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자 - 죽음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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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밸리스
작품등록일 :
2024.10.11 10:32
최근연재일 :
2024.12.1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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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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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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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결렬決裂

DUMMY

내 앞에 앉아있는 자는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방어자들을 관리하는 15명, 아니 이제 14명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캡틴 중 하나가 앉아있었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생김새가 여간 깐깐하게 생긴 게 아니었다. '절망'일 게 뻔한 본부 안으로 들어가는 건 내가 거부했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은 인적이 드문 도로 변에서 떨어진 공사현장에서 이뤄졌다. 의자까지 준비해 가져와서 앉아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유난을 떠는 성격인 것 같았다.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날 위아래로 훑었다.


"네 짓이 맞아? 강변?"

"어."

"조방헌 그 작자를 골로 보낸 것도 너라던데?"


잠시 잊고 있었다. 조방헌. 언젠가 이지운에게 끌려갔을 때 베어죽인 적이 있던 것 같았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사이코패슨가? 얼마 전 일이었는데?"

"그냥 기억이 희미해질 일이 있어서 그래. 아무튼 용케도 내 요구에 응할 생각을 했군? 이름이 뭐야?"

"그냥 선생님 해. 우리가 뭐 서로 통성명할 사이는 아니잖아."


난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따로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끼고 있던 안경을 치켜 올리며 이야기 했다.


"난 계산적인 사람이야. 득이 되지 않는 것에는 움직이지 않지. 하지만 지금 보니 내 아이들이 자칫하면 다 골로 갈 것 같아서 이 자리에 찾아 온 거니까.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 해 줄래?"


난 이거 꽤 말이 잘 통하겠구나 생각했다. 방어자 속에서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사실 조금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얘. 할 말 없어? 그럼 나 일어나고."

"아, 거 성격 더럽게 급하네. 선생님씨 혹시 선구자라고 알아?"

"선구자? 모르겠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기사 이들 최고위 그룹에서 직접 관리하는 사람들을 최하위 간부인 캡틴이 모르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대변인은 누구고 어딨냐?"


그러자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 전과 다르게 살짝 굳는 게 보였다.


"그분은 왜. 죽이려고?"

"흠..."


난 한 숨을 쉬었다.


"아까 말했잖아. 기억이 조금 희미해져 있다고. 그래서 지금은 너희들이라고 해서 막 그냥 다 죽여버리고 싶고 그러진 않아. 지금처럼 물어볼게 있어서 그래. 선생님께서 그 걸 아셨다면 뭐 그 누군지 모르는 대변인 놈까지 알 필요는 없었겠지만. 모른다며? 선구자. 누군지. 뭐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어. 최하위 간부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안 그래?"


선생님은 내 마지막 말에 살짝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지만 그 말에 대해 화를 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다른 말을 했다.


"선구자? 걔들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분도 모르는 일일지 모르잖아? 그분이 알 거란 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확신?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그냥 대충 그런 고오급 정보 알만 인간이 있다면 대변인 정도는 돼야지 않나 싶어서 그런 거야. 걔도 모르면 다른 방법 찾는 거고."


그러자 선생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참. 어이가 없네. 고작 그런 추측 하나 때문에 그분을 찾겠다는 거야?"

"어. 왜? 추측이 사실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말한 나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선생님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 딱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래. 거기 선구자 새끼들 조지고 싶거든. 개인적으로 복수할 게 있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어이가 없네. 추측이고 어쩌고 그딴 시답잖은 소리 그만 하고 말해. 이야기 해줄 거야. 말 거야. 셈이 빠른 거 같은데 어떤 선택이 이득인지는 잘 생각해보고 말이야. 아까 너한테 연락 시킨 놈한테도 분명 말했지만, 지금 내가 막 사람 죽이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안 들 때 좋게 좋게 합의하는 게 서로한테 좋지 않겠어?"

"그런데, 네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 네가 지금 이 많은 인원들을 혼자서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겠지?"


난 씩 웃었다.


"당연하지. 1초도 안 걸려서 그렇게 해줄 수 있어. 어디 본보기로 누가 하나 저 하늘의 별로 만들어 줄까? 아. 아니지 너희는 지옥에 떨어지겠다. 무고한 사람들 많이 괴롭혀서."

