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9화: 블랙 미러

팬텀 녀석 말이 맞다.
언제나 저런 녀석들이 출몰한다.
누군가는 돈을 노리고,
누군가는 세상의 혼란을 노리고,
누군가는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팬텀 같은 외로운 늑대들은
특정한 음모를 노리는 집단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아주 거대한 조직의 모세혈관이랄까?
모세혈관 하나가 터진다고 조직이 쉽사리 깨지는 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어둠 속의 조직이 인신매매 조직이다.
왜 이렇게 인신매매라는 극단적인 반인륜적 범죄에 매달리는 걸까?
마약 범죄와 마찬가지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인신매매 관련한
연간 시장 규모가 무려 1,500억 달러에 달한다.
인신매매 조직은 피해자들을
주로 성적 착취와 강제 노동에 투입하여 수익을 창출한다.
피해자들을 성매매 업소나
클럽 같은 곳에 투입하여 금전적으로 착취한다.
피해자들은 여권이나 서류를 압수당한 채 도망칠 수도 없다.
성 착취가 빈번한 나라로 납치된 피해자들은
이국적 외모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광고되어 성 매수자들을 유인한다.
최근에는 점점 더 많은 조직이
온라인 성착취를 활용하고 있다.
피해자들을 웹캠 성착취나 포르노 산업에 투입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피해자는 끊임없는 협박과 감시 속에서
자유롭게 탈출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강제 노동이다.
피해자들은 주로 농업, 제조업, 건설업과 같은 신체적으로 고된 업종에 투입된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게 염전 노예들이나 새우잡이배 같은 게 아니던가?
낮은 임금을 주거나 전혀 임금을 주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며,
폭력과 협박을 사용하여
반발을 찍어 누르거나 죽여 버리기도 한다.
**
블랙 미러라는 조직이 있다.
아시아에서 악명 높은 인신매매 조직으로,
동남아와 남아시아에서 주로 활동한다.
사람들을 속여 성적 착취, 강제 노동, 장기 밀매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인신매매한다.
주요 활동 지역은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등으로 대단히 폭이 넓다.
···
방콕 외곽의 낡은 창고.
비가 내리는 밤, 어둡고 음습하기 짝이 없다.
인기척이 들렸다.
작은 트럭 두 대가 창고 앞으로 멈춰 서고, 트럭에서 남자들이 내린다.
"다들 조용히 해! 모두 내려!! 여기서 도망치다 잡히면 끝장이라는 거 알지?"
트럭 문이 열렸다.
안에는 겁에 질린 표정의 남녀 열댓 명이 있다.
어디선가 납치되거나,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혹해서 끌려온 사람들이다.
모두 손이 묶여 있고, 입에 테이프가 붙어 있다.
"조심해. 이 녀석들은 이미 팔려갈 곳이 정해져 있어. 일부는 베트남으로, 나머지는 인도로 보낼 예정이야."
"아이고··· 인도라니. 살아나오기 힘들겠구나. 제대로 갈아 넣겠군. 돈도 돈이지만, 한 번 들어가면 다신 돌아오지 못할 거다."
조직원이 차에서 한 명씩 끌어내리며
피곤한 듯 손목을 풀어준다.
그 중 한 소녀가 겁에 질린 얼굴로 울먹인다.
"흐, 흑. 어흑. 제발, 놓아주세요··· 가족이 저를 찾고 있을 거예요."
"가족이 널 찾는다고? 이제 넌 없어. 넌 그저 상품일 뿐이야. 깨지지 않게 조심조심 도자기처럼 다루면 그만이지. 그 이상은 기대하지 마."
소녀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다른 피해자들도 공포에 질린 채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러던 중, 어떤 남자가 트럭에서 내리는 빈틈을 노려,
순간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푸슉!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채로 섰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 씨팔, 분명히 경고를 했는데도 저 지랄이네. 어디 또 도망쳐 봐라.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버릴 테니까. 애들아, 저 자식 묻어버려!!”
도망가다 총맞는 광경을 보고,
붙잡혀온 사람들은 더욱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다.
떠밀려 들어간 창고 안에는
철창으로 된 여러 방이 마련되어 있다.
먼저 붙잡혀온 사람들 십여 명.
