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오성
몽선경은 선협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여타 게임이 그러하듯 등급이 존재했다.
아니, 오히려 등급별 차이가 훨씬 명확했다.
성장 자체도 레벨이 아닌 등급(경지境地)을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등급 간의 격차도 컸다.
게다가 플레이어의 경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이 명확했다.
또한 각종 법보法宝, 기령器靈, 비행법보飛行法宝, 연단 재료뿐만 아니라 선천운명까지 등급이 나뉘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 신화급은 붉은색으로 표현되는데,
그 위에 특별한 등급이 하나 더 존재했다.
전 서버에 오직 하나에만 부여되는 금빛의 등급, 바로 유일唯一이었다.
***
고요했다.
주변은 여전히 웅성거렸지만,
소운은 너무나 고요하다고 느꼈다.
그 적막 속에서 눈앞에 드러난 금빛 문구를 눈에 새겼다.
[ 무극현신 ]
- 효과1: 경지 돌파 시 얻는 능력치 증가량 2배.
- 효과2: 현재 경지에선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무극현신···”
소운이 나직이 읊조렸다.
이 게임과 선협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해 얼마나 좋은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심상치 않은 운명을 일깨웠음을.
그리고 떠올렸다.
꿈이자 꿈이 아닌 옛 기억을.
잠시 후 선천운명에 대한 정보가 사라지자,
다른 능력치로 눈이 갔다.
‘생명력, 영력, 공격력, 방어력, 법력, 저항력···’
게임에서 종종 봐오던 익숙한 능력치와 생소한 능력치들이 나열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 무영武靈 자질 ]
- 검: 12
- 도: 7
- 창: 100
- 권: 19
- 장: 11
- 부채: 2
무영이란 단어 자체는 낯설었지만, 거기에 포함된 항목을 통해 대략 유추할 수 있었다.
무공 비슷한 기술을 이 세계에선 무영이라 표현하는 것 같았다.
자질이 높을수록 더 상위의 기술을 배울 수 있거나, 수련 효율이 높다는 식일 테고.
‘그나저나 창이라···’
단순한 우연인 건지.
이전 세계, 그러니까 소운이 긴 꿈속에 있을 당시 그가 사용했던 무기였다.
창 한 자루로 정점에 서기도 했고.
[ 영근靈根 자질 ]
- 화(火)영근: 2
- 수(水)영근: 1
- 목(木)영근: 97
- 금(金)영근: 93
- 토(土)영근: 2
- *뇌(雷)영근: 95
‘이쪽은 마법 비슷한 건가?’
소운은 동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마법 같은 걸 막 쏜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오행과 관련된 기술을 사용할 때 필요한 능력 같았다.
뇌영근에 표시된 *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운의 시선이 머무른 곳.
[ 오성: 1,000 ]
분명 캐릭터를 생성할 때 가장 중요한 능력치였다.
오성이 높은 사람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도 많았고.
‘200만 넘어도 확정하랬는데···’
그 5배나 되는 수치를 부여받았으니.
[ 그대여, 운영을 받아들이겠는가? ]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
한편.
멀리서 자기 오빠를 지켜보던 유진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미친 듯이 올라오는 채팅 탓이었다.
| ????
| 방금 벼락 뭐였음??
| 무극현신 미쳤네
| 유일 등급이라 벼락이 컸던 건가?
| 유일 처음 보는데 저거 효과 뭐임?
| 다 처음 보는데 그걸 알겠냐
| 오성도 개높을거 같은데
| 빨리 오빠한테 ㄲㄱㄱ
평소 같았으면 조용히 좀 하라고 일갈을 내질렀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오빠가 벼락에 맞은 순간 너무 놀라기도 했고,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 말하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다치거나 한 건 아닌가 보네.’
멀리서 보이는 소운의 모습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휴우-”
유진이 여전히 콩닥거리는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다.
쉽사리 진정되질 않았다.
거기다 유일 등급 선천운명까지 받자 기대감까지 차올랐다.
‘진짜 오성도 높은 거 아니야?!’
왠지 느낌이 팍 오긴 하는데,
빨리 물어보러 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소운이 서 있는 제단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때.
“저 사람 오성 1,000이다!!”
비행법기를 타고 공중에 있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광장에 전체에 울려 퍼질 만큼 큰 목소리였다.
