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괴물 사냥꾼 - 10

카르멘으로 돌아온 지호는 지부장인 진에게 임무 수행 내용을 보고했다.
이야기를 들은 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그래서 그대로 깔아뭉갰다고?"
진의 물음에 지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흡."
결국 웃음이 터졌고 지호는 눈꼬리가 축 늘어진 채 진을 바라봤다.
"아, 미안. 미안.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굳이 환풍구로 들어간 거야? 설계도를 보니까 천장 쪽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던데?"
"좀 더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었어요..."
"그래, 그런데 왜 그렇게 못 했어?"
"팀장님이 한 시간을 주셨는데 그 시간을 전부 환풍구를 기어가는 데 썼거든요."
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길었나?"
"중간에 방향을 잘못 들었어요. 방독면 때문에 시야가 좁아서..."
"어차피 환풍구 안은 조명이 없어서 앞이 안 보였을 텐데."
"..."
"아, 미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크흡, 웃겨서... 아무튼 괴물은 잘 처리했다는 거네?"
지호는 고개를 숙였고 겨울이 대신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괴물은 잘 처리했는데 후속 처리가 좀 필요할 것 같아."
"아, 들었어. 최루탄을 썼다면서?"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나 던지더군.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말 해뒀는데 천장에서 커다란 곰이 뚝 떨어지고 신자들도 난리를 피워대서 다들 놀랐던 모양이야."
"죄송합니다..."
지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법적으로 거기 있던 사람들은 전부 테러리스트니까 최루탄을 쓴 건 문제 될 거 없어. 괴물 사냥꾼은 임무 수행 시 발생한 비상 상황에 대해서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지호가 계속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자, 진이 지호의 어깨를 툭 쳤다.
"지호야, 왜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이야? 과정이야 어쨌든 괴물을 한 방에 보내버렸잖아. 임무 성공이라고."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모든 일은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고. 잘했어. 그러니까 어깨 펴. 그나저나, 요즘 괴물이 출현하는 빈도가 늘어났네."
겨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열흘에 한 마리 정도 나왔었는데 이번 주만 해도 두 마리 째니 두 배가 넘게 늘어났지."
"혹시 새로운 괴물 사냥꾼이 나타나는 거랑 연관이 있을까? 보고서를 살펴보니까 해외 지부에서도 다른 괴물 사냥꾼이 나타난 이후로 괴물이 출현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더라."
"그럴 수도 있겠군."
겨울의 표정이 어두웠다.
진은 이번엔 겨울의 어깨를 쳤다.
"어이, 그런 어두운 표정 짓지 마."
"뭐?"
"또 자기 때문에 괴물이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
"..."
"괴물이 늘어나서 괴물 사냥꾼이 생기는 건지 괴물 사냥꾼이 생겨서 괴물이 늘어난 건진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넌 그냥 계속 괴물 사냥만 열심히 하면 돼. 다른 생각은 할 필요 없다고."
"그래..."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지호도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이 다짜고짜 지호의 양 볼을 꾹 눌렀다.
"왕자님, 오늘 왜 이렇게 다운돼있어? 최루탄 가스를 마셔서 머리가 어지러워?"
"웁, 그런 게 아니에요..."
지호가 고개를 뒤로 뺐다.
겨울은 장난치고 있는 둘을 내버려 두고 2층의 주거시설로 향했다.
"난 들어가서 쉴 테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불러."
"그래, 들어가 봐. 지호도 들어가서 쉴 거야?"
"아뇨, 전 훈련이라도 조금 더 하려고요. 적어도 다음엔 시간 안에 환풍구를 통과해야죠..."
"푸흡, 그래."
지호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밖으로 나갔다.
-
지호는 활주로를 가로질러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하아-"
멀리서 차를 점검하고 있던 현수가 지호를 보고 다가왔다.
"어이, 왜 그러고 있어?"
"아, 현수형..."
현수가 지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냥,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일이 마음처럼 잘 안돼서요."
"팀장님한테 혼이라도 난 거야?"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혼난 건 아닌데 조금 실망하신 것 같아요."
"왜?"
"제가 잠입하겠다고 시간을 한 시간이나 받았는데, 잠입에 성공한 건 팀장님이었고 전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어요."
