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1)

“나 왔어~ 이제 들어가서 쉬면 돼.”
“그럼 저는 의복점에 가서 옷 찾아올게요.”
“금방 해 저물 텐데, 후배님 혼자 가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도월은 혼자서 의복점으로 갔다. 가는 길에 약방에 들려서 소윤의 옷도 돌려줬다.
“너무 늦게 돌려드려서 죄송하다고 소윤 님한테 전해주세요.”
“죄송할 것까지야~”
“자기 왔어요?”
마침 소윤이 약방에 왔다.
“소윤 님이 왜 여기에 있어요?”
“우리 방울이 얼굴 보러 오지요~ 이때가 아니면 볼 시간도 많이 없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좋으면 혼인하시지, 왜 아직 정인으로 있으세요?”
“아직은 이 관계가 좋아서요. 짧게 만나는 게 뭔가 더 애틋하달까?”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잖아요.”
둘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저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그런데 도월 님은 어디 가는 길이에요? 단순히 옷만 돌려주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의복점에 옷 찾으러요.”
“벌써 찾을 때가 됐구나.”
“그럼 늦지 않게 가봐야겠네요. 해 떨어지고, 달 뜨면 금방 닫거든요.”
“아직 여유 있으니까 지금 가면 금방 도착할 거예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잘 가요~”
의복점은 다른 곳들보다 오래 불이 켜져 있지만, 해가 떨어지면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달이 완전히 떴을 때, 불을 끄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지금은 해가 떨어져가는 중이었고, 약방에서 의복점까지 비교적 가깝다지만 거리가 있었다. 도월은 걸음을 서둘렀다.
“도월 님, 어디 가세요?”
문강이 숲에서 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와 놀란 도월은 움찔했다.
“의복점에 가는 길입니다.”
“같이 가도 될까요? 천국이라도 밤이 되면 혼자 다니기 좀 그럴 수 있으니까-”
그의 말에 빤히 쳐다봤다. 묻지 않아도 이유를 줄줄이 말하는 것이 꼭 제 선배들 같았다.
“같이 가요.”
“고마워요.”
“뭐 이런 걸로 고맙기까지야.”
예전 같았으면 거절했을 텐데 선관으로 짧게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작은 관계 안에서 지낼 수 없었다. 거기에 외형은 다르지만 청령과 현진이 합쳐진 느낌이 들어 크게 낯설지 않았다. 성격도 친해지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
‘조금 닮은 것 같기도?’
“도월 님은 능력이 뭐예요?”
“소환이요. 제가 아는 것에 한해서.”
“예를 들면 어떤 걸 소환할 수 있는데요?”
“뭐든지, 다.”
문강은 말도 많았고, 질문도 많았다. 해선과 어떻게 친해졌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해선이랑 어떻게 친해지셨어요?”
“선이가 먼저 말을 걸면서 친해졌어요. 바로 말도 놓고.”
그 말에 문강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우리도 말 놓으면 안 돼요? 꽤 여러 번 봐서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든가.”
“전에 선이가 달님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던데. 나도 그렇게 불러도 되나?”
“마음대로.”
혼자 가는 길이 적적했는데, 문강의 등장으로 심심하지 않게 의복점까지 갔다.
— — — — — —
“옷 찾으러 왔는데요-”
“방명이 어떻게 되세요?”
“도월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행히 늦지 않게 왔다. 선관은 2층으로 도월의 옷을 찾으러 갔다. 3층까지는 작업실, 4층과 5층은 만든 옷을 보관하는 곳이다.
“여기 되게 넓다.”
“모든 옷은 여기서 만들어지니까.”
“알고 있었어?”
“소윤 님이랑 같이 왔었어.”
선관이 옷을 찾으러 간 사이에도 둘의 대화는 이어졌다.
“여기 있습니다.”
“원래 세 벌씩 만들어주나 봐요.”
“두 벌씩 만들어드리는데, 그냥 선물로.”
“너무 고생하시네.”
“이게 저희 일인 걸요. 그리고 이것도 선물이에요.”
