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4)

소윤과 방울의 혼롓날이 왔고, 이날은 아침부터 많은 이들이 분주했다. 해선과 도월은 한쪽에서 곱게 치창한 소윤을 만나러 갔다.
“우와~ 진짜 예쁘세요.”
“고마워요. 방울은 어떤지 봤어요?”
“못 보셨어요?”
“네. 현진 님이랑 청령 님이 꽁꽁 감춰서 못 봤어요.”
“그럼 저희도 알려드릴 수 없죠.”
“치사해.”
“두 분이 정한 건데 감수해야죠.”
둘이 각자 도월과 해선, 청령과 현진, 문강에게 혼례가 시작되기 전에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모르고 보는 게 더 감격스럽다나 뭐라나.
“그럼 도월 님도 치장합시다.”
“제가 왜요?”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주인공 친구가 예쁘게 꾸미면 좋으니까요..”
“시간이 많이 남았다니요. 이제 곧 시작입니다.”
도월은 시계를 가리키며 지금 이 상황을 빠져나갔다.
“그럼 저는 준비 잘 됐는지 보러 가보겠습니다.”
— — — — — —
해선 쪽이 가볍게 긴장을 풀고 있는 동안, 방울이 있는 쪽은 아직도 긴장한 상태였다. 전날까지도 긴장한 상태였다.
“청심환이라도 갖다 드려요?”
“이미 먹었어요.”
“그럼 잠시 나갔다 옵시다.”
“안 돼. 아까도 나갔는데, 소윤 님 몰래 만나러 가려고 했어.”
괜찮다는 말과 다르게 손으로 무릎을 쓸고, 다리를 계속 떠는 방울에 청령과 현진이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했다. 주제를 돌리며 이야기를 계속했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저는 나가서 준비 잘 됐나 보러 가볼게요.”
청령도 나와서 오늘 부부가 될 둘을 위해 오늘을 장식을 해줄 구조물들을 확인했다.
각자 빛을 내며 조화를 이루는 장식들.
새로운 가족을 만들 둘을 축하할 길.
가족이 될 둘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선관들.
“아, 괜찮...”
“죄송합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오다가 부딪힌 둘.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네. 그럭저럭.”
그날 그렇게 스쳐지나간 이후로 이렇게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전에는 쉽게 대화를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이어갔지만 지금은 그렇게 쉬웠던 게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네?”
“아주 잠깐만..”
“저희가 지금 여유롭게 얘기할 시간이 없잖아요. 나중에요.”
“곧 있으면 옥황님 오십니다.”
옥황이 온다는 것은 이제 곧 혼례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선관과 선관이 혼인을 할 때, 옥황이 자리에 참석해 축복을 해주고 자리를 떠난다. 그 후에 오늘의 주인공과 선관들은 3일 동안 축제를 즐기지.
— — — — — —
정겨운 소리와 함께 소윤과 방울이 나란히 걸어갔다. 모든 선관이 저 둘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진짜 예쁘다.”
“두 분이서 잘 살 것 같네.”
소윤과 방울은 화려한 장신구가 달린 예복을 입고, 곱게 치장한 얼굴을 붉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나가는 둘을 보다가 청령과 도월은 눈이 마주쳤지만 도월이 먼저 시선을 피해 금방 스쳐 지나갔다.
“진짜 평생을 약속했네.”
“그러게. 부럽다.”
“이제 말씀 끝났네요.”
“여전히 말씀이 길죠? 저는 중앙 끝에서 망자들을 보고 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다른 선관이 도월과 해선에게 다른 선관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혼례가 끝난 지금부터 잔치 시작이니 다들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 말을 할 기회가 없는 선관들과도 말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잔치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그런데 도월 씨는 꽤 수수하게 입었네. 평소랑 다를 게 없다.”
“그러니까. 이런 날 새색시 기죽지 않게 평소보다 조금은 꾸며주지 않나?”
“우리 도월 후배가 꾸몄으면 내가 반했을 것 같은데. 지금이 안 예쁘다는 건 아니고.”
