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3화
어릴 적 마수에 의해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된 소녀.
‘이시스’
소녀만은 구하기 위한 부모에 처절한 희생으로 혼자만이 살아남은 소녀는 부모를 잃은 슬픔과 혼자라는 외로움에 매일 같이 눈물을 흘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함께였던 부모의 따뜻한 온정은 사라지고 소녀에겐 차가운 외로움만이 남게 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밤의 추위와 극심한 배고픔은 어린 소녀에겐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다.
소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생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막상 생을 끝내려는 행위는 어린 소녀에겐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리고 자신만은 살리려는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이 소녀가 어떻게든 살아 나아가도록 밀어주었다.
끝내 소녀는 스스로 생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다해버린 기력으로 쓰러진 소녀에게 서서히 죽음이 다가온다.
그런데 소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우연히 지나가던 사제에게 발견된 소녀.
사제는 다급히 소녀를 안아 들어 몸 안에 불어넣는 따듯한 기운은 흡사 부모의 온기와도 같았다.
소녀는 자신을 치유하는 사제님의 모습이 마치 신의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소녀의 몸에서 누구보다 찬란하게 각성하는 신성력.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녀의 찬란한 각성은 방대한 신성력을 나타낸 것이었다.
다른 이와 비교 할 수 없이 많은 양을 타고난 신성력.
소녀는 이것이 신께서 자신을 보살피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죽음의 경계를 넘을 뻔한 소녀는 신의 구원 같은 기적으로 살아남아 신전의 아래 키워졌다.
원래였으면 신전 내 고아원에 보내져 자랐겠지만, 그녀의 방대한 신성력을 눈치챈 신전은 그녀를 한 명의 사제로서 성장시켰다.
또한, 소녀 이시스도 신께서 자신을 선택해 준 것이라 여기며 사제로서의 수행을 묵묵히 따라갔다.
다시는 자신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이 구원받은 것처럼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을 구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그것이 신의 뜻을 대행하는 사명이라 여겼다.
뜻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방대한 신성력은 사제의 수행으로 더욱 다듬어지고 커져갔다.
훗날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많은 선을 베풀은 이시스는 공석인 성녀의 후보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간혹 광적인 믿음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키며 정말 성녀의 그릇인가 의혹도 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의 뜻을 전하려는 그녀의 선한(?) 마음이란 것은 확실하기에 위에서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진 못했다.
그렇게 성녀의 후보로서 성장한 그녀가 향한 곳은 아카데미 내의 신전이었다.
아카데미에는 언젠가 영웅이 되기 위해, 악으로부터 세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녀는 매일같이 다치고 지친 학생들을 치유해주고자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 * * * *
오늘도 이시스는 신께 기도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실려 오는 남학생과 여학생.
여학생의 몸 상태도 성치 않아 보였지만 그보다 심한 것은 남학생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갈비뼈는 부러져있으며 온몸의 뼈에 금이 가 있다.
그녀는 즉시 자신 안의 신성력을 개방했다.
그녀의 방대한 신성력은 여학생의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했다.
하지만 남학생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신성력을 조작하여 폐를 찌르는 갈비뼈를 제자리에 맞추고 전신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자체적인 회복력도 상당했는지 서서히 회복되는 남학생의 신체.
남학생이 가진 회복력과 그녀의 방대한 치유력으로 치료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이기 때문이지 일반적인 사제였다면 족히 몇 날은 꼼짝없이 치료해야 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도시 중심지에 마수도 아닌 괴생명체가 나타났다 한다.
괴생명체는 나타나자마자 목적 없이 주변만을 파괴하여 시민들이 도망치긴 했지만 미처 도망가지 못한 시민도 있었다 한다.
허나 그런 시민을 구하기 위해 나선 두 학생 덕분에 사망자는 없다고 했다.
악을 미리 막지 못했다.
하마터면 자신처럼 불행한 시련을 겪는 이들이 생길뻔했다.
이 사실에 이시스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날밤 이시스는 신께 속죄하며 성스러운 기도를 올렸다.
* * * * *
진한 보라색 머리카락이 쇄골 부근까지 흘러내리고 사제복을 입었음에도 드러나는 그녀의 몸매.
