 들고 오지 않은 거야?”

“형을 배웅하는데 그런 건 필요 없으니까.”


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크고 작은 두 쌍의 발은 마을을 빠져나와 드넓은 들판을 거닐었다.


“제페토 영감님도 비슷한 소리를 했었어.”

“젊었을 적에는 황도에서 나무 인형과 의수, 의족을 만드셨으니까. 오랫동안 귀족들을 상대하셔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셔.”

“다른 분들도 눈치채셨을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쯤은. 아, 칼리고는 눈치 못 챘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바람도 때마침 멎어 웃자란 잡초가 지르밟히는 소리만이 두 사람을 따랐다.


“······지내는 동안 너무나 많은 걸 받아버린 것 같아.”

“받으며 자라고 베풀며 늙는 거지. 그게 살아간다는 거니까.”


하벤이 피식 웃었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멀었나 보다.”


나란히 걷던 루멘과 하벤이 동시에 멈춰 섰다.

큰 발의 발치에 닿은 낮은 돌턱은 들판의 끝이자,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의 시작을 나누는 경계였다.


“헤드라가 위협받아도 로스우드 공작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바라겠지. 그걸 빌미로 황실이나 케일 공작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으니까.”


그리 말하며 하벤이 루멘의 손에 쥐여준 것은 지령서에 싸여있었던 반지였다.

반지에 상감된 붉은 보석 안에 비치는 ‘육망성 안의 염소 머리’ 문장을 루멘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케일 공작······. 헤드라를 빌미로 영지전까지 일으킬 속셈이었나 보네.”

“케일 공작가의 7남이 황실에 협조하기로 했다더라. 요컨대 노리는 건 황실만이 아니고, 노려지는 것 또한 너만이 아니라는 거야. 갈수록 지키기 힘들어지겠지.”

“걱정하지 마. 다시는 잃지 않을 테니까.”


작은 손으로 쥔 것은 비단 반지만이 아니니라.

눈을 감았다 뜬 하벤이 돌턱을 건넜다.

올 때는 명령이었으나 갈 때는 자기 의지였다.


“서쪽 마탑에 갈 일이 있다면 이걸 써.”


하벤이 자신의 일부가 아니나 자기 것처럼 움직이는 왼팔을 내밀었다.

태양을 등지고 우뚝 선 탑의 문양이 아로새겨진 철패(鐵牌)를 루멘에게 건넸다.


“그리고 꼭 모두를 지켜줘.”


영웅이 되고 싶었으나 될 수 없었고, 소중한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 채 황실의 개가 된 자의 부탁이었다.

너만은 후회하지 말라는 바람이기도 했다.


“언제든 돌아와.”

“살아있다면 언젠가 또 보자.”


등을 돌린 하벤은 떠돌이 마법사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


3개월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따사로운 햇살이 꽃망울을 터뜨리던 봄이 떠나며, 강렬한 뙤약볕에 초목이 짙어지는 여름이 찾아왔다.

새의 지저귐보다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많이 들렸고, 마냥 부드러웠던 바람도 어느새 초여름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헤드라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로스우드 공작가의 연회가 일주일 남은 때였다.


부우우─!


도착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와 함께, 가문의 표지를 단 사두마차가 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광장에 들어섰다.

손님을 태우는 거라기엔 마차는 지나치게 화려했다.

말들도 잘 끄는 녀석들보다는 보기 좋은 녀석들로 고른 느낌이었다.

의도가 있다면 과시 말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마차가 멈추자 일사불란하게 말에서 내린 기병들이 마차 앞에 두 줄로 늘어섰다.

곧이어 양복을 차려입은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었고, 마차만큼이나 세련된 중년인이 마차에서 내렸다.

촌장을 필두로 헤드라의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다.


“······.”


환영한다거나, 영광이라든가 가식적인 인사치레는 없었다.

이외라면 의외겠지만 꼭두새벽부터 기다린 사람들의 침묵은 무례보다는 경건함에 가까워 적당히 좋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른 흙바닥을 디디는 소리가 고요 속에 흐르는 가운데, 마부와 마차에서 내린 중년인을 번갈아본 루멘이 한쪽 눈썹을 들었다.


“그래, 네가 루멘으로구나.”


이윽고 중년인이 루멘의 앞에 섰다.

헤드라의 늙은 촌장보다 족히 20살은 어릴 중년인의 인상은 부드럽고 여유로웠다.

이곳의 누구보다 고급스러운 옷과 장신구를 걸쳤으며, 새하얀 장갑을 낀 손에는 기다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몸체가 새까만 지팡이의 끝에는 주먹만 한 울금색 보석이 달려있었다.

