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자 - 죽음을 상상하라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밸리스
작품등록일 :
2024.10.11 10:32
최근연재일 :
2024.12.12 19:22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1,389
추천수 :
65
글자수 :
335,371

작성
24.10.11 11:45
조회
69
추천
2
글자
12쪽

각성覺性

DUMMY

내가 정신을 차린 건 어느 조용한 병실이었다. 하얗고 낡은 천장은 갑갑하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뭐지?​ 내 몸 그 어느 곳에서도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의 강력한 기억 뒤 생각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난 줄곧 잠들어 있던 건가? 입을 열어 소리를 내보려했지만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눈을 깜빡인다. 그래 눈은 깜빡 거리구나 이것도 안 되면 죽어야지. 젠장. 아니... 그냥 죽는 게 나으려나. 그래 문이 열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도 들리는 군.


“어머! 수현아?!”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입을 열어서 엄마를 부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위로 얼굴을 내미는 엄마의 수척해진 얼굴이 보일 뿐이었다.


“정신은 차렸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이렇게 정신을 차린 걸 보면 분명히 일어날 거예요. 그렇죠?”


의사로 생각되는 남자의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급격한 피로가 몰려들어 스르르 잠이 들었다.


*


‘안 돼!’


번쩍이는 라이트. 공중으로 처절히 울려퍼지는 비명소리는 차가운 밤공기를 가른다. 그리고 천천히 떨어지는 손은 어떤 여자의 손이다. 가녀리고 얇은 손가락은 먼지투성이가 돼 있었고, 그 위에는 낯선 피가 흘러내렸다.


*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익숙하고 또 정말 싫은 그 낡은 천장이었다. 밤새 꾼 꿈을 정말 강렬했지만, 죽을 뻔했던 그 순간, 내 뇌리 속에 박힌 그 끔찍한 기억의 잔상은 아니다. 적어도 난 남자니까. 그나저나 누구지? 꿈이 너무 생생하고 내가 겪은 일과 비슷해서 좀처럼 그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뭘까? 누구일까? 그리고 어느 순간 느껴지는 지독한 한기는 누군가의 눈초리를 연상시켰다. 누구야? 지금 이 공간에 누가 날 보고 있는 거야. 그저 눈을 깜빡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지독히도 한심스러워 왠지 눈물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뜨거운 어떤 것이 내 뺨을 스칠 때. 내 귀에 속삭이듯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환청은 아니었다.


‘조금만 기다려. 곧 괜찮아 질거야.’


대체 뭘? 뭐가 괜찮아 진다는 거야? 죽으면 괜찮아 질 거라는 소리야?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입을 열 수도, 말 할 대상도 없다. 이런 젠장. 난 가끔 눌리는 가위에 환청은 익숙해져서일까. 금방 그 목소리를 잊어버렸다.


*


“수천, 수억의 죽음이 존재하지. 움직일 수 없지만 그 모든 죽음을 지배하고 있어.”


타오르는 고통.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기억은 마치 스크린의 영화처럼 재생되고 있다. 차도로 뛰어든 순간. 반대편에서 달려온 승합차에 치인 내 약하디 약한 몸뚱이는 허공을 날아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날아오른 난 몸이 기이하게 꺾이며 차 앞으로 떨어졌다. 차의 앞부분이 죄다 찌그러졌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내 몸에 흐르던 피가 앞 유리 창에 거칠게 뿌려졌다 사실이었다. 난 피거품을 쏟아내고, 눈을 깜빡이며 숨을 거칠게 내뱉고 있었다. 한 숨 한 숨, 승합차의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내게 얼굴을 들이민다. 그가 입으로 뭐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귀에서는 심장 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가빠오는 가슴에는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한 번의 각혈, 그리고 남자 뒤로 보이는 죽음은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데 죽음이란 거 여자였어?