철창 안에 갇혀 있다.
블랙 미러의 현지 중간책, 별칭 ‘하쿠’가 입장하며 계약을 위해 노트북을 켠다.
"자, 다들 잘 들어라. 손님들이 너희를 아주 반길 거야. 오늘 밤, 한 번에 다 처리할 거야."
하쿠는 조직원들에게 피해자들을 정렬시키고,
나이와 신체 상태를 확인하며 노트북에 기록을 입력한다.
"베트남으로 가는 애들은 17세 이하, 건강 상태 양호한 아이들만 남겨. 인도로 가는 애들이 나머지고."
"알겠습니다. 근데 이번 물건들, 잘 못 잡아온 거 아닙니까? 저번보다 애들 상태가 반항적이고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데 말이죠."
"상관없어. 반항하는 애들은 훈련 센터로 보낸다. 그곳에서 녀석들이 어떻게 순종하는지 가르치면 되겠지. 두들겨 맞아보면 아주 고분고분해질 거야."
하쿠가 어떤 여자애의 팔을 잡아 옮기려 할 때,
여자애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외쳤다.
"제발, 놓아주세요! 제발, 그냥 집에 가게 해주세요!"
"집? 넌 이미 집을 떠난 지 오래야. 여기서 집이라는 건 네가 팔려갈 그곳뿐이야. 그렇게 납득하게 되는 날도 곧 오겠지. 어디 다시 한번 저항해봐라. 죽도록 두들겨 패버릴 테니까."
소녀가 계속 울먹이다,
죽도록 두들겨 패버린다는 말에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끌려간다.
다른 한쪽에서는 바이어들이
노트북 화면으로 피해자들을 점검하고 가격을 협상 중이다.
"이번 물건들, 너무 어리지 않나? 상태도 그다지··· 더 좋은 걸로 준비했어야지, 이게 뭐야?"
"우리 블랙 미러는 퀄리티를 보장하지. 어린 나이일수록 순종적이야. 오히려 가격을 20% 더 높여야 하겠는데?"
"빌어먹을, 좋아, 어차피 수요는 넘치니까. 이번 물량은 베트남과 인도로 나눠서 보낼 테니, 차량 대기해 둬."
차량은 이미 준비됐어. 계약금은 선불로 받고 나머지 금액은 인도 후에 받는 걸로 하자."
바이어가 백을 열어
현금 뭉치를 꺼내 하쿠에게 건넸다.
"다음 물건도 문제없도록 준비해줘. 이번보다 상태가 좋아야 한다. 시간 맞춰라."
"물론이지. 블랙 미러가 이름값 못한다고 생각하나?"
하쿠와 바이어는 서로의 손을 가볍게 잡고 악수하며 계약을 마쳤다.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차량에 실리기 시작했다.
소녀가 조직원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다시 애원했다.
"흑, 흑. 제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발··· 가족이···"
"너 계속 징징거릴래?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넌 이제부터 그저 상품일 뿐이야. 감상에 빠질 시간 따윈 없다고!!"
"흑, 흑. 왜 저 같은 사람을··· 그저 돈 때문에 사람을 납치하다니요···."
"돈 때문에? 왜 아니겠어? 세상은 돈이 전부야. 너 같은 애들은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존재하는 벌레들이고 말이지. 이젠 그걸 빨리 받아들이는 게 네게도 좋을 거야."
조직원이 소녀를 지정된 차에 실으며
문을 쾅 닫고 주변을 둘러본다.
차량들이 피해자들을 태우고
어둠 속으로 조용히 출발한다.
블랙 미러 조직,
또 한 번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새로운 피해자들이 성착취와 노동 착취의 길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피해자들의 비참한 운명,
인신매매 조직의 날카로운 갈고리에 걸린 셈이다.
**
필리핀 마닐라 뒷골목. 블랙 미러 본거지.
창문이 없는 철제 건물.
외부에서는 평범한 창고처럼 보인다.
건물 내부는 CCTV와 철문, 경보 시스템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바닥은 거친 콘크리트,
벽은 빛바랜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에는 몇 개의 오래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중앙에는 지도를 펼친 채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공기가 무겁고 음습하다.
담배 연기도 자욱하다.