"그게 뭔 소리야?"
"그러니까, 처음부터 팀장님 말대로 했으면 빠르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나서서 시간만 지체됐다고요. 무력을 쓰지 않았으면 했는데, 결국 최루탄까지 사용됐고요."
"그래서 차에서 오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구나."
"... 지부장님이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그 초월교라는 곳의 사람들 아시잖아요."
"그래, 알지. 신문사에 이러니저러니 떠들고 여기저기서 시위도 하고 그러겠지."
"그러니까요. 다 제 잘못이에요..."
지호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사람들이 미친 게 왜 네 잘못이야."
현수가 지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하지만..."
"지호야, 괜찮아. 원래 처음엔 다 그런 거야. 나도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땐 그랬어. 오른쪽으로 꺾어야 하는 데 왼쪽으로 꺾고 그랬다니까."
"정말요?"
"아니, 당연히 농담이지. 난 처음부터 운전을 잘했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달까? 그러니까 F1 드라이버가 됐지."
현수가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지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위로를 해주겠다는 거예요, 말겠다는 거예요? 아니, 근데 F1 드라이버였다고요? 지부장님한테 물어봤더니 형이 대회에 나간 적은 없다고 하던데요."
"야, 그걸 왜 지부장님한테 물어보냐? 나한테 물어보면 되지. 맞아 F1 대회에 나간 적은 없어. 계약을 끝내고 첫 대회에 나가기 일주일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왔지."
"아..."
지호가 현수의 시선을 피했다.
"죄송해요."
"뭐가?"
"괜히 이야기를 꺼내서..."
"괜찮아. 다 지난 일이잖아."
"하지만..."
"팀장님이 나한테 그러더라. 지나간 건 지나간 거라고. 무슨 짓을 해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지금을 살아가야 한다고."
"강하시네요."
"물론 나도 처음엔 그 말을 받아들이질 못했어. 하지만 팀장님과 같이 일하면서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살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턴 자연스럽게 괜찮아지더라고. 물론 그때 느꼈던 슬픔이나 분노 같은 것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이상 그것들에 발목을 잡히진 않아. 의미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너도 지나간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마. 이번에 잘못했으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잖아."
"하아... 제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요? 저번에 제가 산 위에 있는 호텔로 괴물을 잡으러 갔을 때 괴물한테 맞아서 날아갔던 거 기억하시죠?"
"응, 기억나지. 내가 호텔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창문을 깨면서 날아왔잖아. 그때 한 10m 날아갔나?"
"그 정도 날아가서 앞에 있던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죠. 제가 기어 올라오는 사이에 괴물은 팀장님이 처리하셨고요."
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힘은 제가 더 셀 텐데 전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어요. 도움도 안 되고..."
"아니야, 팀장님이 그때 네가 없으면 괴물을 못 잡았을 거라고 하시던데?"
"그냥 예의상 하신 말일 거예요."
현수는 대답 없이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니, 왜 반박을 안 하세요?"
지호가 버럭하자, 현수가 피식 웃었다.
"미안, 장난 좀 쳐봤어. 지호야, 너무 그렇게 의기소침해할 필요는 없어. 팀장님은 카르멘의 괴물 사냥꾼으로 5년이 넘게 일하셨고 그전에도 계속 괴물 사냥꾼으로 일해오신 분이잖아. 쌓아온 경력이 다르다고"
"... 저도 경력이 좀 더 쌓이면 팀장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현수는 이번에도 지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왜 대답을 안 하냐고요!"
지호가 벌떡 일어나자, 현수가 미안하다고 소리치며 도망쳤다.
잔뜩 풀이 죽어있던 지호는 어느새 기운을 차리고 현수를 뒤쫓고 있었다.
-
하늘에서 눈이 세차게 쏟아졌다.
거센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가시거리를 극도로 짧게 만들었고 도로에 쌓인 눈은 살을 에는 냉기에 금세 얼음이 되었다.
이런 날씨에도 현수의 차는 도로 위를 달려야 했다.
눈길용 체인을 바퀴에 장착해서 도로가 얼어 미끄러운 것은 해결했지만, 시야를 가리는 거센 눈발엔 현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속도를 못 낼 것 같은데요."
