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화: 이상한 우연
수혁의 입가에 요즘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시간이 날때마다 수아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고 있어서다.
북촌이나 서촌을 쏘다니며 맛집 투어도 하고, 가끔 극장에 들러 영화도 보고, 수아 친구 지현이까지 셋이 에버랜드에 가서 신나게 놀기도 한다.
일상적인 20대의 삶을 누려보지 못해서인지 수아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가장 하이라이트라면,
셋이서 홍대 클럽에 갔을 때다.
홍대 거리의 밤은 열정 그 자체로 보인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를 지나,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는 홍대 클럽 입구.
게이트를 열자마자 웅장한 비트가 귀를 때린다.
쿵! 쾅! 두드드드드득! 쿵! 쾅! 쫙!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세상이 열린다.
수아와 지현은 수혁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장난스럽게 끌고 간다.
"오빠!! 어색해 하지마!! 이런 거도 해봐야지!!!"
수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귓볼에 너무 가까이 대고 말하니, 귀가 간지럽다.
이상하게 기분 좋은 간지러움···
지현은 이미 음악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며 리듬을 타고 있다.
수혁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면서, 두 사람의 분위기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된다.
클럽 안은 미러볼이 회전하며, 형형색색의 불빛이 춤추는 인파 위로 쏟아진다.
DJ가 턴테이블을 돌리며 폭발적인 비트를 울리고,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음~칫~ 음~칫~! 두구! 두구! 뱅뱅뱅!!
거대한 스피커에서 울리는 저음이 땅을 진동시키며, 공간을 가득 메운다.
수아는 그루브를 타며 클럽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수혁을 가볍게 미소 지으며 끌고 간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허리와 어깨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춤을 춘다.
지현도 뒤따라 리듬에 몸을 맡기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수혁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주변의 에너지가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주저주저하면서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음악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움직인다.
리듬에 맞춰 발을 내딛자, 수아와 지현은 환호하며 응원한다.
“오~올! 수혁 오빠!! 그거지!! 그렇게 즐기는 거야!”
수아는 수혁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들어 허공에 흔든다.
지현도 활짝 웃으며 "오~우~예~~!!!"라고 소리친다.
이내 수혁도 그루브를 타기 시작한다.
수아와 지현은 더욱 신나게 춤을 춘다.
수혁은 두 사람 사이에서 처음 느껴보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에 빠져든다.
밤은 깊어가고, 음악은 점점 더 빠르게, 강렬하게 울린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듯, 수혁은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빛, 음악, 웃음소리가 뒤섞인 공간에서 세 사람은 다른 무엇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순간을 즐긴다.
**
한참을 그렇게 즐기다 클럽에서 나올 때, 수혁은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아주 오래전에 맡았던 냄새.
학교를 자퇴하기 전.
중딩 때 언젠가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길거리를 걷던 때.
신호등 앞에 정차 중이던 뚜껑이 없는 짙푸른 색 벤츠.
운전석에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듯한 아저씨가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선글라스 낀 채로 옆에 앉은 예쁜 아가씨와 노닥거리기도 하고 그루브를 타며 즐기고 있었던 때.
그때 맡았던 냄새가 클럽 앞에 잠시 정차중인 벤틀리에서 다시 풍긴다.
뒷좌석에 탄 50대 남자가 창을 내린 채 밖에 도열해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야, 이런 이상한 우연이 있을 수 있나?
무려 15년 전에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길래 저렇게 좋지 않은 냄새가 날까?’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눈 앞에 다시 보인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 강남 NoMo클럽을 비롯한 10여개의 고급 클럽에서 세탁한 자금을 보관하는 비밀 금고가 동두천 소요산 인근 파라클 수목원에 있습니다. 】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GPS 홀로그램과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원 탐사를 하러 가볼까?
**
동두천의 어둑한 산길을 따라 수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한적하고 조용한 소요산 근처.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낮은 소리로 속삭이고 있다.
향하는 곳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외부인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파라클 수목원.