"아니 굳이 그럴 것까지야."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의자 주변을 서성였다.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저 선생님이란 자는 꽉 막혀있는 방어자 집단 내에서 저런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자라 이 자리에 오른 게 분명하다 생각했다. 잠시 후 선생님은 생각을 마쳤는지 내게 말했다.


"내가 제안 하나 해도 되겠어?"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다 죽여버린다?"

"하, 거 무서운 소리를 참 해맑게 하네. 살 떨리게."

"아, 그러니까 선생님. 제 마음에 드는 제안 하시라고."


그녀는 뭔 자신감에서인지 날 보고 픽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참고로 나도 그 분과 직접 연락하고 그러는 사이가 아냐. 너도 알다시피. 내가 뭣도 아니니. 다만 내 직속상관한테 한 번 이야기 해볼게. 어차피 너도 우리랑 막 피 튀기고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 아냐?"

"사자가 배가 부른 상태라고 해둘게."


그리고 그녀는 어딘 가로 사라져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직속상관이란 놈과 연락 중이겠지. 녀석들이 통제할 수 없는 날 제 상대가 아니라고 여긴 뒤로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식하게 덤벼오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상대도 안 되는 것들이 죽자고 달려드는 거 진짜 죽여 주는 것도 참 힘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나라면 여기서 마음이 풀어졌을 것 같다.


"대화가 끝났어."

"결과는?"

"내 상사는 나 같은 미천한 것과는 달라서 이렇게 몸을 함부로 노출시키실 수 없어. 네가 직접 만나러 온다고 하면 그분과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놔 주시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갈래?"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마음에 드는 제안이 아니군."


선생님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난 그녀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방어자의 존재이유가 적힌 종이를 끄집어 내 불태워버렸다. 삽시간에 주변의 방어자들이 고꾸라져 쓰러졌고, 선생님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모두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기괴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난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말했지. 마음에 안 들면 다 죽여버린다고. 그리고 내가 뭐 개 병신인 줄 알아? 갑자기 또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려고 하네."


그리고 난 한 손에 흑아의 오라로 짧은 창을 상상해 그녀의 가슴팍을 향해 던져버렸다. 근거리에서 던진 거라 미쳐 피하지 못한 그녀는 그대로 육과 영이 분리되었다. 갑자기 영혼 상태가 된 선생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쓰러져있는 본인의 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이거였구나. 네 능력이... 진짜 우리로서는 상대를 할 수 없는 괴물 새끼였네...이런 걸... 대비할 수가..."


아마 이 녀석들은 날 당분간 상대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리고는 그 동안 날 상대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캡틴 정도 되는 이 사람이 몰랐을 리 없고, 어느 정도 내 비위를 맞춰주면서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어 근질거렸을 것 같았다.


"내가 부른다고 하면 갈 거 같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희미해진 감정 같은 거 다시 찾아볼까? 어떻게 생각해? 너희랑 다시 살육전 한 번 벌여봐? 네 생각은 어떤데? 한국에서 사라지는 게 너희일까... 날까?"


선생님의 영은 말이 없었다. 그녀도 알 거다. 방금 전에 내가 보인 힘은 자신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힘이란 걸.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해를 할까? 어불성설이다. 그나마 지금 영이 되었기 때문에 어렴풋이 내가 그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짐작만 할 뿐일 것이다. 그때 그녀의 영이 갑자기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상대를 할 수가 없을 거니까. 내가 그랬지. 너 같은 새끼한테까지 원칙 고수할 필요 없다고."

"뭐?"


그녀는 무섭게 날 노려보더니 말했다.


"너... 너 말이야. 도무지 상대할 방법이 없잖아? 그래도 가만히 생각 해보니까. 니 새끼도 사람 새끼일텐데 약점하나가 없을까. 안 그러냐. 장수현? 우리가 있잖아 지금까지는 말이야. 너희 괴물 새끼들 잡아 죽이는데 굳이 일반인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는데 진짜 넌 도저히 안되겠더라고."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뭐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너... 설마..."


선생님의 영이 갑자기 급발진을 했다.


"그래 이 새끼야. 어머니는 잘 계시지?"

"가족은 건들지 마라. 일반인은 끌어들이지 않는 다고 들었는데."


선생님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러니까. 넌 도저히 안되겠다고 이야기 했잖아. 방금 전에 말해버렸어 나. 널 직접 보니 알겠더라고. 이 망할 새끼는 정상적으로는 우리가 어찌 할 수가 없겠구나. 괴물 새끼를 잡으려면 우리도 괴물이 되어야겠구나. 항복해. 순순히 잡혀. 안 그러면 고아로 만들어 주지. 아마 지금쯤 원천에 있는 우리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을 걸?"


