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자 - 죽음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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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밸리스
작품등록일 :
2024.10.11 10:32
최근연재일 :
2024.12.12 19:22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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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65
글자수 :
33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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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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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발전發展 2

DUMMY

몇 시간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광모가 가고 나서 생각해보니 난 조난 당해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버려진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이 없다. 광모 그 자식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그냥 가는 게 말이 되나? 갈 땐 가더라도 정류장 앞으로는 데려다 주고 가거나 아님 원천 인근이라도 내려주거나. 이렇게 숲 속에 버려두고 갈 일이냐고.


‘산에서 길을 잃으면 무조건 꼭대기로 올라가라고 했다. 그래야지 이 곳이 어딘지 알 수 있거든. 내 말을 믿어’


흑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등산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이런 조난 상황은 처음 경험해 봤기 때문에 뭐라도 의존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런가? 되는 데로 지껄이는 건 아니지?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며.

​ 사실 녀석과 많은 것을 공유하는 나는 흑아도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해야하는 대처법 같은 건 모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 생각하는 거보다 여러 명이 같이 생각하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기대에서 하는 말이었다.


‘닥쳐! 원래 인생 되는 데로 사는 거다. 그리고 너처럼 아무나 믿지 않으며 살아가는 거고, 정 의심스러우면 아래로 가던가.’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그래도 뭐... 딱히 다른 수가 없으니... 그럴까... 그럼 아래로 가볼까...

​ 그러자 흑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자...잠깐! 오늘만...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까? 네가 그렇게 태세전환을 할 줄 몰랐으니까. 잠깐, 네 놈이 언제부터 내 말에 그렇게 귀를 기울였다고 이렇게 네 멋대로 내 말을 믿는 거냐? 이 건방진 자식아.’


아니... 사람이 믿어 줘도...


‘잠깐. 주인. 꼭대기로 올라가면 체력 손실이 극심하게 일어날 거다. 이런 상황에서는 체력을 아끼는 게 급선무니. 일단은 어디 자리 잡고 쉬고 날이 밝으면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나?’


화랑도 진지한 목소리로 우리의 대화에 가담했다.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 속에서 내 속도 모르는 두 영이 떠들어 제끼니 혼란스러운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뭐가 맞는 건지 둘이 먼저 합의하고 나한테 좀 이야기 해줄래?


‘저 꽉 막힌 놈하고 이야기 하려니 피곤한데. 인생 뭐 있냐 아무렇게 질러. 이렇게 해도 맞고 저렇게 해도 맞고 어차피 넌 안 죽을 거야.’


뭐 때문에... 그렇게 확신을 하는 걸까... 이 쯤되면 무섭기도 하고... 이 몸도 사람인데...


‘네가 죽으면 내가 죽으니까... 그냥 희망이라도 가져보는 거랄까.’


정말 한 대 후려 치고 싶다...


‘아무튼 주인. 산 아래로 가면 마을이 나올테니까. 우선은 체력을 보존하도록 하는게.’


왠지 화랑의 말이 더 신빙성 있어 보였다. 난 화랑의 말대로 하기 위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내 말은 무시하는 거냐.’


애초에... 넌 갈피도 못 잡지 않았냐. 위인지 아래인지나 정하고 말하지?


‘그보다 북쪽으로 가라는 소리도 있었는데...’


악! 이 빌어먹을 자식들! 대체 어쩌라고 나한테!... 응? 가만 있어보자. 이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은 목소린데?


‘전룡이다. 대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전룡이 깨어났다. 지난 번 그 일이 있은 뒤 잠자코 있던 녀석. 흑아도 화랑 때도 겪었던 일이었다. 내게 먹힌 염조령들은 내 안에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 한 것 같다. 그리고 화랑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나 때문에 강제로 떠올린 기억으로 혼란스러운 것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한 것 같았다.

드디어 깨어났군. 반갑다. 뭐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그나저나... 그 광모란 자식 진짜 매정하지 않냐? 우리 같이 지낸 게 얼만데, 어? 이딴 데다 버려두고 그냥 가버리고.’

‘그 생각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럴 사람이 아닌 거 같았는데. 참 사람이 그럼 못쓰지.’

