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화: 남태평양

SH글로벌에서 여러 사람이 이거에 대해 회의를 하긴 했지만, 수혁은 고민이었다.
【 남태평양 사모아섬 인근 서쪽으로 20킬로미터 작은 섬 휴양지 빌라입니다. 】
회의 중에 GPS 홀로그램이 나타나고,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진우 패거리들이 가로챈 돈은 수혁이 비자금 식으로 탈취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그건 투자자들의 돈이다.
그렇다고, 수혁이 온갖 사회 정의를 구현하며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서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다.
그걸 자처할 마음도 없다.
단지, 일종의 케바케로 정의가 실현되는 건, 악질적이고 나쁜 놈들만 골라 때리는 데서 나오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수혁의 마음 속에서 이번 사기 사건은 약간 이상한 느낌이었다.
자금을 탈취해서 비자금 식으로 처리하자니 투자자들이 걸리고,
그걸 모두 투자자들에게 돌려주자니,
자기가 무슨 배트맨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돌려준단 말인가?
쪽팔리게 ‘자금을 모두 회수한 사람이 접니다’라고 오픈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박성수 지부장이 연락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조건이면, 찝찝함도 덜하고 괜찮은 수준이다.
제로와 제임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같이 남태평양으로 놀러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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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수혁 덕분에 남태평양 섬도 가보고, 정말 좋다, 그지?”
“하하. 좋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 가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놀러 가서 좋은 일도 하고 겸사겸사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가? 그렇게 받아들여주니, 고맙다. 그 녀석들이 격투 같은 거는 하지 않는 평범한 사기꾼들이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평범한 사기꾼이요? 5조원 해먹은 놈들이 무슨 평범한 놈들입니까? 대단한 놈들이죠.”
“하긴, 금액이 좀 크긴 하구나. 하여튼 다른 작전에서보다는 느긋하게 하자고.”
남태평양 사모아섬 인근, 서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
해가 저물어가며 섬 전체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해변 리조트의 고요와 아름다움이 황혼 속으로 흐른다.
수혁과 제로와 제임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멀리서 작은 배를 타고 섬으로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멀리 눈앞에 송진우와 패거리가 자리 잡고 있는 호화로운 해변 빌라가 보인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파도를 가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철~썩~ 처~얼~썩~
해변가에는 빌라의 불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한적한 파도 소리만이 들려온다.
바다의 은밀한 검은빛과 달빛에 녀석들의 실루엣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수혁은 침착하게 망원경을 들고 빌라 쪽을 주시했다.
빌라 안에서는 송진우와 패거리들이 술 마시면서 낄낄거리며 노닥거리고 있다.
아주 그냥, 세상 다 가진 표정들이다.
왜 아니겠어?
5조원이나 되는 자금이 있으니, 재벌 부럽지 않겠지.
좋을 때, 많이 즐기기 바란다.
송진우는 패거리들과 편안한 선베드에 누워서,
다가오는 위기를 모른 채 웃고 있다.
수혁은 짧게 제로와 제임스를 돌아보며, 준비 상태를 확인했다.
제로는 컴팩트한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가볍게 손으로 돌리고 있고,
제임스는 칼날에 빛이 반사되는 나이프를 지니고 있다.
세 사람의 표정은 차가운 결의로 굳어 있···다기보다는,
어딘가 리조트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 같은 심드렁한 표정이다.
섬에 도착한 순간,
세 사람은 자세를 낮게 유지하며 작은 배를 보이지 않게 해변가에 정박했다.
수혁이 앞장서서 은밀히 빌라 쪽으로 다가갔고,
해변과 나무들 사이로 몸을 낮춘 채 빠르게 움직였다.
발소리는 모래에 묻혀 들리지 않고,
어둠 속에서의 움직임은 마치 그림자처럼 은밀하다.
빌라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경비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빌라는 단독으로 지어져 있어,
주변과는 단절된 채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다.
송진우와 패거리들이 큰돈을 빼돌린 이후,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일부 경비원을 배치해 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없다.
이런 작은 섬에 침입자가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듯하다.
수혁은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제로와 제임스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빌라의 사각 지대에 위치했다.
