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 (3)

사방에서 무너지고,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망자와 선관의 고통에 젖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안에서 도월도 상황들을 수습하기 위해 움직였다.
‘봤다.’
비도로 청령의 시선을 끄는 것을 성공한 도월은 그가 먼저 또 손을 쓰기 전에 탑의 심장과 곳곳에 모여 있는 망자들에게 단단한 방어막을 세웠다.
“방패 받아!”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치는 선관들에게도 방패를 전한 도월은 사슬을 끊을 단도를 들고 청령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그렇게 가면..”
청령과 부딪힌 선관들은 무작정 움직이는 도월을 말렸지만 한발 늦었다. 그와 부딪히자마자 번개가 번쩍이며 큰 파동을 일으켰다. 그 파동에 도월은 뒤로 밀려나며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지금 청령한테 닿을 수가 없어.”
“안 보이는 사슬이 하나 더 있어요.”
“어디에 있는데?”
“눈 안에.”
염라의 힘뿐만이 아니라 능력을 일부 빌린 태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사슬을 하나 더 걸어놨다. 그곳은 눈이었다. 평범한 선관인 문강과 현진이 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둘은 제 주변에 아무것도 오지 않게 해줘요.”
그 말을 끝으로 도월은 자리를 잡고 진법을 펼쳤다. 그리고 부적을 날리며 청령의 움직임을 묶을 경을 외웠다.
“현진 님! 문강!”
저 멀리서 상황을 어느 정도 수습한 해선이 오고 있었다. 현재 이곳이 제일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하려 했지만, 능숙하게 검을 다루는 솜씨에 말을 삼켰다.
“달이한테 아무것도 닿지 않게 해야 하는 거 맞죠?”
“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도망쳐라.”
“위험하면 언제든지 안전한 곳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셋은 서로에게 등을 맡기며 각자 여러 요귀와 비사들을 상대했다.
해선의 하얀 검기와 문강의 송곳은 물줄기, 그리고 현진의 묵직한 방패가 공격을 막으며 역으로 공격을 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며 도월을 지키고 있었다.
주변이 요란스럽고 땅에 진동이 울리며 상황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도월은 흐트러짐 없이 경을 계속 외우고 있었다.
‘왜 저기서 별무리가.’
쾅!
“옥황, 그대가 지금 한눈팔 여유가 되는가?”
하늘로 오르는 별무리에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 염라는 도끼로 내리쳤다. 창으로 막았지만 자세가 불안정했다. 근처에서 천국의 이무기와 지옥의 이무기까지 날뛰어 땅까지 울리고 있었다. 자세는 더 불안정해졌다.
‘다들 조금만 더 버텨줘.’
경을 외우니 진법에서 별무리가 나오며 부적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아직 청령의 움직임을 묶기엔 부족했다. 월성력이 담긴 더 많은 별무리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 거야!”
도월의 주변을 엄호하는 선관들은 빠르게 지쳐갔다. 진법과 별무리를 본 요귀들이 몰려 들었고, 태영까지 합세하여 최악의 경우가 만들어졌다. 염라가 그에게 빌려준 힘을 회수하지 않아 선관들이 그를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지.
“고작 그걸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끄아아아아!”
태영의 손에 닿은 선관은 썩어들어갔고, 그 모습에 다른 선관들까지 뒤로 주춤했다. 태영은 선관들의 사이를 뚫고 도월에게 닿으려 했다. 진법이 무너지고 경이 끊기면 안 되기에 문강과 현진은 각각 무기를 들고 막아섰다.
“저리 꺼져!”
쾅!
흑기와 백기가 부딪히면 회색빛의 흙먼지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흑색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먼지가 가라앉고, 앞이 보이니 해선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영원 님!”
“늦어서 미안해요.”
이들의 앞에 영원과 진운이 있었다. 진운은 방어 부적으로 공격을 막았고, 영원은 검의 끝으로 태영의 공격을 받아쳤다.
“뭐 하는 거예요!”
생각지 못한 변수에 당황은 태영은 크게 흔들렸다.
