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화: 국정원

국정원 정민규 차장의 오른팔이었던 김동현.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정민규 차장의 심장마비가 여전히 꺼림칙하다.
분명히 강수혁이 비밀리에 감춰진 금고에서 뭔가를 모조리 털어가버려,
정차장이 충격을 받고 심장마비에 걸린 게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도, 강수혁과 관련된 증거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아무리 뒤져봐도 꼬투리 잡을만한 게 나오질 않는다.
연이어 일어난 대현그룹 일가의 순차적인 몰락은 그야말로 2차 충격 그 자체였다.
최회장, 최윤아, 최준영, 최경민이 차례대로 죽어나갔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정차장의 죽음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절대 우연일 수가 없었다.
강철수 이사가 와이프와 함께 강도 살해로 죽음을 당한 뒤, 아들 강수혁이 어딘가에서 힘을 길러 복수의 칼을 갈아대는 결과가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죽음들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SH글로벌이 특별히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자산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사채업계의 제왕인 이정호 회장의 딸과 동업하여 투자회사까지 만들었다.
그것도 증자한 것까지 포함하면 2천억의 자본금이 강수혁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 많은 돈들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세무조사를 받게 해볼까?
아니다.
직원들중에 회계사가 두명이나 있다.
그렇게 허술하게 해 놓았을 리가 없다.
꼬투리를 잡아서 강수혁을 어딘가로 끌고 가서 사적인 고문을 가하며 불게 하는 게 최곤데, 실력으로 봐서는 어지간한 놈들이 녀석을 당할 수가 없을 듯하다.
자신도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역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왜 김동현은 여전히 강수혁에 집착하는 것일까?
정차장 때문이다.
정 차장은 매번 기회있을 때마다 자신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 차장은 앞으로의 출세가도에서도 자신의 강력한 뒷배이자 비빌 언덕이었는데,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만든 게 그 녀석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지 녀석을 족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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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던 차에 기회가 왔다.
정민규 차장 후임이 공석이었는데, 새로 전재민 차장이 부임하게 되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상당히 귀가 얇은 인물로 보수 꼴통 수준에 가깝다.
정민규 차장처럼 돈도 상당히 밝히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대단히 민감한 사람이다.
2차장실은 국내 정보 수집과 대테러, 방첩 활동을 담당한다.
1차장실이 대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과 대비된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맘만 먹으면, 내부의 국가 안보와 관련된 주요 사건, 단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국가 안보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특정 인물을 추적하고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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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전재민 차장은 사실 예전에 불법 무기도입 스캔들과 관련한 박정태 장군이나 이승철 국방부 차관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눈치껏 지원하며 차명계좌로 200억 넘게 챙겼었다.
하마터면 자신도 들통날 뻔했는데, 국정원이라는 그늘막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덮을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로 몸을 사리며 절치부심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민규 차장이 심장마비로 가버리는 바람에 자신이 난데없이 이득을 보는 결과가 되었다.
정민규도 참 이상한 놈이었다.
그렇게 욕심 많은 녀석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가버리다니 말이다.
자신과 성정이 비슷해서 그런대로 죽이 잘 맞았는데, 대현그룹과 관련하여 독식을 하려는 바람에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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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본부 2차장실.
커튼이 쳐진 창가 너머로 희미한 조명이 비쳐 들어오는 가운데, 전재민 차장은 넓은 책상 너머로 서류를 하나씩 넘기고 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정민규 차장의 측근이라 알고 있는 김동현이 들어온다.
김동현은 문을 닫고 신중한 발걸음으로 다가가며 전재민에게 공손히 인사한다.
“음, 무슨 일인가?”
“차장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최근 수사 중에 새로운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강수혁이라는 사람입니다.”
전재민 차장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강수혁이라... 그게 누구지?”
김동현은 자리 앞에 놓인 서류를 꺼내며 강수혁의 최근 자산 변동 내역을 보여준다.
“여기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최근 강수혁과 관련된 자산이 상당히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합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대현그룹과 관련된 여러 루머도 있고요. 저희 쪽 정보로는 최근 몇 개월 동안 숨겨진 자금을 모은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전재민 차장은 서류를 대충 훑어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눈빛이 호기심과 탐욕으로 번뜩인다.
“음... 정황이 확실한가? 그렇다면 꽤 흥미로운 녀석이군.”
김동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차장님, 강수혁이라는 인물은 대현그룹에 근무했던 강철수 이사의 아들입니다. 강도에게 와이프와 함께 살해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해외 어디선가 오랜 기간동안 떠돌던 강수혁이 나타난 시점부터 대현그룹이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너 일가족이 차례로 모조리 죽었습니다. 이걸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합니다. 강수혁의 자산이 늘어난 이유와 그 돈이 어디서 온 것인지 밝혀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어떤 괴물이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전재민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댄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톡~ 톡~ 톡~
손가락을 천천히 탁자 위에서 두드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녀석을 잡아들여 심문해야 한다는 건가?”
“네, 차장님. 자산의 출처와, 대현그룹과 관련되거나 숨기고 있는 비밀을 털어놓게 해야 합니다. 녀석을 족치더라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안으로 포장할 수 있습니다. 차장님 권한으로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전재민은 김동현의 말을 들으며 흥미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듣고 보니 이상한데?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구만.”
