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轉 1
얼마나 달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몸이 이렇게 변한 이후로 이렇게 숨이 가쁘도록 달려본 적이 있나 모르겠다. 그 동안 한계란 걸 느끼지 못했는데 내 몸에도 한계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도로변을 따라 밤새 달렸다. 이정표를 따라 이동하니 어찌어찌 원천시까지 닿을 수 있었다. 원천시야 인구에 비해 워낙 작은 도시라 도착을 하니 그 다음에 길 찾는 건 쉬웠다. 하지만 집까지 가는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없어진 줄 알았던 감정이란 불길이 마음 속에서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 엄마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봐라.
그때는 내가 내가 아니게 될 거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날 만날 방어자는 그나마 내가 상상을 할 수 있는 괴물이었을 때가 더 나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
나는 사람의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속도로 빠르게 집까지 달렸다. 오랜만에 왔다는 향수를 느낄 새도 없이 난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안에서 다급히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리며 안에서는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인터폰에서 내 얼굴을 확인하고 뛰어나온 것이다.
"엄마"
내가 엄마를 부르자 엄마는 날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휴 이게 무슨 일이야! 그 동안 어디갔었어?!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가슴으로 엄마가 덜덜 떠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엄마한테는 별 일이 없었다. 그 말은 이 녀석들이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날 이곳까지 오게 미끼를 놓았으니 이제 낚을 차례가 아닌가. 그때 였다. 집 안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리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수현군 맞습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내가 엄마의 머리 너머로 집 안을 봤을 때 거실 쪽 모퉁이에서는 남자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날 보더니 씩 웃었다.
하하, 이 새끼들 봐라. 어디선가 숨어서 날 낚으려던 게 아니었다. 아예 대놓고 그물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난 전룡의 감을 이용해 주변에 숨어있을 다른 방어자들의 동태를 살폈다. 이 자들 말고 비슷한 기운을 가진 자가 이 층에도 이미 셋은 더 있었다. 난 그 셋의 존재 이유가 적힌 종이를 소환해내 불태워버렸다. 아주 은밀하게 그 놈들은 자신들이 왜 죽었는지도 아마 모를 것이다.
엄마는 내가 무슨 짓을 한 지도 모른 채, 내 움직임을 느꼈는지 가슴 팍에서 얼굴을 떼며 말했다.
"아, 처음 보지. 경찰 분들이셔... 네가 없어져서 실종 신고를 한 뒤에 많이 도와주셨어. 오늘도 그것 때문에 이렇게 오신 거고."
그러자 경찰로 위장한 방어자 중 하나가 내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별일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군요. 어머니. 정말 다행입니다. 처음 보지만 수현군. 어머니를 그렇게 걱정 시키면 되겠어?"
"감사합니다. 경위님."
그렇게 말한 엄마는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어디 갔었던 거야! 연락도 받지 않고!"
하지만 내 시선은 방어자에게 꽂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난 내 힘을 보일 수 있을까?
그때 방어자가 말했다.
"어머님 일단, 수현군을 저희가 좀 데려가고 싶은데요. 일단 실종신고가 들어온 것도 있고, 혹시 모를 일도 있으니 간단히 면담 후 돌려보내겠습니다."
"네? 하지만 애가 지금 왔는데, 내일 하면 안 될까요? 아니면 여기서... 아, 아니에요. 제가 같이 따라 갈게요."
"아, 어머님이 있으면 수현군이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할 수도 있어서... 저희가 금방 데리고 갔다 오겠습니다."
방어자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날 살짝 바라봤다. 난 그 눈빛의 의미가 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차라리 지금은 이들에게서 엄마를 떨어뜨려 놓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난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다녀올게요. 나 때문에 고생 많으셨는데 이런 거라도 도와드려야지. 그리고 나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말고. 바로 올게요. 그리고 엄마. 못 들어와서 미안해."
엄마는 날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방어자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 했다.
"그, 금방 끝나죠?"
방어자는 사람 좋게 웃으며 이야기 했다.
"당연하죠. 금방 끝납니다. 파출소만 잠깐 다녀왔다가 저희가 복귀 시키겠습니다."
난 저 말이 거짓말이란 걸 알았다. 이들은 날 살려서 엄마한테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 너희 생각대로는 되지 않은 거다.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 방어자는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둘은 내가 있는 현관으로 나와 날 지나쳐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방어자 중 하나가 내 어깨를 손으로 짚었는데 곧바로 채널이 닫힌 걸 느꼈다. 새로운 형태의 절교가 분명했다.
"그래, 금방 끝나니까 같이 다녀오자. 어머니도 걱정마시고 들어가서 일단 쉬세요. 많이 걱정하셨을 텐데."
"경위님 면담 좀 꼭 빨리 끝내주세요."
"그러겠습니다. 어머니."
그리고 방어자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날 이끌고 엘리베이터로 걸었다. 등 뒤로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난 고개를 살짝 돌리며 손짓으로 집에 들어가라고 했으나 엄마는 내가 엘리베이터 안에 타기 전까지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로 들어온 나와 방어자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여전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손 좀 치워라 무거워 죽겠네."
그러자 방어자가 과장된 행동으로 어깨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어이쿠! 우리 수현군이 왜 이리 화가 났지? 갑자기?"
