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이뤄주는 괴물과 괴물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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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터
작품등록일 :
2024.10.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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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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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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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9

DUMMY

신앙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만나본 적도 없는 신을 숭배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답은 간단하다.

두려움.

화산폭발, 해일, 폭풍, 지진

인간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거대한 힘을 두려워해 자연을 숭배해 왔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원천, 미지를 향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창조자를 숭배해 왔다.

그렇기에 괴물을 숭배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아오, 숨 막혀.'


지호는 방독면을 낀 채로 작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좁은 환풍구 안을 기어가고 있었다.

앞에선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왔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쌓였던 먼지가 튀어 올라왔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팀장님 말대로 할 걸.'


서울에 있는 초월교의 한국 지부에 괴물이 나타났다.

초월교는 5년 전의 참사가 일어난 뒤 설립된 종교로 괴물을 숭배했다.

그들은 괴물을 숨기려 했고 괴물 사냥꾼은 그 괴물을 찾아내 없애야 했다.

겨울은 경찰 특공대에 협력을 요청해 초월교 내부로 진입한 뒤 무력으로 신자들을 제압하고 괴물의 위치를 특정한 뒤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지호는 자신이 몰래 잠입해 괴물의 위치를 알아내고 직접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괴물은 반드시 없애야 하고 그걸 방해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테러와 같았기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호는 괴물이 아닌 사람들에게 무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결정권을 가진 건 겨울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지호의 의견을 묵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은 지호를 같은 괴물 사냥꾼으로 존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호는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초월교에 잠입할 기회를 얻었다.

처음엔 초월교의 신도로 위장할 생각이었지만, 신자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한 달간 신도로서 열렬한 활동을 펼친 뒤 기부금이라 불리는 회비까지 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건설사로부터 제공받은 건물의 설계도를 이용해 환풍구로 잠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지호는 지붕에서 돌아가는 환풍기의 팬을 떼어내고 수십 분째 환풍구를 기어가고 있었다.


"어!"


어둠의 끝에서 빛이 보였다.

지호는 허겁지겁 빛을 향해 기어갔다.

방독면의 작은 고글과 환풍구의 작은 바람구멍 아래로 초월교의 모임장이 보였다.

지호가 다녔던 중학교의 대형 체육관과 맞먹는 넓은 모임장에 초월교의 상징인 검은 두건을 쓴 신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지호는 활짝 웃으며 방독면을 벗어 던졌다.


'후, 힘들었지만, 제대로 왔군.'


모임장 앞에 있는 무대 위 단상엔 검은 두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초월교에선 그를 전령이라 불렀다.

전령은 초월교 각 지부의 지부장으로서, 교회로 치면 목사와 비슷했다.


"자, 초월교의 자랑스러운 형제님들, 자매님들! 모두 모이셨습니까?"


"예!"


모임장에 우렁찬 함성이 퍼졌다.

사람들은 모두 극도의 기대감으로 흥분된 상태였다.

오늘은 초월교의 정규 모임이 아니라 긴급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긴급 모임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이루어졌는데 괴물이 나타났을 때가 그중 하나였다.


"오늘 여러분을 긴급 모임에 부른 이유는 다들 아시겠지요."


교주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숨을 들이마셨다.

지호는 혹시나 눈이 마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바람구멍 뒤로 쭉 뺐다.


"사람들은 우리의 신을 뭐라고 부르지요?"


"괴물이라 부릅니다!"


전령의 말에 신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들은 신을 괴물이라 말하며 손가락질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우리만 알고 있습니다!"


"아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신입니다! 미천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 현현한 초월적인 힘을 가지신 신이란 말입니다!!"


"아아!!"


사람들은 환호와 신음 사이의 괴상한 탄성을 내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호는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때 모임장에 있던 한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검은 두건을 쓰고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왠지 낯이 익었다.


"괴물이 정말 신이라고 생각하나?"


모임장에 있던 신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 신자들은 사내를 노려봤으며, 명백한 적의를 갖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자들도 있었다.


"형제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5년 전의 뉴스를 봤으면 괴물한테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진 않을 텐데?"


