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화: 자중지란

"어? 이거 왜 이래? 말도 안 돼. 내 계좌에 있던 4천만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졌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며)
"여기, 이게 마지막 거래 기록인데, 내 돈이 전부 다른 해외 계좌로 빠져나갔어."
"진짜야? 어? 내 꺼도 봐야겠는데? ··· 빌어먹을, 내 계좌에서도 2천만 달러가 사라졌어.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내가 직접 보안 시스템을 설계했는데··· 어떻게 가능하지?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구도 이런 해킹은 못해. 팀 안에 누군가 배신자가 있나?"
투다다다닥~!
"뭐? 제기랄, 우리들 꺼도 사라졌는데? 잠깐만, 너 지금 팀원 중 누가 우리 계좌를 털었다는 거야? 그럴리가 없어!"
(의심스럽게 타일러를 바라보며)
"아니, 너라면 가능한 거 아냐? 네가 해킹 전문가니까. 네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
"나라고? 미쳤어? 내가 왜 우리 팀의 돈을 털어? 내 계좌에서도 돈이 빠져나갔다고! 나도 피해자야!"
"잠깐만!!! 타일러 말이 맞아. 우리 모두 당한 것 같아. 이건 외부에서 침투한 공격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우리 중 누군가가 그 외부와 연결된 거라면."
“그만 둘러댈 필요 없어!! 이건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야.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 한 명일 거라고. 누군가가 배신한 거지. 내 생각에 기술 가진 타일러 너밖에 없어."
"진짜 웃기는군. 그런 식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면, 여기 있는 우리 모두 수작 부릴 동기가 충분하지. 돈 싫어하는 놈 있어? 잭, 너도 마찬가지야!!"
"이게 죽고 싶어 환장했나? 내 돈이 4천만 달러나 사라졌는데, 타일러! 이건 모두의 문제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흥, 타일러도 아니고 잭도 아니라면,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지? 에디, 넌 어떻게 생각해?"
"음···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지만, 지금 서로를 의심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해. 돈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누가 우리를 해킹했는지를 찾아내는 게 먼저 아냐?"
"그래, 외부 해킹이라면 왜 하필 지금이지? 왜 우리 전부를 털어? 누군가가 우리를 일부러 혼란에 빠뜨리려는 거야. 누군가 우리 내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게 아니라면 이런 타이밍에 이런 일은 불가능해."
"말은 쉽지, 타일러.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이상, 우린 더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이건 그냥 돈 문제 이상이야. 신뢰의 문제지."
(잭이 타일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리고 지금 난 그 신뢰가 깨졌다고 생각해."
"잭, 잠깐만, 냉정해지자고. 상황 파악부터 하자. 에디 말대로 내가 우선 추적을 해볼께."
투다다다다다다닥! 타다다다다닥~!!
"찾았어. 이거,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어이가 없는 일이 발생했군. 우리 계좌에서 빠져나간 자금 중 일부가 이중민이라는 녀석이 사용하는 차명 계좌로 입금됐어. 이중민 이 녀석, 우리에게 이번에 강수혁 죽이라고 청부한 한국 브로커 아니야? 이 자식이 왜 이런 짓을 하지?"
"정말이야? 이중민이 사용하는 차명 계좌로 들어가?"
"그렇다니까. 계좌를 추적하다 보니 녀석의 정체가 이렇게 드러났어. 그러면, 이 자식이 우리한테 일부러 강수혁이란 놈을 제거하라고 청부를 하고, 동시에 우리 차명 계좌를 알아낸 후, 자금을 빼돌린 거 아냐?"
"그 놈이 돈을 빼돌리기 위해 우릴 속였다는 거야? 젠장! 그러면, 이제 우리가 처리해야 할 놈은 강수혁이 아니라 그 녀석 아냐?!"
"그렇다면 이중민이 우리를 완벽하게 이중으로 이용한 거네. 우리를 강수혁이라는 강적에게 보내서 일부러 당하게 하고, 뒤에서 우리 자금을 다 털어가는 식으로 말이야."
