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월과 문강 (2)
어느 날, 선관 셋이 약방에 왔다. 둘은 치고받으며 싸운 모양새였다.
“두 분은 저기 앉아 주시고, 선관님은-”
“옆에서 봐도 될까요? 저 녀석들 둘만 놓고 가려니 제가 불안해서요.”
“그럼 이쪽에 앉으시면 돼요.”
해선이 필요한 것을 가지러 안으로 들어가니, 문강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길 한복판에서 누가 싸우라고 했어. 어?!”
“먼저 치고 지나가잖아요.”
“저는 사과했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게 사과냐?”
“지는 일부러 치고 다니면서.”
“지? 지라고 했냐? 너 미쳤어?!”
“그만, 그만! 뭘 잘했다고 소리를 높여!”
언쟁을 삼가야 하는 곳에 오면 조용하게 얘기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이 둘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선관님, 가림막 좀 쓰겠습니다.”
“네~”
한 쪽으로 잠시 치워져 있던 가림막으로 둘 사이를 갈라놨다. 성난 소 같았던 두 선관은 서로의 시야에 상대가 사라지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아! 아파요.”
“금방 끝나니까 좀 참으세요.”
두 선관의 엄살을 바로 옆에서 들으며 치료를 한 해선은 피곤한 얼굴로 일어났다.
“다 됐고, 또 싸우면 덧나니까 싸우지 마세요.”
“....”
“대답 안 해?”
심통이 나면 대답을 안 하는 선관이 종종 있어 해선은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문강은 아니었다.
“네···”
“넵···”
“먼저 가.”
“문강 님은 안 가세요?”
“나는 받아 갈 거 있어.”
저 둘만 보내는 것이 불안했지만, 일과 중에 온 것이라 더 자리를 비우게 할 수 없었다. 걱정이 돼도 보내야 했다.
“어떤 거 필요하세요?”
“여기 적혀있는 것만 주시면 돼요.”
도월과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없이 해맑게 웃던 생글생글한 얼굴은 없었다.
“기분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평소랑 좀 다른 것 같은데.”
“아니요? 혹시 제 표정이 또 굳어있었나요?”
“조금요.”
“근데 제가 평소에 어떤 얼굴인지 어떻게 아셨어요?”
“지나가다가 도월 님이랑 같이 있는 거 몇 번 봤거든요.”
“도월이 알아요?”
“유명하잖아요.”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한동안 거의 모든 선관들이 도월에 대한 얘기만 해서 알게 됐다. 계속 하나의 선관에 대해 듣다 보니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럼 도월이랑 친해요?”
“축제 때 한 번 봤어요.”
“그럼 한 번 말 걸어 보시지.”
“들리는 말이 좀 그래서.”
“친해지면 생각한 거랑 많이 다를 거예요. 우선 저랑 친구 할래요? 해선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해선의 말에 응하듯 반대 손으로 마주 잡았다.
“문강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 — — — — —
그날 이후로 문강은 종종 약방으로 왔다. 본인의 일과가 끝나고 오기도 하고, 눈만 마주치면 싸워서 한 군데 꼭 터지는 선관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와서 하는 것은 친구와 하는 평범한 대화도 있었고, 신세한탄도 있었다.
“아아...”
해선의 맞은편에 늘어지게 앉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여기가 네 집이냐?”
“차라리 여기가 내 집이면 좋겠다..”
“이번에 또 싸웠어?”
“어···”
해선도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저으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둘이 밥 먹듯이 싸우는 걸 바로 옆에서 보고, 직접 말리느라 일과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눈 밑에 그늘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고작 여자 하나가 뭐라고.”
“그 선관도 같은 구역이야?”
“의복점에 있어. 일부러 망가뜨려서 만들러 가고, 일 없어도 바쁜 선관 만나러 가고.”
“말려 봤어?”
“어르고, 달래고, 타이르고 다 해봤지. 그래도 안 들어서 윽박지르기도 해봤는데, 여자에 미쳐 있어서 귓등으로도 안 들어.”
듣기만 해도 피곤했다. 어쩌다가 저렇게 됐는지.
“왜 제 능력은 치유가 아닙니까..”
“여기라고 쉬운 줄 아냐. 네가 심각한 환자를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심각하면 얼마나 심각한데?”
“깊은 외상에, 내상에, 여기 있는 약재로 해결이 안 될 정도.”
“그런 환자가 와?”
“어.”
해선도 도월을 보기 전까지 천국에서 그런 환자가 올 줄 몰랐다. 방울은 전쟁으로 인해 많이 봐서 그런 모습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해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렇게 다쳐서 오는데?”
“도월이.”
“그 선관은 어디서 뭘 하기에.”
