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4)

태영에게서 염라의 기운과 함께 능력을 회수하는 것까지는 순조로웠다. 청령의 움직임까지 얌전해진 것을 보고 급한 불은 끈 것 같았지. 하지만 진짜 일은 이후에 일어났다.
청령이 다시 움직였다. 아까보다 더 빠르게. 목표를 정하고.
도월은 검을 들고 달려든 청령을 방패로 막으며 밀쳐냈다. 태영은 뒤에서 도월의 빈틈을 노리려 했지만 영원에 의해 막혔고, 자신의 선배들이 이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도대체 왜 나를 막는 건데요! 형은 비사잖아요!”
“비사라고 해도 옳고 그름은 판단해서 움직여야지. 너처럼 무지성으로 감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비사와 선관의 싸움 사이에 선관과 선관의 싸움, 비사와 비사의 싸움으로 번졌다.
“제발.. 정신차리라고!”
도월은 일정함 없이 변칙적으로 공격하는 청령을 즉각 즉각 받아치고 있었다. 같은 선관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고, 제 선배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도월은 공격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방어뿐이었지.
검붉은 검기와 푸른 검기가 부딪히며 공방전을 이어갈 때, 청령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 해보는 거야.’
도월은 이번에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파고 들어오는 공격에 부상을 입더라도 청령을 되돌려 놓는 것이 먼저였다.
“윽!”
검이 옆구리를 스쳐 굵은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도월은 멈추지 않고 청령을 바닥에 다시 눕혔다. 그리고 아까와 다른 진법을 펼쳤다. 청령과 눈을 마주하고, 경을 외우며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했다.
“일, 망치지 말란 말이야!”
“내 후배,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마.”
현진이 방패를 들고, 도월의 뒤를 치려는 태영을 막았다. 앞전의 공방전으로 이미 지쳐있었지만 친구를 구하려는 도월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해선도 몸을 사리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
문강은 그의 방어에 맞춰 뒤에 몸을 낮추고 있다가 굵고 날카로운 물줄기를 만들며 태영과 거리가 벌어지게 했다. 물줄기를 우습게 봤다가 살갗이 찢어진 것을 느낀 태영은 급히 몸을 피했다.
저들이 치열하게 다시 싸우는 동안, 도월은 청령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갔다.
— — — — —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두운 내면. 그리고 무릎까지 차올라 있는 물.
도월은 월구를 띄워 앞을 밝혔다. 주변에 당장 보이는 것은 없었고, 청령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별무리를 만들어 공중에 띄웠고, 저 멀리서 사슬에 묶인 채로 매달린 청령이 보였다.
“선배...”
물길을 걸으며 그에게로 한 발짝씩 다가갔다. 도월의 움직임과 찰박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배.”
청령에게 다다른 도월은 그의 얼굴을 살살 어루만졌다.
“눈 떠요, 선배.”
단호하지만 낮고 다정한 음성이 청령에게 닿았다.
“정신이 들어요?”
도월의 목소리에 바로 반응을 했고, 감겨 있던 눈은 천천히 떠졌다.
도월과 청령이 다시 마주했다.
“지금 천국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일어나자마자 싸워야 할 수 있어요.”
“싸우기 싫어..”
“네?”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 그런 건 다시 보기 싫어...”
“...”
“달님도.. 현진이도.. 다치고, 죽을 위기에 처하는 건 그만 보고 싶어..”
“선배..”
“달이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전쟁이 일어나고, 내면에 들어오고 나서야 차분히 그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겉은 다 큰 어른이지만 내면은 아직 두려운 것이 많은 어린아이였다.
“헤어지는 게 아니에요. 사는 곳만 달라질 뿐이에요.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어요.”
“같이.. 지내고 싶어...”
“...”
“둘 사이에서 많이 힘들 텐데.. 힘들다고 얘기도 하지 않는 애라 혼자 속앓이 할 거야.. 내가 옆에 있어줘야 돼···”
어린아이 같은 내면에 도월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도월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진심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왜 거부하지 않은 걸까?”