“제기랄, 그런 줄도 모르고 엉뚱한 짓만 하고 있었군.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나네. 이럴게 아니라 이중민이란 놈을 잡아야 해. 우리가 그걸 얼마나 힘들게 모은 돈인데··· 피같은 돈을 빼돌리다니···"
"이거봐. 이미 여러 군데로 자금을 흩어 놓았어. 중국, 홍콩, 그리고 암호화폐로도 자산을 변환시킨 흔적이 보여. 녀석을 추적할 방법을 찾아야 해."
"하!! 씨팔!! 이 새끼가 강수혁과 관련된 정보를 줬을 때부터 뭔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돈을 되찾으려면 그 놈부터 먼저 찾자."
“잠깐만 기다려봐. 일단 다른 흔적이 있나 자금 추적을 더 해보자.”
“추가로 추적하는 게 가능해?
“응. 여기 보면 허점이 조금 있어. 이걸 찾아서 따라 가보자고··· 그러면··· 너는 누구냐? 최도경? 최도경이란 인간도 나오는데? 이건 최도경이 사용하는 차명 계좌로 연결된다.”
“응? 그 녀석은 이중민이란 브로커와 연결된 놈인데? 그 녀석이 강수혁을 죽이라고 이중민이랑 계약한 인간 아냐?”
“어? 그렇네. 맞아. 이중민이 말했지. 예전에 유명 정치인이었고, 지금은 감옥에 들어가 있다고 했어.”
“오호라, 그럼 이중민과 최도경이 짜고 우릴 물 먹인 거네?”
“이제 그림이 맞춰졌네. 강수혁이란 미끼를 내걸고 우리를 유인해서 자금을 빼돌린 후, 지들이 나눠 먹는 구조로구나.”
“이야, 이런 식으로 우리가 사기를 당할 줄이야. 정말 어이가 없네.”
“근데, 이 녀석들은 우리가 탑티어 청부업자들인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배짱 좋은 짓거리를 할 수 있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 녀석들이 돈에 눈독을 들인 거겠지. 돈을 중심으로 해석하면, 모든 게 이해가 되잖아?”
“하긴, 4명 꺼를 합치면 1억불이나 되니, 큰 돈이긴 하지.”
“그나저나 이것들을 어떻게 갈아 먹어버리지? 열 받아서 그냥 못 있겠는데 말이야.”
“일단 이중민이란 놈부터 잡아서 족쳐야지. 그리고 최도경 녀석도 작살 내버리자.”
“최도경은 감옥에 있다는데, 어떻게 작살을 내나?”
“돈으로 안되는 게 어딨어? 방법이야 만들면 되는 건데.”
“오케이, 이중민 먼저 조지러 가자.”
**
청담동 고급 자택.
이중민이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 소파에 질펀하게 앉아 있다.
술잔을 손에 쥔 채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20대 초반의 어여쁜 두 여인과 번갈아가며 물고 빠는 중이다.
그 순간, 갑자기 거실 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이중민은 여전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시시덕거리고 있다.
"오빠, 더 마실래?"
"하하, 오케이. 오늘 끝까지 달려보자고."
바로 그때, 거실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검은 복장의 인물들이 소리 없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델타 블랙팀이었다.
단 한 마디도 없이 그들은 여자들에게 다가가 단번에 기절시켰다.
그 순간의 정적은 오히려 섬뜩했다.
이중민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잭 모리슨이 순식간에 다가와 녀석을 거칠게 소파에 눕혔다.
"뭐, 뭐야! 누구야!"
이중민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잭 모리슨은 냉정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조용히 해."
퍽! 빡! 억! 으~헉!
이중민의 턱을 주먹으로 연이어 강타했다.
이중민은 무방비 상태로 맞으며 고통스러워 비틀거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세 번째, 네 번째 주먹이 이어졌다.
"우리가 누군지 알겠지? 우리가 왜 여기 온 줄 알아?"
이중민은 얼굴에 피를 흘리며 겨우 입을 떼었다.
"무, 무슨 소리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몰라. 정말 몰라."
마이크 로건이 멱살을 거칠게 잡아 들어올리며 비꼬듯 말했다.
"모른다고? 우리 돈 어딨어?! 빨리 말해. 네가 빼돌린 거 다 알고 왔다. 돈 어딨는지 말해!!!"
이중민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제발··· 그런 돈 없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믿어줘···."
"거짓말하지 마,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군."
