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8화: 변화

정호금융 이정호 회장과 Lee&Kang 투자회사 대표이자 이정호 회장의 딸, 이민영이 다과를 하며 한담을 나누고 있다.
“아주 그냥 연일 떠들석하구나. 사이비 교주 이경철 비자금이 법원에 공탁되었다는 소식으로 말이야.”
“그러게요, 아버지. 그 소식에 온 나라가 난리네요. 그런데 아버지는 이번 일에도 강수혁 대표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강수혁 대표가 과거에 했던 일들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겠어? 그 친구 말고는 이렇게 스케일이 크고 파급 효과도 대단한 일을 해낼만한 사람이 없잖아?”
“혼자서 사이비 교주 비자금을 탈취하고, 그것도 2조 7천억을 법원에 공탁했다는 게 말이 돼요? 수혁 대표가 대단한 사람인 건 알지만, 이번 일은 너무 큰 규모잖아요. 그걸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걸까요?”
“하하하. 그 친구··· 혼자서 감당할 인물이지. 하지만··· 아마 혼자라기보단 아주 신뢰할 만한 사람들과 은밀하게 협력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어? 그 정도의 일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강단이 있는 인물이니 말이지. 그런 사람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의 부정한 자금들을 모조리 회수하고도 남을 테니까.”
“음··· 강수혁 대표가 정말로 그런 일을 했다면, 그야말로 의적이라고 부를 만하죠.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정말로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인 거고요. 하지만, 그렇게 큰 일을 해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그 사람답다고나 할까요?”
“응? 그 사람답다? 어느새 강수혁 대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는 뉘앙스로 들리는구나. 자기를 드러내기보다는 필요한 일을 하고 조용히 물러서는 사람 스타일이긴 하지. 사람들은 의적이라고 부를 테지만, 강수혁 대표는 그저 자기 신념을 실천했을 뿐일 거야. 자신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자화자찬하지는 않을 거 같구나.”
“음··· 그 말씀이 맞는 거 같네요. 하지만, 아버지. 만약 강수혁 대표가 진짜로 이 일을 했다면, 저희로서는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겠죠. 세상에 그런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래, 민영아. 그렇기에 우리는 모른 체 하고, 뒤에서 응원해 주는 것이 맞지 않겠니? 만약 그 친구가 또 다른 일을 한다 해도··· 세상의 어떤 물꼬를 틀어 뭔가를 바로잡으려 한다면, 나는 기꺼이 돕고 싶구나.”
“아버지, 저도 아버지 뜻을 따를게요. 정말로 수혁 대표라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기대가 되네요.”
“지난번 강수혁 대표 말에 따른 순위로 투자한 수익률은 어떠니?”
“놀라울 정도죠. 투자의 귀재랄까요? 무시무시한 감(感)이에요. 다른 사람들보다 감각이 몇 개쯤 더 있는 사람 같아요.”
“음··· 그래? 아무튼, 앞으로도 혹시 추가로 증자하자고 하면 얼마든지 응해 주거라. 이번 기회에 나도 너에게 서서히 증여를 마무리하고 은퇴 준비나 해야겠다.”
“벌써요? 아빠 이제 50대 후반인데, 무슨 은퇴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앞으로 20년은 거뜬 하시지 않아요?”
“민영이 너나 강 대표가 수십년 동안 했던 나보다 훨씬 더 잘 하는데, 내가 굳이 뭐하러 일을 하겠니? 그냥 뒤에서 지켜보며 여유롭게 사는 게 낫지 않겠어?”
“아직까지는 저도 검증 단계에 불과할 뿐인데요. 강 대표님 덕분에 호랑이 등에 올라타 달리는 거뿐이잖아요?”
“하하하. 호랑이 등이 좋긴 좋은 모양이로구나. 그러면 된 거야. 네가 내 딸이어서가 아니라, 너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 내 생각이다만··· 강 대표라고 해서 무조건 누군가와 함께 동업하자고 할 사람으로 보이니? 어림없는 소리다. 그 사람, 보통 사람 아니잖니?”
“뭐, 그렇긴 하죠. 아빠 말씀은 투자에 대한 저의 판단 방식을 강 대표도 존중해 준다는 의미세요?”
“바로 그거지. 그런 게 없이 강 대표가 무대포로 몇 천억이라는 돈을 동업하자고 투자할 것 같아? 너도 모르는 네 투자의 감이라는 게 있다는 걸, 강 대표가 맨 처음부터 알아보고 제안했을 거라는 게 아빠 생각이다.”
“그게··· 강대표랑 제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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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글로벌에서도 이번 비자금 공탁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에 사이비 교주 비자금이 통째로 법원에 공탁됐다는 소식으로 난리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의적 덕분에 제 와이프 절친도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도 이제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요? 천만다행이네요. 2조 7천억···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해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말도 안 되지 않아요? 어떻게 그 큰 금액을 통째로 빼돌려서 법원에 넘길 생각을 했을까요? 그런데 자꾸 생각나는 인물이··· 혹시 강 대표님 아니세요?”
“아니, 강 대표님이요? 그 정도의 일을 감쪽같이 해냈다고요? 물론 강 대표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진짜라면 대단한 일인데요.”
