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3

현수의 현란한 운전 실력 덕분에 겨울은 예상보다 조금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였고 차에서 내린 그의 앞에 있는 것은 15층짜리 아파트였다.
각층 마다 7개의 세대가 있었으니, 총 105개의 집이 있었다.
"정확한 위치가 어떻게 되지?"
"잠시만요."
현수가 곧바로 카르멘 본부에서 온 연락을 확인했다.
"주민등록 등본에 등록된 내용에 따르면 11층 3호라고 합니다."
"그렇군."
"전 뭘 하고 있을까요?"
"늘 하던 대로 해."
"넵, 그럼, 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아, 혹시 아이스크림 사 먹어도 되나요? 저기 앞에 편의점에서요."
"... 맘대로 해."
"예! 그럼, 오늘도 수고하십시오!"
현수가 큰 소리로 대답하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
-딩동
겨울이 11층 3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군.'
-쾅쾅쾅
겨울이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지금 이 안에 괴물이 있는 게 맞나?"
겨울이 어깨에 타고 있는 여름에게 물었다.
여름은 혀를 날름거리더니 안에 괴물이 있다는 뜻으로 겨울의 뺨을 툭 쳤다.
겨울의 몸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갑주가 되어 그의 몸을 감쌌다.
그는 문에서 한 발 떨어진 뒤 있는 힘껏 바닥을 박차며 문에 몸을 처박았다.
잠금장치가 나가떨어지면서 그대로 문이 열렸다.
"계십니까?"
겨울은 일단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 눈 좀 떠봐요!"
검은 곰의 갑주를 입은 지호가 실신한 어머니를 흔들면서 울먹거리고 있었다.
"아, 아저씨?"
2m짜리 검은 곰의 입에서 나온 아저씨라는 말에 겨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물 사냥이 편하도록 괴물 사냥꾼들의 평상시 모습과 갑주를 입은 모습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었다.
그래서 과거에 병실을 찾아온 겨울을 봤던 지호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좀..."
지호가 어머니를 번쩍 들어 겨울에게 다가가려는 데 그녀가 몸을 뒤척였다.
"아이고 머리야..."
눈을 뜬 지호의 어머니 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검은 곰의 턱이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뾰족한 도마뱀 머리 형태의 갑주를 입고 있는 겨울이었다.
그녀는 그 광경을 보더니 다시 기절했다.
"엄마아!!!"
지호가 울부짖었다.
"일단 진정해."
겨울이 팔을 뻗으며 말했다.
"그냥 좀 놀라셨을 뿐이야."
겨울이 지호에게 다가가 지호의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받아 소파 위에 눕혔다.
그리고 다시 검은 곰을 바라봤다.
"지금, 그 안에 있는 건가?"
"안이요?"
"그 검은 곰 아니, 그 갑주 안에 있는 거냐고."
"예, 그, 그런 것 같아요."
겨울이 지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방금, 아저씨라고 했지?"
겨울의 물음에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 알고 있는 건가?"
겨울의 갑주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겨울이 지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가 아는 사람 중에 키가 2m가 넘는 사람은 없었다.
"예전에 제 병실에 왔었잖아요."
"병실?"
"네, 장난감 소방차를 주고 갔잖아요."
'장난감 소방차...'
"혹시 지호인가?"
"맞아요. 제가 지호에요."
"...많이 컸구나."
겨울이 지호를 올려다보았다.
"제가 큰 게 아니라 이 검은 게 큰 거예요."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잘, 모르겠어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제 발밑에 커다란 검은 곰이 있었고 갑자기 저한테 달려들더니 정신을 차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그렇군, 일단 진정하고 그 갑주를 벗어 봐."
"어떻게요?"
"... 그냥 벗으면 될 텐데. 자연스럽게 될 거야."
괴물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벗고 싶다고 생각을 해봐."
"그러고 있어요."
갑주를 벗으려고 이리저리 꿈틀대던 지호의 눈에 겨울이 뚫고 들어온 현관이 보였다.
철문이 찌그러져 있었고 부서진 잠금장치가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겨울이 문을 강제로 열 때의 충격으로 문 한쪽이 부서진 붙박이 신발장에서 신발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
"저건 걱정하지 마. 다 배상해 줄 테니까."
"예..."
그 후로도 지호는 여러 방식으로 갑주를 벗으려 해봤지만, 갑주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지호는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괴물엔 두 가지 종류가 있어. 하나는 너희도 잘 아는 소원을 이뤄주는 괴물이고 다른 하나는 내 괴물처럼 괴물을 사냥하는 괴물이지. 네 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봤지?"
"예, 커다란 검은 곰이었어요."
"네가 입고 있는 갑주는 그 곰이 갑주로 변한 거야. 개체마다 그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괴물을 사냥하는 괴물이 가진 일반적인 능력이지."
"그렇군요."
지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아차 하는 눈빛으로 겨울을 바라봤다.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
겨울은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더니 다시 검은 갑주를 소환해 입었다.
겨울이 손바닥을 펼쳐 지호에게 뻗었다.
"뭐에요?"
"쳐 봐."
"예?"
"있는 힘껏 쳐 봐."
지호는 잠깐 망설이다가 자세를 낮춰 하체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팔과 상체를 뒤로 돌렸다가 골반과 허리를 틀며 전신을 이용해 겨울의 팔에 주먹을 날렸다.