자리에서 일어난 신자들이 점점 사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전령이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전령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제님, 그들이 저희 초월교의 신자들이었습니까?"


"아니었지. 그들이 죽고 난 뒤에 이 종교가 만들어졌으니까."


전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들은 대가를 치른 겁니다."


"대가?"


"신앙도 믿음도 없는 이들이, 신을 숭배하지도 않는 이들이 신의 축복을 탐했으니, 대가를 치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상할 것이 전혀 없죠."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희들은 괴물을 숭배하니까 무사히 축복을 얻었겠군?"


신자들이 침묵했다.

전령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왜지?"


"저희들의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곧 얻게 될 겁니다."


신자들이 전령을 향해 환희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전령은 그 눈빛을 보고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러분 오늘 모임이 어떤 모임입니까?"


"긴급 모임입니다!"


신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맞습니다! 저희가 긴급 모임을 열 때는 어떤 때입니까!"


"신이 우리에게 현현하셨을 때!"


"맞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의 신이! 우리가 숭배해 온 그 신이 현현하셨습니다!"


"우워어어!!"


귀가 떨어져 나갈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전령은 단상 밑에 숨겨 두었던 무언가를 꺼내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검은 펭귄.

새하얀 부분이 전혀 없는 짙은 검은 색의 펭귄, 겨울과 지호가 찾던 괴물이었다.

통로 한 가운데 서 있던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사내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그를 보고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뭡니까?"


"일을 벌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겨서 말이야."


"일을 벌인다고요?"


전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괴물 사냥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 너희들이 숭배하는 괴물을 죽이는 사람들인데."


"... 적이며 시련이지요. 당신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악마지요. 신의 권능을 질투하고 축복받아 마땅한 이들의 행복을 가로채는 추악한 악마입니다."


신자들이 사내의 곁으로 점점 모여들었다.

사내는 고개를 돌려 자신 주변에 모인 초월교의 신자들을 쭉 훑어봤다.

수염이 덥수룩한 덩치도 있었고 이제 막 성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도 있었다.

허리가 굽어 지팡이를 짚은 채 다리를 떨고 있는 노인도 있었고 앞니가 빠져 있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검은 두건을 머리에 쓴 그들은 모두 겨울을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사내, 아니 겨울은 그 눈동자들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누군지 아는 모양이군."


전령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요. 괴물 사냥꾼 한겨울. 그런데 그 두건은 어디서 난 겁니까? 제 신자들에게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라 했는데."


"그거야 간단하지. 1층 화장실 창문으로 기어들어가서 안에 있는 신자를 기절시키고 빼앗은 거야. 5분도 안 걸렸지."


"그렇군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전령도 사내도 초월교의 신자들도 모두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도화선에 불을 붙일 작은 불씨였다.


"어떻게 할 거냐니, 잘 알고 있잖나."


겨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갑주의 형태로 변했다.

뾰족한 뿔이 달린 도마뱀의 투구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모임장 문이 박살 나며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 특공대가 들이닥쳤다.


"모두 엎드려! 반항하면 무력으로 진압하겠다!"


그와 동시에 신자들이 겨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다치는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막무가내로 몸을 들이밀어 겨울을 공격했다.

그리고 천장의 환풍구에 숨어 상황을 살피고 있던 지호도 움직였다.

지호가 서둘러 갑주를 입었다.

갑주를 입은 지호는 환풍구의 넓이보다 훨씬 더 컸고 그 바람에 지호는 환풍구에 꽉 끼어서 옴짝달싹 못 하게 됐다.


"윽, 이아악!"


지호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자, 철제 환풍구에 균열이 생겼고 지호는 그 틈을 이용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환풍구의 철판과 연결되어 있던 시멘트가 터져나가며 지호가 아래로 떨어졌다.

10미터가 넘는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진 2미터가 넘는 거대한 검은 곰이 착지한 곳은 전령이 있던 무대였다.

무대는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그대로 폭삭 주저앉았다.

지호가 부서진 무대 잔해를 집어 던지고 벌떡 일어났다.


"잠깐! 모두 기다려요!"


지호가 소리쳤지만, 그 누구도 지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기다리라고요!"