*​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또 잠들어 버린 난. 어김없이 하얀 천장이 보이는 곳에서 눈을 떴다. 제법 밝은 것이 낮이 아닌가 싶었다. 고통스러운 내 심정과는 무관하게 창밖의 새들은 너무나도 평화로이 지저귀고 있었다. 그 사실은 날 화나게 만들었다. 난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그 새들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세상이 한껏 저주스럽기만 했다. 젠장, 난 아직 창창한 17세라고, 아무도 내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 알고 있다. 아마도 전신마비겠지. 영원히 이렇게 살라고? 의미가 없어진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던 찰나.


‘안 돼, 진정해’


또 다시 환청이 들려온다. 목소리의 주인은 급박하게 하지만 단호하고 차분하게 내 생각에 반대를 했다. 누구지? 누구세요?

​ 그러자 환청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 처럼 대답을 했다.


‘금방 보게 될 거야. 오늘이면 그 아이가 와. 네게 새 삶을 줄 아이야.’


삶이라고? 쳇 이따위로 살 바에 빨리 죽는 게 나아. 무려 전신마비라고. 이런 상태에서 계속 살면 뭐하겠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런 생각하지 마. 널 그렇게 만든 그 아이가 슬퍼할 거야. 부디 오늘만 기다려줘.’


날 이렇게 만든 아이? 그게 누군데? 날 이렇게 만든 건 귀신이야. 네가 그 귀신을 알고 있기라도 한단 말이야?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


그날 저녁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무슨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움직일 수 없는 나는 확인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마 내 상태를 확인하러 온 간호사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게다가 둘 중 하나의 목소리는 많이 들었던 목소리였다.


“이 녀석이야?”

“응. 이 아이야. 많이 힘들어 했어. 널 많이 기다렸을 거야.”


나는 뒤에 이어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그 간에 내 귓가에 속삭이듯 중얼거린 목소리의 주인임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이 녀석이 뭔데? 이 녀석을 위해 상상해야 하는 거지?”

“화혜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왜 그때 있잖아. 안지 오빠 때문에 화혜가 한 번 나갔지. 그때.”


잠시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돌았다. 그러더니 남자의 치-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둘의 대화 속에 등장했던 화혜라는 이름, 익숙한 그 이름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다. 내가 어디서 들었더라...

그리고 그때. 병실 안을 가득 채우는 빛이 어디선가 뿜어져 나왔다. 난 직감적으로 그 빛이 내게 굉장히 이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니 내 무게가 급격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눈에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병실에는 온갖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다 무언가의 법칙을 무시한 채 돌아다녔고, 그 모습이 괴기하다 못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혹시 귀신이라는 건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즈음. 아래쪽에서 탄성에 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이게 뭐야? 이 녀석...? 이런 말은 안 했잖아?”

“나도 몰랐어. 이건.”


난 두 눈으로 똑똑히 내 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둘 다 학교에서 본 적이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내 몸... 내 몸이란 건. 난 지금 영혼인가? 난 내 다리 끝과 내 몸의 다리 끝에 연결되어 있는 은 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내 몸이 온통 검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었다. 그 검은 빛은 꿈틀거리며 내 육신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하얀 빛을 내뿜는 새가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까 느낀 그 환한 빛은 아마 저 녀석이 내 뿜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상상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회복 될 수 있던 녀석이었는데... 뭐 이왕 시작한 거니까 약간 도와주지 뭐.”

“그래... 하지만 미안한데 분명히 이 애는 평범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언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살펴봤을 때는...”


그러자 남자애가 말했다.


“왠지 난 짐작이 가는데. 이 녀석 교통사고라고 하지 않았어?”


여자애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때군. 그때 밖에 없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난 둘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아파서 뒈질 뻔한 기억밖에 없는데...

그리고 그때 내 뒤에서 커다란 낫의 날이 불쑥 튀어나왔다.


“헐!”


난 화들짝 놀랐고, 뒤에는 검은 곱슬머리를 거칠게 뒤로 넘긴 한 남자가 커다란 낫을 들고는 떠 있었다. 그를 보고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승사자였다. 하지만 옛 사람처럼 갓을 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세요?”


남자는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더니 내 말을 무시한 채 내 몸 곁에 서있는 두 남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득거렸다.