지호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복싱을 수련했고 중학교 1학년 땐 도내 체육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었다.
거대한 곰 발바닥이 올곧은 직선을 그리며 겨울의 손바닥을 정확하게 강타했다.
찰진 타격음이 공기를 터트리며 집안에 퍼졌다.
힘을 잔뜩 주고 있던 겨울은 예상치 못한 충격에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괘, 괜찮아요?"
"괜찮아."
겨울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팔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굉장히 강하네. 힘만 따지면 내 두 배 정도 되겠어."
겨울이 다시 갑주를 풀었다.
"아직도 갑주를 못 벗겠나?"
"뭔가 알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그럼, 일단 나랑 같이 가도록 하지."
"같이 가다니요? 어디로요?"
"카르멘 한국 지부. 괴물을 사냥하는 괴물이 나타난 건 이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여기저기 보고를 해야 해."
"그럼, 혹시 저도 괴물 사냥꾼이 되는 건가요?"
지호가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말했다.
"아니, 보고를 마치고 이런저런 상의를 하긴 하겠지만, 웬만하면 다시 집으로 돌려보낼 거야."
"예? 왜요?"
"넌 아직 어리잖아. 지금 14살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지호가 몸을 쭉 폈다.
검은 곰은 가로로든 세로로든 겨울보다 훨씬 거대했다.
"이렇게 크잖아요."
"그 갑주를 입고 있을 땐 그렇겠지. 하지만 그 안은 어떻지?"
"그, 그건 뭐..."
지호는 아직 성장 중이라 키가 170도 안 됐다.
"하지만 제가 아저씨보다 힘이 두 배는 강하다면서요."
"그래도 안 돼. 괴물 사냥꾼은 위험한 일이니까. 너 같은 어린애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에이, 저보다 약한 아저씨가 5년 동안 멀쩡히 살아 있는데 뭐가 위험해요?"
"..."
겨울이 의자에서 일어나 지호를 노려봤다.
지호는 조금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내가 멀쩡히 살아있는 걸로 보여?"
"아, 아니에요?"
"지난 5년 동안 난 숱하게 죽을 위기를 넘겨 왔어. 죽어도 소원을 이루겠다고 몸부림치는 인간들을 상대했고 너보다 훨씬 더 강한 괴물과도 피 터지게 싸워봤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건 이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 5년 전에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잖아? 도시가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나도 거기서 죽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괴물 사냥꾼이라는 건 네가 하고 싶다고, 되고 싶다고 해서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야. 위험하지만 누군가는 가야만 하는 길이지. 그러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괴물 사냥꾼이 되겠다고 하지 마."
겨울의 말에 어깨를 움츠렸던 지호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갑주 너머로 겨울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 가벼운 마음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네 마음이 어떤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아직 학교밖에 안 다녀본 어린애란 거지."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잖아요. 아저씨는 처음부터 어른이었어요? 처음부터 괴물 사냥꾼이었냐고요."
"아무튼, 안 돼."
"그럼, 안 갈래요."
지호가 식탁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우직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부서지고 지호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
지호가 멍한 표정으로 부서진 의자를 바라봤다.
나사가 박혀있던 나무가 조각 나서 수리할 수도 없어 보였다.
"혹시 이것도 배상해 주시나요?"
"해줄 테니까. 괴물 사냥꾼이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
"..."
지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호가 겨울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고 지금 지호가 뭐라고 하든 설득될 것 같지 않았다.
"알겠어요. 괴물 사냥꾼이 되는 건 포기할 테니까 아까 말한 대로 카르멘 으로 가요. 여기 있다간 뭘 더 부술지 모르겠어요."
"그래, 일단 방에 가서 짐을 챙겨. 얼마나 있어야 할지 모르니까 꼼꼼하게."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은 지호의 어머니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고 겨울은 지금까지 있던 일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지호가..."
그녀가 겨울의 손을 잡았다.
"우리 지호 괜찮은 거죠?"
"물론입니다. 저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습니까."
"그렇지만... 괴물 사냥꾼이 되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호가 괴물 사냥꾼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카르멘은 추가 인력이 없어도 지난 5년간 전 세계의 괴물들을 잘 막아 왔어요. 보고와 조사가 끝나면 제가 책임지고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 좀 할게요.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이예요."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호 어머니가 겨울의 손을 잡았다.
피부가 거칠었고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혼자 지호를 키워 내느라 갖은 고생을 하며 생긴 자랑스러운 흔적들이었다.
-
지호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갑주를 벗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겨울이 말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아저씨, 칫솔도 챙겨야 하나요?"
지호가 방 밖에 있는 겨울에게 소리쳤다.
"아니, 세면도구는 거기 있으니까 챙기지 않아도 돼."
잠시 후 지호가 다시 갑주를 입고 커다란 검은 곰의 모습으로 밖으로 나왔다.
옆구리엔 파우치처럼 캐리어를 끼고 있었다.
"그럼, 갑시다."
지호가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처럼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겨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다녀올게요."
지호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지호는 혹시나 갑주를 입은 자기 힘 때문에 어머니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잡진 않고 살짝 가져다 댔다.
지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겨울을 따라 집 밖으로 나갔다.
지호 어머니는 그제야 부서진 현관을 발견했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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