“어느 저승이나 주인이 필요하고, 그 주인의 보살핌이 필요해요. 그래서 결심한 거라고 해요. 당신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래요.”
“그럼.. 왜 늦게 얘기한 거야?”
“겁이 났데요. 말했을 때, 혹시 먼저 알았는데 입을 닫고 있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당신들을 향한 걱정부터 앞섰데요.”
“싫어진 게 아니구나..”
“마음이랑 말이 다르게 나가서 미안하데요.”
“나도 미안해...”
“그럼 이제 일어나요.”
“응...”
그 순간 청령을 옭아매고 있던 사슬이 빛과 함께 나지막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었다. 스르륵 내려오는 청령을 받으니 주변이 환해지며 무릎까지 차올라있던 물도 사라졌다.
— — — — — —
진법이 사라지며 도월이 먼저 눈을 떴고, 여파가 남아있던 청령은 아직 눈을 뜨지 못했다. 도월은 그런 청령을 한 쪽에 조심스럽게 옮겨 놓고 이를 갈며 뒤를 돌았다.
싸늘한 표정으로 있는 도월은 한 마리의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 아직 아무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움츠러들고 손발이 떨렸다.
–’도월, 지금 염라와 옥황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두 번의 빛을 본 염라가 일이 틀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움직였다. 옥황이 막아본다고 막았지만 부상을 팔과 다리에 크게 입어 움직이기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어디에 한 눈 파는 거야!”
아랑의 전음을 듣는 사이 태영이 검을 들고 움직였다. 도월을 청령을 깨울 동안 진법이 깨지지 않게 엄호를 하던 저들은 이미 지쳐있어 지금부터 도월이 혼자 상대해야 했다.
도월도 검을 들며 근접전을 하다가 비도를 날리며 거리를 벌리는 것을 반복했다.
‘진운 님, 영원 님. 대답하지 말고 들으세요. 염라가 오고 있다고 합니다.’
‘네?’
‘일단 들어요. 두 분은 지금처럼 천국 편을 들면 안 됩니다.’
‘그럼 염라님을 어떻게 막아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한 번에 숲으로 보낼 거예요.’
‘잠시만요, 도월 님!’
태영과 공격을 주고받으면서도 도월은 전음으로 저들에게 통보하듯이 상황을 전달했다. 그리고 영원과 진운은 물론, 지쳐 쓰러지려는 저들도 함께 숲으로 보냈다.
도월은 땅에 박힌 비도들을 이용해 속박 진법을 만들었다. 태영이 받아친 비도를 다시 다른 방향으로 받아치면서 일부러 땅에 박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도 박힌 자리에 속박 부적을 소환하여 진법이 극대화 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그만 날뛰고 얌전히 있거라.”
쾅!
“드디어 오셨군.”
묵직한 소리와 함께 염라와 옥황이 왔다.
“꽤 험난하게 난투를 벌였구나.”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태영 비사와는 어떤 거래를 한 거지?”
“이유는 없고, 그저 네놈이 나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게 싫거든. 그래서 저 아이와 거래를 했지!”
쿵!
염라는 도끼를 내려쳤고, 도월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 — — — — —
도월의 낙인을 보고 염라와 만남을 가졌던 태영. 그에게 옥황이 먼저 조건을 제시하며 거래를 제안했다.
“온갖 수단을 이용해 도월이 수장이 되는 것을 막아라.”
“그럼 제가 얻는 건 뭡니까?”
“한 마리의 공작새처럼 네 옆에 있게 만들어주마.”
그의 제안에 태영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어떤 수단이는 상관없습니까?”
“온갖 수단을 써라.”
“그게 전쟁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그럼 당신 능력 좀 빌려주십시오.”
“그러지.”
염라는 그가 원하는 대로 능력을 일부 빌려줬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믿고 일을 벌이죠?”
“뭐야?”
“저한테 너무 불리한 거래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런 곳에서 머리가 잘 돌아갔다.