“쓸데없는 짓은 그만둬라.”
“지금 네놈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을 봐.”
천국은 지옥과 뒤엉켜 제 모습을 잃었다. 천국이 지옥인지, 지옥이 천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 중심엔 염라와 태영이 있었고, 그 둘로 인해 희생자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눈이 돌아간 태영은 주변에 떨어진 단도를 양손에 쥐었고, 진운은 창을 들었다.
“너는 다른 비사들이 도월 님 공격하는 거 막아.”
“네.”
진운은 방어 부적을 쥐여주며 태영과 부딪혔고, 영원은 진법에 영향이 가지 않을 위치에 부적을 붙였다. 비사의 웬만한 공격은 막아줄 것이다. 염라가 이곳을 시선을 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됐다!’
“뭐야! 악!”
도월의 진법에서 강한 빛이 나오며 주변을 잠시 어둡게 만들었다.
진법은 별무리와 하나가 되어 속박과 흡수 주법이 걸린 사슬이 되었다. 사슬로 움직임을 묶으니 그가 뿜어내는 기운이 사슬로 모였다.
–’이제 진압에 들어갔군.’
천국으로 넘어온 이무기도 도월의 기세를 받아 흥분한 두 이무기를 잠재우기 위해 하늘로 올랐다.
–둘 다 그만하거라.
–주인도, 이름도 없는 이무기가 감히 명령을 하는 것이냐?
–가소롭구나.
주인 없는 저승의 홀로 사는 이무기. 이름 없는 이무기. 이렇게 불리며 무시를 당했었지. 그동안의 설움을 갚아줄 시간이 왔다.
–천무, 옥무. 더 이상의 희생을 만들지 말고, 무의미한 싸움은 그만두어라.
–꼴이 우습군. 만신창이인 상태에서 우리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냐?
–네놈부터 죽어라.
둘은 한 이무기를 향해 공격을 했지만 눈앞에서 사라져 있었다.
–어디로 간 것이냐!
–비겁하게 숨지 마라!
–’위.’
갑자기 들려온 전음에 동시에 위를 쳐다보니 인간 형상으로 있는 이무기가 있었다. 저 상태로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 두 이무기는 승리를 확신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그의 양손에 들린 검을 보고 기겁을 했다.
–피해! 저 녀석 월성검을 들고 있어!
이무기가 도월의 월성검을 갖고 있는 데에는 둘만 아는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
— — — — — —
전쟁이 일어나기 며칠 전, 도월은 이무기에게 물었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면 이무기들은 뭐해?”
–”우리도 싸우지.”
“같은 이무기인데도?”
–이무기들은 제 주인의 영향을 받아. 그래서 주인끼리 사이가 안 좋으면 이무기끼리도 사이가 좋을 수 없어.
도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 이름도, 주인도 없는 저승에 머무르는 이무기는 같은 종족을 취급하지도 않지. 그래서 난 그 녀석들이랑 친하지 않아.”
천국과 지옥의 이무기인 천무과 옥무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다. 잘 만나지 않지만, 한 번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싸우지. 옥황과 염라의 관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천무과 옥무는 서로 뜻이 맞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죽이 맞을 때가 있었다. 바로 이무기를 만났을 때. 이름도, 주인도 없는 이무기를 무시하기 일쑤였지.
–”처음엔 열받고 설움도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내가 지금 이름 지어줘도 되나?”
–”그대가 이곳으로 온 뒤에 정해도 상관없다.”
“어허. 가만히 기다리거라. 이름을 지어준다지 않나.”
자신의 말투를 흉내 내며 근엄하게 얘기하는 도월에 턱을 괴고 고민하는 얼굴을 바라봤다.
도월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느껴졌던 것을 떠올려봤다. 그러니 이름이 금방 떠올랐다.
“아랑구.”
–”아랑구?”
“응. 예쁠 아, 밝을 랑, 함께 구.”
–”좋은 이름이군.”
“네 이름은 여기서 따서 ‘아랑’. 어때?”
–”나는 다 좋다.”
