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화: 탈출

수혁과 제로, 제임스는 사모아 섬에 도착했다.
남태평양의 햇살이 사모아 해변을 부드럽게 감싸고,
하얀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친 세 사람이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
해변 가까이에 있는 럭셔리 리조트에 머물며,
삼 일간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수혁은 새파란 바다와 멀리 보이는 열대 섬들을 감상하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바람은 부드럽게 야자수 잎을 흔들어대며 평화로운 파도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첫날 오전, 세 사람은 리조트의 전용 해변에 자리를 잡고 각자 선베드에 몸을 누였다.
파도 소리와 바람에 섞인 새들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마치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듯한 여유로움 속에 푹 빠졌다.
제로는 손에 들린 과일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제임스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아무 걱정도 없는 휴식의 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있다.
둘째 날 저녁,
선셋 크루즈를 타고 사모아의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했다.
해가 서서히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며 하늘이 붉게 물들고,
바다는 황금빛으로 빛난다.
수혁은 석양이 비친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여정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로와 제임스도 마찬가지로 석양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크루즈 갑판 위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해준다.
마지막 날 아침,
사모아 섬 밀림 속에서 자연 온천을 즐기며 지친 몸을 풀었다.
온천수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신비로운 연무를 연출한다.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빛줄기가 온천 주변을 밝게 비추고,
열대 나무의 짙은 초록빛이 생기를 더해준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피로를 씻어내고,
섬의 일부가 된 듯 평온한 기분을 만끽했다.
사모아 섬에서의 삼일, 완벽한 휴식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부신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시금 새롭게 다가올 여정을 준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
수혁이 귀국하자, 언론에서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펀드 자금이 전액 회수되어 투자자들에게 무사히 돌아갔다는 것.
금융 당국이 급히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해 국정원과 CIA의 협력을 통해
모든 자금이 회수되었음을 공식 발표했다.
다만 이번 회수 작전의 구체적인 사항은 기밀로 분류되어
더 이상 공개할 수 없다는 짤막한 논평만 덧붙였다.
이 소식이 퍼지자, 투자자들은 일제히 열광하며 환영의 뜻을 인터넷에 쏟아냈다.
‘믿을 수 없는 기적’,
‘투자금을 되찾아줘서 감사하다’,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메시지들이 쏟아져 나오며,
인터넷과 SNS는 감사의 물결로 가득 찼다.
일부 투자자들은 단체로 감사 성명까지 발표하며,
이번 사태가 상상도 못한 쾌거라고 찬사를 보냈다.
언론에서는 국정원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국민들로부터 칭찬받은 사례라고 하며,
이제서야 본연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거액의 금융 자금을 해외에서 전액 회수한 사례라며,
그 역사적 의의와 의미를 크게 보도했다.
국가 안보 기관과 외국 정보기관인 CIA의 협력이 이뤄졌다는 사실에 국민들도 크게 놀라면서 감격해했고,
국정원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처음으로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를 넘어,
한국의 정보기관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계기로 기록되었다.
**
문제는 형진그룹과 박명진 부회장.
투자금이 전액 회수되었다 하여 그룹과 박명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책임이 무겁다는 여론이 대다수였지만,
투자금의 전액 회수는 사람들의 관심을 형진그룹에서 떼어 놓는 효과가 발생했다.
그렇다 보니, 박명진은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가 되었다.
“캬, 역시 우리 그룹을 하늘이 돕는구나, 그렇지 않아, 안 실장?”
“네, 맞습니다, 부회장님. 이게 모두 부회장님 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가 있겠어. 준혁이 녀석은 아직 그곳에 잘 처박혀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거기는 워낙 외딴 곳이라 혼자서 살아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래, 이제는 나의 독주 체제만 안정적으로 구축하면 되겠군. 사건도 대충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사기 사건이 마무리되는 상황을 봐서, 6개월 정도 뒤에는 회장 타이틀을 다는 걸로 하시지요.”
“그래도 되겠지? 감히 누가 날 방해할 거야?”
**
어느 날 밤, 미국 오지의 외딴 정신병원에 비밀스럽게 접근하는 한 인물의 그림자.
몇 년 전 형진그룹 차남 박준혁의 수행비서였던 이수민 과장이다.
형진그룹 박재동 회장의 부인이자 박명진과 박재혁의 모친, 이선화 여사의 심복이다.
이선화 여사는 장남인 박명진보다
막내인 박재혁을 더 아끼고 사랑한다.
박명진의 욕심이 너무 많아 언젠가 승계 과정에서
재혁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살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렇게도 착하던 막내가 마약에 중독되어 살더니,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서 행방불명되어 버렸다.
박명진과 안민기 비서실장의 눈치를 보아하니,
둘이서 뭔가를 꾸민 눈치였다.
여사는 그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아주 은밀하게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황당한 내용을 발견하게 된 여사는 충격에 휩싸였다.
재혁이를 마약에 중독되게 한 장본인이 장남인 명진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재혁이가 미국에서 갑자기 행방불명된 것도
명진이 짓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수민 과장에게,
재혁이 사라진 지점부터 추적을 해서
행방을 반드시 알아내 찾아오라 부탁했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이수민 과장이
사냥개와 함께 추적한 끝에 드디어
박재혁이 갇힌 오지의 정신 병원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이수민은 철저한 탈출 계획을 세웠다.