"괜찮아. 괴물이 나타나자마자 소원의 주인이 직접 신고했으니까 늦진 않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야구장이라니, 눈도 많이 오는데 왜 거기 있는 걸까요?"
"글쎄, 거기 사는 사람인가 보지."
"..."
현수가 액셀을 밟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지호가 벨트를 꽉 붙잡았다.
"괜찮아, 이 앞은 터널이라서 속도를 내도 돼."
시야를 가리던 눈발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차량이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
"그, 그렇네요."
폭설 때문인지 터널 내는 한산했다.
현수는 속도를 빠르게 높여 터널을 지났다.
터널 옆에 달린 작은 주황색 등이 하나의 선처럼 스쳐 지나갔다.
"저, 혹시 이 눈도 괴물과 관련 있는 거 아닐까요?"
지호가 뒷좌석의 겨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세상이 눈에 뒤덮였으면 좋겠다던가."
"그건 아닐 거야."
대답한 것은 겨울이 아니라 현수였다.
"뉴스에서 일주일 전부터 폭설이 내릴 것 같다고 경고해 줬었거든."
"아, 그렇군요. 제가 뉴스를 안 봐서..."
지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
차는 야구장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멈췄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잿빛이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태양의 빛을 모두 가렸고 거센 바람이 실어 온 눈의 파편은 차의 유리를 때렸다.
"씁, 아이스크림 먹기는 좀 힘들겠네요."
"별일이군. 추위를 타기 시작한 건가?"
겨울이 벨트를 풀며 물었다.
"아뇨,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갈 수가 없잖아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편의점은 걸어서 10분 거리라고요. 전 평범한 사람인데 이런 눈보라 속을 10분 동안 걸으면 눈사람이 될 거예요."
"차 끌고 가면 되잖나."
"에이, 업무 외의 일로 차량을 사용하면 안 되죠."
"업무 중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겨울이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현수 형, 야구장 안에 마트가 있으면 제가 사 올게요."
"오, 정말이야?"
"그럼요."
지호가 조수석 문을 벌컥 열자,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지호는 깜짝 놀라 재빠르게 문을 닫았다.
"잘 다녀와!"
현수가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지호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눈보라 너머로 사라지고 있는 겨울의 뒤를 따라갔다.
차 안에 혼자 남게 된 현수는 의자를 뒤로 젖혀 편하게 앉았다.
'야구장 안에 마트는 없을 텐데. 지부장님한테 이 차에 미니 냉동고를 하나 달아달라고 할까...'
-
지호는 눈 안을 파고드는 눈보라를 한쪽 팔로 막으며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문이 보였다.
프레임이 철로 되어 있고 강화유리가 끼어져 있는 전형적인 출입문이었다.
"저기 문이 있어요!"
지호가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팀장님, 잠겨 있는데요?"
"그렇겠지. 겨울엔 야구장 운영을 안 하니까."
"예? 근데 신고자가 야구장에 있다면서요?"
"직원용 통로로 들어간 모양이지."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어떡해요?"
"..."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겨울의 뺨을 때렸다.
옷과 어깨 그리고 머리 위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켜."
지호는 저도 모르게 문에서 비켜섰다.
"부숴."
"예? 그냥 그 직원용 통로를 찾으면..."
당황하고 있던 지호의 앞으로 웅이가 걸어 나왔다.
네 발로 걸어 온 웅이는 문 앞에 도착하자, 두 발로 벌떡 일어섰다.
"어, 자, 잠깐!"
지호가 말릴 틈도 없이 웅이가 팔을 들어 문의 잠금장치가 있는 곳을 후려쳤다.
두꺼운 철제 프레임이 그대로 으스러지며 사이에 끼워져 있던 강화유리가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졌다.
지호는 멍한 표정으로 박살 난 출입문을 바라봤다.
웅이가 먼저 문의 잔해를 밟고 안으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갔다.
겨울은 아무렇지도 않게 웅이를 뒤따라갔다.
"그렇게 계속 눈 맞으면서 서 있을 건가?"
"아, 아뇨."
지호는 문의 잔해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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