“젠장. 일거리를 빼앗겼군.”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그 검고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깊은 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살짝 놀랐다.


“근데 너. 어떻게 나온 거냐?”


아저씨? 분명 저보다 나이가 많은 건 알겠지만 이렇게 초면에 반말을 하시면 곤란하죠. 저도 인격체라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얼어 붙어 입을 열지 못했다.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거 이상하다? 내가 오기 전에 육체에서 영혼이 튀어나온 것도 그렇고, 저 이상한 수술로 널 살리려는 저 녀석들도 그렇고.”


그 남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있을 때 내 눈에는 그 자가 들고 있는 커다란 낫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것에 끌리는 느낌을 받았다. 난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머릿속은 낫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다.


아름답다.

눈길이 간다.

가지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

저건 날 부르고 있다.

난 저 낫의 주인이다.


난 남자의 낫의 대를 손으로 붙잡았다.


“뭐야? 이거 안 놔? 가만... 이게 저승사자도 아닌게 이걸 어떻게 붙잡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 남자의 말을 무시하며 이번에는 낫의 날을 손으로 잡자 그 남자가 불쾌하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낫을 휙 당기며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놔라. 네 줄을 확 잘라버리기 전에. 소멸하고 싶어?”


그러나 난 그 낫을 놓을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반드시 이 낫을 소유해야만 했다. 그리고 때마침 내 머릿속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 자의 진명眞名은

흑아黑兒


그래서 난 그 이름을 불렀다.


“널 소유하겠다. 흑아”


남자는 그의 날카로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 어떻게 내 진명을?!"


그리고 그는 곧 끔찍한 고함을 지르며 낫의 안으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낫의 중앙에는 잘 새겨진 흑黑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남자가 빨려 들어가자 난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긴장을 푸는 의미로 한숨을 내뱉은 난 붙잡고 있던 낫의 아름다운 날을 감상했다. 흑빛의 날은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빛에 반짝여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강한 인력引力의 작용으로 내 육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 몸은 점점 무거워졌고, 그 끝에는 따뜻함은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상상하는 자 - 죽음을 상상하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연재를 변경합니다 24.12.13 18 0 -
공지 지난 주 목, 금 연재 분 다음 주에 연재 진행합니다. 24.12.08 6 0 -
공지 한시적으로 연재일정 조정합니다 24.12.05 10 0 -
공지 금일 연재분 이번주 일요일에 연재합니다. 24.11.29 6 0 -
57 입전入前 24.12.12 14 0 9쪽
56 재기在器 3 24.12.11 14 0 11쪽
55 재기在器 2 24.12.10 15 0 10쪽
54 재기在器 1(수정) 24.12.04 21 0 9쪽
53 몽행夢行 3 24.12.03 17 0 11쪽
52 몽행夢行 2 24.12.02 16 0 13쪽
51 몽행夢行 1 24.12.01 14 0 11쪽
50 반전反轉 4 24.11.28 17 0 10쪽
49 반전反轉 3 24.11.27 15 0 11쪽
48 반전反轉 2 24.11.26 17 0 14쪽
47 반전反轉 1 24.11.25 15 0 11쪽
46 결렬決裂 24.11.22 14 0 13쪽
45 의심疑心 2 24.11.21 18 1 11쪽
44 의심疑心 1 24.11.20 15 1 11쪽
43 무심無心 24.11.19 17 1 11쪽
42 목적目的 24.11.18 20 1 13쪽
41 심연深淵 24.11.16 19 1 13쪽
40 발전發展 2 24.11.14 18 1 12쪽
39 발전發展 1 24.11.13 17 1 12쪽
38 단서端緖 2 24.11.12 18 1 13쪽
37 단서端緖 1 24.11.11 14 1 11쪽
36 전전戰前 24.11.08 20 1 16쪽
35 통로通路 24.11.07 18 1 18쪽
34 폭발爆發 24.11.06 18 1 12쪽
33 함정陷穽 2 24.11.05 19 1 16쪽
32 함정陷穽 1 24.11.04 21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