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 (2)

탁!
한 쪽에서 큰 손이 튀어나와 도월을 잡았다. 놀란 도월은 손을 뿌리치며 뒤를 돌았다. 시선이 닿은 곳에 반갑지 않은 얼굴이 있었다.
“우리 오랜만이다. 반갑죠?”
“아니요.”
언제나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태영. 도월은 이번에도 여느 때와 같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의 선관이나 비사라면 그런 표정이 지어졌을 때 실수를 한 것인가 하며 사과를 하거나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하지만 태영은 달랐다. 도월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때마다 묘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지.
“빈말이라도 반갑다고 해주지. 왜 항상 그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서운하게.”
“...”
“손등에 이건 뭐예요? 천국에는 문신을 할 줄 아는 선관도 있나 봐요? 신기하네.”
도월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손등을 감췄다. 계속되는 무시에도 태영은 굴하지 않고 혼자 계속 떠들었다.
“도월 님 주변에는 사내들이 많아서 제가 얼마나 불안한지 모르죠?”
“갑니다.”
그의 헛소리를 들으니 불쾌해져 발을 다시 움직였다.
“왜 그리 서두르시나.”
“당신이 이러는 거 선배들은 알아요?”
“모를걸?”
“뭐라고?”
“내 달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염라도, 옥황도 모르게 얼마든지 올 수 있습니다.”
다시 도월의 앞을 막으며 발길을 옮기지 못하게 했다.
“귓구녕을 이승에 버리고 왔나.”
“네?”
“눈치도 없어, 말귀도 알아듣질 않아. 짐승도 이딴 식으로 나오진 않는데.”
“말이 좀 심한 것 같은데.”
“눈치 없는 놈은 이 정도 심한 말을 들어야 정신을 차려서 말이야.”
최대한 지옥과 마찰을 만들지 않으려고 헛소리도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라면 넘어갈 것도 넘어가지 못했고, 곱게 나갈 말도 곱게 나가지 않았다.
“윽!”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태영은 도월의 멱살을 잡고 나무쪽으로 밀쳤다. 부딪힌 충격으로 자연스레 둔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하실까? 내 달님이.”
“그 호칭도 집어치워. 이딴 식으로 찾아오는 것도 작작하고.”
“내가 진짜 왜 이러는지 몰라서 그래?”
“굳이 알아야 하나?”
일그러진 표정을 유지하는 도월, 그리고 이를 악문 태영.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돌아가거라.”
“그 말은 따르기 어려운걸.”
“네가 원하지 않아도 가게 될걸.”
“태영!”
멀리서 천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포기했어야지.”
둘의 표정이 바뀌었다. 도월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고, 태영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탁
“멱살 잡은 건 눈 감아 드릴 테니, 다시는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합니다.”
도월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고, 태영은 욱하고 올라오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나무를 쳤다.
“영원 님이 아니라 다른 분이 오셨네요.”
“영원이는 다른 일이 생겨서요.”
진운은 멱살이 잡혀 주름이 생긴 옷을 보고 연신 사과를 했다. 이리저리 통제가 어려운 후배를 둔 그의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태영을 만나기 전까지 이렇게 여기저기 고개 숙일 일이 없었을 것처럼 생긴 비사가 이러고 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쪽 비사가 저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말씀하십시오.”
“아닙니다.”
도월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그렇게 축령들 저승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입구에 남은 건 태영과 진운이었다. 진운은 멀리서 불쾌한 얼굴로 오는 태영을 봤다. 저 얼굴을 보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도월 님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아?”
“그냥 살짝 의견 충돌이..”
“그래서 멱살까지 잡았냐?”
태영은 어떻게 알았냐는 얼굴로 쳐다봤다. 진운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최대한 누르려고 했다.
“옷이 다 구겨져서 모르는 게 더 이상해.”
“아···”
“그 이상으로 갔으면 전쟁이야.”
“일개 선관이랑 비사가 싸운 걸로 어떻게 전쟁까지 가요.”
“저 선관은 달라.”
“뭐가 다르다는 건데요?”
“느낌이야. 함부로 건들면 안 될 것 같은···”
“에이~ 그냥 느낌이면 가볍게 생각해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끝까지 가볍게 보이는 태도에 결국 진운이 큰소리를 쳤다.
도월과 잠깐 마주친 것이지만 다른 선관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저 단순한 변덕적인 느낌이길 바라며 태영을 끌고 지옥으로 돌아갔다.
— — — — — —
이번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오니 밤이 깊어 있었다. 집에 불이 꺼져 있어 현진과 청령이 자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들어갔다.
“어디 다녀왔어?”
“깜짝이야.. 왜 나와 있어요?”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문을 닫고 뒤를 돌았는데, 식탁에 청령이 앉아있었다. 그동안 서로 미뤄왔던 순간이 찾아왔다.
“어디 다녀왔냐고 묻잖아.”
“그냥 바람 쐬고 왔어요.”
“이 밤중에, 그것도 늦은 시간까지?”
“네.”
“앞뒤가 잘 안 맞는데.”
“제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이 둘의 사이는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냥 넘어가기엔 말도 없이 사라지는 날이 많아서 말이야.”
“개인적인 겁니다.”
“그 개인적인 거,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래.”
“그냥 짐작하십시오. 제 생활 반경은 거기서 거기니까.”
“하... 이건 나중에 얘기하고, 손 좀 줘봐.”
그 말이 도월은 손을 달라는 말에 회피를 하기 위해 청령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 잡히며 그러지 못했다.
