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轉 3
속산시에 있는 방어자의 마지막 본부. 난 그 모든 것을 그저 무로 돌려버렸다. 남은 방어자들은 그 동안 자신이 일궈왔던 모든 것이 내 손짓 한 번에 재처럼 변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여러 다양한 감정을 느꼈는지 저 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슬퍼하는 이도, 분노하는 이도, 당황하기도, 괴로워 하기도 했다. 다만 가디언이었던 최석용은 모든 것을 체념했는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그저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본부가 모두 정리되자 최석용은 내게 양해를 구하고 살아남은 방어자에게 간단히 이야기를 했다.
"목숨 부지한 것에 감사하고, 새롭게 다시 살아가자. 우리 함께 살면서 배워온 것을 활용하면 어딜 가도 먹고 살 수는 있을 거다."
그는 날 힐끔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자연 재해라 생각하자.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거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도, 억울해 하지도, 분해하지도 말아라.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치부하자. 이후로 허튼 짓 하지 말고 그냥 살아가는 거만 생각하자. 만약 여기 있는 자 중 끝내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재해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는 것도 기억하고. 자 그럼 해산이다."
짧은 이야기를 끝으로 최석용은 몸을 돌려 내게 다가왔다. 난 그에게 물었다.
"여기로 오고 있다는 놈은 누군데."
"아, 김중명이라고. 연구소 쪽으로 가다 보면 만나겠군."
"김중명이라. 그럼 원천시로 간다는 놈은?"
"음... 그 자는 솔직히 나도 좀 꺼리는 자이긴 한데. 석윤열이라고 멍청한 놈 하나 있어. 그나저나 그곳으로 먼저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자가 보기에는 그것이 수순이 맞긴했다. 하지만 엄마는 노유목령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내려온 김에 연구소를 빠르게 정리하고 가는 편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지금 이 자가 이런 행동을 해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연구소의 위치를 다 알게 되면 자신을 죽일까 겁이 난 모양인지 연구소를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귀찮았지만 녀석에게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빨리 처리하고 가 볼 거니까 시간 끌 생각 말고 빨리 움직이기나 해."
"그러지... 그나저나 연구소도 이런 식으로... 처리할 건가?"
"그래야지. 내가 너희들을 죽이지 않으려면."
내 마지막 말에 공포를 느꼈는지 최석용은 침을 꿀꺽 삼켰다.
"차로 가지."
"최대한 빠른 길로 가. 난 뒤따라 쫓아갈테니까."
"함께 타고 가지 않을 생각인가?"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다고 생각해?"
최석용은 애초에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공터에 세워져 있던 자신의 차로 가며 말했다.
"내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기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니 잘 따라오면 돼."
"위치만 알려주면 그냥 보내준다니까? 차로 30분이면 난 그거보다 훨씬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어."
"내가 같이 가야 충돌이 없을 거다."
확실히 조금 전 만해도 그 분한 마음에 내게 달려들 녀석이 하나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최석용의 말 한 마디에 모두가 포기하고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졌던 걸 보면 이 녀석의 영향력이 방어자 내에서는 상당한 게 분명했다. 말이 일리가 있는 게 나 혼자 단신으로 쳐들어 간다면 분명 누구 하나는 죽어 나갈게 분명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석용은 차에 올라타더니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했다. 난 도로변을 따라 최석용을 따라갔다. 주로 인적이 드문 길을 이동했기 때문에 차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날 보며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은밀한 곳에 숨어있는지 이동 경로에 따라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는 숲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최석용의 차와 같은 차 한 대와 그 차의 앞뒤로 대형 승합차 두 대 씩 반대편 방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까 이야기 들었던 김명중 일행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석용의 차를 본 반대편 차들는 도로변임에도 그대로 차를 정차시켰다.
가운데의 차의 창문이 내려졌다. 안에서는 감자처럼 생긴 추한 외모의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최석용도 창문을 내렸다.
"상황이 끝났나? 연구소를 가능 방향인데?"
가레가 낀 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석용이 말했다.
"끝났어. 우리가 졌다."
그러자 김명중이 몸까지 돌리며 소리쳤다.
"졌다고?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설마 목숨을 구걸했나?"
난 숲에서 보고 있다가 당사자가 옆에 있는 걸 알고 이야기 해야하는 최석용이 딱하다고 생각했다. 난 숲에서 나오며 김중명의 패거리가 가지고 있을 기계를 모두 살해했다.
뭐 녀석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만.
아무튼 도로변에서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모습을 발견한 김중명의 당황스런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최석용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 변절자!"
그는 창문을 올리더니 소리쳤다.
"처리해!"
그의 말에 따라 방어자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최석용도 차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그만 둬라! 목숨이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나! 속산 본부는 해체됐다. 모두 목숨을 건져 새 삶을 찾아 떠났어! 난 이제 이 자와 함께 연구소도 정리할 거다. 너희가 여기서 객기로 덤빈다고 해서 나아질 게 없는데 왜 목숨을 버리나!"