‘나도 동의 한 표’


넌 뭘 안다고 동의야 이 자식아.


‘아무튼 이렇게 된 김에 내 소개를 하지. 내 진명은... 뭐... 대장만 알면 될 거고. 전문 사냥꾼 뭐 그런 거였어. 뭘 잘 하냐고 하면, 사냥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이라고 해두지. 그리고 속성은 번개다.’


...


‘결국 제대로 이야기 해준 건 번개 어쩌고 하는 거 밖에 없잖아.’

‘주인에게 조금 더 예의를 갖춰서 제대로 이야기 해줬으면 하는데.’


그래... 그딴 식으로 대충 말하지 말고...


‘그냥 차츰 알아가면 되겠지 뭐. 갑자기 이렇게 들이대면 너무 부담스러운데?’


아, 됐고, 됐고. 그럼 지금 조난 당한 이 상황에서 네 능력도 크게 쓸모가 없다는 거 아님? 대충 들어보니까 그 날 낚은 개같은 새끼랑 광모처럼 어디로 순식간에 이동한다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그러자 흑아의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과욕은 언제나 불행과 절친이더라.’


흑아는... 가끔 맞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육신이 있는 영이었다면 나한테 쳐맞았을텐데...

전룡이 의견을 냈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긴 하지. 대장을 버리고 떠난 녀석 중 하나를 추적하다 보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빛인데? 빛을 어떻게 추적해.


‘난 번개야. 할 수 있어. 대장. 속도 차는 나겠지만. 방법은 이미 알고 있잖아?’


맞다. 나는 그런 걸 다 알 수 있었다. 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와 시선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두 영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이게 다...’

‘말도 안 돼...’


이곳, 저곳, 흔적은 온갖 곳에 있었다. 이것은 빛의 흔적, 이것은 냄새. 그리고 저건 깊게 패인 발자국, 부러진 나뭇가지 등등. 새롭게 펼쳐진 이 세계는 전룡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였다. 그리고 난 그 사이에서, 두 줄기의 빛을 찾았다. 실처럼 길게 늘어진 그것은 광모와 그 더러운 자식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흔적이란 건 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흔적들. 정확히 말하자면 점점 옅어지는 흔적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었네.”


목표는 정했다. 원래는 이 산 속을 빠져나가는 걸 목표로 하기로 했는데, 목표를 따라 잡을 수 있게 된 마당에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 가. 난 그 더러운 것을 죽여야 겠다. 아니 그 새끼를 붙잡아서 그것들을 다 잡아 족쳐야겠다. 어느 순간 난 나도 모르게 그 빛의 실을 쫓아 보폭을 넓히고 있었다.


‘기억으로 야 수도 없이 해봤던 일이겠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일테니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흔적이야. 뭐 또 찾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이건 기억해 호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호흡 한 번에 한 번의 도약. 대장의 발 끝이 땅을 차는 순간 호흡도 같이 내 뱉어야 한다는 걸 잊지마.’


나도 알고 있다. 전룡의 말대로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난 서서히 호흡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한 숨 내 쉬고 내딛는 한 발. 그리고 또 다음 한 발. 보폭이 점점 늘어난다. 다시 호흡 한 번에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 순간 주변의 시야가 바뀌기 시작한다. 이미 화랑 때 경험해본 적이 있는 시야. 하지만 조금 달랐다. 화랑 때는 갑자기 시야가 순식간에 변했다면 이번에는 점점 빨라지면서 마지막에는 화락 때 움직이는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


‘...이... 이게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속도야?’

‘아마 그를 받아 들인 순간 그에 맞게 몸이 변화했겠지.’


안에서 흑아와 화랑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전룡이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긴 하군. 어떻게 한 사람의 몸에 이렇게 많은 영들이 아무 충돌 없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전룡의 물음에 셋 모두가 잠시 말을 멈췄다.


‘나도 궁금하군.’

‘확실히 신기한 일이긴 해.’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하긴 해.