블랙 미러 보스인 별칭 ‘레오’.
큰 덩치에 이마에 문신이 새겨져 있다.
흉터가 있는 눈으로 중간 관리자들을 쳐다보며 무표정한 얼굴이다.
레오가
두터운 목소리로 방 안을 울리며 말했다.
"이번 작업은 쉽게 끝낼 수 없을 거야. 동남아뿐만 아니라 태평양 근처까지 커버해야 하니까. 특히 필리핀, 인도네시아 쪽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
레오의 오른팔,
중간 관리자 중 한 명인 ‘빅토’가 한 걸음 다가서며 대답했다.
"네, 보스. 지금 현지에서 고용할 스카우터를 더 찾고 있는데, 세부와 다바오 쪽으로 확장할 예정입니다. 젊은 애들이 대거 몰려오는 곳이니 공급이 수월해질 겁니다."
"좋아, 세부와 다바오라··· 관광지 쪽을 공략한다는 건가?"
"맞습니다. 여행 온 여성들이나 무방비 상태인 외국인들이 좋은 타깃이 되니까요. 유인하기도 쉽고, 실종되더라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요."
"좋아, 하지만 유인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면 곤란해진다. 피해자들은 가능한 한 순순히 따라오게 만들고, 저항하는 애들은 그냥 처리해버려."
다른 관리자,
‘카라’가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을 열고,
보고서를 꺼내 레오에게 건넸다.
"보스, 자금의 일부는 차명 계좌로 옮겨 놨습니다. 지난달 수익 중 일부는 마닐라의 은행을 통해 세탁했고요. 홍콩 계좌로 나머지를 전송하면 모든 자금 흐름이 깔끔해질 겁니다."
"훌륭해, 카라. 홍콩 계좌로 전송하면 자금 흐름이 복잡해지니까 추적당할 일도 줄어들겠지."
테이블에 앉아있던 다른 관리자,
‘에릭’이 자금과 관련된 사항을 덧붙였다.
"보스, 계속 뒷돈을 대주는 정치인들과 관리들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경찰이 조사를 시작하면 미리 정보를 주기로 했고요."
"좋아, 배신하는 자가 없도록 신경 써라. 필요하다면 보너스라도 지급해. 이 일에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레오가 잠시 침묵한 후
새로운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빅토를 쳐다봤다.
"빅토, 최근에 사용했던 ‘가짜 취업 광고’ 수법은 잘 먹히고 있나? 피해자들이 쉽게 넘어오고 있어?"
"그렇습니다.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비밀리에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광고를 올리면 1주일 안에 지원자가 수십 명씩 몰려요. 특히 가정부나 돌봄 인력을 가장하면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훌륭해. 그러면 광고는 좀 더 다양한 직종으로 늘려봐. 모델, 연예인 지망생, 가사도우미···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피해자들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네, 보스. 요즘 SNS도 활용해서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홍콩이나 마카오에서도 호응이 좋아서, 비자 문제도 쉽게 해결되고 있습니다."
"아주 좋아. 잡히지 않도록 신중히 행동해라. 실수는 용납하지 않을테니까."
레오가 테이블 위의 서류를 집어 들고
수익 보고서를 한 장씩 넘겼다.
"마닐라 쪽만 해도 최근 들어오는 수익이 넘쳐 나던데, 수익을 다른 곳으로 돌려 은신처를 추가로 만들면 어떻겠어?"
"네, 보스. 일부 수익은 세부와 말레이시아의 은신처를 추가로 마련하는데 쓰이게 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거점 확대까지 시도하라 하겠습니다."
"좋아. 하지만 경찰과 연계된 곳은 늘 안전 상태를 확인해. 수익은 보장해야 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다. 항상 도망갈 수 있는 루트도 마련해 두고 말이다."
레오가 다부진 목소리로
조직원들을 쳐다보며 마지막으로 지시했다.
"마닐라뿐 아니라 방콕, 홍콩 쪽도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자. 그리고··· 기억해라. 우리가 벌어들이는 이 돈은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줄 테니까, 서로 믿고 움직여라. 배신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조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정리하고 나갔다.
어두운 본거지,
아직도 레오의 목소리와 담배 연기가 맴돌고 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 꾸욱!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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