장포도 두 벌도 내밀었다. 하나는 맑은 푸른빛이 감도 것, 하나는 흑색이 감도는 것이었다. 이곳에 처음 온 날, 그날 본 것이 다인데 과하게 퍼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남는 게 없을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시간이 남기도 했고, 너무 간단해서 만들면서도 계속 신경 쓰였거든요. 두 벌은 장포 없이 입는 게 편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장포는 지금 한 번 입어 보시는 건 어때요? 겉에 걸치는 거라 치수를 살짝 크게 했거든요.”
도월은 푸른빛이 도는 장포를 걸쳐봤다. 색도 얼굴이 화사하게 만들며 잘 어울렸고, 치수도 꼭 맞았다.
“다행히 잘 맞네요.”
“잘 어울린다.”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다른 분들한테 비밀로 해주세요. 이렇게 드리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물론이죠. 잘 입을게요.”
그렇게 장포는 몸에 걸치고, 나머지 옷은 들고나왔다.
잠깐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며 밤길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한 번 얘한테 부탁해 볼까?’
“저기-”
“응?”
“달아~!”
이무기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문강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도’라는 생각으로 부탁 아닌 부탁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저 앞에서 본인을 마중 나온 청령으로 인해 말이 끊기게 됐다.
“왜 여기까지 왔어요?”
“밤이니까.”
“금방 갈 텐데.”
도월과 얘기를 하면서도 청령은 문강을 신경 쓰고 있었다. 문강도 그런 청령이 신경 쓰였는지 도월에게 일부러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청령의 음성이 가로막았지.
“여기까지 데려다주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쉬십시오.”
“예, 그래야죠. 그런데 달이가 저한테 하려던 말이 있어서요. 방금 하려던 말이 뭐야?”
“중요한 얘기야?”
서로 경계하는 것 같은 모습에 도월은 눈만 도르륵 굴렸다. 저리 올곧은 눈으로 서로를 왜 노려보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렇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고.. 지금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야.”
“그럼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얘기해 줘. 먼저 가보겠습니다.”
청령은 무표정으로 문강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도월의 이제 가자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미소를 다시 그렸다.
— — — — — —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잠시 입구로 놀러 온 해선은 도월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지금은 약방에 있을 시간 아니야?”
“제비뽑기로 당번을 다시 정했거든. 그래서 오늘이랑 내일은 비번이랍니다~”
약방은 주기적으로 당번을 새로 정한다. 비번은 총 이틀로, 운이 좋으면 제비를 뽑은 날을 포함해 이틀을 쉴 수 있다. 저번에 운이 좋았던 주인공은 방울이었고, 이번엔 해선이 됐다.
“소윤 님이 새로 만든 간식이 있는데, 그게 진짜 맛있데.”
“선이 입맛에 맞았나 보네.”
“맞아. 이따가 같이 가자. 어때?”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가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어디? 옥황님이 찾아?”
“아니. 축령들 저승에.”
해선은 순수한 의미에서 궁금한 눈빛을 보냈다.
“어쩌다 보니까 갈 일이 생겼거든. 놓고 온 것도 있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다른 변명도 없었다. 해선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도월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저녁에 소윤 님이랑 방울 님이랑 같이 올게. 그때는 확실히 있을 거지?”
“내가 선배랑 현진 님한테 미리 말해 놓을 게.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것보단 문강도 같이 와도 돼?”
‘괜찮겠지.’
도월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선이 온 덕분에 도월은 적적하지 않게 있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해선은 가고, 도월은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
“응?”
“해선이가 저녁에 소윤 님이랑 방울 님이랑 같이 저녁 먹자고 하는데, 괜찮아요?”
“나는 당연히 괜찮지. 그렇게만 오는 거야?”
“문강도 같이 와도 되냐고..”
문강의 이름을 꺼냈을 뿐인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당연히 괜찮지. 해선 님한테도 친구면 달이한테도 친구일 텐데.”
걱정과 달리 청령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 줬다.
“그럼 저는 잠깐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는데?”
“축령들 저승이요. 한동안 안 갔더니 몸이 근질근질해서요.”
“그래, 그래. 잘 다녀와. 현진이한테는 내가 얘기해 놓을 게.”
“네~”
그렇게 도월은 흑색 장포를 걸치고 축령들 저승으로 갔다. 정확히는 이무기의 둥지로.