“일이 틀어졌을 때, 염라님만 발을 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일개 비사에 불과한 저한테 불리한 부분이 너무 많죠.”
“어떻게 하길 원하는가?”
“감시구로 증거 만들어 놓죠. 그리고 그건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만약의 상황에 빠져나갈 구멍까지 없어진 염라는 심기가 불편한지 콧김을 거칠게 내쉬었다.
“서로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거래를 만들어야죠.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을 하는 그에 염라는 못 이긴다는 듯 감시구를 꺼내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정리하며 말했다.
“만족하느냐.”
“좋습니다~ 먼저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
‘왜 도월 님이 밀리지?’
염라에게 밀릴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 진운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이 의문은 곧 사라지고, 영원과 진운이 급히 움직이게 만들었다.
“저거 도월이 검이 아니에요.”
“네?”
수장 외에 모든 것과 부딪힐 때에는 자기 것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수장과 붙을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나에게 전용 무기가 있듯, 저쪽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 평범한 무기를 들었을 때,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밀리는 것이 당연했다.
“세 분은 여기서 그 선관님 보고 있으세요.”
쿠궁!
도월의 턱 끝에 땀 방울이 고이다 못해 계속 떨어졌고, 상처는 더 커져있었다. 쓸모를 다한 검은 바닥에 부서진 채로 떨어져 있었고, 방어진으로 막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을 듯했다.
“염라님!”
“여기서 더 희생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진법이 깨지기 전에 알맞게 도착한 진운과 영원. 염라를 저지하며 잠시나마 도월이 회복할 시간을 벌어보려 했다.
“지금 지옥을 등지고, 나에게 반발을 하는 건가?”
“아닙니다. 지금 저희 쪽에도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르고 있습니다.”
“감정을 가라앉히시고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닥치거라! 지금 비키지 않는다면 네놈들을 반역죄로 처분하겠다.”
염라에게 이성적인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처분을 내린다면 소멸을 당할 수 있어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염라의 아래 비사라는 신분으로 묶인 것이 큰 걸림돌이 되었다.
“비키거라.”
“...”
“...”
“어서!”
호통과 동시에 둘의 뒤에 가려져 있던 도월이 날아올라 위에서 염라를 내리쳤다. 진운과 영원이 앞에서 막고 있는 동안 창에 주법을 걸어 월성력을 담았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 염라는 제대로 방어를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흑기와 푸른기가 다시 부딪히기 시작하는 동안 현진이 있는 쪽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청령, 정신이 들어?”
“어.. 내가 왜 여기에 있어?”
청령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정신없는 와중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청령은 들려오는 큰 소리에 놀라며 당황했다.
“일어나지 마시고, 나무에 기대세요. 혹시 모르니까 갑자기 움직이면 안 돼요.”
해선은 청령의 몸에 다른 이상은 없나, 혹시 남아있는 문제는 없는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청령은 현지에게 상황을 물었다. 지배를 당한 동안 기억이 없는 그에게 현진은 간단히 설명을 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났어. 지금 도월이 염라님이랑 싸우고 있고, 옥황님은 부상 때문에 오는 게 늦어질 것 같아.”
“그럼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가봤자 소용없어. 신들의 싸움에 한낱 선관과 비사가 끼어들면 끝이야.”
“그럼 달이는. 걔도 아직 선관이야! 시간이 무의미하다지만 아직 선관이라고.”
청령은 잠시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났다. 지금 도월에 대한 걱정 밖에 안 됐다. 이무기가 시간을 일부러 시간을 늦췄을 정도로 남은 시간이 무의미하지만, 아직 신분은 선관이다. 그렇기에 신들과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은 도월에게 분리한 점이 너무 많았다. 청령을 그 불리한 것을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깡!
쾅!
검과 도끼가 부딪히며 나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말릴새도 없이 청령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갔다.
한참 도월이 염라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다시 부딪히고 있을 때.
“달아!”
“여기 오지 마! 떨어져!”
“가엾게 됐구나, 아이야.”
새로운 변수가 생겨 생기고 말았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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