탈출을 돕기 위해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들을 고용해 함께 작전을 준비했다.
조사해 보니, 오지의 정신병원은 외양상으로만 정신병원일뿐,
사실상 감옥이나 마찬가지 시설이었다.
뭔가 특수 목적을 위한 감금 시설임에 틀림없었다.
무장한 경비인력들도 많고,
보안시스템도 철저해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
···
어둠이 짙게 깔린 심야,
이수민과 특수팀은 정신병원 근처 숲 속에 차를 세우고 장비를 정비했다.
모두들 복면에 검은 방탄복과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
그리고 여러 가지 특수 장비를 착용한 이들은
조용히 병원 주변을 둘러싼 철조망을 넘었다.
몇 명의 경비들이 병원 외곽을 돌고 있었지만,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팀원들은 경비가 눈치채기도 전에 기절시켰다.
병원 건물로 접근한 이수민은
미리 준비한 가짜 신분증과 병원 직원의 아이디 카드를 사용해 후문으로 잠입했다.
팀은 미리 얻은 병원의 구조도를 이용해,
환자가 감금된 지하층으로 향했다.
병원 안은 섬뜩한 정적이 감돌고,
벽에는 오래된 페인트가 벗겨진 흔적이 있다.
소리 없이 걸으며 박준혁이 있는 방을 찾았다.
마침내 지하의 한 감금실에 도착했다.
이수민은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몇 달째 외부와 단절된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박준혁이 있었다.
초췌해진 얼굴과 멍한 눈빛···
그동안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수민은 복면을 살짝 내리고,
박준혁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속삭였다.
“실장님, 이제 곧 나가실 겁니다. 이선화 여사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박준혁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희망이 보이는 듯한 흐릿한 미소가 떠오르면서도 울컥하는 듯한 표정이다.
이수민은 신속하게 박준혁을 부축해 일으키고, 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팀원들은 벽에 붙어 천천히 걸으며,
방아쇠에 손을 얹고 긴장된 침묵 속에 이동했다.
복도 반대편에서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팀원 중 한 명이 신속하게 벽에 몸을 숨기고,
뒤따라오던 경비를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제압했다.
순식간에 경비가 기절해 바닥에 쓰러졌고,
그들은 곧장 출구 방향으로 나아갔다.
지하 감금실을 빠져나와,
좁은 계단을 올라 메인 복도로 진입했다.
그 순간 병원 복도 너머에서 경비들이 이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경비가 큰 소리로 외치려는 순간,
팀원은 정확한 타격으로 경비의 무전기를 끊어냈고,
나머지 팀원들은 소음기 장착 총으로
순식간에 주변을 제압하며 빠르게 전진했다.
푸슉~! 푸슉! 푸슉!
이수민과 팀원들은 소음 권총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경비들을 제압하며
박준혁과 함께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최대한 조용히 병원에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하필 그때 경보 시스템이 작동해 병원 전체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복도에 경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푸슉! 푸슉! 푸슉!
어둠 속에서 총성이 잦아들지 않고,
박준혁은 공포 속에서도 이를 악물며
이수민과 팀원들에 의지하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수민은 박준혁의 손을 잡아
빠르게 인도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곧 정문에 도착합니다.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
박준혁은 남은 힘을 다해 이수민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 보안 게이트에 다다르자,
미리 준비해 둔 보안 카드를 사용해 잠금 장치를 해제했다.
병원 근처 가까이 대기하고 있던 헬리콥터로 이동하기까지는 불과 몇 십 미터 남짓.
하지만 정문을 막고 있는 경비들이 총을 들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푸슉! 푸슉! 푸슉!
이수민과 팀원들은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 총을 발사하며 시간을 벌었다.
박준혁을 앞세워 헬리콥터에 오른 팀원들은
남은 경비들을 모두 제압한 뒤 헬리콥터의 문을 닫았다.
이수민이 헬리콥터 파일럿에게 손짓하자 헬리콥터는 이륙하며 빠르게 벗어났다.
정신병원이 점점 멀어지며 어둠속에 사라져 갔고,
박준혁은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다.
박준혁의 얼굴에 미묘한 긴장감과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그의 시선이 멀리 어둠속을 바라보는 동안,
이수민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실장님,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실장님을 마약에 중독되게 만들고 이곳 정신병원에 가두게 만든 건, 형님과 안민기 비서실장이 꾸민 짓입니다. 복수를 해야 합니다. 아예 인간이기를 포기한 두 사람 모두 이번 기회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려야 합니다. 여기 특수팀이 함께 갈 겁니다."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들도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다가올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이번 임무는 단순히 박준혁을 구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룹으로의 복귀와 복수를 위한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었다.
박준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돌아갈 시간이지. 그게 사실이라면··· 놈들에게 복수가 뭔가를 보여줘야겠어."
새로운 결심이 박준혁의 눈에 서리기 시작했다.
고통과 억울함과 두려움 속에 부들부들 떨던 시간.
마약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시간.
다시 되찾을 수 없는 시간들.
하지만, 자신을 지옥에 파묻은 인간들에 대한 복수만은
반드시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눈에 불타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꾸~욱~!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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