지호가 다시 소리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령은 지호가 떨어진 그 순간부터 계속 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호가 떨어진 곳에 있던 검은 펭귄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어?"


지호가 고개를 내려 검은 펭귄을 바라봤다.

그곳엔 펭귄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게 된 검은 덩어리가 점점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어라?"


지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전령을 바라봤다.

그는 이를 악문 채로 몸을 진동모드의 스마트폰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기 그..."


"으, 으아아악!!"


전령이 비명을 지르며 지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온몸으로 발악하며 지호를 때렸다.

당연히 지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때려야 하나? 힘 조절을 잘못하면 크게 다칠 텐데... 괴물을 없애긴 했으니까 일단 그냥 서 있을까?'


지호는 도움이 간절한 표정으로 겨울을 바라봤다.

하지만 겨울은 좀비처럼 달라붙는 신자들을 떼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앞니가 빠진 어린아이가 겨울의 다리를 붙들고 허벅지를 깨물었다.

노인이 지팡이로 겨울의 다리 사이 그곳을 연신 찔러 댔고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는 그의 턱을 향해 몇 번이고 주먹을 날렸다.

젊은 여자는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가져와서 겨울을 내려쳤다.

겨울이 그들을 떼어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전령은 여전히 눈이 뒤집힌 채로 지호를 때리고 있었다.

물론 둘 다 갑주를 입고 있었기에 계속 그곳으로 들어오는 공격에 겨울의 기분이 언짢아졌다는 것을 빼곤 그 어떤 충격도 받지 않았다.

경찰 특공대의 대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광기로 물든 신자들의 멈추지 않는 공격은 그들을 점점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전부 움직이지 말고 엎드려!"


"전부 움직이지 말고 엎드리라고! 명령에 불복하면 최루탄으로 진압하겠다!"


경찰 특공대의 팀장이 소리쳤지만, 지호가 그랬던 것처럼 간단히 무시당했다.


"이, 이 자식들이... 모두 방독면 써!"


팀장의 명령에 대원들이 재빠르게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뒤집어썼다.


"최루탄 투척!"


팀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며 최루탄을 집어 던졌다.


텅-


데구르르-


푸슉-


바닥을 굴러 신자들의 앞에 떨어진 최루탄은 단 하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스를 내뿜었다.

모임장 안이 순식간에 새하얀 연기로 가득 찼을 때 다시 한번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루탄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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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미국에서 온 친구 - 3 25.01.11 4 0 14쪽
63 미국에서 온 친구 - 2 25.01.09 8 0 13쪽
62 미국에서 온 친구 - 1 25.01.07 7 0 13쪽
61 내 이름은 신디 - 2 25.01.04 9 0 12쪽
60 내 이름은 신디 - 1 25.01.02 7 0 12쪽
59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5 24.12.31 6 0 12쪽
58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4 24.12.28 7 0 12쪽
57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3 24.12.26 8 0 15쪽
56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2 24.12.24 8 0 12쪽
55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1 24.12.21 8 0 13쪽
54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0 24.12.19 7 0 13쪽
»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9 24.12.17 8 0 12쪽
52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8 24.12.14 8 0 14쪽
51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7 24.12.12 8 0 11쪽
50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6 24.12.10 8 0 12쪽
49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5 24.12.08 9 0 12쪽
48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4 24.12.07 10 0 11쪽
47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3 24.11.27 12 0 11쪽
46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2 24.11.26 9 0 12쪽
45 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 24.11.18 11 0 14쪽
44 두 명의 신 - 7 24.11.17 10 0 13쪽
43 두 명의 신 - 6 24.11.16 11 0 12쪽
42 두 명의 신 - 5 24.11.15 13 0 12쪽
41 두 명의 신 - 4 24.11.14 10 0 12쪽
40 두 명의 신 - 3 24.11.13 11 0 12쪽
39 두 명의 신 - 2 24.11.12 11 0 11쪽
38 두 명의 신 - 1 24.11.11 11 0 12쪽
37 컴백 - 3 24.11.10 12 0 14쪽
36 컴백 - 2 24.11.09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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