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기 (2)
“이거···”
–"그래."
“뭐야?”
–"뭐?"
이제 알게 된 건가 하고 인자한 얼굴로 얘기하려고 했는데, 뒤에 나온 물음에 이무기는 고개를 떨궜다. 이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다니. 앞길이 막막했다.
–"그게 네가 찾아야 하는 혈인 건 아느냐?"
“응.”
–"그걸 너의 기로 건드려 보거라."
이무기의 눈에는 혈도와 흐리게 개방되어 있는 혈이 보였다. 도월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아직 완전 개방이 안 돼서 잘 모르려나.’
살짝 건드려 올곧게 갈 수 있게 해줬다. 말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른다고 했지만, 길을 잡아주니 곧잘 따라왔다. 앞으로 가르칠 재미가 날 것 같았다.
–"뭔가 좀 느껴지나?"
“속이 안 좋아..”
–어?"
“나 토할 것 같, 우욱···”
–"자, 자, 잠깐! 여기서 하지 말고!"
이무기는 도월을 데리고 급히 이 저승의 제일 외진 곳으로 이동했다.
“욱, 우웨에엑!”
–’내가 아이 하나 키워보자고 뭐 하는 짓이람..’
등을 두드려 주면서 지금 이게 맞나 싶었다.
그렇게 속을 게워낸 도월은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원래 이런 거야···?”
–"그.. 괜찮을 줄 알고 말하지 않았던 건데.."
도월은 우물쭈물하는 그를 바라봤다.
–"평소에 건들지 않던 혈을 건드리면 그럴 수 있는데.."
“그걸 왜 이제 말해!”
–"말했잖아! 괜찮을 줄 알았다고.."
“그래도 말은 해줘야지.”
–"미안하다.."
“앞으로 계속 이래야 되는 거야?”
–"음..."
생각 이상으로 속이 뒤틀린 것 같아 이무기도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는 중에 도월이 뭔가 생각난 듯,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상자를 꺼냈다.
“이걸로 어떻게 안 될까?”
–"꽤 귀한 걸 갖고 있구나. 어디서 얻은 것이지?"
“받았어.”
–"이런 걸 줄 정도면 꽤 가까운 사이라는 것인데."
“좀 친한 편이지.”
–"좋은 관계를 만들었구나."
이무기가 단약을 손에 쥐었다가 펴니 어두운색이었던 것이 흰색으로 변해있었다.
–"어떠냐. 신기하지?"
“좀.”
–"먹으면 달라진 게 느껴질 거야."
한 번 속이 뒤집혀 신뢰가 조금 떨어졌지만 도월의 눈에도 그냥 귀하게만 보이던 단약이 한 층 그 이상으로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어우.. 써...”
–"입에 쓴 약이 몸에도 좋은 법이지. 그보다 달라진 게 느껴지나?"
“아직 잘 모르겠, 윽!”
속이 뒤틀리며 타들어 가는 듯했다.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나의 내력이 들어가서 잠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 건 좀, 미리···”
–"어? 이봐. 도월? 도월!"
옷자락을 잡으며 주저앉은 도월은 이내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몸의 열이 오르고 있었고,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분명 잘못 만들지 않았는데.. 설마.’
혈이 반절까지 개방되려 하면서 몸의 열을 발생시켰고, 더불어 내상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일을 만들었지.
–"내 욕심이었구나."
이 아이와 싸우며 앞날을 보고 조금 욕심을 낸 것인데, 그 욕심이 화를 불러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미안하다, 아이야."
이무기는 개방되려의 혈의 움직임을 막고, 몸의 열기를 내렸다. 그리고 내상도 치료하며 소모된 기도 다시 채워 넣었다. 자신의 기도 넣어 도월이 의식을 찾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신이 드나?"
“너...”
–"아!"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어! 복수하는 거야?”
도월은 바로 이무기에게 주먹질을 했다. 기운이 다 빠진 주먹은 솜방망이처럼 느껴졌지만 원한이 담겨있었다.
“이게 진짜 여러 번 죽이려고 하네.”
–"내 욕심이 컸다. 진짜 미안하다...'
“나 오늘은 더 안 해. 못 해.”
