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대륙과 제국의 역사

17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과거 대륙은 여러 작은 왕국과 가문들로 나뉘어 있었고. 각 왕국의 영웅들은 서사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가 있었다.
서사 - 세계의 기록이자 증명.
하지만 이들이 세계의 증명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란.
서로 간의 끊임없이 전쟁이었는데.
이 전쟁을 ‘서사 전쟁’이라고 불렀다.
서사는 단순한 개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역사와 시대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얻으려는 자들의 갈등은 심히 격화되었다.
결국, 이 전쟁은 여러 왕국에서 영웅을 배출하며 경쟁했고, 많은 서사가 탄생했지만 동시에 많은 영웅이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서사를 얻으려는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세계의 균형이 무너지며 대규모 재앙이 발생하기도 했다.
탐욕이 불러온 10여 년간의 서사 전쟁은 대륙의 대지를 붉게 물들였으며, 하늘이 그런 인간들을 향해 울부짖는 재앙을 쏟아내기 시작했을 때.
어느 한 청년이 나타났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청년은 잔혹한 피의 굴레를 끊기 위해 자신의 손마저 붉게 물들이는 것을 각오하며 검을 들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청년은 자신의 뜻과 일치하면서 영웅을 소유한 고위가문들을 찾아가 그들과 힘을 모았다.
청년의 뜻에 동참한 고위가문은 훗날 4대 명가로 불리었으며.
가문들을 이끈 청년은 세계와 대륙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며 피의 굴레를 끊어냈으니.
청년의 정체는 전쟁으로 모든 걸 잃었지만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 어느 한 왕국의 막내아들,
- 레오니우스 아우렐리안 -
훗날 대륙을 통일시킨 현 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대륙을 통일시킨 레오니우스 아우렐리안은 초대 황제로서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이 있었는데.
아직은 혼란스러운 대륙에서 제국과 가문들의 평화를 위해 더 이상 무의미한 서사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게 되었다.
그 이후로 서사는 더 이상 전쟁과 살육이 아닌 자연스러운 영웅의 업적으로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협정을 통해 평화의 씨앗을 심은 중앙의 제국과 각지에 자리 잡은 4대 가문의 노력으로 대륙에는 푸른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의 희망과 별개로 씨앗을 파헤쳐 불태우려는 자들이 있었다.
어느 날 발생한 사건들은 잊혀져가는 혼란과 피의 굴레를 다시 불러드리려는 듯이.
대륙 곳곳에서 발생하는 실종 신고.
식인으로 추정되어 남겨진 시체 등.
여러 잔혹한 참사를 만들었는데 오랜 수사 끝에 제국은 이들이 하나의 조직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대륙의 평화가 깨질 정도는 아니었다.
* *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로부터 30년 전.
영원한 평화란 없듯이 제국과 가문들의 다툼이 발생하며 대륙의 평화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혹자는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문들 간의 갈등을 일부러 부추겼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국과 가문들의 갈등은 한 사건으로 인해 협력으로 뒤바뀌었으니.
그간 조금씩 악행을 저지르던 이들이 결국 대륙을 뒤 업을 만한 사건을 터트렸다.
대륙 곳곳에서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하는 흉측한 괴물.
제국과 가문들은 이 괴물을 마물이라 칭했으며, 그 수가 가히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이들이 이제껏 행한 악행들은 지금을 위한 준비였을까?
갑작스럽게 나타난 수많은 마물들은 각 가문의 영지와 제국에 큰 피해와 사망자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평화로웠던 대륙은 인간과 마물의 전쟁.
‘인마전쟁’으로 대륙은 또다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끝없이 나타나는 마수.
어느 순간 나타나 마수의 편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여 더욱 혼란을 고조시키는 정체불명의 악인들.
스스로를 무저갱이라 칭한 악인들에게 제국과 가문들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맞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륙의 혼란과 함께 여러 영웅의 서사가 탄생하기도 혹은 지워지기도 한 인마전쟁은 15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저갱과 마수들은 갑작스레 후퇴하며 그 모습을 감쪽같이 감추었는데 종국에 대륙에는 갑작스러운 평화가 찾아왔다.
어째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것인지 의문만을 남긴 무저갱과 마수들.