‘뭐...뭐지? 이 반응들은’


우리 셋이 동시에 말하자 전룡이 꽤나 당황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지금 그 이야기는 나중에, 일단 집중할 것에 집중하자. 이 실의 끝에 도착하면 그 때부터는 다시 전쟁이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난 한결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자 다시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늘어나지 않을 것 같던 내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믿을 수 없게도 내 옆으로 어떤 것들이 달라 붙었다.

응? 이 속도를? 붙는다고? 상상하는 자? 는 아닌 것 같다. 이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영?”


영들이 이렇게 적대적으로 내게 달라 붙은 적도 없었지만, 사실 난 그 영이 왜 날 따라오는지 알 것 같았다. 이들에게는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흑아였다.


‘저승사자군.’

“어디 잠깐 멈춰 보실까.”


내 옆을 같이 부유하던 한 영이 말을 걸어왔다. 웃기지도 않는 녀석들이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려 했다. 그러자 흑아가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멈추지마! 누군지 알잖아! 단령丹靈과 자이自理가 올 줄이야. 염라가 화가 단단히 났구만.’


확실히. 저 미친 놈들을 보낼 것까진 없었잖아?

단령과 자이는 저승사자 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짬밥이 오래된 것들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은지 오래라 그들 스스로도 진명을 잊었을 거라고 다들 말했다. 그 말은 노망이 든 아주 오래된 것들이란 소리였다. 정신이 제정신일리가 없지 않은가.

그때 단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멈춘다 이거지? 좋은 말로 할 때 멈추면 좋았을 것을...”


그 순간 내 두 다리와 온 몸이 굳어 난 그대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크흑!”


흙이 입 안으로 들어간 게 느껴졌다. 입을 벌리고 뛰고 있던 게 분명했다. 다음부터는 입을 다물고 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거봐 그러게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안 그래? 불법 저승사자?”


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단령은 내 옆으로 쪼그려 앉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석은 거대한 낫을 목에 걸치고 날 보며 씽긋 웃었다. 가위 눌린 것 같이 꼼짝할 수 없는 몸이 된 나는 그 녀석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린 놈이잖아. 뭐하는 놈이길래. 염라대왕을 그렇게 바쁘게 만든 거야? 꼰대가 열 받았다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등장한 녀석은 하얀 두루마기를 걸친 자이였다. 그는 머리카락을 여자처럼 기르고 있었으며,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모를 정도로 작은 실눈이었다. 실눈캐는 강하다는데, 하필 실눈캐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녀석의 영을 분리해서 염라대왕에게 끌고 가면 되나?”

“응. 다른 방법이 있나. 살아있는 육신을 끌고 저승으로 가는 방법 알아?”

“단령, 이 멍청아 머리 좀 써라... 그게 가능하겠냐...”


단령 자이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목에 걸치고 있던 낫으로 내 몸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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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재기在器 2 24.12.10 10 0 10쪽
54 재기在器 1(수정) 24.12.04 12 0 9쪽
53 몽행夢行 3 24.12.03 9 0 11쪽
52 몽행夢行 2 24.12.02 10 0 13쪽
51 몽행夢行 1 24.12.01 9 0 11쪽
50 반전反轉 4 24.11.28 10 0 10쪽
49 반전反轉 3 24.11.27 9 0 11쪽
48 반전反轉 2 24.11.26 11 0 14쪽
47 반전反轉 1 24.11.25 9 0 11쪽
46 결렬決裂 24.11.22 8 0 13쪽
45 의심疑心 2 24.11.21 12 1 11쪽
44 의심疑心 1 24.11.20 10 1 11쪽
43 무심無心 24.11.19 13 1 11쪽
42 목적目的 24.11.18 14 1 13쪽
41 심연深淵 24.11.16 14 1 13쪽
» 발전發展 2 24.11.14 13 1 12쪽
39 발전發展 1 24.11.13 11 1 12쪽
38 단서端緖 2 24.11.12 12 1 13쪽
37 단서端緖 1 24.11.11 10 1 11쪽
36 전전戰前 24.11.08 14 1 16쪽
35 통로通路 24.11.07 14 1 18쪽
34 폭발爆發 24.11.06 15 1 12쪽
33 함정陷穽 2 24.11.05 13 1 16쪽
32 함정陷穽 1 24.11.04 15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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