차갑게 식었던 분노라는 감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떠오른 얼굴이 내가 깨어났을 때 가장 기뻐하던 그 모습이었다. 엄마한테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잔뜩 굳은 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영이 된 주제에 낄낄거리며 날 조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한 건 거짓은 아냐. 네가 순순히 가디언께서 계시는 곳으로 잡혀 들어간다면 적어도 그분께서 죽이기 전에 대변인 님은 한 번 만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시더군. 그리고 일반인인 네 엄마는 아무일 없이 잘 살아가실 수 있을 거야."


난 말 없이 그녀를 노려봤다. 그리고 흑아의 오라로 작은 단검을 만들어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 날 조롱하던 건 어디로 가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죽이면 그냥 죽였지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는데, 넌 안 되겠다."


난 쓰러져있는 그녀의 몸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자신의 몸과 줄로 연결 되어 있는 선생님의 영은 불안한 눈으로 날 쳐다 봤다.


"뭐... 뭘 하려는 거야?"


난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숲 속으로 몸을 날렸다. 말도 없이 자신의 몸을 가지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날 향해 선생님의 영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나는 보통 사람이라면 잘 오지 않은 인적이 아예 없는 곳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난 차가운 바닥에 선생님의 육체를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선생님의 영을 보며 말했다.


"역시. 너희 새끼들하고는 대화가 안되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야... 이렇게까지 단번에 그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다니 정말 이것도 대단한 능력이야. 그렇지?"

"이... 이 애새끼가 뭘 짓을 하려...!"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영의 턱끝에 닿아있는 흑아의 날 때문이었다. 다른 것과는 다르게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흑아의 날의 감촉을 느낀 선생님이 침을 꼴깍 삼켰다. 난 말했다.


"영혼은 회, 동, 재로 구성되어 있어. 그리고 그 중에 회랑 동을 파괴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괴물 새끼야!"


난 흑아의 낫으로 그녀의 몸을 빠르게 두 번 내리 찍어. 정확히 회와 동을 파괴해 버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한 그녀는 고통스러운지 듣기 거북한 비명을 질렀다. 난 그 소리가 거슬려 눈쌀을 살짝 찌푸리다 말했다.


"바로 지박령이 되는 거란다. 이 늙은 여우 같은 것아. 알겠냐? 어디 이 인적 드문 곳에서 그렇게 환생도 못하고 영원히 이곳에만 붙어 있어보시지."


그제야 자신의 운명을 깨달은 선생님의 영이 사색이 되어 내게 소리쳤다.


"뭐!? 아... 안 돼!"


난 그런 선생님을 보며 말했다.


"넌 이곳에 계속 있을 거라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예언하나 하지. 너희 방어자는 이 지구상에서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뒈질 것이다."


그렇게 말한 나는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선생님의 영을 한 동안 바라보다가 그대로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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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재기在器 2 24.12.10 11 0 10쪽
54 재기在器 1(수정) 24.12.04 12 0 9쪽
53 몽행夢行 3 24.12.03 10 0 11쪽
52 몽행夢行 2 24.12.02 11 0 13쪽
51 몽행夢行 1 24.12.01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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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반전反轉 3 24.11.27 10 0 11쪽
48 반전反轉 2 24.11.26 1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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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렬決裂 24.11.22 9 0 13쪽
45 의심疑心 2 24.11.21 13 1 11쪽
44 의심疑心 1 24.11.20 10 1 11쪽
43 무심無心 24.11.19 13 1 11쪽
42 목적目的 24.11.18 15 1 13쪽
41 심연深淵 24.11.16 15 1 13쪽
40 발전發展 2 24.11.14 13 1 12쪽
39 발전發展 1 24.11.13 12 1 12쪽
38 단서端緖 2 24.11.12 12 1 13쪽
37 단서端緖 1 24.11.11 10 1 11쪽
36 전전戰前 24.11.08 15 1 16쪽
35 통로通路 24.11.07 14 1 18쪽
34 폭발爆發 24.11.06 15 1 12쪽
33 함정陷穽 2 24.11.05 14 1 16쪽
32 함정陷穽 1 24.11.04 15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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