그러자 반응이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통찰안을 통해 이미 파악하고 있던 부류는 매섭게 그를 쳐다봤다.
마치 ‘멍청하게 그걸 공개적으로 까발리냐’라고 눈으로 욕하듯.
영입 경쟁이 끝도 모르고 치열해질 것만 같았다.
다른 반응은 순수한 놀람이었다.
여태껏 공개된 오성 중 가장 높은 수치는 692였다.
현재 경지가 가장 높은 인물이 부여받은 오성이기도 했고, 그 수치를 받기 위해 쓴 돈 때문에 다른 의미로도 유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반응은 불신이었다.
| ?????
| 1,000이라고???
| ????/
| ㄹㅇ??
| 구라친거 아님?
| 걍 어그로 같은데
| 재능충 ㄲㅈ
| 1,000??
| 빨리 오빠한테 ㄲㄲㄱ
‘지··· 진짜 1,000이라고?’
쉽사리 믿기 어려운 수치였지만, 어쩌면, 우리 오빠라면···
그때, 불신과 기대와 부러움과 열망이 담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소운이 몸을 돌려 제단에서 걸어 나왔다.
장내에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진작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던 소운은 모두의 시선 속에서도 담담했다.
무림 시절부터 익숙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적막 속에서 소운이 유진과 가까워질 즈음.
비검을 타고 있던 누군가가 튀어 나갔다.
오성 수치를 언급한 그 남자였다.
그러자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유지되던 묘한 긴장감이 한순간에 끊겼다.
“에이씨 진짜!”
“비켜, 비켜!”
더 이상 눈치 볼 상황이 아니었다.
마치 경주를 하듯 앞다투어 날았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소운이 있는 곳이었다.
“뭐야, 갑자기?”
“와아-!”
광장에 있던 영문 모르는 뉴비들은 수십 명이 동시에 날아다니는 장면에 마냥 신기해했고.
“저희 종문에 들어오시죠?!”
“오시기만 하면 단약부터 법보까지 모든 지원을···”
“우리 종주님이 지금 구령경 후기인데···”
“우리 이모부는 원영경···”
“저희 종문이 지금 영석 광산을 2개나···”
“우리가 법보 제작 1티어 종문인데···”
소운 주위에 도착한 사람들은 앞다퉈 그를 영입하려 애썼다.
본인들이 지닌 모든 인맥과 자원을 내세워.
한순간에 광장 전체가 난장판이 돼버렸다.
그 중심에 있는 소운은 난감했다.
‘···이 정도야?’
스카우트하려고 모여 있다는 얘길 듣긴 했다.
힘의 논리가 더 강한 세계라는 것도 이해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노골적일 줄을 몰랐다.
상대적으로 체면을 중시하는 무림 분위기에 익숙한 탓이었다.
그때.
“아오! 다들 조용히 좀! 우리 오빠라고요!”
한쪽에서 지켜보던 유진이 씩씩대며 난입했다.
이러다 오빠를 뺏기겠다 싶었다.
“벌써 종문 결정 다 했어요! 저리 가세요!”
가마에서 내린 유진이 사람들 틈을 파고들어 소운의 팔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두 남매를 에워쌌다.
유진의 말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주위에서 한소리씩 거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유진은 일단 인적이 드문 장소로 가 소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전쟁통이었다.
벌써 소문이라도 났는지, 모여드는 사람도 점점 늘어났다.
게다가 제발 무극현신의 효과 좀 물어보라는 채팅이 수없이 올라와 정신도 사나웠다.
“으으- 진짜! 오··· 오빠! 일단 로그오프! 로그오프!”
“어떻게 끄는데?”
“오른쪽 아래 구석탱이 동그란 거에 시선 두고 로그오프 떠올려! 빨리···”
지금 뭘 할 방법이 없는 상황.
소운은 유진이 이끄는 대로 현실로 돌아갔다.
***
“후우-”
캡슐에서 나온 유현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딱히 몸이 피곤하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살짝 피로감이 느껴졌다.
캡슐 장치의 영향 탓인지,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든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현이 고개를 돌려 옆을 살폈다.
유진이 들어간 캡슐은 여전히 닫혀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하아, 하아-”
캡슐에서 벗어난 유진이 숨을 몰아쉬었다.