가사 상태의 요정의 안에 잠든 보석은 ‘요정의 눈물’임에 틀림없었다.


“여덟에 열여덟의 도적과 나이아스 호수의 유령을, 최근에는 스톰팽을 토벌했다는 로스우드의 어린 영웅. 금발을 보는 건 처음이다.”


천천히 일어선 루멘이 짧게 묵례했다.

영웅이고 나발이고 평민 꼬마가 귀족에게 고개만 까딱거리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중년인의 완만한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거렸다.


“어린 나이에 무예를 연마하느라 예를 배우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정말 신사적으로 타이른 것이지만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입장에선 피가 마르는 것만 같았다.

루멘이 입을 뗐다.


“비단 신분뿐만 아니라 연장자를 대함에 있어서도 말은 높이고, 몸은 낮게 하는 것이 예의이자 존중이라고 배웠습니다.”

“한데 방금 그 행동은 뭐지? 나는 우습게 보인다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황제 폐하의 어전에서 다른 이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 없듯이, 가장 높은 분께 가장 몸을 낮게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 말하며 중년인을 지나친 루멘이 마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혔다.

오른손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대고서 고개를 조아린 모습은 몸속에 고귀한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햇볕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소년의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며 마부가 물었다.


“일면식이 없을 터인데 어찌 알아보았는가?”

“보잘것없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저의 눈이 어찌 감히 귀인의 그림자를 쫓았겠습니까?”


직역하면 네가 누군지는 모르는데, 가 되시겠다.

물론 거짓말이다.

로스우드 공작과는 회귀 전에 친분이 있었으니까.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던 측근의 이름과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루멘이 고개를 들며 부연했다.


“하오나 무지한 저라도 빛이 나기 위해 입은 옷과 빛을 감추기 위해 입은 옷 정도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매듭지어진 말이 찬송가처럼 울려퍼지는 것만 같았다.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지켜보던 마부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훌륭하군.”


중절모를 벗어 가슴에 댄 마부가 왼발을 오른발 뒤꿈치로 빼며 상체를 구부렸다.

마부가 로스우드 공작의 보좌관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로스우드 공작님의 보좌관인 헤이즈 바르크다. 너를 로스우드까지 안내하게 되어 기쁘구나.”


**


로스우드 공작의 영지는 공작가가 위치한 대도시 산체스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중소도시가 완만하게 벽을 치고 있고 그사이에 여섯 개의 작은 마을이 끼어있는 형태다.

루멘의 고향인 헤드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고 내세울 게 없어 내놓다시피 한 시골 마을이다.


“로스우드의 영광을 위해!”


헤드라에서 출발한 마차는 나흘을 내리 달리고서야 산체스의 성문을 통과했다.

영지 내의 다른 도시로부터 걷는 막대한 세금은 가도를 매끄럽게 깎은 광물로 포장하는 사치를 부리게 해줬고, 모든 건물의 층계를 최소 2단씩 높였다.

로스우드의 심장이라는 명성과 다르게 산체스에는 빼어난 특산품이 없다.

따라서 유통업이 발달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돈으로 권리를 사서 귀족 행세를 하는 평민이 늘어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우와······.”


생전 처음 와보는 대도시의 화려함에 넋을 잃은 칼리고의 두 눈이 반짝임을 담았다.

차창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를 머리에 담고 가슴으로 느꼈다.

저럴 땐 참 순수한 아이다 싶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저 새끼는 개새끼다.

천하에 둘도 없는 십새끼.


‘너는 진짜 용사로 태어난 걸 하늘에 감사해라.’


칼리고와는 반대쪽 차창에 턱을 괸 루멘이 한숨을 내쉬었다.

헤이즈는 그런 루멘을 그저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영민한 아이야.’


다른 종족은 물론 인종까지도 야만인 취급을 하는 제국의 문맹률은 상당히 낮다.

평민 꼬마가 글을 읽고 쓰고 말한대서 놀랄 것은 없으나 루멘의 경우는 결이 달랐다.


‘어디를 가거든 그곳의 법도를 따르라. 그것이야말로 존중이며 갖춰 마땅한 품위로니.’


칼리고를 시종으로 동행시키겠다며 루멘이 선황의 가르침을 들먹일 때는 놀랐다.

허영을 채우는 것이 아닌, 로스우드 공작의 권위를 위해 품위를 흉내 내겠다는 말이 아홉 살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마지막 오르막길을 오른 마차는 이윽고 로스우드 공작가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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