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실수, 후회 (1)

한바탕의 거센 폭풍우가 지나고, 천국은 한동안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도월 덕분에 탑의 심장은 무사할 수 있어 빠른 속도로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옥황님, 탑을 부순 청령 님한테 어떤 처벌을 내리실 겁니까?”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청령을 제외하고, 각 구역의 선관들이 한 명씩 대표로 와서 청령의 처벌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도월도 있었고, 방울과 소윤도 있었다.
“하지만 청령 선관님은 사술에 걸려 조종 당했을 뿐입니다.”
“그건 그거고, 탑을 위협한 거는 별개로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탑의 심장은 망가지면 다시 복구할 수 없을뿐더러, 없어지면 천국은 제 기능을 잃게 된다. 그럼 망자들은 환생도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죽은 저승에 평생 갇히게 되지. 그만큼 심장이 있는 탑은 중요한 구조물이다. 그래서 선관들은 가벼이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도월 선관님도 말해보시죠. 입 꾹 닫고 있지 말고, 평소처럼 입 좀 털어보라고.”
이제 화살은 도월에게로 넘어갔다.
“당신이 이 일 마무리 지었잖아. 그럼 책임도 져야 하는 거 아닌가?”
“도월 님이 이번 일을 마무리 지은 건 맞지만 책임까지 져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일을 마무리 짓는데 공을 들인 모든 선관들이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거기 둘은 빠지고, 도월 선관님이 말해보라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도월이 입을 열었다.
“이 전쟁, 제가 일으켰습니까?”
“뭐야?”
“귀가 막히셨나. 이 전쟁을 내가 일으켰냐니까?”
도월의 말에 제일 당황한 것은 다른 선관들이 아닌, 소윤과 방울, 옥황, 그리고 보좌관이었다. 모두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저 태도를 어찌해야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말이면 단 줄 아나. 야! 네가 지옥 담당이니까 책임도 져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지옥 담당인 거랑 전쟁이란 무슨 상관이데. 내가 거기 신경을 긁기라고 했어, 먼저 치기라도 했어. 그쪽에서 멋대로 먼저 움직인 거 아니야.”
“저 뻔뻔한 것 같으니.”
“알고 보면 사술을 걸은 것도 너 아니야?”
“선을 너무 넘는 거 아닙니까!”
듣다 못한 소윤이 일어나 도월 대신 소리쳤다. 그제서야 성나있던 선관들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울은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도월 선관님의 잘못도, 그렇다고 완전히 청령 선관님의 잘못이 아니란 건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알 겁니다. 저 역시도 잘 알고 있고요.”
“....”
“탑을 건든 것은 잘못이 맞지만, 지배를 받은 점을 감안해서 무겁지 않은 쪽으로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잠깐만요. 다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판도를 다시 기울이려고 할 때, 한 선관이 말을 가로채며 방울의 말을 막았다.
“저는 방울 님이 왜 도월 님을 편을 드는 것 같죠?”
선관들은 그 말에 동조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판도를 기울여 보기도 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편을 들다니요.”
“그렇잖아요. 도월 선관님을 끌어들이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도월 선관님이 불리해지니까 갑자기 말을 하는 게.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러게 말이야. 방울, 자네는 지금부터 말을 잘 해야 할 거야.”
“제가 언제 누구 편을 드는 걸 본 적 있습니까? 저는 제 부인 아니면 편을 드는 선관이 아닙니다.”
“소윤 선관님이 소리치니까 같이 감싸는 거라고도 해석할 수 있죠.”
“미친 새끼들 같으니.”
“지금 뭐라고 했어요?”
다시 도월에게 시선이 모였다.
“여기는 욕도 두 번 먹는 게 취미인가 봐. 다시 말해줘? 미친 새끼들이라고.”
“야!”
“호칭 똑바로 해. 여기 ‘야’가 어디 있어.”
도월은 한 쪽을 신나게 몰아가던 선관들의 입이 닫히게 만들었다.
“옳다구나, 누구 하나 죽여 보자로 가고 싶은가 본데, 죄 없는 선관을 몰아가면 안 되지.”
“죄가 없긴 뭐가 없어!”
“그럼 작은 것까지 다 따져볼까요? 당신은 주변 동료를 지키지 못한 죄, 당신은 옥황의 옥체가 망가질 때까지 나서지 않은 죄, 당신은 탑을 지키지 못한 죄, 당신은 망자들 버리고 도망친 죄.”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며 죄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은 다 입 밖으로 뱉었다. 물론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소윤과 방울의 억지 죄도 만들어 입에 올렸다.
“이야~ 우리 다 처벌을 받아야겠네요. 이렇게 죄가 많아서야 선관으로 어떻게 있겠어요. 안 그래요?”
방울의 말에 딴지를 걸며 말을 끊은 선관을 보며 말했다. 그 선관은 도월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고, 이곳에 모든 선관들은 도월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살기에 눌린 것도 있지만, 한 마디만 더 했다가는 목이 날아갈 것 같았거든.
“다들 그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구나. 이번 회의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다들 물러가거라.”
보다 못한 옥황이 나서며 이 상황은 중재 되었고, 회의는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 — — — — —
선관들은 나가고, 도월만 남아 옥황과 얘기를 했다.
“그대는 억울하지도 않은가?”
“예. 저에게도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선관들은 더 들고 일어날 겁니다.”
“옥황님, 청령 님이 뵙기를 청합니다.”
옥황은 청령과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하여 눈치를 봤지만, 도월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잘 된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청령은 도월을 보고 흠칫했지만, 도월은 앞만 보며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왔지?”
“요청서를 왜 승인해 주지 않은 것인지 여쭤보고 싶어 왔습니다.”