이것은 정말 평화라고 불릴 수 있는 걸까?
결국에 제국과 가문들은 간간이 나타나는 마수만을 처리하며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품에 간직한 평화를 이어갔다.
* * * * *
“여기까지가 대륙과 제국의 역사이자, 현 상태입니다.”
““.....””
“일반적으로는.. 인마대전에서 제국과 각 가문들이 힘을 합쳐 승리했다고 알려졌지만, 과연 이것을 승리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제라크 교수는 덤덤히 말하였지만, 그와 반대로 교실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니까.. 전쟁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거란 뜻이자나..?’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
언제 시작될지 모를 전쟁.
지금껏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온몸에 절로 긴장이 서렸다.
짝!-
갑작스러운 제라크 교수의 박수 소리.
““!!!!!””
“그렇다고 당장 일어나지도 않을 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의 모두가 깜짝 놀란 듯 모두의 시선이 교실 앞 제라크 교수에게 집중되었으며, 교수는 모두의 시선을 둘러보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긴장이라니..’
마음 한편에 부끄러운 감정이 생겨나는 듯했다.
“아마 여러분 중엔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켠에 공포를 품고 사니까요.
하지만 꼭 기억하세요, 공포는 단지 여러분의 감정일 뿐, 결코 악이 아닙니다.
그 감정이 있다는건 여러분이 자신의 약함을 알고 있다는 뜻이죠.
이제, 여러분은 자신의 공포와 약함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해지자. 지금보다 더욱.’
“강해지십쇼. 자신의 소중한 이를 잃지 않도록.
지금은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 * * * *
오전의 이론 수업이 끝난 후.
유리와 알테리온, 세리나 그리고 루카스는 점심을 먹고 다 같이 카페로 향했다.
“그나저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줄은 몰랐네.”
차를 마시던 알테리온은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뭐 보통은 잘 모르는 정보이긴 하지.”
“뭐야 루카스! 넌 알고 있었어!?”
“응. 나뿐만 아니라 웬만한 가문의 자식들은 다들 알고 있을 거야. 보통 어릴 때 가문에서 배우니까.
세리나 너는 어머니가 알려주시지 않았어?”
“오늘 처음 들었는데?
이런 중요한 거 말도 안 해주고! 엄마 너무해!”
“뭐 그닥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러실 수 있지.
난 오히려 유리가 몰랐다는 게 더 신기한데?”
“응?”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커피를 홀짝이던 유리가 갑자기 나온 자신의 이름에 흠칫했다.
“4대 가문이니까 당연히 너도 알고 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오늘 처음 듣는 표정인 거 같아서.”
“아.. 응. 나도 오늘 처음 들었어.”
“흐음~ 뭐 그럴 수 있지.”
루카스는 유리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수긍했다.
“그래도 언젠가 아무것도 모르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보단.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인 거 같아.”
의자에 기대앉던 알테리온이 양손을 뒤통수에 모아 받치며 말했다.
“그치. 언젠가 전쟁이 터진다면 우리도 동원될 테니까.”
“전쟁이라니.. 아직은 생각하기도 싫은걸.”
루카스가 언급한 전쟁이란 단어에 세리나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은 듯했다.
“뭐 언제 터질진 몰라도 교수님 말씀대로 당장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긴 하니까.”
“맞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할 거 없어.
설령 전쟁이 터진다 해도 그전까지 강해지면 되는 거야.
그치 유리?”
머리 뒤로 양손을 받치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던 알테리온은 올곧은 눈동자로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주인공이란 걸까.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걱정마저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네. 어차피 나중 일이니까.
지금은 더 열심히 해서 강해지자.”
올곧은 알테리온의 눈동자를 마주 본 유리는 웃으며 말했다.
“유리는 좀 쉬면서 해야 해! 그러다 강해지기 전에 큰일 나겠어.”
농담처럼 말하는 세리나의 말에
“맞아. 가끔 훈련하는 거 보면 내가 다 조마조마한다니까.”
루카스가 동조하며 말을 이었지만.
“하하..”
유리는 첫 수업 이후로도 혼자 훈련하다 몇 번인가 쓰러진 전적이 있어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싱거운 웃음을 내며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풉- 하하하하-”
유리가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있어서일까.
