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자 - 죽음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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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밸리스
작품등록일 :
2024.10.11 10:32
최근연재일 :
2024.12.12 19:22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1,113
추천수 :
65
글자수 :
335,371

작성
24.10.1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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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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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사고死苦

DUMMY

멋진 봄 날. 이곳 원천고등학교에 입학 한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갔다. 처음 올 때는 제법 추웠는데 이제는 따뜻해져서 주변의 꽃 향기가 느껴졌다.


“야 벌써 왔냐?”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던 나는,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지운이다. 이 곳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녀석이었다. 나랑 취향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해서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응”


녀석은 내 옆자리에 놓인 책상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더니 입을 열었다.


“야 나 어제 디즈니에 뜬 거 봐 거든? 만달로리안 진짜 짱이야.”


또 스타워즈. 요즘 녀석의 관심은 그것 뿐이니까. 나는 건성으로 끄덕거리고는 가방에서 태블릿 꺼냈다. 인강이나 들으려고 엄마를 졸라 겨우 산 건데, 인강보다는 OTT기계로 더 활용도가 높았다. 무료로 보는 불법 사이트를 많이 이용했었는데, 사이트 속도도 느리고, 태블릿 성능도 별로라 그냥 지운이랑 같이 결제해서 OTT로 보고 있었다. 여러 OTT가 있지만 둘 다 스타워즈 덕후라서 디즈니 플러스를 결제하고 있었다.


“보바펫까지 봤었나.”

“시즌3 나옴. 미쳤어.”


그러더니 지운이는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이번 시즌은 더빙 없데.”


그건 나도 꽤 싫었다. 디즈니의 장점이 더빙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건데... 게다가 시즌2 까지도 더빙으로 봤는데, 갑자기 원배우 목소리로 작품을 감상하면 적응이 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미친... 더빙은 안 나온데?”

“몰라? 아무 말도 없던데. 더빙으로 봐줘야 제맛인데. 너 그나저나 안도르도 안 봤지”


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아직 로그원도 안 봄.”

“그럼 그거 보고 봐야겠네.”


사실 스핀오프 두 작품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아서 미루고 있었는데, 지운이는 내가 당연히 그것도 볼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즈음, 교실 문을 열고 한 두 명씩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이나 풍의 우리교복은 원천시 내에서는 예쁘기로 소문났지만, 학교 안에서는 모두가 이 교복을 입다보니. 어쩔 때 보면 색이 칙칙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했다. 그래서인지 좋았던 처음의 느낌이 요새 들어 많이 퇴색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방금 들어온 영산이처럼 차이나 넥부분을 접어 브이넥으로 만들어 입고 다니기도 했다.


“야 너 뭐야?!”


내 짝꿍 영산이가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반에 들어오더니 자신의 책상에 걸터앉은 지운이를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골치 아프게 됐다. 학교 내에서도 꽤나 골칫덩어리인 영산이 녀석은 약한 애들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악동 중에 악동이었다. 그리고 나나 지운이 같은 소심하고 범생이 같은 애들은 녀석의 괴롭힘 대상 1호였다.


“너 미쳤냐? 이게 어디 남의 책상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돌았나!”


영산이는 보고 있는 내가 무안해질 정도로 기세 좋게 소리치더니 성큼 다가와서 지운이를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지운이는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 쳐져서는 신음을 냈다.


“아야”

“야 한번만 더 내 자리 앉기만 해봐. 그때는 진짜 뒈진다!”

“미안”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지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미안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힘 없고 깡 없으면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한 곳이었다.


“야 짝꿍.”

“응?”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영산이가 아직은 분이 덜 풀린 듯 목소리로 날 불렀다. 짝꿍이란 녀석을 부르는 내 별명이 있었다. 난 최대한 친절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물론 주먹은 꽉 쥐고, 녀석 다혈질이라 언제 주먹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아직 맞은 적은 없지만 방금 전 지운이한테 한 것처럼 이미 반의 많은 아이들을 괴롭히고 때리는 녀석이었다.


“숙제 좀 보여줘. 너 숙제했지?”


이럴 때만 찾기는······. 난 수학 노트를 가방에서 꺼내 영산이에게 건넸다.