도월이 견디기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너무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었다. 도월은 토라졌고, 이무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었으니까.
짧은 정적이 흐르고, 도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에 나한테 입 무거운 애 데려오라고 했잖아.”
–"응."
“네가 내 상대해 주면 안 되나?”
–"내가 인간의 형상으로 있으면 능력을 쓸 수 있는 게 없다네."
“명색이 이무기인데?”
저승 이무기들의 공통사항이었다. 본모습으로 있을 때에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형상으로 있을 때에는 많은 제약이 생긴다. 이무기의 상태처럼 능력을 쓰면 몸이 감당을 하지 못해 이무기로 돌아갔을 때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제약이 커서 그대와 대련을 하면 내가 위험하다."
“제약이 그렇게 영향이 큰가?”
–"한낱 인간이랑 이 상태로 붙으면 내가 진다. 약관도 넘지 않은 한참 어린아이한테도 이기지 못한지."
“그럼 나한테 무공을 어떻게 알려준다는 거야?”
–"그래서 대련할 상대를 데려오라는 것이 아닌가. 이무기의 상태로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지만, 이 상태로는 안 되니 말이야."
“이무기의 형상이 아니면 싸울 줄 몰라?
–"인정하기 싫지만.. 그렇다."
그의 말을 듣고 도월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났다. 모두에게 비밀을 유지하면서 다른 인물은 필요하지 않은 방법.
“내가 너한테 몸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거 어때?”
–"그대가 나한테?"
“내가 아니면 누가 가르쳐 주겠어. 그것도 이무기한테.”
–"하지만 나한테는 무기가 없거늘 어떻게 알려준다는 것이지?"
“내 능력이 뭔가. 소환 아니겠나. 필요한 무기는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지.”
누구 하나 실을 볼 것이 없었다. 도월은 비밀을 유지하며 도와줄 이를 찾지 않아도 됐고, 이무기는 제약을 완화할 기회가 될 것이었지.
–"좋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둘은 악수를 하며 계약 아닌 계약을 맺었다.
–"그럼 지금부터 바로 할 건가?"
“아니. 저녁에 친구들 만나기로 해서”
–"매일 올 건가?"
“매일은 못 오고, 일주일에 두 번?”
–"이다음은 언제 올 건가?"
“4일 뒤?”
–"알겠다."
— — — — — —
“도월 님, 왔다.”
“달아~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미안. 어쩌다 보니까.”
늦지 않게 온다고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일찍 왔는데, 이미 모두가 와서 한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월도 한쪽에 장포를 내려놓고 주방으로 가서 거들었다.
“오늘 도월 님이 해 준 거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제가 힘 좀 써보겠습니다. 기대하세요.”
주방에는 현진과 방울, 단둘이 있었다.
“선배는 방에 있어요?”
“청령 님은 아까 잠깐 나가는 것 같던데요.”
“청령이 데려오는 거 후배님한테 부탁해도 될까?”
“알겠습니다-”
도월은 일단 밖으로 나왔다. 대충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입구가 내려다보이고, 하늘이 트여 달이 뜨면 잘 보이는 곳. 청령이 알려주고, 본인이 늦으면 현진이 데리러 오는 곳.
짐작이 간다고 해도 확실하지 않아 반신반의하며 걸음을 옮겼다.
“선ㅂ..”
청령의 뒷모습이 보여서 부르려는데,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다. 둘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
‘문강? 왜 선배랑 둘이 있지?’
저들이 있는 나무 바로 뒤로 가는 건 티가 날 것 같아 좀 떨어져 있지만 그나마 제일 가까운 나무 뒤로 갔다. 그래도 얼마나 작게 얘기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보였다.
‘저러다 몸싸움으로 번질 것 같은데..’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 부르려 했는데, 둘 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였다.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청령을 불렀다.
“선배!”
“달아.. 여기까지 왜 왔어?”
당황한 게 눈에 보였다.
“현진 님이 선배 찾아달라고 해서요. 그런데···”
“어?”
“형이 찾는다니까 어서 갑시다.”
“잠깐만,”
“가자, 가자.”
