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신 - 1
서울의 길거리.
수많은 음식점 간판과 건물들을 들락날락하는 시민들이 가득한 곳.
그 길 가장자리에 오래된 나무 벤치가 하나 있었다.
겨울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거의 눕다시피 등을 기대고 고개는 의자 등받이게 걸쳐 하늘을 향해 있었다.
햇볕이 쨍쨍해서 눈을 감았지만, 강렬한 햇볕은 눈꺼풀을 뚫고 동공을 간지럽혔다.
"어?"
길을 걷던 수진이 그를 발견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 안녕하세요."
수진이 겨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겨울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끔 보더니 다시 고개를 원위치했다.
수진은 잠깐 우물쭈물하다가 겨울에게 물었다.
"여기서 뭘 하고 계세요?"
"보면 모르나. 햇빛을 받고 있잖나."
"... 그렇군요."
수진이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앉았다.
겨울은 고개를 돌려 수진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수진이 들고 있는 약 봉투가 보였다.
"병원에 갔다 온 건가?"
"네, 알코올 중독 치료 때문에요."
"그렇군. 무슨 치료를 하지?"
"약물치료랑 상담이랑 뭐 이것저것 해요."
"그렇군."
겨울은 다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공부는 잘 되어가나?"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공부를 하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요. 사이버 대학에서 강의를 들어요."
"그렇군, 근데 왜 하필 프로그래밍을 공부하지?"
"진 씨의 아지트에 들어가 봤거든요. 컴퓨터랑 모니터가 여러 대 있는 지하실이요."
"혹시 진을 돕기 위해 공부하는 건가?"
"네, 뭐 제 도움이 필요한 분은 아니겠지만, 은혜를 갚고 싶어서요. 병원비도 내주셨고 지낼 곳도 마련해 주셨잖아요."
겨울이 고개를 저었다.
"진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야."
"꼭 진 씨를 돕는 게 아니더라도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요즘 유망한 분야잖아요. 배워둬서 손해 볼 일은 없죠."
"그래, 네 맘대로 해."
"넵."
수진은 겨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괴물을 사냥하는 일은 그만두신 건가요?"
"아니, 지금은 괴물이 없어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야."
"괴물이 나타나지 않으면 늘 이렇게 지내고 있으신가요?"
"이렇게 지내다니?"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의자에 앉아 계시냐고요."
겨울이 수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심심해 보여서요. 부업을 찾아보면 어때요? 아니면 공부를 한다거나. 요즘은 단기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아요."
"이봐."
"넵."
"괴물을 사냥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부업이나, 공부 같은 걸 하면서 할 일이 아니라고. 알겠어?"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은 다시 처음 만났던 자세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수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가볼게요."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고 수진은 떠났다.
그로부터 잠시 후 옆에서 다시 인기척이 느껴졌다.
겨울이 시선을 돌려 옆에 앉은 사람을 바라봤다.
검은 정장에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 그리고 붉은 눈동자.
그의 옆에 앉은 건 다름아닌 이슬이었다.
겨울은 그녀를 보더니 언제 자기가 할 일 없는 한량처럼 있었냐는 듯이 재빠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 여긴 어쩐 일이야?"
"사냥할 괴물이 없어서 넌 뭘 하나 싶어서 와봤어."
"아, 그렇군. 흠흠."
겨울이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한국에 나타난 괴물은 총 다섯 마리였지."
이슬이 겨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겨울은 저도 모르게 움찔해서 고개를 살짝 뒤로 빼며 답했다.
"그렇지."
"네가 세 마리를 처리했고 한 마리는 네 친구들이 가지고 있어. 맞지?"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한 마리는 내가 처리했고."
"그 비행기에서?"
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까지 합치면 난 총 열여덟 마리를 처리했네. 중국에서 열세 마리, 북한에서 한 마리, 일본에서 세 마리."
"... 잘했네."
이슬은 겨울에게 좀 더 열심히 하라고 눈치를 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특별한 의도 없이 동료에게 그간 있던 일을 보고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겨울은 그녀가 처리한 괴물의 마릿수를 듣고 조금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가진 힘의 크기가 다르니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눈치가 보였다.
동아시아 전체를 날아다니며 괴물을 사냥하는 이슬과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겨울은 비교하기 싫어도 비교가 됐다.
"괴물을 얼마나 더 사냥해야 할까?"
이슬이 겨울에게 물었다.
겨울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모르지. 이미 괴물이 모두 사라졌을 수도 있고 아직 많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
"만약 우리가 죽을 때까지 괴물을 전부 사냥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도 우리 세상이 그랬던 것처럼 무너질까?"
겨울이 이슬을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게 보이진 않았다.
그냥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겨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가 눈에 힘을 준 채로 이슬을 바라봤다.
"이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 괴물을 전부 사냥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이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거나 겨울을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네 의견이 그렇다는 걸 알았단 의미였다.
이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어깨에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검은 사마귀가 나타났다.
사마귀는 팔을 들어 그녀의 뺨을 콕콕 찔렀다.
여자가 겨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그래?"
"네 도마뱀 아니, 여름이를 보고 싶은가 봐."
"..."
겨울은 흠칫했다.
이슬은 그의 동료였다.
검은 사마귀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이 자신과 여름이를 해치지 않는 단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괴물과 사람을 먹는 사마귀와 붉은 눈을 가진 이슬이 섬뜩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좀 피곤해서 쉬고 싶은가 봐. 다음에 보지."