“여기”

“감사!”


전혀 고맙지 않다는 걸 티내 듯 녀석은 내 손에 들린 노트를 빼앗을 때도 건성건성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걸······.확! 하는 화가 치밀지만. 사실 난 절대 이 녀석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산이는 키가 182인데다가 몸무게는 90이 넘어 보이는 거구라. 웬만한 선생님들도 영산이가 화내면 주눅 들기 일쑤니 나 같은 건 한방 감도 안되겠지.​

난 영산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한산했던 등굣길이 이제는 제법 북적거렸다. 앞에는 학생주임이 몽둥이를 들고서 아이들 교복 검사며 소지품 검사들을 하고 있었다.참...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저딴 걸... 사실 난 단 한 번도 등교시간에 선생님을 마주친 적이 없다. 집과 학교가 멀어서 항상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보통 도착하면 남들보다 30분씩 일찍 학교 문을 통과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해서 또 집에서 한 10분 늦게 나가면 왜 인지는 모르지만 등교시간을 넘어서 이제는 지각이 간당간당한 시각에 도착하기 때문에 난 모험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근면함을 선택했다.​

아이들이 거의 다 등교했고, 난 영산이한테서 노트를 받고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산이는 이미 다른 반에 있는 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라진 터라 움직이기는 한결 더 수월했다. 가는 길에 아침부터 불쾌한 일을 당한 지운이의 작은 등이 보였다. 난 다가가서 녀석의 등을 토닥여 주고는 복도로 나섰다. 밖에는 흔히 조금 논다는 아이들이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조금 논다는 이미지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냥 으스대는 꼴 이 정말 보기 싫어서 웬만하면 교실 밖으로 나서지 않는 나였다.​

화장실로 가는 복도에서 영산이 패거리와 지나쳐 무사히 화장실로 도착한 나는 마음을 돌리며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 일을 다 볼 때 즈음 영산이 패거리가 화장실로 들이닥쳤다. 망할 여긴 또 왜 온 거야? 가만 보니 그 녀석들 사이에 녀석들 패거리가 아닌 녀석도 있었는데 잘 모르는 얼굴인 걸 보니 다른 반 아이 같았다.


“야 다 빨리 나가!”


영산이가 호통 치듯 화장실 안에 고함을 질렀다. 뭔가 하려는 모양인데 이 녀석들. 내심 불안했지만 여기 계속 있어봐야 안 좋은 일을 당할게 뻔해서 서둘러 볼 일을 마치고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로 다가갔다. 그러자 영산이 패거리 중 한 명이 내 어깨를 강한 힘으로 잡더니 얼굴을 들이밀며 위협적으로 중얼거렸다.


“꺼지라고.”

“응...? 응”


난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를 비롯한 화장실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나오더니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혔고, 이어서 문을 잠그는 소리까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무척 궁금했지만 위험을 무릎 쓸 만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난 서둘러 반으로 돌아와서는 내 자리에 앉았다.

​ 조금만 있으면 수업시작인데 영산이는 아직 화장실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뭔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것은 비단 학교의 일 만이 아니라 내게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냥 느낌이···그랬다. 에이 신경 쓰지 말자! 난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1교시 문학수업 준비를 하기 위해 문학책과 필통을 꺼냈다. 그때 밖에서 학주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이 미친놈들이!”


복도를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있는 창가 쪽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각자의 추측과 정보교환으로 교실 안은 순식간에 소리가 지배하는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반에 있는 녀석들은 다 들어가 앉아! 무슨 구경났냐?!”


저렇게 고함을 지르는데 관심을 안 가질 수 가 있겠니...


“너희들은 내 자리가 무릎 꿇고 앉아 있어! 어서들 들어가지 못해?!”