하도 채팅창에서 가지 말라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달래느라, 어쩌면 기싸움을 하느라 늦게 나온 그녀였다.
숨을 고르는 동생을 지켜보던 유현이 말을 건넸다.
“괜찮아?”
“오빠, 괜찮아?”
마침 유진도 같은 말을 건넸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두 남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다.
“후후, 아하하하하-”
“푸흐흐흐, 끄윽- 끄윽-”
이렇게 편하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유현은 집으로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배를 잡고 한참을 웃던 유진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 진짜 아까 정신없었네. 채팅창 애들도 계속 난리 치고.”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는 즐거워 보였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저기 근데 오빠··· 오성 정말 1,000 떴어···?”
“응.”
“진짜?! 오, 대박!”
설마설마했는데, 진짜였다니.
“오성 1,000이 높은 거야?”
“당연하지! 지금 최고가 690인가 그럴걸?”
정확히는 692였지만, 얼추 비슷했다.
“그 690 받은 사람이 유명하거든? 사람들이 김 회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그거 뽑으려고 돈 얼마나 썼는지 알아?”
“음··· 그래도 회장이라 불릴 정도니까 몇억쯤?”
“노노. 75억.”
“?”
유현은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응?”
“75억 태웠다고.”
“···아니,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돼?”
유현은 예전 어떤 게임의 아이템이 몇억이라느니, 강화하면 10억 원이 넘어간다느니, 그런 기사를 본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유니크한 아이템의 가치고, 경매 방식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캐릭터 뽑기에 가까웠고, 75억 원어치 뽑기를 돌리려면 며칠을 밤새야 하는 건지.
애초에.
“오성 바꾸는 비용이 얼마 길래?”
“이게 웃긴 게, 처음엔 3만 원이거든? 근데 거기서 한 번 더 바꾸려면 3만 원을 또 내는 게 아니라, 12 곱해서 36만 원 내야 됨. 또 바꾸려면 36만 원에 또 12 곱하고.”
“······”
정말 듣도 보도 못한 과금 방식이었다.
무림에서 악랄하다고 소문난 사채업자들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채팅창 얘기 들어보니깐, 다섯 번부터 높은 오성이 엄청 잘 뜬다고 하더라고.”
“다섯 번이면···”
유현이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했다.
그 결과는 대략.
“6억이 넘는 돈이네?”
“웅.”
“허···”
이게 법적으로 가능한가 싶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게임사에 항의 같은 거 안 해?”
“예전에 막 논란되고, 항의하고 그랬는데, 게임사에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무슨 대답을 했는지 감도 오질 않았다.
“순리를 벗어나 타고난 운명을 바꾸려면 그에 따른 대가가 필요하다.”
예전에 밈처럼 활용돼 채팅창을 도배했던 적이 있어 유진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면 컨셉에 잡아먹힌 게 아닐까 싶었다.
“근데 이 게임이 인기가 많다고?”
“웅. 오히려 요즘엔 저런 방식을 다들 좋아하더라고.”
“···왜?”
“게임 자체가 무료인 것도 그렇고. 다른 과금 요소는 없다시피 하거든.”
“아···”
하긴, 생각해 보면 캐릭터의 오성과 운명을 바꾸는 게 꼭 강요되는 것도 아니었다.
주어진 재능과 운명을 받아들이면 될 뿐.
그때, 유진이 말을 꺼냈다.
“그리고 저렇게 해버리면 막 돈 많은 사람들이 현질로 엄청 세지고 이렇지도 않으니까. 김 회장처럼 엄청 부자 아니면 다 고만고만하니까 사람들끼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음. 그럴 수도 있겠네.”
“또 운 좋게 오성 높게 뜨면 대박이기도 하고. 이걸로 성장해서 아이템 같은 거 팔면 돈도 잘 벌리거든.”
대화를 나누던 유현은 몽선경의 세계가 대략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다.
현실 등급이 꼭 게임 속 등급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도.
그러다, 유현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오성이 높으면 뭐가 좋은데?”
“후후후.”
잠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던 유진이 말했다.
“오성이 제일 낮은 게 1이고, 보통 100~150 사이거든? 근데 오성이 높을수록 경지가 빨리 올라.”
“아···”
“오빠가 지금 오성 1,000이잖아? 100인 사람이랑 비교하면 10배나 더 빨리 쎄진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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