“강 대표님은 세상의 비자금을 모조리 도려내는 분 아니세요?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하면··· 비자금을 몇 번이나 파헤쳐 온 분인데, 이번 사건도 왠지 대표님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하하”
“강 대표님, 정말로 대표님이 이번 비자금을 공탁한 건가요? 뉴스가 나온 이후로 의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던데요. 솔직히 저희도 궁금하긴 합니다.”
“제가 그런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흥미로운 상상이군요··· 그렇지만, 제가 그랬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않나요?”
“이야··· 긍정도 부정도 하질 않으시네요. 대표님다운 반응입니다. 그래도 솔직히 이번 일에 강 대표님 손길이 닿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그저 누군가 세상이 제자리 찾는 걸 도운 거겠죠. 누군가 이런 큰일을 해냈다면, 그 사람 역시 자기 나름의 정의를 실천한 거 아닌가요?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 일은 일이니까, 다들 소문에 휩쓸리지 말고 맡은 일에 집중하자고요. 하하.”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래도 이번 일은 정말 큰일이긴 합니다. 대표님이 그랬든 아니든, 누군가가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거니까요.”
“맞아요, 용기와 결단은 중요한 덕목이죠. 앞으로도 그 용기를 가진 이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기를 바라야죠.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가집시다.”
강수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상무들과 부장은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듯 바라보지만, 가볍게 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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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교주 사건 이후,
수혁의 마음속에 미묘하면서도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그동안 복수에 사무친 삶을 살아왔고 칼을 갈아왔으며,
비자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적개심만을 가지고 달려든 게 사실이다.
돈키호테처럼 끝없는 싸움을 이어왔지만,
정작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로도 많은 이들이 웃을 수 있고,
고통받던 사람들이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수혁은 세상을 조금 더 밝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빛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듯이,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 상념으로 창가에 서서 세상이 점차 밝아 오는 새벽을 바라보니···
빛이 서서히 어둠을 밀어내며 도시를 물들이는 모습이 마치 세상의 부조리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빛은 수혁의 마음속에도 스며들어,
차가웠던 눈빛을 조금씩 따뜻하게 바꾸어 주고 있다.
“음···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삶이겠지?”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단순히 불의를 바로잡은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불씨를 마음속에 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세상을 혼자 싸워야 할 냉혹한 전쟁터로만 보지 않아도 되는 건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그저 누가 누구를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함께 웃고 나누며 살아가야 할 아름다운 곳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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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의 한적한 구석.
수혁과 수아가 서로를 마주보고 서있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따스한 미소 속에 말로 담지 못할 아쉬움이 흐르고 있다.
수혁은 수아를 위해 햇살 가득 들어오는 저택을 스탠포드 근처에 마련해 주었다.
이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될 수아를 생각하니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오빠, 바쁜 거 이해하니까 3개월은 아니어도 6개월에 한 번씩은 꼭 와 주기로 약속한 거야~!! 혼자 있으면 외로울지 모르니까···”
“알았다, 수아야. 6개월마다 꼭 보러 갈께. 그거 아니어도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
수아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수혁에게 다가섰다.
수혁은 조심스럽게 수아를 안아주었다.
넓은 어깨와 따뜻한 품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품 안에서 수아는 잠시 모든 걱정과 불안감을 내려놓게 된 느낌이다.
공항의 소음 속에서 둘은 한없이 조용하고도 깊은 순간을 공유했다.
“오빠, 항상 고마워. 날 위해 모든 걸 배려해줘서···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줘서.”
수혁은 말없이 수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수아가 아쉬움에 떠밀려 천천히 몸을 돌리고 게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발자국을 걸어가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 수혁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혁은 웃으며 손을 들어 답했다.
멀어지는 모습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지만,
수아의 앞에 펼쳐질 새로운 길을 생각하며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내본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할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
수아가 시작하게 될 새로운 삶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다.
**
수혁과 이민영 대표.
조용한 카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 중이다.
사이비 교주 비자금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투자 계획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이민영은 고급스런 테라스뷰를 바라보며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강 대표님, 생각해 보니까 투자 방향에 변화를 줘서 바꿔보는 건 어때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저평가된 기업들을 인수하기에 아주 좋은 시기인 것 같아서요. 투자 규모를 조금 더 늘려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건 어떨까요?”
“음··· 제가 기업들에 대해 잘 몰라서··· 이 대표님이 좋으시다면··· 하긴, 저평가된 곳들은 제대로 된 운영과 지원만 받으면 가능성이 크니까. 흔쾌히 동의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기업 리스트를 한 스무 개 정도 만들어 볼께요. 이번에도 강 대표님이 직접 선별해 주시면 그걸로 실행할 계획을 세우면 될 것 같아요. 어때요?”
“좋습니다. 리스트를 보내 주세요. 우선순위를 정해 보겠습니다.”
이민영···
이 사람에게서 점점 더 아카시아향이 진해지고 있다.
오늘은 취할 지경이다···
기업들을 인수하겠다는 말이 나온 순간,
투자 방향이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
카페 주변 천지 모든 게 아카시아향이 되어, 오감을 짜릿하게 자극한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꾸욱~!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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