"그래."
이슬은 짤막하게 대답한 뒤 가버렸다.
"후우-"
겨울은 긴장을 풀며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
서울에 밤이 찾아왔다.
수많은 조명이 어둠을 모른다는 듯이 밤하늘을 밝혔지만, 어두운 곳은 존재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인생 막장의 깡패들과 집 없는 노숙자들이 지내는 곳.
전구의 수명이 다해 불이 꺼진 가로등 아래에서 노상 방뇨의 지린내가 올라오는 곳.
주인 없는 땅 위에 쌓인 금이 간 벽돌들과 여전히 남아있는 석면 지붕.
그마저도 부서져 비닐을 덧대어 놓은 폐가에 가까운 건물들이 있는 곳.
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산 위의 달동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건물들 틈에서 점점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곳.
하지만 그 달동네에도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었다.
조명이 부서져 오른쪽 부분이 빛나지 않는 붉은 십자가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붉은 별 아래에는 산꼭대기 교회라는 간판이 있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낡고 빛바랜 간판이었다.
교회는 작고 초라했다.
간판과 십자가를 제외하면 일반 가정집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 교회의 작은 창문 하나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교회의 유일한 목사이자 구성원인 진목은 그곳에서 지냈다.
예배당으로 개조한 거실 안쪽 작은 방에서 그는 30년째 목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하는 내용은 늘 같았다.
사람들이 믿음을 되찾을 수 있기를.
그는 30년 동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
이른 아침.
진목은 거리로 나왔다.
그는 큰 비닐봉지와 집게를 들고 있었다.
그는 거리를 돌며 어제 사람들이 길에 버린 쓰레기를 주웠다.
태우다 만 담배꽁초와 깨진 소주병 정체 모를 하얀 액체가 들어 있는 피임 도구 등이 그의 봉지에 담겼다.
그렇게 달동네 이곳저곳을 돌며 쓰레기를 줍던 진목의 눈에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보였다.
진목은 천천히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세를 낮춰 얼굴을 가져다 댔다.
작게, 아주 작게 심장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쓰러져 있는 이의 얼굴을 보니 꽤 살집이 있었다.
아마 어젯밤에 술을 먹고 길에서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진목은 조용히 다시 일어나 그에게 기도했다.
그가 건강하게 다시 일어나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예전의 그는 쓰러진 사람을 보면 흔들어 깨우곤 했었다.
하지만 7년 전에 쓰러진 사람을 깨우다 폭행당해 코뼈가 부러진 뒤로는 사람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길거리 청소를 마친 진목의 다음 일과는 폐허 같은 집에서 혼자 지내는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똑똑
"아, 시방 어떤 년이 남의 집 문을 두드리고 지랄이여!"
한 노인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진목은 그가 집 밖으로 나오기 전에 재빠르게 다음 집으로 향했다.
-똑똑
이번 집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진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까치발을 들어 집 안을 살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반쯤 깨진 세숫대야, 지저분한 쓰레기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파리가 보였다.
진목은 조용히 돌아와 조심스레 대문을 닫았다.
그리고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구청에서 파견된 장례 업체 직원들이 차갑게 식은 독거노인의 시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진목은 고개를 숙인 채로 그들이 모두 떠나갈 때까지 기도를 올렸다.
그의 다음 일과는 서울 시내에 있는 큰 교회로 출근하는 것이었다.
과거 신학 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 성호의 호의로 그는 그곳에서 주방 보조 일을 하고 약간의 월급을 받았다.
그는 그것으로 산꼭대기 교회를 운영했다.
보통 목사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내는 헌금으로 교회를 운영하며 살아가지만, 그의 교회엔 헌금을 낼 신자가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기도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만, 나이가 든 이들은 하나둘씩 예수님의 곁으로 떠나갔고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달동네를 떠났다.
그들의 빈자리를 꿰찬 깡패들과 노숙자들은 아무리 설득해도 기도하려 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노인들은 헌금을 낼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에 찾아오는 그들에게 진목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진목아, 거기서 나오면 어쩔 거냐?"
멋들어진 가운을 입은 진목의 친구이자 교회의 목사인 성호가 물었다.
진목이 지내는 달동네엔 불법 점거 건축물의 철거 명령이 내려졌고 조금 있으면 달동네는 완전히 사라지고 포레스트라는 이름이 붙은 멋들어진 아파트 단지가 세워질 예정이었다.
"나야 어떻게든 살면 되지만 갈 곳 없는 노인 분들이랑 방황하는 어린 양들이 걱정이네."
"으이구, 너나 걱정해라. 친구한테 빌붙어서 근근이 먹고사는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해."
진목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성호는 진목과 다른,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목사였다.
그는 교회 헌금으로 교회를 증축하고 값비싼 외제 차를 차고 가득 채워두었다.
진목을 도와주는 이유도 연민이나 과거의 우정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선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진목에겐 그것조차 은혜로운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일꾼으로 고용해 준 덕분에 자신의 교회를 찾아오는 어린 양들에게 미약하나마 음식을 대접할 수 있었고 죽지 않고 살아서 달동네를 청소하고 주민들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지는 마라. 지금 네 월급도 진짜 짜내고 또 짜내서 주는 거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진목의 눈에 성호의 손목에 있는 고급 시계가 보였다.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진목의 몇 달 치 월급보다 비싼 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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