“왜 그렇게 됐는지는 직접 물으시고, 이제 나가. 나 할 일 많아.”
해선은 문강을 내보내려고 했다.
“잠깐만, 잠깐만!”
“왜?”
“도월이라는 선관이랑 어떻게 친해지는데?”
옥황과 신경전을 벌이고, 날이 서있다는 말을 들으니 천국의 망나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무의식중에 어려운 선관이라는 인식이 잡혀있었다.
‘왜 못 친해지지?’
‘어떻게 친할 수 있지?’
‘왜’와 ‘어떻게’가 만나 서로 의문을 가지게 됐다.
“축제 때 말 걸어봤어?”
“다른 분들한테 잡혀서 빠지지 못했지지.”
“아···”
축제 당일, 현진과 같이 있는 선관들 중 문강도 있었다. 현진이 빠질 때 같이 빠지려 했으나 다른 선관들에게 잡히는 바람에 벗어나지 못했다.
“해선 님- 약 받으러 왔어요.”
이들의 뒤로 현진이 왔다.
“형!”
“강이도 있었네?”
문강은 현진을 보니 반가운 얼굴을 보였다.
“두 분 잠시 얘기하고 있어요. 담아서 나올게요.”
문강은 친한 이를 만나서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밝아졌다.
“왜 여기에 있었어?”
“형, 제 말 좀 들어봐요.”
기댈 곳을 만나니 문강은 그동안의 일을 늘어놨다.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지. 다른 선관과 불편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현진을 제일 편하게 느꼈다. 능력이 발현되기 전에도, 후에도 다름없이 잘 대해준 게 이유가 되겠지.
“여기에 부탁한 거 다 챙겼고, 후배분이 많이 힘들어하니까 가면서 얘기 잘 들어주세요.”
혼자 다 들어주기엔 한계가 있었던 해선이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그리고 해선은 저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밀린 일을 볼 수 있었다.
“형, 도월이라는 선관은 어떤 선관이에요?”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도월을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어려웠다. 이 단어로 하자니 다른 말이 더 어울리고, 다른 설명이 덧붙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다. 그래도 천국에서 본 적 없는 유형이니 굳이 하나를 골라봤다.
“망나니?”
지금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옥황의 앞과 다른 선관과 있을 때는 별반 다르지 않으니 아주 틀린 설명은 아니었다.
‘역시 소문이랑 다르지 않은 걸까.’
“처음에 안 맞아서 자주 싸울 수도 있는데, 친해지면 꽤 괜찮은 애야.”
해선과 같은 말을 한다. 친해지면 괜찮다는 것이 문강에겐 어려웠다. 다들 먼저 말을 걸어왔지, 본인이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도 한 번 친분을 만들어 보고 싶은 건, 낯을 가리는 성격을 바꿔 보고 싶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어떻게 친해질 수 있는데요?”
현진에게 어려운 질문이었다. 도월과 어떻게 친해지는가에 대해 청령과 자신의 상황과 기준에 맞춰 설명하면 문강이 더 어렵게 생각할 것 같았다. 그저 형식적으로 뻔한 방법을 알려주는 수밖에.
“말을 한 번 트면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말 한마디 잘못하면 싸우겠지만, 그러면서 친해지는 거니까.’
“일단 알겠어요.”
“그럼 지금 인사해 볼래? 마침 저기 오는데.”
“나중에요. 저기 또 싸우는 놈들 말리러 가야 하거든요.”
그렇게 현진과 인사를 하고 자리를 먼저 비켰다. 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도월이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그 모습이 참 의외였다. 축제 때에도 웃는 걸 못 본 것 같은데.
‘진짜 친해지면 나도 저 얼굴을 볼 수 있는 건가?’
“문강 님! 얘들 말리는 거 도와주세요!”
다른 곳에 시선이 갔다가 다른 선관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중재했다.
“으아...”
이번엔 두 선관의 실랑이가 평소보다 길어져 진이 다 빠졌다.
“그렇게 맨날 힘들어서 어떡해.”
“그러게요...”
“친구도 사귀고, 만나고 그래. 약방에서 바쁜 선관 방해하지 말고.”
“누나는 친구 사귀는 게 쉽겠지만 저는 어렵단 말이에요.”
잠시 쉬는 동안 같이 선관 둘을 떼어 놓느라 고생한 선관과 의자에 나란히 앉아 얘기하고 있었다.
“아, 맞다. 누나도 도월 선관 알죠?”
“알지.”
“그 선관 어때요? 진짜 망나니 같아요?”
“아니. 소문이랑 너무 다르던데?”
선관이 들려주는 도월의 얘기는 달랐다.
