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4
현수는 차에 기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나무 막대기에 꽂힌 망고 맛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갈 때쯤 겨울이 아파트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팀장님!"
현수는 겨울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가다가 뒤 따라 나온 커다란 검은 곰을 보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티, 팀장님, 그 뒤에 곰은 뭡니까?"
"안녕하세요."
검은 곰의 갑주를 입은 지호가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현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이 애를 카르멘으로 데려갈 예정이야."
"이 곰을요?"
"곰이 아니라 사람이야. 나처럼 갑주를 입고 있는 거지."
"아, 그랬군요. 그럼, 일단 타시죠."
"아니, 이 애는 갑주를 못 벗으니까 다른 차가 필요해."
"그렇군요. 그럼, 근처에서 화물차를 빌릴게요."
"그래, 부탁하지. 아, 뒤에 컨테이너 같은 게 있는 차로 해. 쓸데없이 주변의 시선을 끌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
현수가 택배사의 트럭 하나를 빌렸다.
뒤에 컨테이너가 실려 있어서 지호를 비밀리에 이동시킬 수 있었다.
트럭은 덜컹거리고 느릿느릿한 게 현수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른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들이 향한 곳은 경기도 평택이었다.
도시로 향하는 도로 양옆으로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었고 앞쪽에 보이는 도심에는 하늘 높이 치솟은 신축 아파트들이 모여 있었다.
카르멘 한국 지부는 그 아파트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 휑한 논밭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언뜻 보면 회색 판넬로 만들어진 공장들과 비슷해 보였지만, 규모가 더 컸고 단순한 판넬이 아니라 방폭 기능이 뛰어난 군용 특수 자재가 사용되었다.
앞마당은 도로처럼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뒤쪽에 있는 창고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창고 안의 수송기를 띄우기 위한 활주로였다.
겨울은 보통은 차로 이동했지만, 거리가 멀거나 제주도나 서해안의 섬 같은 곳에 괴물이 나타나면, 활주로를 이용해 수송기를 띄워 날아갔다.
"팀장님, 그럼 전 트럭을 반환하고 차량을 회수해 오겠습니다."
"그래."
현수는 다시 트럭을 운전해 서울로 돌아갔다.
차에서 내린 지호는 신이 난 모습이었다.
"와, 여기가 카르멘 본부군요!"
지호는 여전히 2미터가 넘는 검은 곰의 모습이었다.
"그래, 여기가 카르멘 한국 지부야."
지호는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를 파우치처럼 옆구리에 낀 채 본부 건물로 걸어갔다.
건물 정면에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문 위에 달린 카메라가 움직이더니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내부엔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군용 장갑차가 세워져 있었다.
반대편에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 여러 개와 커다란 모니터가 있었다.
각각의 자리엔 정보, 통신, 전투 지원 등의 임무를 맡은 카르멘의 대원들이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군대의 지휘통제실과 비슷했다.
특히 공군의 지휘통제실과 비슷했는데 그건 공군 출신인 카르멘 한국 지부장 진이 직접 디자인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진은 카르멘 한국 지부의 지부장이면서 동시에 항공기 조종과 사이버 정보원 역할을 맡고 있었다.
카르멘의 대원들은 대부분 국가에서 시행한 공채를 통해 뽑혔다.
합격자 대부분은 현수처럼 각자의 지원 분야에 특출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진도 맡은 분야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경력은 다른 합격자들에 비해서 초라했다.
공군에서 조종사로 복무했지만, 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사이버 정보에 관련된 경력은 해킹 등의 비합법적인 일이었기에 인정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공군 비행단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는 실무자였다.
카르멘은 독립적인 특수 기관이긴 했지만, 하는 일이나 사용하는 장비 그리고 편성되는 예산이 국방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그의 아버지가 군의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이 그가 카르멘의 한국 지부장이 되는 데 크게 작용했다.
물론 카르멘 구성원 중 가장 중요한 괴물 사냥꾼 겨울이 그를 한국 지부장으로 추천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설명만 들으면 소위 말하는 낙하산처럼 보이겠지만, 진은 지난 5년간 카르멘 한국 지부장으로 임무를 잘 수행해 냈고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야, 현수가 말한 대로 정말 크네."
진이 겨울과 지호에게 다가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커다란 곰의 머리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지호가 진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자, 진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는 고개를 돌려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분들한테도 인사를 할까요?"
"아니, 괜찮아. 일단 이쪽으로 와서 짐부터 내려놓자고."
진이 건물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엔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철문 안에 펼쳐진 것은 넓은 공간을 가진 대형 창고였다.
"그 갑주를 못 벗는다고 했지?"
"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면 돼. 임시로 쓸 침대는 금방 준비해 줄게. 크기가 조금만 작았어도 2층에 있는 주거 시설을 이용하면 되는데 아쉽네. 호텔형이라 꽤 좋거든."
"그, 그렇군요."
지호가 멋쩍게 웃었다.
"조금 있다가 연구소에서 사람들이 올 거야. 뭐 괴물 연구야 이미 지난 5년간 질리도록 한 거라서 특별히 뭔갈 할 것 같진 않고 일단 네 상태만 살펴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돼. 그 뒤엔 다 같이 식사라도 하자고. 그런데 그 갑주를 입은 채로 음식을 먹을 수 있나?"