제임스는 날렵하게 벽을 타고 올라가 빌라의 테라스에 접근했다.
드디어 수혁이 송진우와 패거리가 있는 빌라의 메인 라운지를 향해 다가갔다.
녀석들은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고 여전히 태평하게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중이다.
그때, 수혁이 조용히 손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제로와 제임스가 동시에 빌라의 출입구를 봉쇄했다.
불빛이 가득한 라운지 한가운데에 모여 있는 녀석들 주위로,
수혁과 동료들이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송진우가 무심코 뒤돌아본 순간,
어둠 속에서 보이는 수혁의 차가운 눈빛이 응시하고 있다.
털썩! 챙~그~랑~!!
술잔이 녀석의 손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깨졌고,
빌라 내부는 일순간 고요해졌다.
수혁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서려 있다.
송진우 패거리들은
세명이 총을 들고 자신들을 둘러싼 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꿈에 젖어 있었는데.
순식간에 공포감이 퍼져, 혼란과 두려움으로 얼어붙었다.
당황하며 뒷걸음질친 송진우,
"뭐··· 뭐야? 너희들 대체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젠장, 송진우 대표님! 어떻게 된 겁니까? 계획이 완벽하다면서··· 씨팔, 대체 이게 뭐냐고!!!"
수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직도 비현실이라 생각하는 녀석도 있다.
"저 자식 누구야? 왜 총을 들고 있는 거야?”
”우리··· 우리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야?"
"어디로 도망치려고? 둘러보니까 아무도 없던데. 이야, 진짜 여기 좋다. 섬에선 아무도 너희를 구해줄 사람이 없겠던데? 송진우, 우리가 온 이유, 알고 있지? 빼돌린 돈, 다 회수하러 왔다."
"잠깐, 잠깐! 우리 얘기 좀 하자. 내가 가진 걸 반 줄 테니까, 우리 이대로 서로 각자 갈 길을 가자고!"
하지만, 비현실적인 녀석은 아직 현타가 오지 않은 모양이다.
"뭐? 반이나 준다고? 미친 거 아냐? 설마 총으로 우릴 죽이기야 하겠··· 억! 으~헉!"
푸슉! 푸슉! 철푸덕!
헛소리를 지껄이다 한방에 훅 갔다.
"어디서 함부로 지껄이고 지랄이야?”
"허~걱! 살려주세요!! 우린 그냥 송진우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게 없었다고요!!!"
"그럼 너희도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들이란 건가? 재밌네. 엉뚱한 소리하지 말고 너희들 죗값은 직접 치러야지?"
"선생님들!!! 당신들도 돈이 필요할 거 아닙니까! 우린 천억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진, 다 가져가세요. 여기서 끝내자고요!!”
"이야, 태세전환 오지네? 그런 와중에도 천억을 챙기려는 잔머리를 쓰다니 말이야."
순간 송진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공포에 질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동료들을 돌아보았고,
패거리들은 모두 총구 앞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어이, 송진우. 이러지 말고 금고에 가서 차명 계좌랑 비번이랑 모조리 가져와. 시간 끌면 끌수록 손해야. 사실 너희들 없어도 금고 열고 자금 가져갈 수도 있는데, 귀찮아서 말이지.”
“네? 금고요? 아니, 금고는 없는데요?”
“어쭈, 이것 봐라. 버팅기네? 아, 금고가 없으세요? 저기 빌라 2층 벽장 속에 있는 건 금고가 아니고 그냥 사각형 쇳덩어리인가?”
“어? 그, 그걸 어찌 알고 있어···요?”
푸슉! 푸슉! 끄~아~아~악!
총알이 송진우의 무릎을 관통해 버린다.
“자, 이건 당신이 거짓말한 거에 대한 몫이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네가 금고에 갔다 올래?”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수혁이 제로를 보고 눈짓을 보낸다.
제로가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수혁이 제임스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2층에 올라가서 모든 계좌 작업 끝내버려. 합계 금액 알려주고.”
“네, 알겠습니다.”
2층에서 계좌 이체 작업을 하는 사이,
라운지에서 엉뚱한 일이 일어났다.
수혁이 심드렁하게 쇼파에 앉아서 맥주를 한잔하고 있을 때였다.
