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4)

“제가 하는 얘기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요.”
어떤 말을 들어도 웬만하면 놀라지 않을 도월도 놀라다 못해 혼란스럽게 만들 얘기를 했다.
돌려서 얘기하지 않는 방울은 직설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도월 님이 축령들 저승의 주인이 될 것 같아요.”
“네?”
이무기와 스스럼없이 지내고, 둥지의 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거기다 일전에 이무기와의 싸움에서 본능적으로 약점을 찾고, 자연스레 ‘월성검’이라는 검술로 이무기와의 격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거는 그럴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우연히 약점을 찾았고, 운 좋게 이겼다고 할 수 있겠죠. 월성검도 잘 연결시키면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여기까지는 진실과 거짓을 어찌저찌 적절하게 섞어서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지.
“월성초랑 월성목을 쉽게 가져온 거. 그거는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그거는···”
“그 두 가지는 이무기가 주인이 저승에 들어왔을 때 피우는 거예요. 월성초는 저도 말만 들었지 실물로 본 거는 청령 님이 구해왔을 때가 처음이에요.”
“청령 님이 구해왔으면 그쪽을 의심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알 수 있다. 월성초가 완전히 자라는 시간과 도월이 그곳에 갔던 시간을 계산해 보면 답이 나온다. 혼란스러워하는 도월의 바람과 달리 자신 외에 그 저승의 주인 후보는 없음이.
“도월 님은 월성목까지 가져왔잖아요. 저는 도월 님이 가져오기 전까지 월성목의 존재 자체를 몰랐어요.”
“....”
“그리고 길을 제대로 찾았다면서요. 보통의 선관이나 비사는 이무기가 걸어놓은 환술에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저승 주인의 물건이 없으면 보통 길을 잃어버리고,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해요.”
청령이 처음에 갔을 때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도월의 검을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검으로 인해 찾지 못했을 길을 찾게 됐지.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건, 도월 님 손등에 낙인이 생겼어요. 아직 많이 흐리긴 한데, 앞으로 선명해질 거예요.”
저승의 수장들은 손등에 각자 고유의 낙인을 갖고 있다. 그 낙인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 일상이 달라지게 만든다.
도월은 이미 이무기에게 인정을 받았고, 혈이 개방되어 낙인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선관이 저승의 주인이 된 경우는 없을 거 아니에요.”
“있어요.”
“네?”
아주 가까운 곳에 예시가 있었다.
“옥황님과 염라님.”
옥황은 한때 선관이었고, 염라는 한때 비사로 있었다. 어느 날, 이 들의 손등에 낙인 선명하게 나타났고, 새로운 저승의 주인이 되었다. 도월도 지금 그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다.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아직 믿기 어려운데...”
지금 감정은 복잡했다. 이 사실을 알려줄 수 있음에도 말하지 않은 이무기가 원망스러우면서, 이미 시작된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음에 두려움이 생겼다.
‘난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지?’
그 누구도 앞으로를 확신할 수 없다. 어떤 파장을 얼마나 불러올지, 혼란을 얼마나 크게 가져올지. 단 한 명도 섣불리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정황과 앞으로의 상황들이 더 확실하, 더 선명하게 알려줄 거예요.”
“아직 시간은 많이 남은 거 맞죠?”
“...”
방울은 도월의 시선을 피했다.
“뭐~ 어쩔 수 없네요.”
다시 도월의 얼굴을 보니 조금 전까지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절망적이던 얼굴에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바뀌어 있었지.
“네?”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해야죠.”
“도월 님···”
“선배들이랑 에들, 나중에 알면 놀라겠네~”
애써 웃어 보이고 있었다.
“이제 좀 쉬고 싶은데. 다른 이상은 없죠?”
“일단은요.”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도월은 등을 보이며 누웠고, 방울은 이불을 덮어주고 방문을 닫으며 나왔다.
“달이는 어때요?”
“몸살이 한 번에 몰려왔나 봐요. 당분간 아무것도 시키지 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몸살. 상태가 다를 것이 없으니 좋은 변명이었다.
“청령 님도 가서 할 일 하세요. 제가 여기 있을게요.”
“그보다 저랑 현진이랑 잠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 — — — — —
“두 분이 저한테 뭐를 물어보려고 그러시는지..”
청령과 현진은 방울을 사이에 독지하게 쳐다봤다. 그 사이에서 방울은 진땀을 빼고 있었다.
“후배님이, 아니.. 도월이 선관으로 얼마나 있을 수 있어요?”
“네?”
“저희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거든요.”
청령과 현진은 둘이 얘기를 오래 했다. 점점 비밀이 쌓여가는 모습, 현진과 청령이 보고 겪은 것을 종합해 볼 때 거의 확신을 하고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도월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음을.
“우리도 옥황님이 어떻게 그 자리에 앉게 됐는지 같이 봤잖아요.”
이 둘도 모를리가 없었다.
선관이 옥황이 됐을 때, 비사가 염라가 됐을 때, 두 저승은 한동안 어수선했다. 청령과 현진도 그 상황을 겪었고, 조금 다르지만 비슷해 보이는 상황에 방울에게 확실한 답을 들으려고 했다.
“저는 말할 수 없어요.”
“네?”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달이 선배잖아요.”
“같이 지내는 선관끼리는 알아야 하는 게 맞지 않아요?”
“하지만 도월 님이 말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저는 말할 수 없어요.”
둘은 실망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 마음에 걸린 방울은 도월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돌려 말했다.
“서로 지금 이상으로 정을 붙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예정된 이별은 미리 준비하는 게 서로한테 좋을 거예요.”