하지만 유리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히이익!!”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연한 보랏빛 눈동자에 안광이 형형하듯 보인다.
광적인 그녀의 모습에 유리는 환청이 들리는 듯 예전 일이 떠올랐다.
‘아카데미에 가면 어떤 사이비년 한 명 있을 텐데.. 최대한 엮이지말구~’
아.. 분명 이 사람이다.
어째서 누나가 최대한 엮이지 말라 했는지 단번에 이해 됐다.
“저..”
!!?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말을 걸어온다.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피를 아무 일 아닌 듯 손으로 닦아냈다.
옅은 빛과 함께 상처도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깨끗해진 그녀의 이마..
손에 묻은 핏자국만이 그녀의 기행을 증명해준다.
“저..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예..?”
순간 자신의 몸 상태를 묻는 건지 혹은 그녀의 몸 상태를 묻는 것인지 헷갈렸다.
“낮에 기절한 채로 실려 오셨는데.. 혹시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하신 건가요?”
“아.. 아뇨. 지금은 괜찮아요. 혹시 절 치료해 주신 분이신가요?”
자신이 기절해 실려 온 것을 알고 있기에 혹시나 해 물었다.
“예. 상태가 금방 좋아져서 다행입니다. 아! 제 이름은 이시스라고 합니다. 영웅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네? 그.. 제 이름은 유리 루디안입니다.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당신이 루나 신도님의 동생이군요!”
유리의 이름을 듣곤 반갑다는 듯 손뼉을 쳤다.
“어.. 제 누나랑은 혹시.. 어떤 사이신가요?”
최대한 피하라는 누나의 말과 대조되게 반가워하는 그녀의 반응에 둘 사이가 궁금했다.
“함께 신의 뜻을 세상에 전파할 동료 사이입니다.”
“예..?”
순간 잘못들었나 싶었다.
“함께 신의 뜻을 세상에 전파할 동료 사이입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다시 말해줬다.
“그.. 저희 누나가요? 누나가 신을 믿어요?”
“물론이지요. 비록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솔직하지 못하시고 부정하시지만 사실 루나 신도님의 여린 마음속엔 신에 대한 믿음이 가득하다는 걸 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듯 눈을 감고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부끄러움? 여려? 그 누나가?’
어째서 눈앞의 여자와 엮이지 말라는지 한 번 더 깨달았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이 밤에 뭐하고 계셨던 건가요..?”
“예? 보신 바와 같이 신께 성스러운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봤으면서 당연한 걸 왜 묻냐는 그녀의 눈동자..
“아하.. 그..그렇군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이상 같이 있으면 안될 거 같아 어서 자리를 뜨려 했지만.
“유리 신도님도 함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네??? 뭐라고요? 신도요..?”
순간 불길함이 몰려왔다.
“예. 오늘 유리 신도님의 행보는 가히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일입니다. 이는 분명 신의 뜻과도 같은 것. 함께 기도를 올리기에 충분하지요.”
아..
뭔가 단단히 잘못 걸렸다는 직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이 생각뿐이었다.
“그.. 아! 제가 아직은 몸이 덜 나은 거 같아 오늘은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껏 권유해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리 그녀라도 설마 환자에게 함께 하자고 하겠는가?
유리는 멋쩍은 미소와 더불어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얼른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불안감에 최대한 정중히 사과하며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척을 했다.
“아!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유리의 말(변명)에 어째선지 그녀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뭐가 괜찮다는 거지..?’
불길함이 엄습해온다..
그녀는 한 손을 뻗어.. 신성력을 뿜어낸다.
더는 빼도 박도 못 하게 하듯.. 유리에게 막대한 신성력이 흘러들어온다.
남아있던 약간의 피로까지 회복되어 이제는 아주 아주 건강하고 멀끔해진 신체..
“이제 몸도 괜찮지요?”
그녀는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맑은 미소를 짓는데.
함께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왜인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 ㅈ됐다.,
* * * * *
다음 날 아침.
-특성이 사용자의 노력에 보상합니다-
-머리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아. ㅅ발..’