— — — — — —
한 번 왔던 곳이라고 익숙하게 길을 찾았다. 그렇다고 긴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쉽사리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늦게 왔구나.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다 왔구만. 아예 더 늦게 올 걸 그랬어.”
이무기라지만 깨진 보석이 완전히 회복되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편하게 휴식을 가지라고 늦게 온 것인데, 한 소리를 들으니 말이 틱틱 나왔다.
“역시 거기가 약점이었구나.”
–처음부터 알고 달려든 게 아니었나?
“그냥 눈에 띄어서도 있었고, 네가 반응을 보여서.”
뭔가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계속 끌려가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왜 오라고 한 건데?”
–성질 급하기는. 이유는 나중에 알아도 상관없다.
“그거 알려주면 어때서. 괜히 비싸게 굴고 있어.”
이무기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으나, 속된 의도는 없어 보였다.
–내가 앞으로 그대에게 무공을 알려줄 것이다.
“무공을? 나한테? 왜?”
이무기에게 무공을 배운다니. 이상한 그림은 아닌 것 같지만, 어울리는 그림도 아니었다. 그보다 의문이 들었다. 이승도 아닌 곳에서 무공이 통할까?
–그냥 ‘네, 고맙습니다.’라고 할 수는 없는 건가.
“너라면 순순히 그럴 것 같아?”
–다 그대를 위한 것이다. 그대를 위한 거. 일단 네 검들부터 꺼내봐라. 확인할 것이 있다.
도월은 일단 이무기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검을 꺼내고 이무기의 눈 높이에 맞게 띄워줬다.
–’역시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
검을 보고 미소를 짓는 것이 원하는 것을 찾았을 때의 나오는 표정 같았다.
–됐다.
“뭘 본 거야?”
–이것도 나중에 알려주지.
계속 나중에 알려준다는 말에 도월은 짜증이 올라오려 했지만, 이무기와 두 번의 싸움은 만들 수 없었다.
–검을 양옆에 내려놓고, 가부좌를 틀어라. 그리고 네 몸 안에 다른 모양새를 가진 혈도를 찾아라.
“어떻게?”
–할 줄 모르나?
도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전에도 할 줄 모르는 걸 여기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지. 검을 다룬다지만 교묘한 전략으로 유리한 판을 만들었을 뿐이지 무공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이무기는 얕은 한숨을 쉬고는 인간의 형상으로 모습이 변해있었다. 턱선까지 내려오는 하얀 머리칼과 뚜렷한 이목구비.
–"영광으로 알아라, 이 모습은 그대만 보게 될 테니."
“변용을 할 줄 알면 싸울 때도 좀 이렇게 해주지. 죽어라 싸운 게 갑자기 억울하네?”
–"내가 더 억울하다. 이게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아느냐?"
“내가 어떻게 알아.”
–"자그마치 천 년이 걸린다. 천 년이! 이거 곱게 만들려고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그렇게 애지중지한 거 안 보이는 곳에 자라게 하지 그랬냐?”
이무기는 이마를 문질문질하며 얘기했다. 어쩌다가 대화가 유치한 말싸움으로 흘러갔다. 서로 내가 더 억울하다, 더 힘들었다 하며 싸웠다.
–"왜 그대의 말이 다시 싸우자는 걸로 들릴까."
“지금 네 상태라면 나는 얼마든지 환영이지.”
–"이거 아주 망나니 아니야?"
“이제 알았어?”
팔짱을 끼며 얘기하는 저 아이를 보고 이무기는 잘못 걸린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리.
–"얌전한 성격 아니었나?"
“피해를 줄까 봐 성격 좀 죽이고 있던 것이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심지어 서로 싸우기까지 한 존재에게 진짜 성격을 숨길 필요가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대는 눈을 감고 있어라."
이무기는 도월과 마주 앉으며 손을 맞잡았다.
–"내가 길을 찾아 줄 테니 잘 따라오거라."
이무기가 자신의 기로 길을 잡아줬고, 도월은 집중하고 그 뒤를 따라갔다. 처음으로 직접 몸의 혈도를 느꼈다.
‘여기다.’
다른 혈을 찾았다.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무 명확하게 달랐다.
–"찾았나?"
“이거···”
–그래.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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