한놈은 총맞고 죽었고,
송진우는 양 무릎을 관통 당해 쓰러진 채로 고통스러워
미친놈처럼 끅끅거리며 손수건을 꺼내 지혈하고 있는 중이었다.
건장한 체격의 패거리 한놈이
바로 옆에 있는 다른 녀석에게 눈짓을 한 것이다.
어차피 둘 밖에 없었다.
둘이서 잘만 하면···
저놈 하나쯤은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되면 총을 빼앗아 녀석을 없애 버리고,
2층으로 올라가 두놈을 쏴버리기만 하면 게임 오버다.
오히려, 한놈이 죽었으니 분배몫은 늘어난다.
아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송진우도 죽여버리자.
그러면 배분이 점점 커진다.
눈빛으로 교환하는 의미 속에 이런 모든 걸 담았다.
정말 대단한 콜라보 아닌가?
눈치 못 채게 살짝 두리번거리니,
바로 옆에 마침 쇠꼬챙이가 세워져 있다.
오케이, 저거만 잡으면 저 녀석 하나쯤이야···
삽시간에 쇠꼬챙이를 잡아 녀석을 찔러버리려던 찰라의 순간,
녀석이 자신을 보고 씨~익 웃는다.
뭐지?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지?
생각하는 바로 그 타이밍에 수혁이 살짝 비켜나며 피해버린다.
우지끈~ 콰~앙! 우당탕탕~!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놈이 넘어지며 나뒹군다.
바로 옆에서 다른 놈이 수혁을 공격해 들어온다.
어쭈구리, 이것들이 매를 버네?
퍽~ 퍼벅~!! 퍽! 퍽! 퍽! 빠각~!!!
머리를 집중적으로 강타한다.
주먹이 아니라, 권총을 돌려잡아 때리고 있다.
퍽~ 퍼벅~!! 퍽! 퍽! 퍽! 빠각~!!!
끄~아~아~악!
피작살이 나버렸다.
“악~! 아~악! 그만! 그만 때려!!! 그만 하라고 이 씨팔 새끼야~!!”
“어쭈, 말이 점점 더 심해지네?”
퍽~ 퍼벅~!! 퍽! 퍽! 퍽! 빠각~!!!
아~아~악! 악!
“그만 하세요!! 잘못했어요!! 제발이요!! 끄~윽, 제발 그만 때려주~”
피투성이가 된 채 머리를 감싸 안으며 바닥을 뒹구는 두 놈.
어? 기절해 버렸나?
참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놈들이다.
그때, 2층에서 3명이 내려온다.
“어때? 금액 합계는?”
“음, 다행히 대부분 있네. 처음에 이자로 지급했던 거 말고는 그대로 있어. 오히려 이자가 늘어나서 5조 2천억 정도야.”
“돈 빼돌리느라 쓸 시간도 없었군. 이제 맘놓고 쓸려고 하는데 우리가 들이닥친 거고. 하하하.”
“그런 거 같아. 이 돈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응, 내가 받아 놓은 계좌가 있어. 거기로 분산해서 차명으로 송금을 하면 될거야. 추적이 안되게만 하면 되겠지. 4조 7천억을 보내··· 아니다. 5조원을 보내고 2천억만 수수료로 우리가 먹는 걸로 하지, 뭐.”
“흐흐, 그게 좋겠지? KCIA에 빚을 남겨 놓으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그래, 그게 좋겠어.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하지?”
“너무 간단히 죽여버리면 재미가 없자나. 돈도 하나 없는데, 하반신 마비로 만들어야 인생이 의미 있고 재미있지 않을까?”
“음··· 그래도 제로가 자비로운 사람이구나. 알았어.”
푸슉~ 푸슉~ 끄악~!
푸슉~ 푸슉~ 어~억!
푸슉~ 푸슉~ 으~악!
세 놈을 추가로 하반신 마비로 만들려니, 총알이 여섯발이나 들어가네.
“여기서부터 살아가는 거는 이제 너희 몫이다. 목숨은 살려줄 테니, 섬에서 재밌게 살기 바란다. 바이~바이~”
- 작가의말
오늘도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추천과 선작 꾸~욱~!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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