퍽! 빡! 억! 으~헉!
에디 브루크스가 한숨을 내쉬며 이중민의 얼굴을 다시 강타했다.
"우린 거짓말쟁이를 아주 싫어해. 마지막 기회다. 돈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정말이야··· 제발 믿어줘. 나 그런 거 모른다고."
이중민이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바라본다.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렸다.
잭 모리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작은 칼을 꺼내들었다.
"좋아, 끝까지 뻔뻔하게 나오는군. 그럼, 어디 얼마나 견디나 한 번 보자."
타일러 케인이 이중민의 손을 붙잡아 테이블 위에 놓고,
입을 틀어막는다.
콱! 부~욱! 끄~아~아~악!!!
잭이 이중민의 손등을 그대로 찍어 끝으로 긁어내려버렸다.
녀석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막힌 입에서 나지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읍~ 읍, 아, 제발! 돈 줄께! 어, 얼마를 원하는 거냐?!"
“얼마를 원하냐고? 우리 네명꺼 합쳐서 1억불이나 가져갔으면서, 새삼 금액은 왜 물어?”
“뭐, 1억불? 아니, 그, 그런 돈을 내가 어떻게 너희 같은 실력자들에게서 훔쳤다는 거지?”
“네가 최도경이란 녀석과 짜고 강수혁을 죽이라고 청부하면서, 우리 계좌에서 돈을 빼돌린 거 알고 있다니까?!!!”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돼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난 그런 해킹 실력도 없는데.”
“그걸 네가 직접 했겠어? 전문가를 고용해서 했겠지. 네 차명 계좌에 우리 돈이 흘러들어간걸 확인했다고. 지금 당장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넌 오늘밤 죽은 목숨이야.”
“내 차명계좌? 정말이야? 그 말을 믿질 못하겠다. 내가 확인하게 해줘.”
“하, 이 새끼가 끝까지 잔머리를 쓰네. 말로는 안 되겠어. 이 자식 다시 잡아.”
콱! 부~욱! 끄~~아~악!!!
이번에는 다른 손등을 찍어 부욱 그어내려버린다.
아까보다 더한 고통이 밀려든다.
“으헝~! 엉! 제발··· 제발 살려줘. 알았어. 돈을 줄께. 내 차명계좌들에서 다시 너희들에게 이체할께.”
“흐흐.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진작에 그럴 것이지.”
“저기 내 PC로 내가 불러주는 은행과 계좌 비밀번호를 쳐줘. 그리고 이체하면 될거야. 근데, 모두 합쳐봐야 5천만불 밖에 안될거야. 내가 가진 게 그게 전부야.”
“뭐? 5천만불? 이게 진짜 장난하냐? 타일러, 빨리 확인해봐.”
“응, 알았어. 잠깐만.”
타다다다다다닥! 투다다다다다닥!
“어? 정말이네? 계좌들 합치면, 우리 돈 천만불까지 해서 6천만불이야. 일단 이거라도 이체를 할께.”
“오케이. 야, 나머지 돈은 어딨어? 최도경 계좌에 있나?”
“응? 최도경?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억, 아니, 아니다. 틀림없이 그 사람에게 있을 거야.”
“음··· 알았다. 네 역할은 여기까지. 이제 보내줄께.”
“엥? 왜, 왜 그래? 모두 말 했잖아. 살려줘~!”
갑자기 뒤에서 마이크 로건이 밧줄을 꺼내
목을 졸라버렸다.
억! 어~억! 흡~ 흐~읍!
이중민이 소파에서 발버둥을 치다 그대로 추~욱 늘어진다.
“이것들은 모두 필로폰 투약하고 자살로 위장해. 그리고, 타일러. 법무부 해킹해서 최도경이 법정 스케줄 확인해봐. 언제 재판에 출석하는지, 이동 경로는 어떤지 말이야.”
“오케이, 알았어. 마이크, 네가 트럭 대포차량 하나 구해줄래? 그걸로 사고를 가장하고, 그 틈에 SUV로 작업을 하자.”
“이야, 간만에 교도소 차량을 털어 보네. 기대된다, 하하하.”
- 작가의말
벌써 12월말이군요. 독자 여러분, 한 해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추천과 선작 꾸~욱~!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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