“나도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같이 알자고.”
“선배님은 뭘 아는데요.”
“뭐?”
“당사자도 아는 게 없어서 허우적거리는데, 선배님이 뭘 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작은 거 하나라도 알아야 뭐라도 할 거 아니야.”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선을 그으며 거리를 두는 도월의 태도에 청령은 그동안의 서운함이 몰려왔다. 그동안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모르는 것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것 투성이가 됐다.
“어떻게 내가 신경을 안 써.”
“아직도 제가 애처럼 보여요?”
청령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관이 된지 이제 100년이 넘은 도월을 아직 애처럼 보는 게 맞았으니까. 적지 않은 시간이지만 본인의 시간에 비해서는 한참 짧으니 애처럼 보기도 했었다.
“아직 애처럼 보여도 숨기고 싶어 할 때는 모른 척해줘야죠.”
“좋아하니까, 그만큼 소중하니까 알고 싶은 거잖아.”
그 말에 도월도 할 말이 없어졌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점점 엇나가고 있었다.
좋아할수록 모든 것을 알려주는 사내와 좋아할수록 숨기려고 하는 여인.
좋아한다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아 성숙하지 못한 둘. 서로 다른 생각이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직접 말하지 않은 걸 파헤치는 거, 그거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말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할 수가 있어?”
“심했다면 미안합니다.”
“상대방 생각 안 하고 내뱉는 것도, 기약 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럼 저희가 가졌던 감정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서로 상처되는 주는 말만 주고받은 도월과 청령. 감정의 골은 더 깊어져만 갔다.
— — — — — —
날이 밝고, 도월이 먼저 나가있는 동안 청령은 현진과 얘기했다.
“나 잠깐 다른 곳에 있다가 올까?”
“어? 너무 갑작스러운데···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잠깐 환기 좀 하고 싶어서.”
최근 들어 도월과 자주 대립 상황이 만들어져 청령은 밤새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자신이 잠시 다른 곳에 있다 오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그냥 내 노파심에 묻는 건데···”
“뭔데 서두만 말하고 뜸을 들여.”
“후배님 때문에 그러는 거야?”
청령은 대답 대신 씁쓸한 얼굴을 보였다.
“내가 괜히 주제넘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날 우리가 했던 얘기를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싶어.”
“...”
“물론 후배님이 먼저 말을 세게 한 게 있었지만, 우리는 선배잖아.”
“그렇지.. 내가 그때 이성적이지 못했어.”
“지금이라도 말하는 건 어때?”
“지금은.. 좀 늦은 것 같아. 나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고, 달이도 곱게 나오지 않을 거야.”
“...”
“그냥.. 내가 다른 곳으로 재배정 받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청령···”
“어디가 제일 나아? 너는 중앙에 오래 있었으니까 잘 알 거 아니야. 추천 좀 해줘라.”
청령은 애써 웃으며 가볍게 얘기했다.
“어딜 보는 거야?”
현진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뒤쪽으로 시선이 가있으니 청령도 뒤를 돌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월이 우뚝 서있었다.
“어디로 재배정 받으려고요?”
“그게 말이지-”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청령에게서 쌀쌀맞은 대답이 나왔고, 도월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네요. 비밀만 더럽게 많은 저는 알 필요 없겠네요.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비꼬는 말투는 고치지. 망나니 같은 행동이 더 거북해 보이니까.”
“다른 곳으로 갈 선관한테 훈수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싸늘하게 얘기하고 도월은 그대로 다시 나갔다.
청령은 자리에 풀썩 앉으며 또 말이 날카롭게 나간 것에 대해 자책을 했다.
현진은 금방이라도 발톱까지 세울 것 같은 둘의 모습에 머리를 짚었다.
— — — — — —
천국의 입구의 선관들이 속이 시끄러운 동안, 지옥의 입구도 같이 시끄러웠다. 원인은 당연히 태영이었지.
“너 또 도월 님 괴롭혔어?”
“괴롭힌 게 아니라 그냥 인사만..”
“손 똑바로 들어!”
진운에게 얘기를 들은 영원이 태영을 혼내고 있었다. 태영은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으면서도 변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요.”
“왜 또!”
“천국에는 문신을 하는 기술도 있어요?”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야. 그런 기술은 저승에 없어.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야.”
‘저절로 생긴다라..’
“왜 생기는지 아는 분이 계실까요?”
“안 알려줘.”
“알려주면 안 돼요? 형아~”
이제는 통하지 않는 수작을 부린 태영은 한참을 영원에게 설교와 잔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들을 태영이 아니고, 기가 죽을 인물도 아니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진 태영은 염라와 만남을 가졌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본론부터 말하게.”
“네, 바쁘신 염라님을 위해 바로 질문을 하죠. 손등에 문신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경우입니까?”
염라는 씨익 웃으며 되려 질문을 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먼저 알려주면 좋겠는데.”
“한 선관의 손등에 있는 걸 봤습니다.”
“그렇군.”
“이제 제 물음에 답을 해주십시오.”
염라는 자신의 손등에 있는 낙인을 보여주며 설명해 줬다.
“자네가 본 것은 한 저승의 수장이 될 존재에게 생기는 낙인이다. 처음에는 흐렸다가 진해지는 경우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진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
“그렇군요.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태영이 일어나려고 하니 염라는 다른 이들은 모를 위험한 거래를 제안했다. 그리고 둘의 거래는 성사되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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