이 저승의 이름은 물론, 더불어 자신의 이름까지 지어줬다. 이무기는 이름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저 이름이 생기고, 주인이 생긴 것에 그동안의 설움을 없앨 수 있어 그저 좋았다.
이름이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났다. 도월은 이동술을 펼치기 전, 이무기에게 자신의 월성검을 아랑에게 넘겼다.
–”이걸 나에게 주고 가면 그대는 어쩌려고?”
“나는 월성검이 아니어도 싸우는데 문제가 없거든.”
그러고 도월은 단검과 여러 비도를 보여줬다.
–”그럼 이것을 하고 가라. 그대와 내가 이어져 있어 한 능력을 같이 쓸 수 있다.”
아랑은 도월과 자신의 기운이 섞인 구슬을 만들어 목걸이로 만들었다. 둘은 그 목걸이를 옷 속에 감추며 보이지 않게 했다.
그렇게 해서 아랑은 월성검을 챙겼고, 목걸이로 서로의 능력을 극대화해줬다.
— — — — — —
도월과 이어져 있는 지금, 아랑은 도월과 같은 시점에 저들의 움직임을 묶을 진법을 펼쳤다. 그리고 가시 줄기로 둘의 머리가 가까워 지도로 한데 묶었고, 그 위로 월성검을 꽂았다.
–키에에에엑!
이마에 박힌 보석에 크게 금이 간 이무기들은 괴성을 내며 쓰러졌다. 이무기들이 쓰러진 것에 당황한 두 수장은 놀란 것도 잠시, 저 앞에서 큰 빛이 일어난 곳으로 시선이 몰렸다.
빛도 없이 황폐해진 이곳에 빛 한줄기 올라와 시선을 이끌었다. 잠시 이곳에 정신을 빼앗겼다가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며 난투가 시작됐다.
‘제발.. 좀!’
도월은 청령을 바닥에 눕히고, 본인은 위에서 그의 눈 안을 살폈다. 정신을 지배하는 사슬을 찾았고, 닿으려 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모든 경을 외우며 사슬을 꺼내려 했지만 사슬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다른 방법은 태영에게서 염라의 기운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현진 님, 선배 잘 보고 있어요.”
그러고 도월은 다른 사슬을 하나를 팔에 감고, 태영을 향해 갔다. 주변에서 공격이 날아왔지만, 비사와 요귀에게 가볍게 공격을 돌려주며 나아갔다. 울타리 안에 있는 이가 비사의 꾀에 넘어간 것이 화가 났지만, 썩은 동아줄을 잡게 만든 비사에게도 울화가 치밀었다.
도월의 걸음걸음에 그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달님~ 날 위해서 와준 거야?”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고르던 태영은 밝은 얼굴로 도월을 올려다봤다.
“응. 당신 보러 왔어.”
“도월 님!”
“도월아!”
도월의 말에 놀란 해선과 영원.
그들과 다르게 차분한 도월. 그리고 볼을 붉히며 미소를 짓는 태영. 도월은 그런 태영의 턱을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니 태영의 얼굴을 더욱 붉어졌고, 도월의 표정은 더욱 차분해졌다.
“지금 기분이 어때?”
“너무 좋은데. 드디어 내 달님이 나한테 관심을 주잖아.”
“좋아?”
“응. 너무. 내가 바라던 순간이야.”
“그럼 손도 잡을래?”
“진짜?”
“응. 진짜.”
태영은 도월이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뭐, 뭐야!”
“뭐긴. 네 것이 아닌 건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소매에 가려져 있던 사슬이 도월의 팔을 타고 내려와 태영의 팔을 감았다. 당황한 태영은 벗어나려 했지만 자신을 옭아맨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거 당장 풀어. 풀지 못해?”
태영은 능력을 쓰지 않았음에도 몸에서 염라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감히 마음을 갖고 놀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했으면서 누굴 탓해.”
염라의 기를 모두 흡수한 사슬을 도월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월은 월성력으로 푸른 불과 함께 사슬을 태웠고, 청령의 몸부림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변수가 생겼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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