문강은 도월이 무슨 얘기를 꺼내기 전에 어깨를 잡고 끌고 갔다. 청령은 문강의 저런 행동이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저녁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한 번 봤던 익숙한 상황이 일어났고, 거기에 문강이 곁들어졌다.
이번에도 뒷정리는 도월과 청령이 했고, 도월은 이번에 조금 많이 마셔서 장포를 덮고 의자에 누웠다.
‘너무 많이 마셨다.. 보고서 써야 되는데..’
방에서 보고서 용지를 가지고 나오려고 했지만 몸이 가라앉고 눈꺼풀이 계속 내려왔다. 거기에 이무기가 회복시켜줬다지만 몸이 갑자기 무리를 하여 피로감이 몰려왔다.
“달아, 여기 말고 들어가서 자. 달아?”
“자는 애를 왜 깨워.”
“여기서 자다가 고뿔이라도 걸리면 안 되잖습니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문강 후배님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청령은 문강에게 선을 그었다.
“어디로 데려가려고요.”
“내가 일일이 보고해야 되나?”
도월과 있을 때에는 서글서글하게 웃어서 쉽게 생각했는데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청령은 드러내지 않았을 뿐, 날카로운 이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아까도 말했지. 오래 가지 않을 단순한 호기심은 숨기라고.”
“저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선배님도 청령님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 — — — — —
이들은 도월이 오기 전, 남들은 모르게 작은 가시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 청령이 잠시 밖으로 나갔을 때, 문강이 뒤따라 나와 그의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청령 님은 달이랑 많이 친하세요?”
“같이 지내니까.”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일단 대답을 했지만, 쫓아와서 또 어떻게 시비를 걸까 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답해주실 겁니까/”
“질문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고, 조용한 곳 없습니까?”
질문을 해도 되냐고 했다가, 자리를 옮기자는 말을 하는 그가 언짢았다. 다른 이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조용한 곳은 한 곳이니 그곳으로 갔다.
“이제 그만 뜸 들이고 말하지.”
문강의 질문은 청령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청령 님은 달이를 어떻게 생각해요?”
“뭐?”
“한 집에서 같이 지내잖아요. 그래서 궁금하더라고요. 달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이 도월과 청령을 볼 때엔 그저 친한 선후배 관계로 봤다. 하지만 문강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저들은 단순한 선후배 관계로 보이지 않았다. 한 쪽은 이미 그 이상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게 왜 궁금하지?”
“저는 달이가 좋거든요. 청령 님이 아무 감정이 없다고 하면 조금 더 확실하게 표시할 의사가 있는 상태고요.”
거짓이 없는 눈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자기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본 기간은 중요하지 않죠.”
“아니. 꽤 중요하지. 지금 그 마음이 단순한 호기심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청령도 문강의 신경을 긁었다. 어린아이의 치기에 놀아나는 것 같았지만, 받아치며 물러나지 않았다.
“제 감정은 제가 잘 알죠.”
“그 감정을 애송이가 잘 알까, 어른인 내가 잘 알까?”
“어른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닐 텐데요.”
“그래도 그 감정이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닌지는 잘 알지.”
“...”
“오래 가지도 않을 단순한 호기심은 숨기거라. 우리 애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단순한 마음인 건, 청령 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한 여인을 사이에 둔, 두 사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선배!”
이들의 싸움은 도월의 목소리에 의해 중재됐지.
— — — — — —
“저는 달이한테 천천히 표현할 겁니다.”
“곤란하게 만들고 싶으면 얼마든지.”
청령은 그를 비꼬며 도월을 안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도 도월은 자신의 방을 소윤과 해선에서 내어줘 잘 자리가 없었고, 본인은 잠은 다 잔 것 같아 이 아이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줬다.
‘비겁한 나보다 그 녀석이 나으려나..’
“좋아한다고 표현도 못 하면서 너를 다른 놈한테 주기 싫은 건 욕심이겠지..”
닿지 않을 물음을 던지고 청령은 방에서 나와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문강은 그 사이에 잠시 나간 것인지, 현진의 방으로 들어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청령에겐 차라리 잘 됐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었으니까.
도월이 뒤척이다 내려간 이불을 덮어주고 청령은 방을 다시 나갔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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