다시 한 번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다른 반의 사정은 우리 반과 별반 다를 게 없던 것 같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웅성거리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종이 울리고, 한 참이 지나고 문학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우리 반을 가르치시는 문학 선생님은 1학년 4반 담임선생님으로 남자선생님인데 감성이 매우 풍부하시고 문학계에서는 몇 편의 시집으로 조금 유명해진 시인으로 통하시는 분이었다. 단정한 상고머리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이시는 선생님이셨지만 연세는 아직 38세. 문학을 하는 사람은 빨리 늙는 건가? 게다가 아직 미혼. 성격도 좋고 다정다감하지만 약간은 너무 일에 심취하신 감도 있어 보이고 시에 대한 열정덕분인지 아직은 노총각이신 분이다. 그리고 매우 꼼꼼하시고, 시간 약속은 아주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으로 소문나서 그런지 그런 선생님의 지각이 모든 아이들에게 약간은 의외로 느껴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영산이도 안 오네?”


학주의 고함 소리에 너무 신경 쓴 탓일까? 뒷자리에 앉은 대현이의 중얼거림을 듣고 그제야 난 영산이가 아직 반에 안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방은 있는 걸로 보아 땡땡이 친 건 아닌데.


“설마”


불현듯 화장실의 기억이 내 뇌리를 스쳤다.

결국 그 날. 영산이는 하루 종일 반에 들어오지 않았다. 간간히 들리는 소문은 영산이 패거리가 4반 아이를 괴롭혔다고 했다. 아마 내가 보았던 그 애 같은데, 분명 그냥 ‘괴롭힌’ 정도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 애는 어떻게 됐지? 난 학급일지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서 출석부를 챙기고는 교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학급 서기가 되고 한 달이 지나서인지 교무실에 들어가는 것도 이제 제법 익숙해져 있던 터였다. 교무실에 조용히 들어서 담임선생님이 계시는 왼쪽 창 쪽 자리로 갔다. 항상 자리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이지만 오늘은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어디 계시지?”


난 주변을 둘러보다 문 쪽 반대편에서 학주 자리에서 무릎 꿇고 있는 영산이 패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교무실에는 몇몇 선생님을 제외하고 선생님들이 죄다 다리를 비운 상태였다. 아마도 회의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대체 저 녀석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이런 생각을 할 때 즈음, 한두 명씩 각반 서기들이 교무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두 당황하겠지.


“뭐야? 안 계시네?”


7반 서기인 듯 국사선생님자리에 다가간 여학생은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선생님자리에 학급 일지와 출석부를 휙 던지더니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검은 생머리에 마른 체형의 그 아이는 제법 키도 크고 도도해 보이는 아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아이와는 지독히도 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 난 선생님 자리에서 조금 더 기다리다가 곧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내가 교실로 들어오자 몇몇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며 내게 다가왔다.


“야 무슨 일이야? 좀 건진 거라도 있어?”


그런 게 있을 리가······.


“아니? 근데 영산이랑 걔네 친구들 교무실에서 무릎 꿇고 있더라고”

“그래? 진짠가 보네? 영산이 놈 큰일 났다.”


무슨 일인데?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다지 내키지는 않아 그냥 자리로 돌아가 수학 문제집을 챙겨 나왔다.


“수업 시작하겠다. 있다가 봐”


나는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문밖으로 나섰다. 4층. 1학년 7반. 내가 수학을 듣는 교실. 처음에는 여자 반이라서 왠지 향수 냄새가 날 것 같고, 꽃향기가 날 것 같아 기대했지만. 뭐랄까? 오히려 남자반보다 더 굉장한 냄새에 우리 반보다 더 지저분해서 여자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깨지고 있었던 상태였다. 특히 내가 매일 앉는 책상의 주인은 정말 어떻게 여자애가 책상 속을 이렇게 해 놓을 수 있지? 싶을 정도로 더러워서 이 책상의 주인은 분명히 굉장히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 오늘 그 책상의 주인을 보고 말았다. 녀석은 이 반의 서기. 이름은 모르지만, 굉장히 도도하게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수업 안 들으러가나? 5분 남았는데...​