정민규 차장과 비슷하게 전재민 역시 누구보다도 돈과 권력을 좋아한다.
강수혁이 숨겨 놓은 자산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좋아, 김동현. 네 말에 일리가 있구나. 국정원이 움직일 명분은 충분한 거로 보인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자를 추적하고 제거하는 건 우리 의무니까. 그 자산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분명하게 밝혀내야 할 테고 말이야.”
전재민은 서류를 탁 덮으며 김동현을 탐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김동현, 이제 정차장도 죽었겠다, 내게 충성하는 게 어때? 이번 건을 계기로 말이야.”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받아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이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깊이 숙이는 김동현을 전재민이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오케이!! 녀석을 잡아들일 작전을 철저히 준비해라. 내가 직접 움직일 수는 없으니, 너와 팀원들이 나서서 강수혁이라는 놈을 확실히 잡아들이고, 모든 것을 털어놓게 해봐. 그리고··· 녀석의 숨겨진 자산을 추적해서 빼앗을 방법도 강구해 보기 바란다.”
“예, 차장님. 철저히 조사하고, 확실하게 잡아들이겠습니다.”
전재민은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야망과 탐욕이 간만에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
회의실을 나서는 김동현의 발걸음은 보무도 당당하다.
자신의 구상대로 전재민은 미끼를 물었다.
상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약점을 찔러 들어가, 자신의 입지를 다질 기회를 잡은 것이다.
강수혁이라는 이름은 이제,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
김동현은 강수혁을 납치하기 위해 팀원 4명과 함께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다.
SH글로벌 본사에 배치된 20여 명의 특수부대 출신 경호 인력을 확인한 후, 그곳에서의 급습은 무모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경호 인력은 훈련된 전문가들이고, 본사 내부의 보안 시스템 역시 견고하다.
김동현은 강수혁의 일정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퇴근 후 집으로 가는 시간을 노리기로 결정했다.
김동현은 팀원들 4명과 함께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검은색 승합차를 준비했다.
차량에는 납치 도구인 검은 천과 밧줄과 마취제 등이 실려 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서야 강수혁이 본사에서 나온다.
“아~오, 피곤해. 하루종일 기다렸는데, 빌어먹을 자식이 이제서야 나오네.”
김동현과 팀원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조용히 강수혁의 뒤를 따랐다.
김동현은 이어폰을 통해 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강수혁은 회사에서 집으로 가지 않고, 사직공원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팀원들이 놀란 듯 김동현을 쳐다보자, 김동현은 즉시 계획을 수정했다.
“계획 변경이다. 공원으로 들어간다. 사직공원 쪽에서 바로 처리한다.”
김동현은 팀원에게 조용히 승합차를 이동시키게 하고, 공원 근처의 어두운 골목에 차량을 대기시키도록 했다.
공원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한적했다.
김동현의 시선은 강수혁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강수혁이 공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김동현과 팀원들은 천천히 따라갔다.
공원 가로등은 희미한 빛을 비추고 있고, 강수혁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혼자 걸어가고 있다.
김동현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며, 팀원들에게 행동을 지시했다.
팀원들이 소리를 죽이고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강수혁이 공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며, 어두운 가로등 아래 멈춰 서는 순간, 김동현과 팀원들은 신속하게 뛰쳐나왔다.
순식간에 강수혁을 덮쳐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으려 했다.
김동현은 팀원들과 함께 강수혁이 저항할 시간도 주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때, 강수혁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며 팀원들의 손을 뿌리쳤다.
강수혁이 침착하게 대응하며 반격의 자세를 취했다.
김동현은 당혹감에 순간 멈칫했지만, 재빠르게 강수혁에게 다가가며 제압하려 했다.
“순순히 따라오지? 그렇지 않으면 피를 보게 될 건데?”
“경찰도 아니고, 검찰도 아니면, 누구실까? 왜 날 납치하려는 거야?”
“납치? 납치는 무슨 납치야. 좋은 말로 할 때 같이 가서 조사 좀 받자는데.”
“조사하려면 낮에 회사로 와서 체포하면 되지 않아? 왜 야심한 시각에 5명이 몰려와서 날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걸까?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거 아냐?”
“개소리 하지 말고 얌전히 가자. 이거 칼 안보여? 칼침 맞기 싫으면 조용히 가자고.”
“아, 그래? 5명이 비겁하게 말이야. 어디 해볼 테면 해봐. 간만에 한판 붙으며 몸 좀 풀까?”
“이런 개새끼가, 끝까지 말이 많네···?!”
사직공원 깊숙한 곳.
공원의 가로등은 희미하게 깜빡이며, 주변을 어둡게 비추고 있다.
김동현과 팀원들 4명이 강수혁을 둘러쌌다.
손에는 제각각 번뜩이는 칼이 들려 있고, 긴장된 공기는 고요함 속에 점점 더 짙어진다.
강수혁은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자신의 몸을 공격과 방어의 중심에 두었다.
눈빛은 차분하고 흔들림이 없다.
슉! 쉬~욱~! 슉!
5명이서 수혁을 향해 칼을 휘두른다.
수혁은 상대방의 위치와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피며, 공격의 빈틈을 찾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 꾸~욱~!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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