최석용의 말에 차에서 내린 방어자들이 움찔 거렸다. 최석용은 김중명이 탄 차을 향해서도 소리를 쳤다.
"그리고 가디언이라면 본인이 직접 지휘해야지 차에서 그렇게 앉아서 명령하는 것 부끄럽지도 않나?"
하지만 안에서는 최석용의 물음의 답변 대신 머뭇거리는 방어자들을 향한 고함 소리만 들렸다.
"뭣들 해! 둘 다 죽여!"
그때, 그제야 품에 있던 기계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안 방어자들이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명령이라고 무기는 손에 들 생각을 했나 본데 찾으니 안보여 당황한 모양이다. 난 최석용의 차 위로 올라가 방어자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소용없어 다 죽였어.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이 사람 말 들어라. 그나마 다른 새끼들하고는 다르게 사태파악을 할 줄 아는 자라 산 거니까. 여기서 저 돼지새끼 말 듣고 뒈질거면 뭐 그래도 좋아. 분명히 이야기 하는데, 난 지금 가까스로 화를 참고 있고, 또 매우 급해서. 여기 말고 두 군데 더 들러야 하거든. 만약 덤빈다면 그대로 다 죽여 줄 수도 있어. 참고로 지금 나한테 덤볐다가 뒈지면 다음 생도 없을 그거만 기억하라고."
그러자 방어자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저놈도 내 소문에 대해 듣긴 한 모양이었다.
"개... 개소리하지마!"
난 녀석에게 흑아의 오라를 쏘아 보냈다. 녀석의 영이 육과 분리되면서 털썩 쓰러지자 주변에 서있던 방어자들이 놀랐다. 물론 육과 분리된 방어자의 영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그래 그게 영혼이라는 거다. 이 새끼야. 거기 줄 하나 보이지? 그거 끊으면 그대로 뒈져서 저승가는 거야. 알겠냐?"
방어자의 영은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영은 본능적으로 저승사자의 기운을 무서워하기 때문일지 몰랐다. 난 그 자의 영을 끌어 다시 육에 집어 넣고는 다른 방어자들을 보며 말했다.
"어쩔 거야? 시간 없는데? 이렇게 할까? 죽고 싶은 사람은 손들고 있는 거야. 살고 싶으면 손 내리고 있으면 돼. 어때?"
그러자 방금 영과 분리되었다가 다시 육으로 돌아간 방어자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더니 이야기 했다.
"나... 난 그만 하겠어!"
그렇게 말한 그는 도로를 탈주해 숲 길을 따라 뛰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본 방어자들은 일제히 날 바라봤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다는 건 알았나 보다.
그러자 하나 둘씩 뒷걸음질 치더니 그 자를 따라 숲길을 뛰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쯤 되니 김중명도 차안에서만 있을 수는 없었는지 차에서 내려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다.
"이 근성없는 새끼들이! 안 돌아와?!"
하지만 이미 결과를 예측해버린 자들은 지는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는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결국 나와 두 가디언만 남은 상황이 되자 김중명이 식은 땀을 흘리며 내게 소리를 쳤다.
"여기 이 변절자는 어떨지 몰라도! 난 절대 포기 안 해! 아니 못 해! 네가 얼마나 강한 새낀지 몰라도...!"
하지만 난 그의 말을 계속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존재이유가 불타버리며 머리를 저격당한 사람처럼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같이 있던 최석용이 놀라 날 바라봤고, 난 차갑게 식어가는 김중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끼가 시간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계속 떠들고 지랄이야."
그리고 나는 최석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그만 연구소 위치 주고 꺼져. 이렇게 가다가는 한도 끝도 없겠어. 오늘 안으로 원천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 죽이지 않을테니까 위치만 말해. 연구소에 있을 자들도 모두 목숨을 살려주지. 그들이 모르게 모든 것을 없애겠어. 그건 약속할게."
최석용은 고민하면서도 쓰러져 있는 김중명의 시체를 보니 덜컥 겁이 났는지 차에서 메모지와 종이를 꺼내 주소지를 적어 줬다. 총 세 군데였는데 다행히 이곳 속산시에 있는 연구소를 제외한 다른 두 곳은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어서 집으로 가는 동선과 맞았다. 난 종이를 받아들고는 최석용을 바라봤다.
"잘 못 적은 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최석용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연락처도 적어놨다. 확인해봐도 좋아."
"별로 믿고 싶지 않은 새끼들이지만... 좋아. 어차피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거의다 풀리긴 했어. 경고하는데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들 건들지 마라. 만약 누구라도 그런 조직이 나타나는 날에는..."
난 메모장에 적힌 적힌 최석용의 번호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너부터 죽여버릴 거니까. 부디 오늘의 내 결정에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도록."
최석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메모장에 적힌 주소를 차량 내비게이션 앱에 입력해 위치를 확인하고는 최석용을 남겨둔 채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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