난 다른 자리로 가는 척 7반의 서기를 관찰했다. 저 녀석이 일어나면 잽싸게 앉을 수 있게. 그러나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녀석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한 달 간 저 녀석이 수업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설마... 이 수업일 리가 없을 텐데. 난 내키는 대로 굉장히 표독스럽게 생긴 여자애의 옆자리에 책을 놓았다. 그리고는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녀석을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다가 앞을 바라보며 책을 펼쳤다. 쳇, 저 자리가 좋았는데.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 바라보는데, 헙! 눈을 마주쳐버렸다. 갈색 빛을 띠는 눈동자로 불쾌한 짐승을 보는 양 날 쳐다보는 그녀는 고개를 획 돌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난 놀란 가슴을 쓸어 안고는 다시 앞을 바라보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수학선생님이신 이명화 선생님은 단정한 단발머리에 작고 동그란 안경 아래 커다란 눈으로 항상 미소를 지으시며 다니시는 쾌활하신 분이다. 스카프를 좋아하셔서 항상 목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계시는 분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분위기도 축 처져 계신대 다가 스카프도 안 두르고 오셨다. 선생님은 5반에서 10반까지 가르치시고 물론 나도 저분께 수학을 배운다.


“민예지”

“네”

“손다은”

“예”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길 기다리며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수현”

“예”


내 이름이 불리고 곧이어.


“성화혜”

“네”


그 녀석이 손을 든다. 그래 잊고 있었지. 이 수업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수업에 참석하지 않은 녀석. 그게 바로 저 녀석이었다니... 선생님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더니 특유의 콧소리로 흥얼거리듯 말했다.


“화혜는 수업을 많이 안 들었네.”


단 한번도지...


“네”


건성으로 대답한 녀석은 여전히 핸드폰을 똑딱거리다가 그만 가방을 들고는 휙 나가버렸다. 맙소사. 어쩜 저렇게 버릇이 없을까... 선생님이 미쳐 제지할 새도 없이 나가버린 그 녀석의 빈자리는 내가 몹시도 탐내던 그 자리였다. 나도 참... 이 상황에 저 자리로 당장에 가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 이유는 뭐야. 난 머리를 긁적이고는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야자까지 모두 마치니 시작은 10시가 다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야자시간이었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오늘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이 지운이가 아닌 영산이라는 점이었다.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앉아있던 영산이는 자신이 저지른 그 어떤 짓거리 대한 벌로 반성문 100장이라는 가혹한 벌을 받은 듯 보였다. 연신 학주의 이름과 욕설을 내뱉으며, 반성문을 적는 영산이는 누가 건드리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활화산 같아 보였다. 다행히 녀석은 야자가 끝날 때까지 잠잠했다. 난 지친 몸을 이끌고 차를 타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를 타러 내려가는 길에는 여중이 하나 있는데, 이렇게 늦은 저녁때면 길가 쪽으로 나있는 무수한 창들 중 하나에는 꼭 무언가가 있어 날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불안감에 휩싸여 걸음을 옮기던 나는 기어코 내가 우려하던 일과 직면했다고 생각했다.


“으아?!”


창문은 아니지만, 옥상위에서 한 인형이 서서 나를 바라보는 듯 했다.


“귀...귀, 귀신이다!”


나는 그대로 다리를 의지한 채 전력질주하여 버스정류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단숨에 큰 길로 나온 나는 이렇다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반대편에 내가 버스를 타는 정류장으로 냅다 달렸다. 그리고


환한 빛

별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

전신을 타고 흐르는 강렬한 고통

심장의 거친 고동소리

잔인한 피 비린내


이것은 죽음

난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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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재기在器 2 24.12.10 11 0 10쪽
54 재기在器 1(수정) 24.12.04 12 0 9쪽
53 몽행夢行 3 24.12.03 9 0 11쪽
52 몽행夢行 2 24.12.02 10 0 13쪽
51 몽행夢行 1 24.12.01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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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반전反轉 3 24.11.27 10 0 11쪽
48 반전反轉 2 24.11.26 11 0 14쪽
47 반전反轉 1 24.11.25 1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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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의심疑心 1 24.11.20 10 1 11쪽
43 무심無心 24.11.19 13 1 11쪽
42 목적目的 24.11.18 14 1 13쪽
41 심연深淵 24.11.16 14 1 13쪽
40 발전發展 2 24.11.14 13 1 12쪽
39 발전發展 1 24.11.13 11 1 12쪽
38 단서端緖 2 24.11.12 12 1 13쪽
37 단서端緖 1 24.11.11 10 1 11쪽
36 전전戰前 24.11.08 15 1 16쪽
35 통로通路 24.11.07 14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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