이전 세상에서 노력하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욕도 안 하기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어젯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이 나올뻔했다.
그리고 자신을 놀리듯 나타나는 특성창에..
하마터면 자신의 다짐을 깨고 입 밖으로 꺼낼뻔했다.
결론적으로 유리는 이시스와 함께 밤새 머리를 박았다. 아니.. 성스러운 기도를 올렸다.
신께 기도하듯 무언가 외치며 머리를 박는 그녀는 유리는 억지로나마 따라 하며 함께 했다..
어떨 땐 눈물을 흘리고 또 어떨 땐 기쁜 듯 환호하며 바닥에 머리를 박고 기도를 올리는 그녀의 광적인 모습은..
유리에게 다른 의미로 공포를 심어주었다.
그동안 많지는 않지만 몇 번 정도 봐왔던 사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도저히 같은 종교의 같은 사제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에 어째서 루나가 그녀를 사이비라 칭하는지 뼈저리게 이해됐다.
하필이면 아쉽다는 듯 말한 자신의 과오 때문에 더는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죽을뻔할 때도 이렇게 무섭진 않았는데..’
무엇보다 어딘가 미쳐있는 그녀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리는 자신이 깨어났던 방에 들러 팔찌를 챙겼다.
밤에는 어두워서 잘 못 봤었지만, 이시스에게 듣기로 루미엘라가 따로 챙겨 곁에 두고 간듯했다.
다시 팔찌를 착용한 유리는 곧장 도망치듯 신전을 나왔다.
이제 막 해가 뜨려는 아침.
유리는 밤새 기도를 올렸지만 친절하게도 계속해서 신성력을 불어넣어 주는 이시스 덕분에 전혀 피곤하거나 하진 않았다.
일요일 아침이기에 수업도 없어 잠시 뭐할까 고민했지만 훈련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유리는 기숙사에 들러 간단히 옷만 갈아입고 여느 때와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잡으며 팔찌의 무게를 평소보다 한 단계 더 올리고 달렸다.
더욱 가해지는 무게지만 그간 성장했는지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천천히 달리니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오른다.
고작 버티는 게 다였단 자신이..
과연 육체를 단련하는 것만으로 강해질 수 있을까?
잠시나마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은 육체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더욱 강해지는 방법이 생각나긴 했다.
‘마력’
루나와의 수련에서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몸에 마력을 둘러 방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말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시도해 본 것뿐 제대로 된 마력 조작 같은 건 배우지 못했다.
이에 대해 루나에게 마력 조작을 물어봤을 때는 벌써부터 꼼수 쓰지 말고 아카데미 가서 배우라는 말(몽둥이)뿐 이었다.
‘어.. 왜 수련한 게 맞는 거 밖에 생각이 안 나지?’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강해진 건 맞기에 애써 괘념치 않아 했다.
거기다 뭔가 알려준다 한들 자신이 짧은 시간에 익히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잡생각은 잊고 다시 마력에 대해 생각하며 달렸다.
아카데미에서도 마법학부와 달리 무투학부가 마력을 다루는 것은 2학기부터였기에 당장 배울 수도 없었다.
혼자 해볼까도 했지만 알테리온도 아니고 자신이 혼자 무언가를 익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에 금방 포기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답은 하나뿐이었다.
2학기 정규수업 때 마력에 대해 배우고 그전까지 더욱 육체를 단련한다.
그뿐이었다.
유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묵묵히 뛰는 것에 집중했다.
한편 천천히 뛰고 있을 때 유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멀리서 한 쌍의 붉은 눈동자가 유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 * * * *
아카데미 내 이사장실.
이사장 ‘리비아 솔라리스’
그녀는 갑자기 터진 사건에 일요일에 쉬지도 못하고 집무를 보고 있었다.
거기다 마물인지도 확실치 않은 처음 보는 괴물의 형태.
그나마 피해자는 없다는 게 정말이지 천만다행이었다.
그러던 순간.
노크도 없이 이사장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간 큰 이가 있었으니.
“나 불렀수?”
사건을 해결한 당사자 ‘칼리 아스타르’
무슨 일이냐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그녀 때문에 리비아의 골머리는 더욱 앓아가는 듯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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