엮여도 이런 자들과 엮어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을 듣고 있었다. 해선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렇게 질이 좋지 않은 다른 선관들이 도월에게 다가왔다.
“주인공이 빛나야 하는 자리에 화려하게 꾸미는 것도 예의가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 보고 예의 밥 말아 먹었다고 하는 거야?”
“일부러 순화해서 말했는데, 제대로 이해하셨네요.”
“말을 더 순화할 필요가 있겠어.”
“선관님은 올을 보다 더 단정히 입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게 예뻐해 주니까 주제도 모르고,”
“그만해.”
도월의 뒤에서 손이 튀어나와 주먹을 쥔 선관을 막았다.
“우리 친구들 여기 있었네.”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야?”
“미안, 미안~ 그보다 내가 좋은 상황에 온 건 아닌 것 같네.”
중간에 오다가 현진과 청령이 서로를 놓쳐 찢어졌다가 이들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만났다. 청령의 손과 도월의 얼굴을,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저들을 보고 현진은 입에만 미소를 그렸다.
“여기서 더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여기 있는 모두가 옥황님과 보좌관의 입과 눈이고 귀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너희들 운 좋은 줄 알아!”
저들은 상황이 불리한 사람이 하는 흔하디흔한 말을 내뱉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한참 찾았네. 현진 님이랑 청령 님도 계셨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잠깐 시비가 붙었는데, 잘 끝났어요.”
“다행이다. 그럼 도월이 데려갈게요!”
“자, 잠깐만!”
“그럼 청령, 우리도 저쪽으로 가볼까?”
“어?”
청령과 도월은 둘의 손에 이끌려 반대편으로 끌려갔다.
— — — — — —
“이, 이게 다 뭐예요?”
“뭐긴~ 너 꾸며주려고 준비한 것들이지.”
“그니까.. 왜죠?”
“좋은 날, 같이 꾸미면 기분 좋잖아요. 잔치도 3일이나 하는데 치장하면 더 좋을 거 아니에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사양하지 마시고~”
“오늘 혼인하신 분이 낭군이랑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괜찮답니다. 자, 이제 그만 뒷걸음치시고 앉으시죠.”
소윤은 뒷걸음질 치는 도월을 잡아서 단장대 앞에 앉혔다.
도월 꾸미기가 시작되었다.
— — — — — —
“방울 님,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요. 오늘 혼인하신 분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이미 얘기 끝내고 왔거든요.”
“네? 뭐를요?”
“청령, 너만 모르는 게 있어. 우리 문강이는 청이 움직이지 않게 잘 잡고 있어~”
“단단히 잡고 있겠습니다.”
“이, 이거 놔!”
“그렇게 움직이면 힘들어요-”
이쪽도 도월 못지않게 꾸밈을 당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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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그동안 왜 안 꾸미고 다녔어? 아니다. 치장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안 꾸며도 예쁜데, 꾸미니까 너무 예뻐서 가만히 안 두겠네.”
“이제 놔주면 안 될까요..?”
“바로 안 지운다고 약속하면요.”
“집 가기 전까지 이대로 있을게요.”
“좋아요. 치장 당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소윤은 도월을 내보냈다.
“소윤 님, 둘만 있게 해도 문제없겠죠?”
“그럼요. 오늘은 둘이 싸울 분위기 아니에요. 그럼 저희는 같이 고생한 남자들 만나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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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월은 반올림으로 치장한 머리를 고정하고 있는 비녀를 만지작거리며 숨을 내뱉었다. 일단 꾸며준 정성을 생각해 일단 돌아다니는데 딱히 재미는 느끼지 못했다. 혼자 다녀서도 있지만, 아까 청령이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에 머리에 맴돌아 신경이 다른 곳으로 갔다.
“달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앞을 보니 자신처럼 치장을 당한 청령이 있었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왜 현진과 해선이 자신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갔고, 필사적으로 꾸며주려고 했는지. 아직 감정을 풀지 못한 청령과 본인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걸.
“선배도 가서 치장 당했나 봐요.”
비녀와 비슷한 장신구를 단 그의 모습에 저들이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여기서 계속 있을 거예요? 얘기할 거 있으면 조용한 곳에 가는 게 좋을 텐데.”