과거에는 평온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명소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인적이 끊기고 음흉한 소문들만 돌기 시작한 곳이다.
수목원 입구에 가까워지자, 좋지 않은 냄새로 예민해진다.
산뜻해야 할 나무 냄새 대신 기묘한 화공약품 냄새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다.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며, 어두운 수목원 너머를 조심스럽게 살핀다.
수목원의 울타리 너머, 평범해 보이는 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창고가 숨겨져 있다.
망원경을 들어올려 창고 쪽을 바라본다.
창고 출입구를 지키는 경비원들이 눈에 띈다.
안주머니에 무기를 숨기고 있는 모습이다.
녀석들 표정은 날카롭고 무표정하며, 누군가 다가오면 즉시 죽여버릴 듯한 태세를 갖추고 있다.
수혁은 숨을 고르고, 더 깊숙이 들어갔다.
나뭇가지와 잔돌들이 발밑에서 작게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점점 더 창고에 가까워진다.
창고 앞에는 몇 대의 검은 밴이 주차되어 있고, 밴 안에는 화학 약품과 플라스틱 용기들이 가득 실려 있다.
창고 안쪽에서는 미세하게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이 들려온다.
‘마약 제조 과정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인가?’
창고 안으로 시선을 돌리니, 마약 생산공장이 분명하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화학 물질과 주사기를 다루고 있다.
녀석들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액체를 가열하기도 하면서 고형화된 물질을 가공하고 있다.
기계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냄새가 더 강해진다.
불법 마약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 장면.
창고 구석에서 무리의 남자들이 거래를 위해 서류와 현금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인다.
주변을 경계하며, 마치 군사 작전처럼 움직이고 있다.
공장은 그저 마약 제조의 일부분일 뿐, 배후에는 수혁이 마주친 50대 남자와 관련된 거대한 범죄 조직이 연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수혁은 다시 몸을 낮추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계획이 필요하다.
**
이현석 상무에게 팀원들과 함께 NoMo클럽과 연관된 내용을 모조리 조사해 달라고 했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두터운 자료를 건네준다.
"강 대표님, 조사를 진행해보니 엄청나네요. 남현우 회장은 단순한 클럽 운영자가 아니었습니다. 강남 노모클럽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10여 개의 고급 클럽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겉으로는 클럽 사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거대한 마약 유통망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마약 유통망이라...?"
"그렇습니다. 남현우는 국내 어딘가에 비밀 마약 제조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마약은 클럽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들에게 은밀히 유통되고 있죠. 강남의 클럽들이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마약 파티가 잦은 이유가 이 때문이라 합니다."
"그렇군요... 마약을 생산해서 클럽을 통해 유통시키고 있다? 막대한 자금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요?"
"남현우 회장은 돈세탁까지 치밀하게 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클럽의 막대한 현금 흐름을 이용해, 불법 자금을 합법적인 사업 수익으로 둔갑시키고 있죠.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조 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차명 계좌, 해외 법인 등을 통해 세탁하고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특히, 그 자금이 일본 야쿠자와 중국 삼합회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야쿠자와 삼합회? 무슨 국제 범죄 조직처럼 움직이는군요."
"맞습니다. 남현우는 단순한 국내 범죄자가 아닙니다. 남우파라는 조폭 조직은 국내에서 영향력을 키웠고, 그 영향력이 이제는 국제 범죄 조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야쿠자와 삼합회와 협력해, 마약 유통뿐만 아니라 불법 무기 거래까지도 얽혀 있다는 정황을 파악했습니다."
"남현우의 국제적인 네트워크 덕분에 비자금 세탁이 더 용이하기도 하겠는데요?"
"그렇게 보입니다. 클럽 사업 수익의 일부는 일본과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고, 그곳에서 다시 세탁되어 돌아오죠. 수십 개의 차명 계좌와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자금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음··· 남현우를 잡기 위해선 클럽 네트워크를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군요. 놈을 둘러싼 국제 네트워크까지 모조리 끊어내야 가능하겠네요."