며칠 전, 청령은 다시 입구로 돌아가길 원하며 도월과 현재 있는 구역을 바꾸길 원한다는 배정 요청서를 올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반려된 요청서였다.
“도월 선관이 남은 기간 동안 입구에 있는 것이 맞다고 보기에 승인하지 않았다.”
“더 오래 머물렀던 제가 있는 게 맞지 않습니까?”
“오래 머무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에는 그대와 같은 선관이 필요하고, 입구에는 공방전에 능한 선관이 필요하다. 능력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이다.
청령은 옥황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는 그 결정을 따르게습니다. 각자 필요로 하는 위치에 있는 게 맞죠.”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설마 그런 의도로 결정을 내렸겠습니까?”
“싸울거면 내가 없는 곳에서 싸우게나.”
“불만 있는 분은 남아서 더 따지고 오시죠.”
도월은 먼저 집무실을 나왔다.
— — — — — —
한차례 마찰들이 지나가고, 소문은 더욱 빠르게 퍼졌다. 방울과 소윤에 대한 말은 없었고, 청령과 도월의 얘기였다. 도월은 신신당부를 했다. 어떤 말이 나와도 그 말에 반박하지도 말고, 발끈하지도 말고, 눈과 귀를 닫으라고 했다.
“설마...”
“왜?”
문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저 착각으로 그치면 좋았을 말을 했다.
“이건 그냥 내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모두한테 자기는 악으로 남으려고 하는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달이가 악으로 남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답답함에 청령은 약방으로 왔다가 문강과 해선이 하는 대화를 듣게 됐다.
“그게 다 무슨 말이냐고요.”
청령은 지배를 당한 동안 기억이 없다는 것까지 도월이 알려줬다. 그런 그에게 설명을 시작하면 기억이 없는 부분까지 말해야 했기에 망설였다.
해선이 망설이고 있는 동안, 문강이 그와의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당신 때문에 달이가 없는 잘못까지 다 뒤집어쓴다는 말입니다.”
“뭐?”
문강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얘기했다. 현진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까지 전부.
“달이는 당신 잘못까지 혼자 감당하고 있다고.”
“...”
“선배라는 놈이, 한 여인을 좋아한다는 놈이 이걸 몰라?”
청령은 믿기지 않았다. 문강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기억이 없으면 알아보려고 해야지, 왜 가만히 있는 건데! 도대체 왜!”
“나는... 난...”
“천국을 구한 애가, 당신 낙원을 지킨 애가 천하의 역적이 되게 생겼는데, 당신은 거기에 대고 뭐라고? 차라리 비사로 가라고? 네가 그러고도 달이 선배야?!”
“문강, 그만해.”
해선은 감정이 격해지는 문강을 청령과 떨어뜨리며 말렸다.
“청령 님, 죄송하지만 저희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머리를 맞은 듯한 청령은 잠시 벙쪄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를 옥황의 집무실을 다시 찾았다.
“옥황님.”
돌아간 줄 알았던 청령이 갑자기 들어오니 옥황은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혹시 이 전쟁의 시작이 저 때문입니까?”
“갑자기 그걸 어찌...”
“제가 사술에 넘어가 지배를 당했고, 탑을 파괴하고, 지옥 것들을 불러들인 겁니까?”
“...”
“현진이 죽은 것도 모두 저 때문인 겁니까?”
청령은 울먹이며 말을 했다. 하지만 옥황도 그에 대해 말을 해줄 수 없었다. 도월이 그에게도 신신당부를 했기에.
— — — — — —
옥황은 보좌관과 복구 작업 일정을 짜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좌관이 먼저 도월과 청령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지금 선관들이 도월 님과 청령 님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지?”
“이 전쟁의 주요 원인은 도월 님이다, 청령 님이다, 사술에 넘어간 것은 청령 님의 잘못이지만 도월 님이 바로 알아보고 상황을 수습했다면 이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억지스러운 말도 있구나.”
“그렇습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고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술에 걸린 청령은 잘못이 없다’라는 의견과 ‘도월도 우리와 같은 선관일 뿐인데, 과한 억지가 아니냐’하는 말이 나왔다. 도월과 청령이 있는 곳에서 상황을 본 선관과 그렇지 않은 선관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나뉘었다.
“도월입니다.”
“자네는 잠시 나가있게.”
“네.”
도월과 보좌관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 옥황은 문서를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도월과 마주했다.
“아직 병상에 있어야 할 선관이 어찌 여기까지 왔는가?”
“지금 선관들 사이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아시죠?”
“방금 보좌관에 들어서 어떤 상황인지 예상하고 있다.”
“다행이네요. 그럼,”
“그전에 나 먼저 말하고 싶은데.”
“그러시죠.”
옥황은 도월에게 물었다.
“청령도 이 일을 아는가?”
“아니요.”
“그럼 직접 알릴 것인가?”
“그것과 관련하여 온 겁니다.”
옥황은 괜히 긴장을 했다.
“청령 님한테 ‘사술에 걸린 그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를 알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 그대가 모든 것을 뒤집어쓸 수 있다.”
“그러려고 이러는 겁니다. 선관들이 뭐라고 하든 옥황님은 그저 청령 님의 편에 서며, 그 사내를 지켜주십시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망나니로 날뛰면 되니까요.”
“...”
“부탁입니다.”
도월의 입에서 처음으로 부탁이라는 말이 나왔다. 고개를 숙이며 부탁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다. 옥황은 도월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 — — — — —
누구보다 진실이 무엇인지 원하는 청령이지만, 옥황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월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없다. 그저 들리는 것을 사실로 여기고, 알려고 하지 말거라.”
그렇게 옥황은 청령에게 등을 보였다.
청령은 집무실에서 벗어났고, 마지막으로 미뤄둔 곳으로 향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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