예정된 이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별과 달리 끝을 예상할 수 있는 이별이다. 예정된 이별이라지만 날이 정확히 정해진 것이 아니니 모순적인 이별이었다.
이를 막고 싶지만 선관에 불과한 둘에게는 그럴 방법이 없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무기를 이길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했다.
— — — — — —
똑똑-
“청령 님, 현진 님- 안에 계세요?”
밤이 찾아오고, 일과가 끝나갈 무렵. 같은 약방 선관에게 방울이 입구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 하루 종일 신경 쓰였던 해선은 끝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발길을 재촉하며 왔다.
“현진 님..”
“해선 님이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도월이가 아프다고 해서요. 지금은 괜찮아요?”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아요. 잠깐 들여다보는 건 괜찮을 거예요.”
해선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후끈한 열기가 맞이하고 있었고, 해선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옆에 앉았다.
“도월아···”
“으으···.”
“계속 열이 오르내리는 게 반복이에요. 물수건을 얹어주는 것 외에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방울 님.”
“네.”
“도월이가 일어날 때까지만 여기로 와도 될까요?”
“그럼요. 약방은 걱정 마세요. 여기는 해선 님한테 맡기고 갈게요. 약은 책상 위에서 올려놨고, 여기도 필요한 건 웬만큼 있을 거예요.”
“...저기..”
“네?”
“아니에요. 달님은 제가 꼭 낫게 할게요.”
해선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옅게 웃어 보였고, 방울은 약방으로 돌아갔다.
— — — — — —
그렇게 일주일 동안 청령과 현진, 해선이 돌아가면서 도월의 옆을 지켰다.
“해선 님은 이제 쉬고 오세요.”
“아니요. 저는 여기서 하는 게 없으니까 해가 떠있는 동안은 제가 있어야죠.”
“선아···”
열병으로 앓던 도월이 정신을 차렸다.
“후배님, 괜찮아?”
“지금 어때? 아직 몸이 안 좋아?”
“아니. 많이 좋아졌어.”
“맨날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
이마를 짚어보니 아직 미열이 남아있었다.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지만 이것도 많이 좋아진 상태다.
“아직 일어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괜찮아요.”
도월은 침상에서 일어나 장포를 챙겼다.
“뭐 하는 거야. 너 아직 환자야.”
“나 좀.. 놔줘...”
텅 빈 눈을 하고 있는 도월에 해선은 스르륵 손에 힘을 뺐다.
“놔주세요.”
“못 놔. 아니, 안 놔줘.”
교대를 하기 위해 오던 청령은 안에서 나오는 도월을 붙잡았다.
“놓으라고.”
초점을 잃고 흐려진 눈에 청령은 움찔했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너 진짜,”
“청령.”
현진은 청령의 손목을 잡으며 그만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에 못이기는 듯 도월의 손을 놨지.
“너 마음대로 해.”
둘은 서로를 등지고 각자의 방향으로 갔다. 청령은 물론 사이에 낀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 — — — —
도월이 간 곳은 역시나 이무기의 둥지였다.
“야.”
–"몸은 좀 괜찮은가?"
“...”
–"왜... 그러지?"
“...”
–"자, 잠깐! 말로 해! 말로!"
도월은 사나운 얼굴로 이무기의 멱살을 잡았다. 영문을 모르는 이무기는 뒤로 물러나기며 소리를 칠 뿐이다.
계속 뒷걸음질을 치다 나무에 부딪혀 움직임을 멈췄고, 도월의 손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왜 말을 안 했던 거야?”
–"뭐, 뭐를 말하는 건지.."
“네가 날 주인으로 정했다는 걸 말이야.”
–"..."
“내가 선관으로 오래 있지 못한다는 걸 말이야.”
이무기의 눈이 커졌다.
–"그, 그게..."
“왜 말하지 않은 거냐고!”
–"..."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나는···”
–"미안하다.. 미리 말하지 않은 내 어리석음으로 너를 이렇게 만들었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한 도월은 이무기를 밀치고 내려갔다.
이무기는 도월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도 없었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모든 설명을 나중으로 미룬 자신의 어리석음이 저 아이를 혼란에 갇히게 만들었으니까.
“왜 나야.. 왜 나냐고!”
제일 안쪽에 있는 동역의 폭포에서 소리쳤다.
“이제야 마음 붙일 곳을 찾았는데.. 이제야 내 식구들이랑 지낼 수 있게 됐는데··· 도대체 왜!”
폭포는 떨어지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월의 턱 끝에서도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만 없으면..”
손등에 있는 별과 달로 형성된 낙인이 눈에 들어왔다. 이성을 잃은 도월은 단검을 들었다. 눈이 쌓인 곳은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탁.
다시 한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손을 멈추게 했다.
“이제 그만.”
“이제 와서 뭘 그만하라는 건데요.”
“도월 님.”
“선관도 뭣도 아닌 제가,”
짜악!
도월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눈에 초점이 돌아오며 안광이 살아났고, 이성을 되찾았다.
“정신 차리세요. 도월 님이 왜 선관이 아니에요.”
“방울 님···”
“진정했어요?”
잠시 굳었던 방울의 표정이 다시 누그러지며 평소의 얼굴을 보였다.
“죄송해요···”
“저한테 사과할 건 없죠.”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축령들한테 물으면서 왔어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게 보였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와봤죠.”
방울은 잠시 도월의 상태를 확인하러 입구로 왔었다. 다툼이 일어난 상황을 봤고, 해선에게 상황 설명을 들어서 이곳으로 왔다.
“손이 이게 뭐예요.”
“면목 없습니다..”
“마음 잘 추스르고 오세요. 제가 잘 말해 놓을게요.”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