혹은 알테리온도 세리나와 루카스와 같은 의견이어서일까.
의자에 기대며 앉아있던 알테리온이 갑자기 빵 터진 듯 웃기 시작했다.
‘이거 참.. 특성이 뭔지 알려 줄 수도 없고.’
유리의 특성이 딱히 비밀인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말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특성 탓으로 변명하는 것만 같아 말하기 껄끄러운 유리였다.
결국, 반박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 유리는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아직은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했다.
* * * * *
한편 대륙 동쪽과 서쪽 사이에 위치한 어느 한 도시.
도시 파이론.
파이론 가의 영지는 레이든 가문과 카이서스 가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카이서스 가문은 영지 내에 다양하고 풍족한 자원이 매장되어있어 수많은 장인들은 질 높고 풍족한 자원에 매료되어 카이서스 가문으로 향했다.
원활한 재료공급과 여러 장인을 통해 탄생한 여러 무구는 주로 레이든 가문을 통해 대륙 곳곳으로 판매되었는데.
파이론은 카이서스와 레이든을 왕래하는 상인들의 쉼터이자 왕래에 필요한 호위 용병을 구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파이론에는 상인, 용병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빛의 옆에 어둠이 있듯.
밝은 도시 속 어두운 골목사이에는 정처 없이 길거리를 떠도는 빈민가가 존재했다.
파이론 영지의 빈민가, 더욱 깊은 골목 사이.
푹- 찌걱-
“끄아악- 커억-”
“키긱- 킥- 조.. 좋아?”
쯔윽. 쩝쩝-
“끄르륽-”
꿀꺽-
“키기긱- 주.. 죽을 만큼 좋았...어? 키킥-”
붉게 물들은 어두운 골목에서 빈민가의 주민으로 추정되는 초라한 행색의 남성은 온 몸이 피로 물든 채 쓰러져 있었으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쓰러진 남성의 곁에서 무언가 씹고 있었다.
“키키익- 벌써.. 가.. 가버리면 어떻..해..”
이상한 웃음과 어눌한 말을 뱉으면서도 여성의 입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무언가에 찢기듯 갈라진 남성의 복부.
갈라진 사이로 손을 넣어 여러 부위들을 골고루 빼 먹는 여성은 고통에 못 이겨 죽어버린 남성을 보며 몹시 아쉬워했다.
저벅- 저벅-
“손가락까지 다 먹은 건 아니겠죠? 라미아.”
어두운 골목사이로 나타난 한 남성.
20대 후반으로 보이며 겉보기에 훤칠한 외모와 안경을 쓴 남성은 일행인 듯 여성을 ‘라미아’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다가왔다.
피로 입가와 양손을 붉게 물들인 여성 라미아와 달리 깔끔한 차림의 남성.
“으..응.. 키긱- 난 부드러..운 게 좋아..
따딱한건.. 너 다 머..먹어.. 에드릭..”
라미아의 대답을 들은 남성 에드릭은 품에서 꺼낸 단검으로 능숙하게 쓰러진 남자의 한 손가락을 잘라갔다.
잘려진 남성의 손가락 5개.
오도독-
에드릭은 마치 시식을 하듯 하나의 손가락을 씹으며 맛을 보았지만 맛이 성에 안차는지 눈썹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씹어 삼켰다.
“역시 쓰레기한테 맛을 기대하긴 어렵군요.”
에드릭은 품속에서 담배꽉과 비슷한 작은 보관함을 꺼내 열었는데 그 속에는 이미 몇 개의 손가락이 담배개비처럼 넣어져 보관돼 있었다.
방금 얻은 남성의 손가락 중 두개만을 보관함에 넣은 에드릭은 자신의 품에 고이 넣으며 라미아를 향해 말했다.
“이런 곳에서 더 나올 정보는 없을 테니.
이동하죠. 라미아.”
“키끼긱- 그.. 그럼..더 맛있느..는 거 먹는거야?”
“먹으러 가는 게 아니라. 켈리카님이 명하신 조사입니다.”
그렇게 두 남녀는 어두운 골목 속 으로 몸을 감추며 어디론가 사라지고 피로 물든 골목에는 서늘해진 남성만이 남게 되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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