“그럼 쉼터로 가자.”
도월은 그의 옆에 나란히 섰고, 청령은 길 안내를 했다. 그리고 그런 둘을 멀리서 넷이 흐뭇하게 지켜봤다.
“방울, 저 둘이 잘 풀릴 것 같죠?”
“할 말도 많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이제 얼굴 비추러 가요.”
소윤과 방울은 다정히 팔짱을 끼고 잔치 분위기가 한껏 오른 곳에 들어갔고, 문강은 표정이 좋지 않은 해선에 옆에 남아있었다.
“왜 똥 씹은 얼굴이야.”
“뭔 똥을 씹어.”
“그럼 왜 계속 그런 얼굴인데?”
“뭔가 이번에도 제대로 풀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말에 뭐라고 핀잔을 줄 수 없었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해선과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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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들 쉼터. 중앙과 그렇게 멀지도 않으면서 엄청 가깝지도 않고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곳.
“저기.”
“선배.”
서로 짠 듯이 동시에 말했다.
“먼저 말해.”
청령의 양보에 도월이 먼저 말을 했다. 그의 얼굴은 잠시 놀라다가, 이내 곧 어두워졌다.
“그 낙인을 지울 방법은?”
“없다는 거 알잖아요.”
“네가 그 저승의 주인이 안 되는 방법은?”
“소멸 말고 있을까요.”
“너는 싫지 않아? 네가 갑자기 그렇게 됐다는 걸 믿을 수 있어?”
“받아들였어요. 어느 저승이나 주인이 필요하고, 주인의 보살핌이 필요하니까요.”
청령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에 반해 도월의 표정은 담담했다.
“선배가 하려던 말은 뭐예요?”
“그 낙인 지울 방법을 찾았다고.”
다들 방법이 없다고 외칠 때, 청령은 백방으로 낙인을 지울 방법을 찾아다녔다. 옥황에게도 자연스럽게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하다가 환생길에서 만난 비사에게 들었다.
“그 비사가 누군데요?”
“영원이라는 비사였는데.”
확실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의 입에서든 유일하게 찾은 방법이고, 소용이 없어도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다.
“비사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무기 입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옥황이나 염라가 얘기한 것도 아닌 걸 믿어요?”
“너는 보름마다 만나는 비사를 못 믿어?”
“못 믿는 게 아니라 정보를 못 믿는 거예요.”
“그게 그 말이잖아.”
“어떻게 같은 말이에요.”
이러려고 한 것이 아닌데 둘은 다시 날이 선 말을 했다.
“그럼 너, 옥황님한테 어떻게 말할 건데?”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말하기 전에 낙인을 없애면 복잡한 일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데, 왜 어렵게 가려고 그래.”
“...오늘은 저희가 얘기할 날이 아닌 것 같네요. 가볼게요.”
이제는 서로 나아졌을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대화에 도월은 먼저 등을 돌렸다.
— — — — — —
먼저 집으로 돌아간 도월은 비녀를 빼고, 머리를 높게 하나로 질끈 묶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모두가 축제를 즐길 때, 혼자 일과를 보냈다.
“왜 여기 혼자 있어?”
돌아다녀도 도월이 보이지 않아 문강이 입구까지 왔다.
“그냥. 그런 분위기는 나랑 안 맞아서. 너는 왜 왔는데? 축제 좋아하잖아.”
“너 없으니까 재미없어서.”
“거짓말이라도 좋네.”
“진짜로.”
진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도월은 자신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풀어주기 위해 한 말인 줄 알았다.
“청령 님이랑 왜 싸운 거야?”
도월은 그 물음에 망설였다. 문강에게도 말을 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축령들 저승 주인이 됐거든...”
“어?”
그동안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문강도 당장 받아들이지 못했다.
“늦게 말해서 미안해···”
“좀 혼란스럽네.”
도월도, 문강도 할 말은 없었다. 문강은 말을 하지 않은 도월이 이해가 되면서, 도월의 상황을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 먼저 일어날 게.”
“조심해서 가.”
그렇게 도월은 다시 혼자 남았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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