"아마, 먹을 수 있을 거다. 나도 갑주를 입은 채로 먹을 수 있으니까."
겨울의 말을 들은 진이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오, 그래? 이번 기회에 한번 보고 싶네."
"됐어."
"에이 그러지 말고."
"됐으니까, 가서 일이나 하지 그러나."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어."
진이 겨울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럼, 지호야. 편히 쉬렴."
"네, 감사합니다."
진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좋은 분 같네요."
지호가 겨울에게 말하자 겨울이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뭐... 그렇지. 좋은 사람이야."
-
잠시 후 연구원들이 도착했고 지호에게 달라붙어 외부 충격에 대한 반응이나 갑주의 재질 등을 조사한 뒤 사진을 잔뜩 찍고 돌아갔다.
겨울은 그사이에 카르멘의 총장이자, 괴물 사냥꾼들의 리더인 빌리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
-과연, 그래서 그쪽에 괴물 하나가 계속 있던 거군.
빌리는 미국에 있었지만, 전 세계에 있는 괴물의 위치를 전부 파악할 수 있었다.
정밀도는 이슬의 사마귀에 비해 좀 떨어졌지만, 탐지할 수 있는 범위는 훨씬 더 넓었다.
"예, 일단 본부로 데려와서 연구원들을 부른 상태입니다."
-그래, 뭔가 알아냈으면 좋겠군. 이쪽 세계에서 괴물을 사냥하는 괴물이 나타난 건 처음 있는 일이니 말이야.
-그런데 자넨, 앞으로 그 아이를 어떻게 할 생각인가?
"연구가 끝나면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음...
"아직 14살밖에 안 된 어린애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신디도 처음 만났을 땐 그 나이였잖나.
신디는 빌리와 함께 미국 지부를 맡고 있는 괴물 사냥꾼이었다.
그녀의 괴물은 긴 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몸을 쭉 편 길이는 1m가 훨씬 넘었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땐 신디의 목과 어깨를 감고 있었다.
신디의 말에 따르면 가볍고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다른 동료들은 다들 한 번씩 목에 감아 봤지만, 겨울은 좀 꺼림칙해서 목에 감아 보진 않았다.
-겨울 군, 난 우리가 가진 괴물의 힘이 일종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네.
"축복이요?"
-그래, 우리가 그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 세계를 지켜낼 수 있잖나. 하지만, 어찌 보면 저주일 수도 있지. 살기 위해서 영원히 싸워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주는 저주.
"그렇군요."
-겨울 군, 자네가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 아이의 운명은 자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닐세. 자네도 알고 있잖나.
"..."
-뭐, 일단 연구가 끝날 때까지 잘 데리고 있게. 다른 동료들에게는 내가 이야기해 두겠네.
"알겠습니다."
빌리와의 연락이 끝난 뒤엔 국방부 차관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괴물 사냥꾼이 더 생긴다고요?
"아뇨, 더 생기는 게 아니라, 제 괴물과 비슷한 힘을 가진 괴물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괴물 사냥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 괴물의 주인은 아직 14살입니다. 의무교육도 마치지 않은 어린애라고요."
-아, 압니다. 압니다만... 괴물의 위험성은 저보다 겨울 씨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괴물 사냥꾼이 한 명 더 생긴다면, 국민들이 더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겁니다.
"..."
차관은 겨울의 침묵이 자기 의견에 반대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 사냥꾼은 더 필요했다.
지난 5년간은 무사히 지내왔지만, 솔직히 차관이 생각하기에 대한민국의 수천만 국민을 겨울 혼자 지켜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5년 전 일어났던 사고 때는 괴물 두 마리가 동시에 나타났기에 차관의 의견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겨울에게 강제로 명령할 순 없었다.
괴물에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괴물 사냥꾼이었고 그건 아직까진 대한민국 수천만 국민 중에 겨울 하나뿐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장관님께는 제가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연구소에는 연락하셨죠?
"예, 지금 연구원들이 와서 각종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겨울이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
그날 저녁, 겨울은 카르멘 전 대원이 다 같이 식사하자는 진의 제안을 거절하고 창고에서 지호와 단둘이 식사하겠다고 말했다.
본부에 굴러다니는 폐드럼통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네모난 판자를 위에 올려놓은 간이 식탁 위에 오늘 저녁 메뉴인 닭볶음탕과 묵무침, 해물 완자 그리고 깍두기가 올려져 있었다.
"저,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
지호의 물음에 겨울은 말없이 젓가락을 들어 해물 완자를 집었다.
"그냥 먹으면 돼."
"네?"
"그 갑주를 벗고 젓가락을 집어."
지호는 몸을 바짝 세우며 누가 봐도 당황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렸다.
"... 무, 무슨 소리예요?"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아도 돼. 젓가락도 집지 못하는 그 커다란 손으로 작은 캐리어에 짐을 차곡차곡 넣은 건 아닐 거 아냐."
"..."
"정말 갑주를 정말 벗지 못했다면, 짐을 챙길 때 세면도구가 필요하냐고 물어볼 이유도 없었겠지."
지호는 변명하려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가 입고 있던 갑주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검은 곰은 여름이처럼 모습을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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