그러더니 표정을 돌변하며 내 뺨을 내리쳤다. 물론 그 따위 힘으로 내 고개를 꺾게 할 수는 없었다. 가벼운 통증도 느껴지지 않은 녀석의 손찌검은 그저 기분만 나쁘게 할 뿐이었다. 자신에게 뺨을 맞고도 미동 하나 없자 방어자는 살짝 놀랐는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허튼 수작 하지 마라 이 괴물 새끼야. 여기 우리만 있는 게 아냐. 이 곳에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을 거다. 네가 사고를 치고 도망갈 걸 대비해서 말이지. 그러니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병신 같은 놈. 지금쯤 네놈이 말한 그 새끼들은 죽어있는 지도 모르는 멍청한 새끼. 네 놈이 이야기 하는 그 자들은 이미 뒈졌다.
난 그 자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따라 나서 줬을 때 가만히 있어. 엄마한테 털 끝 하나 손이라도 대 봐. 너희 다 뒈지는 거야. 알겠냐?"
"채널도 닫힌 새끼가 뭔 노릇으로."
"채널 닫혀도 극도로 위험하다는 건 못 들었나 보지?"
방어자의 얼굴에는 살짝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다... 닥쳐."
"그때 조방헌 그 새끼 죽였을 때 말이야. 내가 이쪽에 있는 지부 다 털어먹은 거 같은데, 다시 살아난 거냐?"
내 입에서 이 자의 과거 상관이었을지 모르는 자의 이름이 나오자 방어자의 눈이 흔들렸다. 그때 옆에 있던 방어자가 말했다.
"입 놀리는 거 신경쓰지 마. 우리는 그냥 끌고만 간다. 일반인에게 너무 많이 노출 됐어. 이 자식만 본부로 끌고 가면 지키고 있던 놈들도 다 복귀하라고 해."
"아, 네 캡틴."
난 방어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지금껏 가만히 있던 방어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캡틴이 이곳에 직접 와?
내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자 캡틴이라 불린 방어자가 피식 웃었다.
"왜. 캡틴이란 자가 직접 움직인 게 신기하나? 우리에 대해 조금 아나 본 데. 난 네가 알고 있는 그런 다른 캡틴들과는 다르다. 애새끼들이 영 답답해야 말이지. 넌 본부로 돌아가면 내 손으로 잘근잘근 찢어줄테니 기대해라."
"아, 새로운? 조방헌 후임?"
"캡틴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지 아나? 잠깐 임시로 겸직하는 거야. 빌어먹을 겸직. 그래도 뭐 너한테 원한이 없진 않아. 너 때문에 나도 피해가 많았거든."
난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양...현두?"
"내 이름도 알고 있지.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역시 날 노리고 왔던 게로군. 왜 날 찾았나? 할 말이 있었어?"
달리 다시 시작해야 할 지점이 없었을 뿐, 이 놈한테 크게 원한이 있거나는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을 하느라 대답을 하지 않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췄다. 양현두는 날 거칠게 앞으로 밀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게 했다. 하지만 녀석의 힘으로는 날 단 1cm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양현두는 내 힘에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봤다. 내가 말했다.
"그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게 너한테 연락을 했나보지?"
"선생님? 아 그 늙은 마녀? 그랬지. 아! 그거였나? 대변인을 찾는다고 나타났다 하던데. 그분을 만나려고 날 찾았던가? 하지만 번지 수 잘못 찾았어. 그 분은 우리 선에서 함부로 연락드릴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가디언 있다며. 너희 위로. 너희 같은 말단이 뭘 알 거라고 생각한 적 없어. 차근차근 찾아가려고 했던 거지, 잘 됐네. 대변인과 연락할 수 있는 그 가디언이라는 새끼 어디있냐?"
내가 오만하게 이야기하자 양현두의 표정이 굳었다.
"닥치고 내리기나 해. 너희 엄마 다치는 거 보기 싫으면."
난 엘리베이터 바로 앞으로 보이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봤다. 참 입구가 지옥으로 가는 곳처럼 생기기도 했다. 난 내 앞에 서있는 방어자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가격하고 양현두의 목을 움켜 잡고 빠르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움직였다. 내게 가격 당한 방어자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그 충격으로 이미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양현두 역시 내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을 하면서도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난 이동하는 와중에도 양현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그 선생이란 새끼 산신령으로 만들었을 때 다짐한 게 있어. 현두야. 너희들 내가 다 죽일 거라고 말이야. 나 진짜 너희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해보려고 노력 많이 했거든? 그리고 본의 아니게 너희들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조금 가졌을 때가 있었어. 그런데 돌아오는 건 배신 밖에 없더라고. 하, 나 진짜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왜, 가만히 있는 사람 쉬지도 못하게 그렇게 괴롭히냐고. 너희는 그럼 안 됐어. 가족을 건드려? 진짜 선 넘었지."
아파트 지하로 통하는 계단 끝까지 왔을 때 난 두 놈을 바닥에 처박았다. 이미 기절한 놈도 그렇고 양현두도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난 설비실로 이어지는 철문을 으득 뜯어내고는 그곳으로 방어자 둘을 처넣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긴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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