"맞습니다. 문제는 너무 거대하다는 거죠."
**
아무리 거대해도, 어딘가 약한 고리에서 비자금 흐름이 끊기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동성파와 한민그룹이라는 범죄 카르텔도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던가?
지난번 파라클 수목원 탐사시, 빈틈을 찾았다.
다행히도 비밀 금고는 수목원의 마약 생산공장 내부에 있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업하는 곳이라 별도로 독립적인 곳에 아무도 모르게 설치되어 있다.
이곳 역시 GPS 홀로그램이 아니면 도저히 발견하기 힘든 곳이다.
마약 공장 뒤쪽 숲에 난 샛길로 500미터를 거슬러 올라야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것도 숲이 우거져서 거의 길이 끊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약 공장에 상주하는 경비원들 자체가 비밀 금고의 1차 관문인 셈이다.
수혁은 단단히 장비를 챙기고 나섰다.
**
조심스럽게 나무 사이를 헤치며, 길이라기보다는 그저 숲속 틈새를 따라 나아갔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나무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은 발걸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고 있다.
가지들이 옷을 잡아당기며 길을 막고 있다.
마치 자연의 미로를 탐색하는 듯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동안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기다리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와 나무 사이에 교묘하게 감춰져 있다.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숨겨져 있다.
입구 앞에는 낡은 판자 같은 구조물이 덮여 있지만, 자세히 보니 일종의 위장용 문이다.
이를 들어 올리자, 그 밑에 감춰진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마치 오래된 벙커처럼 차가운 시멘트 벽이 이어져 있다.
주변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스며들어 있어, 이곳이 얼마나 오랫동안 외부의 눈을 피했는지 알 수 있다.
손전등을 켜고, 좁은 통로를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통로는 길고, 불규칙하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벽에 손을 대자마자 습기가 손에 닿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울린다.
한동안 가다 보니, 지하 통로 끝에 자리한 강철 게이트.
게이트는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두껍게 만들어져 있고, 최신식 보안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강철 문을 열기 위해 준비해온 장비를 꺼냈다.
생체 인식과 디지털 잠금 장치가 결합된 구조다.
장비를 잠금장치에 연결하고, 몇 번의 버튼을 눌러 코드 해제 과정을 시작했다.
한동안 씨름하다 첫 번째 잠금 장치가 풀리고 문이 천천히 열린다.
안에는 숨겨진 또 다른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엄청 덩치 큰 장수처럼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비밀 금고.
마치 경계심을 품은 수문장처럼 서 있다.
금고는 여러 겹의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고, 마지막 잠금 장치는 자기장 기반의 전자 잠금장치다.
수혁은 미세한 전류의 흐름을 느끼며 마지막 장치를 조작했다.
조금만 실수하면 금고가 자동으로 잠기고 경보가 울릴 수 있다.
손길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금고에서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 잠금이 해제되었다.
금고의 문이 천천히 열리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차가운 공기와 함께 등장한 무수히 많은 현금 다발과 무기명 채권과 불법 서류들이다.
현금이 대략 300억 정도.
무기명 채권이 4천억.
차명 계좌가 3천억.
해외 비자금 계좌가 20억 달러 수준이다.
서류들에는 남현우가 운영하는 마약 공장과 자금 세탁 과정 기록들이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USB 드라이브다.
마약 유통망과 비자금 세탁의 증거들이 대부분 담겨 있는 핵심적인 자료다.
일단, 현금은 소액(?)에다 무거우니 제외하고, 나머지 것들만 챙기자.
신속하게 챙겨 넣은 뒤, 금고를 다시 잠그고 출입구로 나아갔다.
숲속 어둠이 수혁을 감싸고, 나무들 사이로 길을 찾아 나가며 발소리조차 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와 바람의 미세한 소리를 들으며 빠르게 움직일 때, 주변은 여전히 고요하다.
해외 비자금 계좌 20억 달러가 핵심이다.
제로에게 전달하고 최대한 빨리 작업을 하도록 해야겠다.
-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 꾸~욱~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