주변을 세세하게 살필 줄 알고, 지나가다가 다른 선관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보면 곧잘 도왔다. 오랫동안 선관으로 있었던 존재들보다 더 주변을 잘 알았다. 자신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을 보게 만들었지.
“꽤 섬세한 선관이라고 할 수 있겠네.”
문강의 입장에서는 얘기를 들을수록 더 알 수 없었다. 뭐가 진짜 모습인지.
“직접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어디 가요?”
“우리가 설 시간이야.”
“아..”
어지간히 진이 빠졌는지 당번도 잊고 있었다.
— — — — — —
그 후로도 같은 일상을 보냈다. 약방을 찾아가 해선을 만나거나, 현진을 마주치면 잠시 대화를 하는 그저 평범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평범한 일상 속 그날 본 도월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야.”
“왜?”
“도월 님은 어디서 마주칠 수 있냐?”
계속 생각나서 거슬릴 바에는 차라리 한 번 마주치기로 결론을 내렸다.
“나도 몰라.”
“네가 모르면 어떡해.”
“우리는 이미 친해서 이유 없이 종종 보거든.”
웃으면서 얘기하는 해선이 얄미웠다.
“친구가 용기 내서 다른 친구 사귀려고 하는 데 도움 좀 주지-”
“그럼 내가 준 정보 다 토해내.”
“그건 안 되지.”
“징징대지 말고 네 자리로 썩 사라지거라.”
“아이고, 무서워라-”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갈라졌다. 문강은 결국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갔다.
“강이 왔어?”
“네-”
“오자마자 미안한데 이거 옥황님한테 바로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이게 뭔데요?”
“걔네 둘 재배정 요청서.”
“설마- 아니죠?”
“드디어 사고를 쳤다.. 기어이 사고를 쳤어..”
의복점에 갈 때 서로 모르게 갔다가, 이번에 우연히 시간이 겹쳐 마주치게 됐다. 작은 언성으로 시작된 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문제는 다툼의 규모다 컸다는 것이지. 전에는 주먹 다툼이었다면 이번에는 각자 무기를 들었다.
“운이 좋으면 징계를 받고 끝날 것이고, 아니면 사자로 직책이 바뀌겠지.”
사자로 직책이 변경되면 다시는 선관이 될 수 없다. 이건 비사도 마찬가지인 부분이지. 천국으로 가야 할 망자, 지옥으로 가야 할 망자를 가리지 않고 각양각색의 망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고집불통에 말을 듣지 않는 망자를 만나면 곤욕을 치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겠지.
“이번엔 다친 선관까지 나와서 징계로 끝날지 않을 것 같지만.”
“어떤 선관이 다쳤는데요?”
“누구겠냐. 둘이 마음에 품은 여자 선관이지.”
“아.”
“그 선관도 둘 때문에 피곤했다고 자주 얘기했데. 그래서 내 보고서에 둘이 무슨 짓을 했는지 세세하게 적어서 올렸거든. 그런데..”
“네.”
“바뀌는 게 없는 거야. 아직 못 읽은 건지, 알고도 모른체하는 건지.”
계속 말리고, 보고서를 옥황이 보고 어떠한 처분을 내리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미 지쳤다. 더 이상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어느 정도 선이 있는 것이지. 선을 넘어도 진작에 넘어버린 저들을 말리는 것은 ‘사막에서 진주 찾아와’라는 것과 같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아무튼 부탁 좀 할 게.”
“네. 다녀오겠습니다.”
“어야-”
그렇게 문강은 두루마리를 한 손에 들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다.
— — — — — —
“아야.”
“아!”
잠시 뻐근한 목을 풀며 걸어가다가 자신보다 작은 선관과 어깨를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앞을 어떻게 보고,”
순간 짜증이 몰려와 한 마디 하려고 했는데, 앞에 있는 선관이 도월이었다.
“괜찮으신 거 맞죠?”
“아, 예.”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기!”
지나가려는 도월월의 팔을 붙잡았다.
“미안합니다.”
인상을 찡그려서 기분 나쁘게 한 건가 했지만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자신의 첫인상을 나쁘게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할 말 있습니까?”
“도월 선관님, 맞죠?”
“네.”
“반갑습니다. 문강이라고 합니다.”
“아.. 예.”
이 상황에 반갑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어찌저찌 통성명을 하게 됐다. 시종일관 표정이 좋지 않아 역시 소문 대로인가 했는데, 손과 목에 감긴 붕대가 눈에 들어왔다. 환자를 붙잡은 것에 대해 미안해졌다.
“더 할 말 없으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짧아도 너무 짧은 만남이 끝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워? 왜?’
그동안 말로만 들은 것이 다이고, 이번이 처음 본 것인데 아쉽다는 생각이 든 것이 의문이었다.
문강은 머리를 긁적이며 옥황에게로 갔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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